국가(國歌)로 보는 국가 #7 : 과거 애국가와 작곡자가 같은, 그래서 안타깝지만, 그만큼 더 이해할 필요 있는 『일본 국가』 & 일본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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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국가, "君が代" : 이해 목적일 뿐이며, 들으시면서 보세요.>

가사는 사실상 1줄, 분량 1분 30초로 세계 최고로 간결하고 짧습니다.

「군의 시대는(君が代は) 천대~팔천대까지, 작은 조약돌, 큰 바위를 이루고, 이끼가 낄 때까지.」

<일반인의 개인적/일시적 정리글일 뿐이므로, 맥락 위주로 보시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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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본 국가의 주요 특징


① 유래: 913년, 고금화가집에 실린 장수 기원곡

언뜻 일본제국 시대에 만들어진 것 같지만, 913년 편찬된 고금화가집(古今和歌集)에 이미 실려있던 노래입니다. 고금화가집은 당시 일본의 고급시집 정도로 생각하시면 편합니다. 한국/중국에는 유교에 기반한 한시가 있었다면, 유교문화권이 아니었던 일본에는 화가(和歌)가 있었고, 현재도 일본문학의 연구대상 분야입니다.

용도에 대해서 설왕설래가 있지만, 주로 연장자 혹은 사랑하는 이의 장수를 기원하는 축가로 오랜 기간 불리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당시의 가사를 한 번 보시죠.

나의 그대는(我が君は) 천대~팔천대까지,
작은 조약돌, 큰 바위를 이루고, 이끼가 낄 때까지.

한시가 4-4 형태가 많다면, 화가는 5-7-5-7-7 형태가 많습니다. 일어 특유의 리듬감과 표현력에 적합하다고 하는데요. 그래서인지 현대 일본 애니의 좀 오그라드는 대사들도 잘보면 은근 5-7-5-7-7 형태를 띈 것이 많습니다.

"君"이라는 말이 당시에는 "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슬램덩크 만화를 보면 "강백호 군", "서태웅 군" 이렇게 많이 부르는 것 보셨을 겁니다. 우리나라도 사람 부를 때 "김 군", "박 군" 등 아직도 쓰이고 있지요.

이 곡은 당시 국가(國歌)도 아니었고, 사랑받고 불리던 곡에 불과했지요.


② 현재 곡: 메이지 시대에 가사 살짝 바꾸고, 서양식으로 탈바꿈한 곡

1850년대부터 서양 열강의 요구 속에 굴욕적 조약들을 맺고, 나름 고통을 겪긴 했지만, 반대급부로 메이지 유신이 되어 쇄국을 실시하던 막부 체제는 다시 왕정으로 복고되고, 일본은 개방되면서 입헌군주국 형태의 근대 공업국가로 변모하고 번성하게 되는데요.(1868~1912년)

이때 "하야시 히로모리"가 원곡의 앞부분을 살짝 바꾸고, 선율도 붙인 아악을 만듭니다.

맨 앞 부분 가사인 "我が君は"를 "君が代は"로 바꿨을 뿐인데 뉘앙스가 꽤 바뀝니다. "나의 그대는"에서 "군의 시대는"으로 바뀌는 것이죠.

군의 시대는(君が代は) 천대부터 팔천대까지,
작은 조약돌이 큰 바위가 되어 이끼가 낄 때까지.

이때부터는 "군"은 대체로 "일왕(=소위 천황이라 일컬어졌던)"을 뜻하게 됩니다. 제국주의 열강들이 팽창하던 시기였기에 일본도 그러한 흐름을 따른 것이죠.

과거 아시아 국가들은 국가(國歌)개념이 거의 없었습니다. 외국과 외교하면서 군악대가 국가(國歌)를 연주하는 방식은 서양의 방식이었기에, 급하게 이런 형태의 국가(國歌)가 필요했습니다.

때마침 독일 해군 군악지휘관이었던 "프란츠 에케르트"는 일본에 파견되어 악단을 양성하였는데, 일본제국은 그런 그에게 서양식으로 다시 만들어줄 것을 요청합니다. 그는 일본의 전통음계(=미파#솔시도)를 공부한 뒤 서양화성을 섞어 현재의 일본국가를 최종적으로 완성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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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에케르트">


③ 대한제국 애국가와 일본 국가는 편곡자(준 작곡자)가 같음

"프란츠 에케르트"는 먼저 일본으로 파견되었습니다. 그가 1880년 일왕의 생일에 만들어 최초 배포한 것이 현 일본 국가이고, 고종의 초청으로 대한제국에 와서도 서양식 악단을 키웠는데, 1902년에 그가 대한제국 애국가를 만들었습니다.

참고로 대한제국 애국가는 "프란츠 에케르트"가 민요 "바람이분다"를 모티브로 당시 한국/중국 음계(=도레미솔라=궁상각치우)를 따 서양식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같은 사람이 만들었고, 제국주의가 팽창하던 시기에 자국의 왕을 띄우는 가사를 담았기에 당시 "일본제국" 국가와 "대한제국" 애국가는 사실 음계에서는 다르지만 곡 분위기 자체는 비슷한 느낌이 듭니다. "대한제국" 당시 애국가 복원된 것 들어보세요.


<복원된 대한제국 애국가>

※ 결국, "프란츠 에케르트"가 1880년 일본 국가를, 1902년 대한제국 애국가를 만들어서 한일 양국 국가를 모두 만들어 준 것이 사실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당시 양국 국가 모두 전통적으로 시중에 불리던 선율에 전통음계를 활용하여 서양 화성에 맞게 재편곡한 것이긴 합니다. "에케르트"가 완전히 작곡했다기보다는 편곡했다고 보는 것이 좀 더 적절한 것 같긴 합니다.

여튼 그가 양국 국가를 모두 만들어주게 된 것은 아이러니한 부분입니다. 당시 한일 양국을 드나들던 서양음악가가 매우 드물었고, 그만큼 서양과의 교류가 적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네요. 심지어 "에케르트"가 1916년 한국 땅에서 사망하자 당시 순종은 거금(?) 100원을 보내고 장례를 지원했을 정도로 그를 신뢰했던 것 같습니다. 일본제국의 국가를 지어 준 사람인 것을 알텐데도 고종/순종과 에케르트는 서로 참 친했나 봅니다.

물론 1910년 대한제국 애국가는 금지곡이 되었고, 나라 잃고 구심점이 필요했던 독립운동가들은 현재 애국가와 동일한 가사에 아일랜드 민요(=우리에게는 졸업식에서 부르는 "작별"로 잘 알려진 노래) 멜로디를 차용해 애국가로 불렀습니다. 하지만 이 곡은 국가로 하기엔 너무 구슬픈 외국 곡이었습니다. 그 후 정식으로 대한민국이 건국이 되면서 안익태의 "한국환상곡"에 가사를 그대로 옮겨 사용한 것이 현 애국가 버전입니다.

참고로 당시 대한제국 애국가 가사는 거의 영국 국가 가사와 유사했기 때문에, 가사만 보면 대한제국 애국가는 "대한제국"이라는 이름처럼 상당히 제국주의적인 가사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나라를 잃고 사라지고 현재의 애국가로 가사도 곡도 완전히 바꿔 불리게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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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현재 일본인들은 일왕 칭송보다는, 관습적으로 혹은 자신을 대입시켜 부름

이 곡이 일왕을 숭배하고 군국주의의 상징이라면서 부르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드물게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제국 시절에 일왕을 띄우는 가사로 바뀌고 불리어서 그런 상징성을 갖게 된 것이지, 원래는 연장자 혹은 사랑하는 이의 장수를 기원하며 1,100여년이나 불린 노래이기도 합니다.

현재로서 일왕은 형식적이 된지 오래기에, 왕을 칭송하는 의미는 많이 퇴색되었습니다. 도쿄 한복판에서 살고 있긴 하지만, 실제적으로 아베 총리가 모든 권한을 행사하는 의원내각제 국가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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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 큰 존재감 없이 거주하는 일왕의 거처 "고쿄">

요새의 일본 사람들은 "왕"을 칭송한다기보다는, 오래도록 불려온 곡이기에 그냥 관습적으로 부르는 것이며, 국가로 바뀌기 전 원곡의 의미처럼 "君"을 자신 혹은 연인 등으로 생각하고 부르면 한결 기분좋게 부르게 된다고 하더군요.

"군의 시대는"을 "왕의 시대"가 아니라 노래부르는 "나(혹은 연인 등)의 시대"로 해석하는 것이죠.

그러면, 일본인들은 이 곡의 유래인 "나의 그대는"과 유사하게, "나의 시대가" 오래도록 번창하라는 좋은 뜻으로 생각하고 부를 수도 있겠지요?

물론 우리에게는 일제 시대에 강제로 불러야 했던 아픔도 있고, 역사적으로 안타까운 이슈가 많기 때문에 이런 현대적 해석보다는 "군"이라 하면 과거 "일왕(=소위 "천황")"을 떠올리면서 일본 국가를 군국주의 국가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래서 한국 방송에서는 틀지 않는 것이 사실상의 불문율이며, 예전에 JTBC 비정상회담 프로에서 일본 패널이 등장할 때 틀었다가 엄청 욕을 먹고 피디가 교체되기도 했었습니다. 등장인물의 국가를 틀어주는 것은 기본인 프로였는데, 일본 패널 나올 때 일본 국가를 튼 것 자체도 문제시 된 것이지요. 그만큼 아직 한국 내에서는 많이 꺼리는 음악입니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국제경기(축구 등)에서 국가가 연주되는 것은 불가피하게 그대로 방영하고 있습니다. 일제에서 벗어난지 얼마 안됐을 때에는 그것마저 잠시 다른 화면 등으로 대체했었다고 하네요.

일본의 행태를 볼 때, 당연한 부분 있겠지요. 하지만 이런 가사는 과거 제국주의를 시도했던 "영국", "독일", 등에서도 여전히 그대로 자국 국가로 불려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과거를 반성한다고 다소 미화되고 있는 "독일"도 여전히 나치 독일에서 부르던 그 노래 그대로 "독일국가"로 부르고 있습니다. 다만 인종우월성 가사가 있는 1절이 아닌, 무난한 가사의 3절을 부르는 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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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대한제국"도 같은 수준으로 고종을 띄우는 가사를 만들었지만, 망하는 바람에 사라져 버렸죠. 만약이지만 "대한제국"이 그대로 지금까지 유지되어 오면서, 정치체계만 바뀌었다면 어쩌면 당시 "대한제국" 애국가를 우리도 부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아마도 힘들것 같긴 합니다. 우리 국민들이 당시 조선 혹은 대한제국에 대해 영국/독일/일본 급으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진 못한게 현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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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간단한 가사지만, 일본의 2가지 특성 드러내

: 특유의 섬세함, 근면성실함

일본이 애초부터 섬나라는 아니었습니다. 중국/러시아 지역에서부터 한국 지역을 지나 먹이를 구하러 좀 더 멀리 가던 소수의 사람들이 일본에 안착하게 되었는데, 빙하가 녹아 잠기면서 섬이 되버려 갇힌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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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이 되버린 당시 일본인구는 약 3~60만 정도로 추정된다고 하는데요. 사견이지만, 이 적은 인구가 태풍 등 자연재해가 잦은 곳에서 견디고 살게 되면서 상대적으로 공동체 의식이 높아지고 근면성실해지고 섬세해진 측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정적으로 보면 그로인해 군국주의적 성향, 과도한 타인 의식과 예민함 같은게 생겼다고도 볼 수 있겠지요.

물론 이것은 큰 틀의 인식일 뿐, 거대한 현대 국가의 사람들을 하나로 단정지을 수 없습니다.


<히사이시 조(hisaishi joe) : 하울의 움직이는 성 OST>

"現 일본 국가의 유래인 그 짧은 가사 1줄 다시 보시면,

"나의 그대는(我が君は) 천대~팔천대까지. 작은 조약돌, 큰 바위를 이루고, 이끼가 낄 때까지."

전체적으로 특유의 섬세함과 근면성실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워낙 짧고 행사에 쓰이던 노래이기에 다른 곡들보다는 그런 면이 훨씬 안 보이지만, 이 곡이 담긴 "고금화가집"의 화가들을 보면, 많은 섬세한 가사들이 담겨 있습니다. 일본인들에게는 딱딱하고 유교적인 내용의 "한시"는 맞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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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


① "일본은 없다", "세계가 일본된다"라는 말의 함정

"일본은 없다", "세계가 일본된다"란 표현을 보면 감은 오나 사실 참 막연하고 한 부분만 꼬집은 말입니다. 대략 전자는 일본이 반성하지 않으며 앞뒤가 다르고 생각보다 경직된 사회라 경쟁력을 잃을 것이라는 의미일 것이고, 후자는 저성장과 장기불황에 빠져 어려워질 것이라는 뜻일 겁니다. 반면교사할 필요 있는 내용들이지요.

하지만 1억 이상의 인구를 가진 국가 중에 국민소득 6만불을 찍었던 국가는 미국과 일본 밖에 없습니다. 물론 현재 일본은 엔화약세 정책을 실시하다보니 달러환산 소득은 많이 낮아지고 물가도 우리와 비슷하게 떨어져서, 어느 덧 한국인 해외여행객의 약 30%를 차지하는 관광국가가 되고 있기도 하지요.

전 세계가 일본 정도로만 살 수 있다면, 경제력/치안/환경/기술 등 여러 측면에서 어쩌면 지구가 아주 좋아지는 것 아닐런지요. 가난하거나 위 여러 측면에서 결핍된 국가들은 여전히 너무 많습니다. 앞에서만이라도 그만큼 친절하고 배려하며 깨끗한 국가는 많이 있던가요? 아시아/유럽/북미/남미/아프리카 등 아무리 생각해봐도 떠오르는 국가 많지 않습니다.

그들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우리는 좀 거추장스러워하는 가방을 여러 개씩 가지고 다니며, 그 안에는 우산 / 각종 세안도구와 화장품 / 그 외 필요할 수 있는 물건들을 잔뜩 가지고 다니면서, 수시로 본인들의 외모를 고치고 변하는 날씨를 대비하는 조금은 무서운 사람들입니다. 타인을 의식한다는 것은 그래서 무서운 것이기도 하지요.


② 지피지기의 진짜 뜻을 명확히 알고 일본을 이해할 필요성

제국주의적인 행태를 보였던 국가들 중에 전쟁을 일으킨 것 자체에 대해서는 큰 반성이나 사과를 한 것을 본 적은 저는 없습니다. 독일조차도 자신들의 성장을 위해 전 유럽을 상대로 무차별 인종학살을 한 것에 대해 주로 "유대인"에게 사과하고 성찰하는 것이지, 전쟁을 일으킨 것 자체를 사과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영국, 독일, 프랑스, 러시아 등에 대해서는 그런 제국주의적 국가라는 이의제기를 하지 않으면서, 일본과 일본 국가에 대해서만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우리가 일제에게 수탈당했던 역사가 깊이 남아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일제 시절에 대한 매우 안타까운 부분이 많은 것도 사실이고, 그에 대한 반성 적은 일본의 행태를 이유로 한국에서는 누군가 일본의 강점을 칭찬만 하더라도, "친일파냐?"는 댓글이 거침없이 나오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그렇게 일본과 일본문화를 욕하면서, 대부분 가져오고 즐기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어떨때는 또 일본을 배우라 하면서 한국인 특성에 대해 자조적인 멘트를 날리기도 합니다. 종 잡을 수가 없는데요.

현 상황에서 꾸준히 불만을 제기해야 할 곳은 중국, 북한 등 코 앞에 더 많이 있습니다.

이제는 역사적인 것과 현실세계의 문화/무역 교류는 분리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역사적인 부분은 그것대로 진행하고, 또 배울 것은 배우고, 챙길 것은 챙겨야 할 것입니다.

현재 연간 해외여행객의 약 30%가 일본을 다녀오는 현실에서, 그런 태도는 과거 열강에 맞서 쇄국정책을 실시하던 모습이나, 정파적 논리에 함몰되어 일본이 침략할 가능성 없다고 우기던 조선통신사들의 모습이 오버랩되곤 합니다.

열강의 개항 요구를 진지하게 듣고, 좀 굴욕스럽더라도 사대부들의 기득권을 좀 내려놓고 국민들을 위해 무엇이 더 큰 이익일지를 잘 판단하여, 1868년 신미양요가 일어나던 그때만이라도 개항을 했더라면, 일제에 그렇게 쉽게 국가를 내주었을까요? 그 시기에 2~30년 차이는 공업국가와 농경국가 사이에서 엄청난 국력 차이를 만들었지요.

일본도 개항은 나름 일찍했지만, 실제적 근대로 진입하게 된 것은 신미양요와 같은 해인 1868년에 이뤄진 메이지유신 이후이며, 불과 그 1~20년전부터 시작한거나 다름없었습니다.

남한보다 약 4배 가까운 면적에서, 약 1억 3천만 인구가 사는 일본 전역이 사실상 방사능으로 뒤덮였다는 루머에 빠지거나, 오사카 등 일부 지역에서 혐한 사건이 종종 있다거나,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소위 "차단"해 버리고 이해하지 않으려 한다면, 실질적인 세계 G2이자, 아시아 최고 선진국을 배척하는 것에 다름없습니다. 우리가 더 힘을 키워 반성을 요구해야겠지요. 대등하거나 강자에게만 경제적/정치적 필요에 의해 사과하고 수용하는 것이 아쉽지만 엄연한 국제질서입니다. 독일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성장을 위해 유럽 전역이 필요했지만, 일본 입장에서 그들의 성장을 위해 한국이 꼭 필요하다고 여기고 있지는 않을 겁니다. 없어도 잘 살 수 있다는 심리가 작용하고 있을 수 있는 것이죠.

지피지기해야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서의 지피지기가 단순히 내 선입견 하의 기준에서 남을 이해하고 재단하라는 것은 아닐 겁니다. 그것은 독단/오만으로 전멸하는 케이스겠지요.

나를 철저히 알고 타인이 나를 어찌 보는지까지 알아야만, 타인이 어찌 행동할 지를 알 수 있고, 그렇다면 결국 내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까지 계획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정도 능력되려면, 평소 꾸준히 타인을 알아가야 하고 내 자신도 돌아봐야 하는 부담은 불가피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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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건강 잘 챙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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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잘 보았습니다^^ 지피지기 백전불태 개인적으로도 역사적인 부분은 그것대로 진행하고, 또 배울 것은 배우고, 챙길 것은 챙겨야 한다는점 많이 동의 합니다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좀 많이 조심스런 부분이라 아예 일본은 쓰지 말까 고민했답니다 ㅎㅎ
좋은 하루 보내세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lostmine27 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오 굉장히 재밌게 보았습니다. 앞선 글들도 정독해야겠군요.

감사합니다. 가볍게 봐주시면 좋겠네요.
편한 시간 보내세요.

와 대한제국가 첨 들어 봤습니다.
대부분이 처음 들어보는 내용입니다. ... 알아야 할게 많군요
잘 봤습니다.^^

저도 심심할 때 공부하면서 알게 된 수준이에요.
만주 연해주 지역 탐방 다녀오시는 것 보면 대체로 훨씬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엄청난 포스팅에 감사드립니다 :)
일본유학 졸업식에서 키미가요를 처음으로 직접 들었었는데 기분이 참 묘했었습니다 ㅎㅎ

아하 유학파셨군요 @.@
그러셨을 것 같아요.
일본 사람들 남녀노소 가방을 엄청 빵빵하게 하고 다녀서, 가방검사 해보고 싶은 적이 종종 있었습니다. 대체 뭘 넣어다니는 건지 말이죠.ㅎㅎ
그리고 휴대용 DVD 플레이어를 여전히 많이 팔고 있는게 신기하더군요.
감사합니다.

대한제국 애국가도 있었네요.

네 그렇더라구요 심지어 에케르트는 양화진에 묘가 있더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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