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와 믿음의 리더십 : 마르쿠스 카토 (2)

in #kr6 years ago (edited)
☐ 이기는 리더, 승리하는 리더십
- 인내와 믿음의 리더십 : 마르쿠스 카토 (2)

야심만만한 청년이었던 카토는 서민들을 위해 무료변론을 마다않는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면 로마사회에서의 평판을 착실히 쌓아나갔다.

로마는 머리=화술인 사회였다. 뛰어난 화술이 뒷받침되어야 힘센 자리에 올라 명예로운 일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카토가 화술을 키우려고 채택한 방법은 로마 외곽의 마을과 도시들을 돌아다니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무료로 변론을 해주는 것이었다. 카토에게는 화술도 키우면서 인심도 모을 수 있는 최적의 방식이었다. 카토는 의욕 넘치는 열정적 변호인에서 노련하고 유능한 연설가로 곧 발전해갔고, 그의 진가를 알게 된 사람들은 카토가 높은 관직에 올라가 큰일을 할 인물임이 틀림없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카토의 야심은 주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컸다. 그가 솜털이 아직 보송보송한 소년 시절부터 전쟁에 나간 것은 단시간에 명성을 드높이기에는 싸움터가 가장 좋은 공간이라고 판단한 이유에서였다.

카토 자신의 주장에 따르면 그가 처음으로 군대에 들어간 시기는 겨우 17살 때였다고 한다. 한니발이 한창 기세를 올리며 이탈리아 반도를 종횡무진으로 누비고 있을 무렵이었다. 카토 같은 서민의 아들들에게는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우는 것이 단숨에 출세할 수 있는 지름길이었다.

전장에서의 카토는 한 마리 사나운 맹수였다. 손과 발이 빨랐으며, 눈매와 표정은 매서웠고, 고함소리는 크고 우렁찼다. 이때 보여준 소년병 카토의 모습은 나중에 장군이 된 다음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지휘관이 된 카토는 졸병 시절과 다름없이 무기와 갑옷을 스스로 직접 소지하고 행군했으며, 거친 음식을 마다하지 않았다. 자수성가를 이룬 인물답게 언제나 솔선수범했다. 개구리 올챙이 적 모른다는 소리는 카토에게는 그저 남의 얘기일 뿐이었다.

카토가 경작하는 밭 근처에는 한때 마니우스 쿠리우스의 소유이기도 했던 작고 누추한 오두막 한 채가 있었다. 카토는 쿠리우스 같은 위대한 인물이 되기를 바랐다. 쿠리우스는 시칠리아와 이탈리아 반도를 넘나들며 로마를 호시탐탐 노리던 에피루스의 피로스 왕을 몰아내며 세 번이나 개선식을 올린 전쟁영웅이었다.

쿠리우스는 전쟁에서의 무훈 못지않게 청렴함으로도 명망이 높았다. 그는 순금을 선물로 들고서 자신을 찾아온 삼니타이 족의 사절단을 “황금을 가진 것보다 더 영예로운 것은 황금을 가진 자를 정복하는 일이오”라면서 돌려보냈다.

전쟁영웅은 나 하나만의 능력으로는 되기 어렵다. 반면에 검약과 금욕은 혼자서의 의지만으로도 가능하다. 카토는 쿠리우스를 본떠서 생활방식을 가일층 강하게 죄었다. 그는 사치는 더더욱 줄이고 노동량은 반대로 늘렸다. 증가한 노동량에는 본인의 그것은 물론 하인들이 노동량도 들어 있었다.

카토는 젊었을 적에 파비우스 막시무스가 지휘하는 타렌툼 공략전에 참여한 경험이 있었다. 당시 그는 피타고라스 학파의 일원인 네아르코스와 같은 숙소를 사용했다.

네아르코스는 쾌락은 인간을 악행으로 유혹하는 원흉이므로 육체적 감각에 정신의 고결함을 예속시키지 말 것을 강조했는데, 그의 이러한 사상에 깊게 감화된 카토는 검소와 절제를 중시해온 삶의 태도를 한층 더 강화하였다. 그가 나이를 꽤 먹은 뒤에야 그리스어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희랍인들의 번잡한 말이 로마적인 소박한 삶에 방해가 될지도 모른다는 믿음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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