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 올림 (‘희망’에 관한 짧은 생각)

in #kr5 years ago (edited)

맘‘충’이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되곤 좀 충격 받았었다.

왠지 순수한 척 하는 것 같아서 속마음을 말하기가 좀 망설여지지만 그냥..(질러버리자..)
저 ‘충’자가 내가 알고 있는 그 충虫이 맞는건지 다시 한번 확인해보고 실제로 그 정확한 뜻을 검색도 해보았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실제로 나를 (정말 그 단어 뜻대로 내가 엄마의 모습일 때) 충虫처럼 (벌레를 보듯이 혐오스럽게) 보는 눈빛을 세번 목격했기에 (온라인에서 한번, 오프라인에서 두번) 나도 정말로 소위 말하는 맘虫인지도 모르겠다.

(궁금해하시는 분들을 위해, 온라인에서는 엄마들 카페에 아기 대변을 멋모르고 매너 사진 없이 그대로 올렸다가 봉변을 당했고 오프라인에서는 한국에서는 샌드위치를 사러 갔다가 돌쟁이 아기가 갑자기 우는 바람에, 또 홍콩에서는 감기가 걸린 돌쟁이 아기에게 숨도 못 쉬게 마스크를 씌웠다는 이유로 말 그대로 벌레를 보는 듯한, 나를 혐오스럽게 보는 눈빛을 목격한 적이 있다. 오프라인과 온라인, 또 국내와 국외에서 모두 虫으로 인정받은 나는 정말 인터내셔널 민폐 캐릭터인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예민해졌을까. 누군가를 당당하게 ‘벌레’로 이름 지을 정도로 우리는 왜 이렇게 서로를 혐오하고 세상에 분노하게 되었을까.

물론 모두가 그렇지는 않은 것을 안다. 여전히 부족한 나를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봐주는 사람이 있으며 (그것이 나를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간에) 우리는 그런 눈빛에 기대어 또 하루를 힘내어 살아간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세월호 사건이 작년이었나요 재작년이었나요’ 라고 물었다는 것을 책을 읽다가 알게 되었다. 그 책에서는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이란 책이다.)이런 박 전 대통령의 이상하게 보이는 비정상적인 발언에 대해서 자기 방어 기제가 작동한 것으로 설명했다.

박 전 대통령은 어린 시절부터 청와대에서 살았고 이른 나이에 부모 모두를 잃었다. 한 전문가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해 트라우마가 형성될 수 밖에 없었던 환경이라고 말하며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이런 발언은 트라우마에 대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자기 방어기제가 무의식적으로 작동한 것으로 설명했다.

자기 방어기제라…

가끔 내 자신이, 혹은 다른 사람이 갑자기 이상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평소엔 안 그랬던 사람이 갑자기 뜬금없는 상황에서 버럭한다던가, 나는 정말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타인이 나를 향해 갑자기 울컥하며 분노를 쏟아내는 경우 말이다. 우리 대부분은 이런 경우를 당하기도, 또 직접 타인에게 이런 자신조차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을 보여준 적도 있을 것이다.

나는 세돌 된 딸에게 영어를 읽혀주다가 딸이 귀찮은 듯이 ‘하.지.마’ 라는 단 세마디를 했다는 이유로 갑자기 딸에게 “그래! 안해! 엄마 너랑 안 놀거야. 앞으로 너 혼자 놀아!” 하고 소리치며(절규하며) 돌쟁이 아들을 데리고 휙 하고 방에 들어갔었다..ㅡ_ㅡ;;

엄마의 반응에 황당했을 나의 천사는 상처 받은 영혼(엄마)을 달래주기 위해 엄마가 팽개쳐버린 영어책을 들고 (영어단어를 가리키며 천진난만하게) “엄마 이거 뭐야? 했지만 상처 받은 영혼은 끝까지 그 천사 같은 눈빛을 외면하며 “너가 하지 말라고 했지? 왜 하지말라고 했어! 너가 하지말라고 해서 안 하는거야! 가! 너 혼자 놀아!!” 하며 계속 절규했다…ㅡ-ㅡ;;;

나는 절규하며(엄마와 화해하려는 딸을 거부하며) 속으로 ‘이건 아닌데…’라고 생각했지만 내 자신을 통제할 수가 없었고 그저 못난 나의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딸은 아무리 노력해도 받아주지 않는 못난 엄마 때문에 결국 울음을 터뜨렸고 나중에 “왜 같이 놀아..?” 라는 말을 했는데 사실 이 말은 정황상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었다. 엄마가 절규하며(소리치며) “너랑 안 놀아! 앞으로 너 혼자 놀아!” 라고 했으면 앞뒤 문맥상 “왜 나랑 안 놀아?” 라고 물어봐야 말이 맞는데 뜬금없이 “왜 같이 놀아..?” 라니… 나는 그 말을 듣고 “응? 왜 같이 노냐고? (갑자기 어리둥절해 하며)” 하고 딸한테 물어봤고 딸은 몇번이나 “왜 같이 놀아..?” 라는 말을 중얼거렸다.

암튼 박 전 대통령의 비정상적인 발언과 세살 먹은 아기의 별 생각 없는 말을 나란히 비교하는 것도 좀 웃기긴 하지만 어쨌든 이렇게 언뜻 보기에 뭔가 앞뒤가 안 맞고 이상해 보이는 사람들의 언행은 혹시 대부분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로 순간적으로 평소답지 않은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닌가 혼자 추측해본다.

나는 언제나 바쁘셨던 엄마와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언니라는 환경으로 인해 (아빠는 내가 태어나고 얼마 안되어 헤어지셨다가 내가 사춘기 즈음에 다시 합치셨음) 아기 때부터 친척 집에 맡겨져 키워진 적이 있었고 그래서 그런지 내가 기억나는 유년 시절은 혼자 있었거나 아니면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거나 이런 회색빛 기억밖에 없다.

나는 사랑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거부 당하고 버림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일까.

세살 먹은 아기가 ‘하.지.마’ 라는 말을 무심코 던진 말에 내 안의 무언가가 건드려진 것일까. 그것은 바로 나의 두려움일까.. 또 다시 나는 버림 받을 것이라는.. 나는 결국 사랑스럽지 않은 존재이고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는..

세상의 모든 악은 어쩌면 모두 사람들의 깊은 곳에 숨겨진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어쩌면 아마도 ‘사랑받고 싶으나 사랑받지 못하는’ (정말 그런 것일 수도 있고 그렇다고 오해하는) 두려움이 가장 크지 않을까 또 생각해본다.

나에게 내재된 가장 큰 두려움은 무엇일까.
또 그 두려움을 나는 어떤 식으로 이겨내고 있는가.
혹시 나는 그 두려움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 그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나를 보호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를 보호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 두려움 자체를 보호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사랑받지 못할까 두려운 마음에 더 사랑받지 못할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암튼 지구상에 함께 옹기종기 모여 살아야 하는 운명을 져야만 하는 사이로서 서로가 서로를 벌레로 부르며 미워하고 죽이는 (실제로든, 아니면 마음 속으로든) 일은 점점 사라졌으면 좋겠다.

우리 안에 사랑이 가득 차올랐으면 좋겠다. 그래서 세상이 평화로워졌으면 좋겠다. 불가능할지도 모르지만 불가능한 것을 꿈꾸기에, 그 희망으로 또 오늘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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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그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결정하고, 그 대상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를 결정한다는 걸 감안하면 맘충이라는 말은 굉장히 우려스러운 말이에요. 어떤 존재를 벌레라 칭하면 결국 그 대상을 벌레 취급해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단계가 오죠.
일부 몰지각한 엄마가 있다고 백번 감안하더라도, 그 말은 아닌 거 같아요. 주변에서도 점점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겠다는 이들이 늘어나는 걸 보면 앞으론 육아에 대해 더욱 공감을 받기 힘든 분위기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걱정이 드네요. ;;

세상의 모든 악은 어쩌면 모두 사람들의 깊은 곳에 숨겨진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메가님의 실제 사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어요.ㅎ 제 안에 숨겨진 두려움과 그걸로 인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방어기제. 스스로도 부끄러운 모습들을 떠올려보게 됩니다. 한심해서 잠시 한숨을 쉬었어요,,

자신의 부끄러울 수 있는 면까지 드러내는 이런 글쓰기가 읽는 이에겐 감동과 용기를 줍니다. 내 안에 먼저 다른 이를 온전히 포용할 수 있는 넓은 품이 생겨나길 바래봅니다. ^^

자기 방어가 타인을 비난하고 공격하는 상황으로 만들어지는 경우를 종종 목격합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우리는 모두 소중하고 나를 지키기 위해선 나도모르게 그렇게 작동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기제가 현실과 다른방향으로 쓸데없이 작동하지 않도록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도 멋진 날되세요. @megaspore님~ (하지만 '맘충'이라니 사람들 너무하네요 ㅠ)

짧지 않은 사유가 깊은 글이네요. '세상의 모든 악은 어쩌면 모두 사람들의 깊은 곳에 숨겨진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는 생각에 공감합니다. 혐오 표현이 또 다른 폭력이 되어 누군가에게 트라우마가 된다는 점에서 참 우려스러워요. 저도 아이들 데리고 다니다보니, 저런 혐오 표현이 온라인 만의 현상이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겪는 정서라는 것을 실감하고 있어요.

잘 보고 갑니다!

맘충이란 단어도 있군요...ㅠㅠ
사랑이 가득한 세상이..
다들 꿈꾸는 곳이지만 자기도 모르게 그 꿈을 깨고
살아가는 사람들인듯합니다
날씨가 엄척 춥습니다

저도 맘충이란 단어를 책에서 처음보고는 갑자기 화가 밀어닥친 적이 있었습니다. 세상을 물론 자기기준으로 보겠지만 세상에 한 생명이 태어나고 이를 잉태하고 양육함은 삶에 있어 가장 큰 축복입니다. 세상이 갈수록 사는게 힘들어지다 보니 자그마한 불편과 짜증도 소화하지 못하고 내뿜어 버리는 현재의 시선들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우선 방송과 포탈에서라도 자극적인 단어의 사용을 삼가하는 게 좋겠다 생각이 듭니다. 어린 아이들이 이를 마치 유행어처럼 사용하는 건 더욱 안좋기 때문입니다. 뼈에 사무치는 원한이 있다고 하더라도 전체에 대한 맹목적인 비판은 또다른 비판을 낳게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으며 이들 또한 자기의 아이가 잉태되면 왜 그런 생각을 했었는지 반드시 후회할 것입니다. 우~~ 화가 가라앉지를 않군요..

어린시절 나도 알지못했던 나의 방어기제,약한 부분을 아이에게 들키면 나도 모르게 상황과 관련없는 말을 하더라구요..

엄하신 경상도 아빠를 가진 전 아이도 짜증나서 소리를지르면 왜 갑자기 소리치냐고 더 큰소리를 낸적이있어요..ㅜㅜ

그게 가장싫었던 유년시절의 트라우마인걸까요?

그나마 제가 아이를 키우면서 그 상처를 되물림하지않기위해 노력한다면 그게 치유일까요?

맘충..

엄마가 된후 뜨끔해지는 단어입니다..
힘들게 아이를 낳아 그저 열심히 키우고있다고 생각하는데.. 다 내맘 같진않겠죠..
하지만 우리처럼 조금씩 노력하고 있는 맘들이 있으면 차츰 차츰 그 인식이 달라지겠지요..

서로간의 이해가 필요한데..살기 힘든 세상이라 더 그런가봐요..

<제가 아이를 키우면서 그 상처를 되물림하지않기위해 노력한다면 그게 치유일까요?>

정말..말씀처럼 이것이 치유 방법인 것 같네요...

어린 시절의 기억은 분명 살아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겠지만..
그 시절이 행복한 기억으로만 차 있지 않아도 그 삶을 물려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버팀목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
가끔 행복한 가정에서 자란게 눈에 보이는 사람이 부럽기는 하지만요.ㅎㅎ
일부의 사람들을 부르는 말. 그 말이 쉽게 퍼지는 건 분명 사회의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걸 퍼나르는 사람, 그걸 생각없이 쓰는 사람들.
이렇게 네트워크로 얽혀있는 세상에서 그런 사람들이 없어지긴 힘들겠지만 조금이라도 줄어들었으면 좋겠네요 저도 ㅎ

모두 완벽할수 없는데... 실수하면서 배워가는건데 요즘엔 실수 한 모습들만 강조해서 최대한 극한 말로 몰아가는거 같아요... 아이가 없는 저에게도 "맘충" 이란말은 굉장히 충격적으로 다가왔었거든요... 사실은 앞뒤없이 그렇게 몰아가는일들이 좀 덜해졌으면 좋겠는데 점점 더 심해져가는걸 보면 점점 더 살기 힘든 세상이 되어가는거 같아요... 그래서 저는 더 사회속으로 못 들어가는거 같기도 하고... 조용히 일상을 보내는걸로... 위안삼으면서... 이것 또한 두려움에서 오는 자기 방어겠죠?

나부터 좀 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좋은 시선과 말로 대하는걸로 조금씩 나아질수 있다고 믿어볼께요~~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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