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압도적인 실력을 자랑했던 종목 ‘바둑’

in #kr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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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전도사 박원장입니다.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압도적인 스포츠는 어떤 게 있을까요?
양궁? 태권도? 정도만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인공지능과 중국의 맹추격으로 인하여 주춤해졌지만 우리나라의 바둑실력이 세계에서 압도적인 기량을 자랑했을 때가 있었답니다.

그때는 361칸에 바둑판 위에서 태극기가 훨훨 날아다니던 때입니다.
세계에 모든 대회에 우승할 것임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하던 시기였지요.
한국바둑의 전성기는 세계바둑의 전성기와 동일한 시기라고 할 수 있었고
무시하고 천대받던 우리 한국바둑은
1988년 제1회 응씨배에 거액의 우승상금인(40만 달러) 조훈현 9단이 대회에 우승하며
세계바둑에 중심으로 부상하기 시작합니다.
그 이후 한국의 바둑은 무섭게 성장하였고 다른 나라는 경외의 눈빛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게 됩니다.

오늘은 전성기를 이끌어간 3명의 주인공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주인공은 조훈현, 유창혁, 이창호입니다. 그 세명이 써 내려간 역사가 세계바둑의 중심이 되었고 오늘 들려줄 이야기는 2000년부터 2003년 동안 벌어진 무시무시한?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인공지능의 시대로 인하여 바둑이 많이 변화하는 추세이기에 새로운 시대에 변화를 적응하는 과정에 있는 우리들에게는 인간의 손으로 만든 마지막 역사이자 ‘전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국바둑 세계바둑대회 23연승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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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연승]

2000년 8월 12일 조훈현 9단이 제13회 후지쓰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에서 창하오 9단과의 대국이 시작됩니다. 어느덧 50살이 되어가는 조훈현은 창하오를 만나기 전까지 성적 1승 7패의 참담한 성적으로 은퇴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던 시기입니다.
하지만 창하오 9단을 상대로 당당히 승리하고 우승컵을 거머쥐게 되었습니다.
목진석 또한 일본의 고바야시 사토루를 상대로 반집승을 거두어 3위를 차지하게 되는데
이것이 역사의 첫걸음의 시작이 될 거라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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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연승]

한국기원 소속으로 활동하는 루이나이웨이 선수가 제1회 동방항공배 세계 여자바둑선수권에 우승하게 되며 2연승을 알립니다. 그 외에도 5연승, 21연승에 주인공이 되며 전설적인 대기록을 세우는데 크게 기여합니다.
뭐.. 루이나이웨이는 너무 막강해서..
(https://steemit.com/kr/@mooyeobpark/64gxxl - 루이나이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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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연승]

제5회 삼성화재 배에 유창혁이 ‘준우승 콤플렉스’를 깨고 우승을 해냅니다.
1999년 결혼 후에 대회마다 준우승만 차지하는 등 만년 2등이라는 서러운 타이틀을 가지고 있던 유창혁은 일본의 야마다 기미오에게 불계승을 거두어서 한국바둑의 3연승을 알리고 본인 또한 개인 통산 4번째 세계 우승을 거머쥐게 됩니다.
(https://steemit.com/kr/@mooyeobpark/tfrqe - 유창혁)

유창혁 프로는 미투로 인해 급하게 포스팅을 했는데 나중에 다시 한번 포스팅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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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연승]

유창혁의 바통을 이어받아 제4회 응씨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에서 이창호 9단이 창하오 9단을 꺾고 대회 우승상금인 40만 달러의 주인이 됩니다.
조훈현-유창혁-이창호 라인으로 이어진 연속 우승은 세계를 경악시키게 되고 응씨배 대회 역시 조훈현의 1회 대회 우승, 서봉수 2회 대회 우승, 유창혁 3회대회 우승에 이어 이창호가 4회 대회에 우승하게 됩니다.
전성기가 약간은 지난 선배이자 스승인 조훈현과 유창혁과 달리 최고의 기량을 뽐내던 이창호는 세계대회 14회 우승으로 바둑계에 아이돌로 부상합니다.

[6연승]

6연승은 개인전이 아닌 단체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제2회 농심 신라면배 세계바둑 최강전에서 조훈현과 이창호의 특급 마무리로 6연승을 거두게 되고 이 대회부터는 신예인 최철한 또한 좋은 활약을 하여 연승 기록을 이어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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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연승]

제5회 LG배 세계기왕전 대국에서 이창호가 우승합니다.
이대국에서는 급부상한 이세돌과 이창호의 앞으로 벌어질 라이벌전을 예고라도 하듯 치열한 경기가 시작됩니다.
이세돌이 결승 1,2국에서 이창호를 연달아 승리하면서 우승 가도를 달리게 되고
18세의 새로운 바둑 황태자가 등장하게 되는 순간을 모두가 숨죽여 지켜보았지만
돌부처 이창호는 조용히 침착하게 바둑을 두어가고 3,4,5국을 연달아 승리해내면서
황태자의 자리를 지켜냅니다.
이세돌 또한 이 바둑에서 패한 것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되고 복수의칼날을 갈게 되지요.

[9연승]

세계바둑대회 9연승은 또 한 번 유창혁 9단에 의해 세워집니다.
조치훈 일인 천하였던 일본 바둑계에서 조치훈을 무찌르고 일본 바둑계에 일인자로 새롭게 부상한 일본의 왕리청 9단과의 대국에서 유창혁 9단이 우승을 하게 됩니다.
또한 이 대회에서 우승한 유창혁은 세계대회 그랜드슬램을 달성할 수 있을지 초점이 모아지게 됩니다.
유창혁은 후지쓰배, 응씨배, 삼성화재 배, 춘란배를 우승하면서 LG 세계기왕전 대국에서만 우승하면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전까지 유일한 세계대회 그랜드슬램 달성자는 조훈현 9단뿐이었습니다.
조훈현 9단은 1994년 당시에 존재하던 3개의 세계대회에서 우승하여 그랜드슬램을 달성합니다.

[10연승]

전신, 바둑황제 최강의 바둑을 자랑하는 조훈현은 49세의 나이에도 실력이 줄지도 않는 듯
2001년 8월 4일에 제14회 후지쓰배 세계바둑선수권 대회에서 2 연속 후 우승을 하면서 한국에 10연승 기록을 안겨줍니다.
또한 제5회 후지쓰배에서 우승한 오타케 히데오 9단(50세)에 이은 두 번째 최고령 우승자로도 기록됩니다.
조훈현은 1989년 응씨배에서 첫 세계대회에서 우승을 한 이후 한 번도 세계대회 무대에서 내려온 적이 없습니다.
조훈현 포스팅을 할 자신이 점점 없어지는군요..


[12연승]

2002년 농심 신라면배 세계바둑 최강전에서 이창호, 조훈현, 유창혁 3인방에 최규병과 최철한 대표팀은 이름만 들어도 무서운 선수들의 활약으로 12연승 트로피를 안겨주고 단체전 불패신화 또한 9회로 늘어나게 됩니다.
또한 이날 이창호의 승리로 통산 1000승의 고지를 오르며 16년 만에 달성한 성과로 세계 최단기록을 달성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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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연승]

지금까지와 약간은 다른 색깔의 대국입니다.
제1회 호작배 세계 여자선수권 대회가 중국에서 처음 열렸고 이 대회 결승전은 놀랍게도 한국선수 두 명이 자리를 잡습니다.
여자바둑은 한국기원소속의 루이나이웨이 선수의 압도적인 면이 있었지만 그래도 한국바둑은 중국과 일본에 비해 한수 아래라고 취급받던 여자바둑이였고 그를 이용해 만든 중국의 세계 여자바둑대회에서 윤영선과 박지은 선수가 맞대결하게 되어 승리한 윤영선 프로는 우리나라 전설에 발자취를 남기게 되고 여자바둑 또한 세계 강자로 급부상하여 중국과 일본에 충격을 남겨주게 됩니다.

[15연승]

유창혁이 드디어 달성하게 됩니다.
LG배에서 우승을 하며 유창혁 그 본인 또한 그토록 염원하던 세계대회 그랜드슬램을 달성합니다.
결승전은 바둑황제이자 전신인 조훈현 9단과의 승부였습니다.
5번기에 결승국은 최종국까지 진행되었고 준우승만 3 차례를 달리던 LG배에서 힘겹게 우승컵을 거머쥐고 세계대회 15연승을 질주하며 세계 메이저 5대 대회에서 그랜드슬램을 달성합니다.
당시 국내기전에서 무관을 달리던 유창혁이 LG배 우승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정성을 쏟았는지 알 것 같은 대목입니다.

[18연승]

영원한 바둑황제 조훈현은 2003년 삼성화재배 세계바둑대회에서 중국의 새로운 영웅으로 떠오르는 왕레이를 이겨 우승을 차지합니다.
삼성화재배는 2 연속 우승 세계대회 18연승 메이저 세계대회 10 연속 우승이라는 새로운 기록을 수립합니다.

[20연승]

이창호가 2003년 제1회 도요타덴소배 세계 바둑왕좌전 결승에서 중국의 창하오를 꺾고 초대 우승자에 오르게 됩니다.
2001년, 2002년 세계바둑대회를 다 쓸어 담아 버린 한국바둑은 2003년에도 그 기세를 굽히지 않고 계속 우승을 하여 중국과 일본에 존경과 경외의 눈빛을 받게 됩니다.
20연승에서 많은 기자들이 왜 한국 바둑이 이토록 강한지, 20연승의 비결이 무엇인지 물었지만
그 어느 기사도 쉽게 대답하기 어렵고 신비한 기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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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연승]

전설이 마감됩니다.
이세돌이 전설의 마침표를 찍습니다.
2년 전 상처를 안겨주었던 LG배 대회에서 또다시 이창호를 만나게 됩니다.
이번에는 주인공이 이창호가 아닌 이세돌이 되면서 영화 같은 우승을 일구어냅니다.
이창호는 이 대회에서 패하면서 세계대회 결승에서 4년간 이어온 번 기불 패의 기록을 잃게 됩니다.


한국바둑의 연승 신화는 2003년 4월 제2회 바둑 아시아대 항전(단체전)에서 일본에게 우승컵을 내주면서 연승 신화를 마감하게 되고 9 차례 이어온 한국바둑 단체전 불패신화도 함께 막을 내리게 됩니다.

일본, 중국에 비해 약체국 평가를 받으며 웅크려있던 한국의 바둑은
아시아의 중심, 아니 세계의 중심에 크디큰 호랑이가 되어 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역사를 써 내려갔습니다.
인공지능의 시대로 접어든 지금 우리에겐 앞으로 볼 수 없을 진귀한 대기록이고 이 시대를 겪은 바둑팬으로서는 오랫동안 추억에 남을 전설로 남을 거라 생각됩니

나누어 쓸까 하다가 국토방위에 목숨바친이의 충성을 기념하기 위한 현충일을 맞이하여
애국심을 고취시킬겸 길게 적어보았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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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짱맨 호출에 출동했습니다!!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루이나이웨이 9단은 이창호 9단과도 대등했었으니, 정말 대단한 수준이었던 것 같아요^^

유창혁 9단 미투는... 외모지적 보다는 사람들이 바둑실력보다 외모에 더 환호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 섞여있는 것 같지만... 직책이 있으니 여성들에게 불편함을 줬다면 사과하고 잘 마무리 하는게 좋은 것 같아요.

그나저나 더 큰 사건의 당사자 김9단은 뭐하고 사는지 궁금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리스팀 합니다.^^

김9단이 현재 뭘하고 있는지는 대충알고 있긴한데; 기사화는 되지 않아서
말을 못하겠네요 ㅎㅎ;;
리스팀 감사드려요! ^^

저도 어릴때 아버지 따라서 기원하고... 바둑학원 다닌 기억이 있네요 그 많던 기원과 바둑학원을 이제 찾아보고 힘들어요 ...ㅎ 이제는 규칙정도만 기억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보니 좋군요

기원은 정말 많이 줄었고 학원들도 지방에는 찾기가 힘들어진 실정이지요 ^^;
바둑진흥법이 잘 발전되어서 바둑이 조금더 발전되었으면 좋겠네요

긴 내용 정독했어요. 익숙한 이름이 나오니 더 반갑기도 하고요! 글을 읽고 영상도 있나? 하고 찾아봤더니 대국이 나오기도 하네요. 한 번씩 찾아봐야겠어요!!

아고 감사드립니다 ^^; 워낙 유명한 대회들이여서 더욱 자세한 내용들은 검색하면 꽤 많이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대회하나하나 더 자세히 풀수있지만 저도 저나이때는 바둑과 잠시 멀어져있던 시기여서 ^^;;

인구수를 감안하면, 우리 기량이 압도적으로 보이네요. 서봉수가 응씨배 2회 우승자라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서봉수가 괜히 서명인 서명인 하는게 아니더라고요 알면알수록 그 실력에 놀라움이..^^;

루이나이웨이 9단은 생생하게 기억 나는군요. 잘 읽고 갑니다.

루이나이웨이는 정말 대단하신분이지요.. ㅎㅎ 감사합니다

23연승 대단 하네요 ㅎㅎ
이때가 한국 바둑의 전성기 였을까요?

조훈현프로의 응씨배1회우승부터 이미 한국바둑의 위상을 드높였고 이때는 전성기중에서도 레전드편이 아닐까 싶습니다 ^^;

갑자기 연승을 했으니 세계가 깜짝 놀랐었겠네요.
이세돌과 알파고 이후 많은 사람들에게 바둑에 대한 관심이 다시 생겼으니
앞으로도 기대를 해볼만하지는 않을까요?

인공지능이 너무 쌔요.....ㅠㅠ

와... 대단합니다.!!!!!!!!

이번기록은 꽤 대단하지요? ㅎㅎ

정말 꿈 같은 시절이었습니다.
국제 대회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참 편안했었어요..ㅎㅎ

가슴졸이지 않고 결승전을 보는게 당시였지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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