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딜런과 음악의 진정성

in #kr5 years ago (edited)

음악 전설, 비트 세대 아이콘 및 포크뮤직의 대변인 밥 딜런 (Bob Dylan)은 뮤지션 최초로 2016 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노벨 위원회는 싱어 송 라이터인 밥 딜런에게 "미국의 위대한 노래 전통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했다"며 수상을 발표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밥 딜런은 음악 제작자의 전통적 아이디어를 초월한 수년 동안 문화적 아이콘으로 그는 시대에 따라 여러 자아로 승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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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제1회 포크 리바이벌은 밥 딜런이라는 젊은 뮤지션을 주류 음악에 편입시키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넓고 광활한 미국 대륙을 떠돌았던 우디 거스리를 존경하고, 비트 제네레이션의 보헤미안적 자유분방함을 시적 가사로 표현했던 딜런의 음악은 포크의 중심이 되게 했다.

비트 세대(Beat Generation)는 그들의 신념과 문화적인 실천, 개인적인 습관으로 고립이 되어있었다. 주류 사회의 청교도주의를 거부하고 반문화적인 범죄, 음악, 마약, 섹스 등에 빠져 들었다. 새로운 경향을 추구했던 그들은 즉흥적인 독특한 화법으로 딜런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포크 뮤직의 진정성

테오도르 아도르노는 예술에서 ‘진정성’의 의미를 두었다. 음악 공연과 예술의 목적뿐만 아니라 개인의 일상에서도 진정성은 적용된다. 1950년대 이 후 미국 음악이었던 포크 뮤직에도 이러한 진정성 존재했다. 역사와 전통, 포크와 민중에 대한 이해를 공유하는 방향으로 그들이 실존적으로 요구하는 건 ‘정직’이었다. 음악적 형식은 청교도주의적 꾸미지 않는 순수함에 주제는 노동에 의한 육체적 고행을 선호했다. 저항 음악로서 포크 뮤직은 집단의 ‘진정성’ 즉 개인과 음악이 완전하게 합일된 세계를 성취하는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

초창기 밥 딜런은 사회를 비판하는 음악을 만들며 연주하며 개인의 인식을 바꾸어 저항을 자극하는 대중 음악의 고유한 창조성을 위해 노력했다.

Bod Dylan - Blowing in the Wind

How many roads must a man walk down,
before you call him a man?
사람은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봐야
진정한 삶은 깨닫게 될까?

How many seas must a white dove fly,
before she sleeps in the sand?
백 비둘기는 얼마나 많은 바다 위를 날아야
백사장에 편히 쉴 수 있을까?

And how many times must a cannon ball fly,
before they're forever banned?
전쟁의 포화가 얼마나 많이 휩쓸고 나서야 영원한 평화가 찾아오게 될까?

The answer my friend is blowing in the wind,
the answer is blowing in the wind.
친구여, 그건 바람만이 알고 있어.
바람만이 그 답을 알고 있다네.

How many years can a mountain exist,
before it is washed to the sea?
얼마나 긴 세월이 흘러야
산이 씻겨서 바다로 내려갈까?

How many years can some people exist,
before they're allowed to be free?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나야
사람은 참된 자유를 얻을 수 있을까?

And how many times can a man turn his head,
and pretend that he just doesn't see?
언제까지 고개를 돌리고
외면할 수 있을까?

The answer my friend is blowing in the wind,
the answer is blowing in the wind.
친구여, 그건 바람만이 알고 있어.
바람만이 그 답을 알고 있다네.

How many times must a man look up,
before he sees the sky?
얼마나 많이 올려다보아야
진짜 하늘을 볼 수 있을까?

And how many ears must one man have,
before he can hear people cry ?
얼마나 많은 귀들이 있어야
타인의 울음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And how many deaths will it take till we know,
that too many people have died?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되어야
무고한 사람들의 죽음을 깨달을 수 있을까?

The answer my friend is blowing in the wind,
the answer is blowing in the wind.
친구여, 그건 바람만이 알고 있어.
바람만이 그 답을 알고 있다네.

체제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었던 밥 딜런은 1964년 개인에 관심을 두며 전환을 시도했다. 대중들은 당황했고 좌파들은 딜런이 기회주의자라며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새로운 ‘진정성’에 대해 딜런은 저항 가수의 상징으로 정형화 되는걸 두려워했을지도 모른다.

이 시기에 딜런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저항의 음유시인으로 상징되었던 딜런의 침묵은 오히려 대중들의 궁금함을 자아냈고 신비화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그리고 개인적 변환 이후에 딜런은 정치적 환멸감과 음악 산업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는 실험적인 반문화가 상업적인 음악의 손쉬운 먹이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딜런의 다다이스트적 전략의 목적은 반성적 듣기 훈련이 되지 않는 청중들을 뒤 흔들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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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딜런 7명의 음악적 자아

토드헤인즈 감독의 영화 <아임 낫 데어>에서 밥 딜런은 시인, 선지자, 외부인, 가짜, 유명스타, 록커, 회심한 기독인의 정체성으로 등장한다.

쥬드 퀸 - Cate Blanchett
아서 림바우드 - Ben Whishaw
잭 콜린스 - Christian Bale
패스터 존 - Christian Bale
빌리 더 키드 - Richard Gere
우디 거스리 - Marcus Carl Franklin
로비 클락 - Heath Ledger

포크의 변절자 취급을 받다

1965년 뉴포크 페스티발에서 밥 딜런은 포크 기타가 아닌 일렉트릭 기타를 들고 공연을 했다. 포크의 진정성 측면에서 딜런의 록음악으로의 전향은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고 관객들의 야유와 언론의 조롱을 받아야 했다. 장르의 혼합은 이미 진행되고 있었고 딜런의 과감한 시도는 포크록 시대를 열었다. 경박한 대중주의자가 아닌 예술적 모험을 위해 스스로 포기해버린 예술가였다. 뉴포크는 커다란 반향을 던졌다. 독창적인 도전을 할 수 없도록 하는 독선적인 태도와 전통적 관행에 빠진 맹목적인 운동의 진정성에 대한 경고였다. 특정 장르에 대한 숭배하는 어리석은 자와 대중문화를 폄하하는 시선에 대한 반향이기도 했다.

아도르노는 “음악과 관계된 현대의 모든 생활은 상품의 형식에 지배 받는다.” “문화 산업은 의도적으로 위로부터 소비자를 통합하고, 소비자는 가장 무난한 방식으로 순종하는 구매자로 변화한다.”라며 산업화된 대중 음악이 청중과 예술가에게 자율성을 박탈하고 음악이 제공하는 가능성을 제거한다고 지적했다. 대중음악은 기성복처럼 표준화 되었고, 이를 부각시키기 위해 개성을 강조하게 되었다. 그러나 산업화된 개성은 대중 음악을 생산하기 위한 음악가의 ‘의사 개성’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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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8월의 커다란 사건이었던 우드스탁 페스티발에서 기획자들은 밥 딜런이 무대에 서길 바랬다. 저항의 상징이었던 딜런이 무대에 서는 건 당연시 되는 듯 했다. 그러나 딜런은 히피 자본에 의한 음악 축제에 전혀 참여할 의향이 없었다. 이미 정형화에 탈피하려 했던 딜런으로써는 반문화에 대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포위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우드스탁은 엉터리였다. 그런데 그게 나와 우드스탁 연합, 우드스탁이 상징하는 모든 것과 관계가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숨을 쉴 수 가 없었다. 나와 내 가족들은 꼼짝할 수 없었다.”라고 후에 고백했다.

영국으로 건너간 록 음악은 노동 계급의 젊은이 들을 체제에 융합하게 만들었다. 상업적 대중 음악이 새로운 세대를 미국의 노예로 만든 것도 있지만, 물 신의 노예로 만든 것이다. 그러나 1960년대가 지나면서 반문화적인 음악은 한계를 드러냈다. 시대의 변화 요구에 부합하지 못하면서 새로운 청중들은 반문화에 반감을 지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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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인 <연대기>에서 밥 딜런은

“그 시대의 행사들, 다시 말해 문화적으로 무의미한 모든 것들(나를 역겹게 하는…산더미같이 쌓인 바리케이드, 정부의 탄압…허위에 찬 왁자지껄한 목소리들)이 내 영혼과 자유의지, 총제적인 반자본주의운동을 가두고 있었다…나는 그와 같은 집단적 인물이 되고 싶지 않았다.”

반문화는 대중 매체의 검증을 거치자 마자 곧 바로 상품화 되었다. 거대 기업이 반체제 문화를 이용해 거대 이윤을 남겼다. 1960년대의 저항운동과 시대의 변화 속에 좌파들 역시 수혜를 보았지만 결과적으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밥 딜런의 음악은 1960년대 상품화 되었으며 시대에 따라 관념적 해석과 함께 재포장 되었다. 스스로의 정형화 탈피를 위한 예술적 노력은 음악과 삶의 태도에 대한 정체성에서 잘 드러난다. 음악이 사회를 변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진정성’과 자유로운 인간으로서 그 사회에 존재하기 위한 ‘진정성’의 사이에서 정체성의 딜레마는 밥 딜런의 음유적이고 다다이스트적인 삶의 길에 머무른 신비였을지 모른다.

글을 쓰면서 참고한 책과 영화들
[밥딜런 평전] - 마이크 마퀴스
[연대기] - 밥 딜런
[아임 낫 데어] - 토드 헤인즈
[노 디렉션 홈] - 마틴 스콜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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