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연재] 겜블라이프 #2

in #kr6 years ago (edited)

처음엔 일자리를 찾으려고 했다.

이틀이 지났고 난 부산으로 왔다.

예전 패턴의 반복이다. 인터넷 도박의 입금. 입금. 오직 입금만.

질때는 왕창 지고 이길때는 몸을 사려 깔짝 거리는 것이다.

몇일이 더 지나고 찜질방 갈돈도 없어 부산역에서 노숙생활을 시작했다.

집에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창원에서의 일자리는 창원에서는 꽤 알아주는 중견기업이었는데

마지막으로 가족이 나에게 기회를 준 곳이었다.

삼년만 버티면 또래의 평균보다 괜찮게 살수 있다며

삼촌의 언덕을 타고 낙하산으로 들어간 곳이었다.

재무재표를 살펴보니 꽤 우량한 기업이었다.

내 상사는 현대차에 파견되어 직원들에게 회사 지원으로

로비를 했고 총 12공정 중 6공정을 배워 왔다.

나는 상사가 이년간 배운 공정을

눈썰미와 메뉴얼을 보고 두달 만에 혼자서 돌렸다.

상사는 날 견제하기 시작 했다.

고수와 만나고 돌아온 후

회식 자리에서 난 대뜸 욕을 쳤다.

그만 둘 생각이니 그 간 할말을 했다.

내 말은 욕 빼고는

구구절절 옳은 소리지만

나는 결국 회사를 그만 두었다.

그런 갓 잖은 기술 따위 배워서 뭐 할 텐가?

난 처 자식이 없는 몸이다.

그런 푼돈 벌며 버틸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그런 생각으로 당차게 그만 뒀지만

내 돈은 온라인 도박으로 모두 입금 되었고

갈곳은 없다. 집에는 돌아 갈 수 없다.

부산역에서 노숙을 한 경위는 단순하다.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남는돈 입금 하여 오링난 곳이 부산역이다.

더 갈 곳도 돈도 의욕도 없었다.

부산역의 노숙자들의 일과는 단순하다.

점심때는 가구골목까지 걸어서 무료급식을 타먹고 이리저리 갈매기 나는대로

바닷길을 따라 걸으며 인생의 사색을 하거나 바둑이나 장기를 두거나

구걸을 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늘어지게 잠을 잔다.

운 좋게 동료가 소주를 구해오면 그날은 술을 먹는 것이다.

물론 내가 그리 했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들과 어울리기 싫었다.

나는 일년전 전국을 떠돌며 노숙을 했었다.

국도를 걸어서 지역을 이동할때면 차에 치일뻔한 적도 많았다.

나는 노숙자가 싫었다.

근데 그땐 난 노숙 신세였고 지금도 노숙한다.

나처럼 젊은 노숙자들은 흔치 않다.

그렇기에 그들은 나를 노숙자로 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일원이 될 수 없다.

되고 싶지도 않다.

어찌보면 도박을 하며 점점 고독해진것 같다.

인디언에게는 벙어리라는 말이 없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다.

귀머거리는 있어도 벙어리는 없다고 한다.

그래서 벙어리를 뜻하는 단어도 없다고 한다.

존재하지 않는 현상에 대한 단어는 존재 하지 않는것이다.

대신 눈에 대한 세부적인 표현이 수십가지라고 한다.

우린 끽해야 함박눈 진눈깨비 정도 지만 말이다.

어느 순간 나는 외롭다라는 말을 하지 않게되었다.

너무나 당연하니 존재 하지 않는것 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필요에 의해 단어가 생겨나는 것이다.

도박에 빠지니 사람이 필요 없는 인간이 되어 가는것 같다.

그래서 점점 사람을 잃어 간다.

불과 3년 전만해도 앞날이 창창한 젊은 청년이었던

나의 인생은

전혀 실감할 수 없을 만큼 급속도로 변해가고 있었다.

서핑을 하는데 좋지 않는 파도를 탔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또한 다음의 파도가 시야에 보이지 않는데다가

앞으로 좋은 파도는 오지 않을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일을 하고 싶은 의욕도 생각도 없었다.

배가 고픈 것은

처음에는 고통 스럽다.

배에서 신호가 오며 명치끝부터 배꼽까지의

신경이 강하게 느껴진다.

밤이 되면 배고픔은 더욱 깊어진다. 배고프면 잠도

안 오고 적응 하기 까지는 속이 쓰려 아프다.

굶다가 어쩌다 한끼.

굶다가 하루 한끼를 반복하다보니

그 느낌도 일상적인것 마냥 느껴졌다.

굶주림 보다 나에게 큰 걱정은

신용불량자가 되는 것이었다.

어느순간

신불이 되면 되는거지 죽기야 하겠나

당장 배고픈게 문제인데 하니 잊혀지기 했다.

몇일 지내다 보니 박스로 몸을 뉘일만한 공간을 만드는

노하우가 생겼다.

어느날 달콤한 꿈을 꿨다가 기상했지만

눈을 떠도 더 나은것이 없기에 더 잠을 청하고 있는데

박스집 입구에 누가 흰봉지를 툭 던지고 갔다.

봉지를 깟더니 팩음료수와 크림빵이 들어있었다.

하정우마냥 크림빵을 먹었다.

그 순간은 내가 하정우보다 더 맛있게 먹었을 것이다.

빵을 먹은 후 팩음료를 쪽쪽 빨다보니 팩뒤에 명함이 하나 붙어있었다.

숙식을 제공 해 줄 수 있는 곳.

명함의 지도를 따라 금정구에 위치한 노숙자 쉼터까지 걸었다.

군대 행군보다는 할만 했다.

쉼터 직원을 만났다.

말하기를 TO도 없고 입소 조건을 보니 나는 해당사항이 없었다.

그 순간은 좀 서글펐다.

난 누가 봐도 밑바닥으로 내려왔다.

내 동기는 이미 임용고시에 합격해서 교사생활을 하고 있고

청와대에 들어간 사람도 있다.

명예는 탐나지 않는다.

하지만 난 가족에게 너무나 큰 고통을 줬다.

그 대가로 쉼터에 입소도 못하는건가?

난 너무 어중간하게 일을 벌렸다. 난 잔챙이다.

난 추락했지만 쉼터 입소를 위한

노숙자의 조건에는 또 맞지 않으니 이제 나는 뭐하는 놈이란 말인가?

직원이 지하 식당에서 밥은 먹고 가라고 했다.

밥은 괜찮았다. 아직 기억나는 메뉴다. 감자탕이었다.

식판에 뼈다귀를 듬뿍 퍼서 추릅 소리를 내며 입가에 양념을 묻혀가며

먹는데 열을 올렸다. 푼 밥대신 뼈다귀를 더 퍼서 먹는게 어떨까 생각하던중이었다.

그때 직원이 다시와서 여기말고 다른 쉼터에

자리가 있고 사정을 이야기 해줄테니 그쪽으로 가보라고 했다.

나는 그렇게 구서동의 노숙자 쉼터에 입소 했다.

난 그 이후 고수가 연락이 없자 욕설을 퍼붓고 여러 카페에 그 고수와

나의 개인적인 일들, 그리고 그 고수의 개인적인 정보들을

날조해서 온라인에 까발리고 비방했다.

고수가 그 내용을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응은 없었다.

노숙자 쉼터의 생활또한 부산역 노숙자 생활 처럼 단순했다.

노숙자는 노숙자다.

쉼터에서는 금전적 지원은 없고 식사와 잘곳을 제공해주고

사람을 가려 일자또한 연계해 주지만 내가 봤을땐 그냥 일자리일 뿐이다.

노숙자들을 많이 만나 보았는데 그 사람들은 정신이 파괴된 사람들이 었다.

과거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이 돈만 얻으면 재기 할 수 있을거라 생각 하지만

내 가 봤을땐

그들이 회복하기를 원하는 것은 그들의 재산이 아니었다.

그들의 과거에 존재하는 사람과의 관계였다.

내가 본 현재에서 그들은 이미 죽어있었다.

그들이 바라고 사는 현재는 그들의 추억속의 시간인듯 싶다.

시간은 누구도 기다려 주지 않는다.

쉼터에서 숙식을 제공하고 일자리를 연계해 주어

자립 할 수 있게 한다하는 취지는 올바르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일자리 대신 수억을 준들

그들이 진정 행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쉼터의 숙소는

몸이 불편하거나 오래된 분들은 3,4층의 방을 썼다.

다른 사람들은 2층의 거실에서 군대내무실 마냥 지냈다.

관물대도 있었다. 하지만 난 짐이 없었다.

부산을 떠돌적에 가방에 여벌 옷 한벌을 빼고는

캐리어와 짐을 길가에 버렸다.

어쩌면 캐리어를 버릴때 나 자신의 인생도 버린것이다.

삶의 의욕이 있었다면 이를 악물고 끌고 갔을 것이다.

여기 사람들의 수입은 노가다가 대부분이다.

하루 일하고 술 퍼먹고 자고 돈이 좀 모이면 쉼터로 복귀하지 않고

몇일을 밖에서 보낸후 돈이 떨어지면 돌아온다.

나는 몇일을 누워서 보냈다.

삼일째 되는날 도서관에 가서 카드를 만들고

책을 빌려 읽었다. 무슨 책이 었는지 기억 나지 않는다.

그냥 끌리는대로 읽었다.

이후 노가다를 드문드문 다녔다.

도무지 인생 막막하여 내 자신을 죽이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남들과 마찬가지로 하루벌어 이틀 썼다.

길을 가다 먹고 싶은게 있으면 먹었고 술이 마시고 싶으면

술을 사서 근처 벤치에서 마셨다.

그러다 직원의 소개로

아이스크림 공장에서 아이스크림 박스를 쌓는 일을 했다.

한가지 좋은점은 아이스크림을 무한대로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쁜 점은 내 귀를 아프게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었다.

메가톤바와 죠스바. 수박바도 있었나 모르겠다.

메가톤바를 먹다 이빨이 나간 사람이 있다고 들었다.

냉동창고에서 메가톤바를 먹어보니

이치에 맞는 일이라는 생각에 이해가 갔다.

얼어붙은 메가톤바는 흉기와 같았다.

농담이다. 그 정도 까진 아니다.

창고에서 지게차 운전하는 형님 한분을 만났다.

지금 생각 해보면 명리학에 조예가 깊으신 분이다.

안 그래도 머리가 복잡한데 그 형과 있으면

내 두개골을 열고 그 안에 헤어 드라이기 소리가 나는

라디오를 틀어 놓은것 같았다.

중국사와 유럽의 세계사

그리고 여러 동양사상에 대해서 묻지도 않았는데

어쩔수 없이 들었다. 들으면 한시간이 기본이었다.

난 입 닥치고 라인에서 내려오는 박스 쌓기에 바빴다.

항상 시작이 뭐냐면

하... 참 그게 신기하단말야라는 혼잣말로 시작했다.

그렇게 말하면 나이가 띠동갑은 나는 형님이니 가만 있을 수도 없고

"뭐 말입니까 형님?" 하고 장단을 맞춰주면

거기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것이다.

그 형님은 꼽추같은 체형의 작은키에 절구공으로 몇대 맞은 망아지같이 생겼는데

겉보기와는 달리 차분하고 마음에 강단이 있고

재빠르며 언변이 화려하고 지능이 높았다.

그 형을 볼떄면 항상 삼국지에 방통이 생각났다.

천재가 아닌가 싶었다.

그 형은 부업으로 한문을 번역하는 일을 했다.

한자를 잘 쓰고 동양화가 수준급이다.

부업으로 하는지

내가 박스를 쌓고 있는 동안 지게차를 몇번 몰고는

테이블에 앉아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나에게 다가와

"하. 그게 참 신기하단 말이야"

라고 중얼 거린후 내 뇌속에 라디오를 틀었다.

여름이니 팔아야 되니 안되고 가을이 오면

부채를 하나 그려준다고 했다.

지금 생각 해보면 날 조롱한 것 같다.

가을에 왠 부채란 말인가?

아이스크림 공장에서 삼주간 일을 했다.

그리고 쉼터를 나왔다.

이후 모텔과 찜질방을 전전하며 인터넷 도박에 빠져 살았다.

중간 짬짬히 야외에서 반 노숙 비슷 하게 지내기도 했다.

그 기간의 겜블은 재밌는건 이겼다는 것이다.

나는 계속 이겼다. 삥을 뜯었다. 사이트 들에게서

가입한 사이트가 200개가 넘었고

그들에게서 야금야금 돈을 뜯어냈다.

아침에 일어나면 문자가 2~3백개 이상 와 있다.

이때의 기간의 경험으로 나는 2016년에 꽤 돈을 만졌다.

그 와중에 슈어벳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양방도 잘하면 돈이 될 수 있겠다 생각을 했다.

실제로 그때까지만 해도 양방이나 밸런스 작업은 돈이 되는 시기였다.

이긴 돈을 모아 집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다섯번의 출정을 했다.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인터넷에서 이긴돈을

마닐라와 마카오에 헌납했다.

사실 지금 보면 그 당시의 겜블의 결과는 뻔하다.

누구나 그렇듯

미래에서 과거를 훑으면 그 결과는 당연히 눈에 들어온다.

그런 상황에서는 얼마를 이겨도 멈춰지지 않는 법이다.

나중에는 단돈 100만을 들고 15일 일정으로 마닐라로 출정을 한적도 있었다.

일주일도 안가서 돈이 바닥났다.

하다못해 이제는 외국에서 노숙을 해야 될 판이었다.

말라떼 길거리의 현지인들과 길거리에서 잠을 청 할 수는 없었다.

도로가 너무 더러웠기 때문이다.

마닐라베이로 넘어가 잠을 청했다.

계속해서 잡상인들이 달라 붙거나 아이들이 구걸하러 왔지만

바닷바람이 서늘해 비닐을 구해다가

다리에 덮고 있으니 더 이상 접근하지 않았다.

노숙은 한국에서 꽤 해봐서 프로급이다.

편의점에서 6페소 짜리 빵을 사먹으며 버텼다.

아무런 생각도 없다.

욕심도 미련도 다만 항상

복합적인 죄책감이 가슴 한켠을

지그시 내려다 보고 있었다.

무사히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 여긴 낮에 너무 덥다.

근데 움직이기는 싫다. 바다에는 왜 이렇게 더럽지?

동남아의 바다는 깨끗한 것 아닌가?

이틀 지나니 누워 있는 것도 좀이 쑤셨다.

속도 쓰렸고 몸이 기체로 변한것 처럼 가볍고

절도 있게 움직여 지지 않고 흐느적 거렸다.

물도 먹고 싶은데 수돗물을 마시면 게이가 될수도

있다는 말이 거슬렸다. 목말라 뒤져도 게이는 싫었다.

두통이 살짝 있으니

여행자 보험을 들고 왔으니 병에 걸리거나

칼을 맞거나 총을 맞으면

좋겠다는 말도 안되는 생각도 했다.

이대로 누워 있으면 답이 없다.

첫날 묵었던 호텔 로비로가서 폰을 충전했다.

인터넷 도박에 뽀찌가 꽤 들어와 있어서 대충 박았다.

뭘 걸어도 질 것 같은 마음이다.

atm으로 뽑으려고 2000페소 누르니 돈이 부족하대서

100씩 줄이다보니 1600페소에 인출이 되었다.

그 순간은 1600페소가 1600달러 못지 않게 크게 보였다.

외국인들 묵는 게스트하우스가 싼데가 350페소인데

십일은 더 넘게 보내야 하니

난 현지인 묵는 도미토리 150페소 숙소에 지냈다.

거기서 한국사람은 본적이 없다.

자존심은 남아 있어서 앵벌이는 못 하겠고

활동하던 커뮤니티에 도와달라고 글을 올렸다.

10만원만 빌려주면 귀국 비행기 바꿔서 돌아간다고 했는데

욕을 1000만원치 정도 먹었다.

욕하는 사람은 몇십명인데

결국 비행기 바꿔가라며 나에게 도움주는 사람은 없었다.

쪽지가 하나 왔다.

본인이 장기매매업자라고 했다.

내 사진을 보고 나이가 어려보이니 꽤 값을 쳐줄테니 말라떼의 LA카페 근처에

아라비안 호텔쪽으로 나오라고 했다.

몇일전에 호텔 옥상에서 페이스톡을 걸고 삼촌에게 여권찢고 뛰어내린다고

협박을 하여 돈을 빌리고 탕진했다.

간이 배밖으로 나온후라 뒤질 생각도 하는데

배 째서 장기를 하나쯤 팔아도 살아갈 순 있을라고 생각했다.

물도 못 마신 참에 20몇페소가 있어서

편의점에서 10페소짜리 물을 사서 원샷을 하고 마음을 굳게 먹고 약속 장소로 나갔다.

나는 그것을 인연으로 첫번쨰 스승님을 만났다.

이후 내가 카페에 올린 글에

고수가 댓글을 달았다.

" 이제 시작이다."
"니가 겜블을 배우고 싶으면 음지의 생리를 바닥부터 배워라"

그리고 더 이상의 연락은 없었다.

그래 맞는말 같긴하다.

음지의 생리부터 배우라고?

근데 그 정도 말은 나도 말 할 수 있다고....

[겜블라이프 1]https://steemit.com/kr/@p-dok/1
[겜블라이프 독기의편지] 12회 https://steemit.com/kr/@p-dok/5sfbx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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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짱맨!! 고생하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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