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연재] 겜블라이프 #3

in #kr6 years ago (edited)

마닐라 니노이 아키오 공항 2터미널.

출국장 게이트에서의 기다림은 지루하다.

출국 할때도 지루한곳이고 이기든 지든 귀국 할때도 지루한곳이다.

몸과 달리 마음이 항상 다른 곳에 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십오일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 갔다.

활동하던 커뮤니티에 귀국편을 변경할 돈을 빌려달라는 도움의 글을 올렸다.

수십명이 댓글을 달았다.

하지만 나에게 귀국편을 바꾸게 10만원을 꿔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대신 욕을 천만원어치는 넘게 먹었다.

일부는 중립을 지켰고 대부분 날 쓰레기나 거지라며 욕 했다.

카페에서 쫒아 내야 한다고 강퇴를 시켜야 한다고 했다.

내가 생각 했을때는 정신병 환자들 같았다. 온라인은 온라인일뿐인데

그들은 친목을 도모 한다는 명분으로 그 공간에서 어떤 파벌을 형성하고 있는듯 싶었다.

내가 판단했을때 나는 그들에게 어떤 재미를 제공했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씹을거리까지.

하지만 확신한다. 나는 그들에게 전혀 피해준것이 없다.

욕을 처 들어 먹는 것은 이제 덤덤하여 아무렇지도 않았다.

나는 내 욕을 하는 사람들에게

나이를 한바퀴는 더 먹은 니네들도 나같은 환자인게 불 보듯 뻔한데

그렇다면 조만간 니네 인생도 씹창날것을 보증한다고 맞 받아 쳤다.

보통의 상업 카페에서 그런 분탕질을 치면 당연히 강퇴를 당하겠지만

방장은 나를 강퇴하지는 않았다.

강퇴를 당하는것은 싫었다. 내가 표현을 격하게 한것은 사실이지만

피해를 준 사실은 없단 말이다. 투표를 하자고 했다.

반수 이상이 나를 아웃 시키면 카페에서 나간다고 했다.

단, 카페회원의 1300명이니 그 중 10%이상이 투표를 해야만 승복한다고 조건을 걸었다.

위의 표는 그 결과다.

날 보고 꺼지라고 한 표가 2배가 넘게 나왔다. 예상하긴 했다.

중립을 지키거나 별 관심없는 사람들은 투표를 하지 않을 확률이 높고

감정을 드러내며 내 욕을 한 사람들은 기를 쓰며 투표 할것이라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아웃 되는 것이 맞지만 조건으로 내걸었던 10%에 25명이 모자랐다.

투표 참가한사람이 105명 밖에 안되므로 난 탈퇴하지 않고 버텼다.

사실 어찌되든 온라인의 공간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이후로 온라인에서 나는 예전처럼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거나 내 생활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것이 본인의 생업인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온라인에서 감정을 드러내며 떠들어대는 사람치고 본인 인생과 가정에 충실한 사람은 드물다고 본다.

장기를 팔러 나갔다 만난 J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야기 해준 충고가 계속해서 머리에 맴 돌았다.

호텔 옥상에서 영상통화를 건 뒤 여권 찢고 뛰어내리겠다며 협박을 하여

외삼촌에게 빌린 돈도 날려 버렸다.

돈은 돈일뿐! 하지만 이제 난 외가에서 고개를 들 수 없을것이다.

또한 그 건은 어머니 얼굴에도 누를 끼치는 것이니 마음이 너무 괴로웠다.

도무지 나란 놈은 대책이 없다.

자책을 심하게 하니 마음의 고통에 가슴이 부근이 지릿하다.

난 언제쯤 선택이라는 것을 할 수 있을까?

어느 순간부터 난 선택을 못 하고 마지 못해 쫒겨서 살아왔다.

머리를 비워내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지만 머리속에는 계속

귀국 이후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걱정만이 떠 올랐다. 난 돈도 갈곳도 없는 처지다.

그래도 밥은 넘어간다. 기내식을 맛있게 먹었다. 좋아하는 아스파라거스는

맛을 음미해가며 조금씩 먹었다. 근 이틀 만에 먹는 밥이다.

옛말은 대부분 맞다. 시장이 반찬이란 말은 정확하다.

한번은 책을 읽다가 인생이 너무 괴로우니 차라리 내가 과거에 태어났다면

좀 나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적이 있다.

당신이 선사시대에 갈대밭을 해치며 걷고있다.

근데 앞에서 나와 반대 방향으로 겁에 질려 뛰어가는 사람들을 만났다면,

당신은 호기심에 앞으로 나아갈것인가? 아니면 사람들을 따라 뛸것인가?

어찌됬든 우리는 사람들을 따라 뒤로 뛴 사람들의 후예다.

앞으로 간 그런 성향의 사람들은 자신의 DNA를 남기지 못 했을것이다.

짧게 천년만 봐도 수명을 50세로 잡아도 최소 스무 세대가 지난다.

현대인은 고대의 인간보다 확실히 약삭 빠르지 않겠는가?

대신 고대인보다 남의 눈치를 더 보고 부화뇌동을 심하게 할것이다.

유전학 실험에 미로 실험을 했서 미로를 잘 찾는 쥐만 선별하여 DNA로 남겼더니

3세대만 지났을 뿐인데 일반 쥐보다 월등하게 미로 찾는 능력이 뛰어났다는

내용을 보고 떠오른 망상이다.

나는 자주 멍을 때린다. 남들이 봤을때 무슨 생각을 하냐고 물으면

아무 생각도 없다고 대답하지만 속으로는 이런 비슷한 망상의 세계에 들어가 있다가

남이 말을 걸때에 비로소 현실로 나온것이다.

어릴땐 안 그랬는데 어느 순간부터 머리속에서 내가 원치 않게

피어나는 잡 생각들이 현저하게 증가했다.

내 인생이 힘들어지기 시작한 시점부터 였던것 같다.

비유 하자면 흐르는 시냇물처럼 잔잔하게 있고 흘러가고 싶은데

실제 머리속은 활활 타오르는 짚불놀이가 벌어져 있었다.

날이 갈수록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걱정이 많아지니

정신이란게 이렇게 분열되는 것인가라는 생각도 했다.

내 생각을 내가 통제 하는것이 힘들다. 마음을 굳게 먹는것이 힘들다.

비행기 창밖을 바라보며 멍 때리다가 정신을 차리니 무사히 한국에 도착했다.

핸드폰을 켜보니 DY가 오고 있다고 카톡이 와 있었다.

돈이 없다. 김해공항에서 내려 일단은 구포역까지 걸어가기로 결정 했다.

걷기로 결정을 했다고 해도 이것은 선택이 아니었다.

선택이란것은 여벌의 선택들이 모두 실현 가능한 상태에서 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의 난 마지 못해 걸을 수 밖에 없는것이다.

인생 마냥 말이다.

그 누구의 인생도 본인의 선택이 아니다.

밤바람이 차다. 옷을 모두 꺼내 입었다.

필리핀은 더웠는데 한국에 와서는 추위를 느끼니

역시 더운게 낫다고 생각했다.

마닐라였다면 추운게 낫다고 생각했을것이다.

게임에 이겨서 수중에 돈 좀 있으면 실실 거리고 웃고 긍정적이고

게임이 안 풀려 돈 이 없으면 부정적이고 심각한 표정을 한다.

난 달면 삼키고 쓰면 밷는 단순한 잔챙이같은 놈이 되어 버렸다.

캐리어를 질질 끌며 한적한 길을 따라 걸었다.

구포대교 앞에서 지도를 보니 여기서 다리를 건너면 부산으로 진입하는것이다.

살펴보니 이 대교에는 도보 통로가 없다.

2KM 근방에 다른 대교가 있다. 거기도 역시 도보가 없다면?

이제는 다 귀찮다.

주변에 있는 벤치에 앉아서 드러 누워버렸는데 벤치가 짧았다.

캐리어를 벤치끝에 대고 발을 올리니 몸을 쭈욱 피고 누울 수 있었다.

5km가까운 거리를 캐리어를 질질 끌고 온 직후라 참 편 했다.

오분정도가 지나자 더럽게 추워지기 시작했다.

편의점으로 가서 카드란 카드를 다 집어 넣어 잔액 확인을 했다.

A,B,C카드에 각각 2000원, 2700원, 2000원이 있다.

택시를 타면 다리를 건너는데 기본요금이 안 된다.

A 카드에서 수수료를 물고 B 카드로 이체했다.

800원 옮기려고 수수료 1200원을 내다니?

마치 이건 내가 돈을 왕창 잃을때의 패턴처럼 아주 불합리적이다.

구포역으로 갔다. 좀 기다리니 DY가 도착했다.

반갑다 끌어안았다. 하지만 DY가 표정이 좋지가 않다.

연유를 물으니 20만원을 아버지한테 받아서 왔는데

술 값이 부족할것 같아 기차안에서 도박을 했단다.

집에 갈 차비는 있냐 물었다.

컵라면이나 먹자고 했다. 편의점 앞 테이블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친구는 계속 도박하여 돈을 날린것을 자책했다.

그 모습은 마치 배팅을 해놓고 축구중계를 보는듯 몰입되어 느껴졌다.

자책한 축구선수한테 욕을 하듯 DY에게도 욕을 해주고 싶었지만

그 욕은 사실 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것이었라 마음이 아팠다.

얼굴 보러 대구에서 와 준것이 고마웠다.

소주 한병을 사달라고 부탁했다. DY가 표정이 변했다.

뒤질라는거 아니니까 걱정 말아라. 다만 마시고 싶다고 했다.

DY는 의아해 하면서 농담조로 간을 툭툭 보더니 소주를 사주었다.

소주를 까서 병나발로 한병을 그대로 들이부었다.

소주 한병을 원샷하면 어떤 느낌인지 아는가?

사실 첫 느낌만 쓰고 두 모금 이후부터는 별 느낌 없다. 생각보다 마시기 쉽다.

대학에 다닐때는 두병을 한꺼번에 마신적도 있었다. 선배에게 기가 눌리기 싫어서였다.

그날 내가 캠퍼스 연못에 비단 잉어를 잡겠다고 물에 들어갔다고 다음날 친구가 말해주었다.

DY를 보냈다. 기차가 끊기면 그놈도 노숙이다. DY는 갈때까지 자책했다.

DY는 본인이 도박에 중독된것이 아니라고 술자리에서 자주 이야기했다.

도박을 하며 한번도 가슴이 떨려본적이 없다고 했는데 그냥 헛소리였다.

다만 타고나길 자제력이 워낙 뛰어난 놈이라 돈을 빌려서 도박을 하지 않을 뿐이다.

놈과 대구의 길거리에서 노숙했던 생각이 났다.

대구에서 제일 비싼 바에서 같이 술을 마신 기억도 났다.

겜블을 오래 하면 누구나 둘 중 하나는 할 수 있을 것이다.

낙동강이 보이는 강변으로 캐리어를 질질 끌고 걸어갔다.

조금 걷고 나자 속이 후끈 달아올랐다.

수면에 옻칠을 해놓은듯 시꺼먼 강물을 바라봤다.

익사하기에 좋은 계절이 아니다. 이건 정확한 판단이다.

이런 판단을 겜블할떄에도 내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목적지가 분명하게 순리대로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봤다.

난 일전에 목숨을 끊으려고 했었다. 문과출신이라 운 좋게 살아 남았다.

이과로 진학 했다면 지금의 시간은 내 인생에 존재 하지 않았을 것이다.

처음이 무섭지 두번은 두렵지 않다.

이게 나쁜쪽으로 적용 되면 인간은 점점 더 본인을 던지게 되는것이다.

도박에서 패가망신하는 패턴도 이와 유사했다.

내가 쉴 곳이 없다는 것을 받아 들여야 한다. 불러주는 이도 없고 돈도 없다.

사실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겠지만 나는 겜블 머니를 마련하기 위해

윗사람에게는 도움을 구해봤지만 친구들에게 돈을 빌린적은 없다.

이런 초라한 모습으로 친구들을 만나고 신세를 지는건 죽기보다 싫었다.

어차피 보름전에 마지막 쫑돈을 들고

출정을 하면서부터 게임에서 지면 이렇게 된다는것을 이미 알고 있지 않았나?

아니 유년시절 딱지 치기, 구슬치기를 하면서도 이미 알고 있었다.

노름에서 지면 내 것을 빼앗긴다는 것을 말이다.

앞대가리로 생각만 해봐야 내 상황이 개선되지는 않는다.

어디로 갈까?

앞 길을 봤다가 뒤쪽 길도 봤다.

어디든 상관 없었다. 어차피 목적지가 없으니까.

그 끝이 대박이 아닐지라도 강물처럼 목적지가 분명한 삶을 살고 싶다.

이렇게 빈털터리로 부평초마냥 떠돌아 다니는 삶은 정말 지겹다.

나도 그저 강변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유유히 흘러가는데로 살고 싶다.

하지만 내 인생은 활활 타 오르는 짚불놀이가 한창 진행중이다.

불길은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타버린 짚은 재가 되어 하늘로 비산하고

허공을 떠돌다 바닥으로 떨어진다.

지금 내가 가는 길은 온통 시꺼면 재로 뒤 덮혀있다.

하지만

이 짚불에 불을 놓은 사람이 내 자신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술이 더 먹고 싶어 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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