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소설 1. 시장의 거지

in #kr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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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편소설 1. 시장의 거지

한 시장 구석에 거지꼴을 하고서 늘 글을 읽는 자가 있었다. 시장사람들은 저마다 물건을 팔거나 짐을 나르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는 늘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시장 사람들이 십시일반해서 갖다 준 음식과 푼돈으로 연명했다.

한 날은, 보다 못한 건너편 생선가게 주인이 그에게 노잣돈을 쥐어주며 ‘그렇게 언제까지 앉아 있을 텐가? 그런 책보다는 도움이 되는 책을 사서 시험을 치르든, 돈이 될 만한 기술을 배워보는 게 좋지 않겠나?’ 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말없이 그 돈을 가지고 서점에 들러 또 다른 책을 사버렸다. 그리고 늘 하듯이 그 자리에 앉아 묵묵히 책을 읽었다. 이 광경을 본 짐꾼 몇몇이 분개하면서 그에게 몰려들어 말했다.

“생선가게 형님이 그래도 사람 구실하며 살라고 그런 도움을 주었는데 그걸 잘 활용하기는커녕 또 의미 없는 짓을 하는데 허비하는가?”

그러자 그는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자네들이 그렇게 돈을 좋아하니 이익으로 설명해보겠네. 금이 묻힌 광산에 도착해서 금광물을 발견했는데 이걸 제련해서 금으로 만들지, 아니면 이 금광물을 나르는 일을 할지 어느 것이 더 이익이 될까. 물론 금을 제련하는 건 고도의 기술과 자본이 필요하지만 한번 해낼 수 있으면 아예 돈을 버는 게 아니라 금을 찍어낼 수가 있지. 그런데 당신들은 내게 금광물 제련을 포기하고 힘들게 금광물을 날라 품삯이나 받으라 하는군.”

장정 하나가 화가 나서 그에게 덤벼들고, 소동이 일자 마침내 그곳에 온 시장사람들이 다 모이게 되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시장사람들이 그간 그에게 품은 좋지 않은 감정과 불만을 저마다 쏟아냈지만 그는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그러다 생선가게 주인이 한 마디 했다.

“자네의 뜻이 높은 것은 알겠지만 이곳은 시장이야. 사람들이 자네를 언제까지 먹여 살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주어진 환경에 맞게 살아나가야 하지 않겠나.”

그러자 그가 대답했다.

“사람이 시장에 태어나든 위대한 자의 동상 앞에서 태어나든 그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큰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자기 자신이 처해진 환경에 맞게 생각을 작게 만들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제게 엄청난 도움을 줬다고 자부하는데, 그런 도움은 사실 제게는 아무런 쓸모도 없는 도움입니다. 큰 생각에는 큰 도움이 필요한 법이고, 이곳에는 제게 그런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는 작은 도끼로 큰 나무를 베어 넘길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로 어쩔 수 없는 것이니 저는 여러분들에게 아무런 원망도 하지 않습니다. 다만 기다리면 저를 알아볼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말이 끝나게 무섭게 시장사람들은 대노하며 그를 쳐죽이려고 했지만 무리들 가운데 본 적 없는 여행자가 튀어나오며 그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생각을 찾는 사람인데 며칠 전부터 이곳에 머무르며 당신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내게는 일찍이 아무도 소유해본 적 없는 막대한 부가 있으나, 그것을 잘 활용하는 방법을 알지 못합니다. 당신이라면 이를 잘 활용해볼 수 있을 것 같으니 당신 생각을 들려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여행자의 말에 그는 두말없이 짐을 꾸려 여행자를 따라나섰다. 시장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한 채 언제 왔는지도 모를 시장 입구의 황금마차에 두 사람이 올라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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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다행히 기회가 찾아왔네요.
준비하는(준비된) 모든 이에게 이렇게 기회가 와줬으면 좋겠어요.

그럴 수 있으면 좋겠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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