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에서 기억을 믿지 말라, 절대!

in #kr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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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기억은 경탄할만하지만, 믿을 수 없는 도구다. 우리 안의 기억은 돌에 새겨놓은 것이 아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지워질 뿐만 아니라, 종종 변하기도 하고, 심지어 관련 없는 다른 것들이 가미되어 부풀려지기도 한다." - 프리모 레비

세계적으로 유명한 하모니카 연주자 래리 애들러, 배우 잉그리드 버그만 그리고 코미디언 잭 베니는 1945년 종전 후에도 주둔 중이던 미군 장병 위문 공연차 독일을 방문했다.

한편, 1938년 베를린을 탈출한 독일 태생 유대인 존 웨이츠는 1941년 미국에 정착해, 미 육군에 입대했다. 이후 1943년부터 1946년까지 CIA의 전신인 OSS에서 정보 장교로 근무했다.

1945년 7월 그는 전직 나치군 출신 게릴라 집단을 색출하기 위한 일명 "늑대인간" 작전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윽고 웨이츠는 이들이 뮌헨의 한 집에 숨어있다는 첩보를 접수하고, 급습을 지시했다.

이즈음 애들러 일행을 만난 웨이츠는 이들에게 급습 작전에 같이 가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의했다. 이들 중 애들러만이 그러자고 답했다. (여기서 잠깐, 정보부 요원이 공연 중 잠깐 만난 연예인 세 명을 작전에 초대한다는 것이 얼마나 이상한 일인지부터 생각해 보라.)

애들러는 시간에 맞춰 요원들과 합류했고, 급습할 집으로 향했다. 애들러가 포함된 OSS 요원들이 작전에 따라 집안으로 뛰어들었다. 이다음에는 어찌 되었을까?

애들러는 당시 사건을 두 가지로 말한다.

하나는 "웨이츠가 그러는데"란 단서를 단 다음, "교전 중 독일군 2명을 사살했고, 6명을 체포했다."라는 말이었고,

다른 하나는 "실제로 집안에 들어갔더니, 군인들은 없었고, 할머니 두 명뿐이었다. 교전도 없었고,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라는 말이었다.

어느 또는 누구 말이 맞을까? 애들러와 웨이츠는 친한 사이가 되었지만, 평생 동안 이 사건을 두고 언쟁을 벌였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같은 일을 두고 각자의 기억이 어떻게 이리 다를 수 있을까?

말콤 글래드웰은 팟캐스트 '수정주의의 역사(Revisionist History)'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로서는 어느 말이 정확한 설명인지 알지도 못하고, 알 방법도 없다. 하지만, 한 가지 아는 것이 있다면, 우리 기억은 불안정하며, 과거 사건에 대한 기억을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 떠올리면 왜곡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가장 믿을 수 있는 정보는 직접 조사해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기는 내일이나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오늘 겪은 일을 기록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기에는 그 일이 앞으로 전개될 상황에 어떠한 영향도 받지 않은 "원시" 정보가 담긴다.

가장 좋은 사례가 벤저민 로스의 일기 '대공황: 일기(The Great Depression : A Diary)'다. 그는 1931년 6월 5일 다음과 같은 말로 일기를 시작한다.

"변호사 사무실을 연 후 처음으로 엄청난 금융 위기를 목격하고 있다. 이 대공황에서 어떤 교훈을 얻게 될지 궁금하기도 하다... 이런 궁금증을 바탕으로, 이후의 진행 상황을 간간이 간단하게 적어나갈 예정이다."

로스의 일기를 쭉 읽어보면, 시장이 바닥을 쳤고, 현금을 쥐고 있는 사람에게는 훌륭한 매수 기회라고 여러 번 술회하고 있다. 하지만 달이 지나고 해가 지날수록 주가는 계속 더 하락했다. 이렇게 당시에는 훌륭한 매수 기회였을지 모르지만, 나중에 되돌아보면 절대 그렇지 않았다. 로스는 처음 생각이 틀렸음에도, 왜 다시 같은 생각을 여러번 일기에 남겼을까?

이를 행동 경제학에서는 과거의 상황을 현재 상황의 잣대로 평가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경험하는 자아'와 '기억하는 자아'가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투자자가 한 기업의 주식을 사기로 결정하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이 순간 경험하는 자아가 등장한다. 그러곤 '지금 이 결정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묻는다. 그다음 기억하는 자아가 나타나 이전의 상황을 되돌아본다. 그리고 '과거에는 어땠느냐?'라고 다시 묻는다.

이때 기억하는 자아는 주로 고점이나 저점(수익이나 손실) 같이 인상이 깊었던 경우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때문에, 수익률이 일반적이었던 긴 기간은 제처두고, 고점이나 저점 당시 잠깐의 경험으로 전체 투자 과정을 판단한다.

이는 다시 '사후 확증 편향'으로 이어진다. 이 편향은 기억을 왜곡시킨다. 따라서 경험하는 자아가 '주가가 계속 상승할 것'이라는 생각에 주식 매수했지만, 이후 주가가 반대로 하락하게 되면, 경험하는 자아는 등장하지 않고, 기억하는 자아가 '내가 그럴 줄 알았지'라고 생각하게 된다. 유감스럽게도, 이는 종종 과잉 확신을 불러온다. 즉 자신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믿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잘못된 생각을 토대로 다음 투자 결정을 내린다.

그렇다면 기억하는 자아의 희생양이 되지 않는 방법은 없을까? 이 덫에 빠지지 않고, 투자 경험을 개선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하나 있다.

투자 일지를 써 나가는 것이다. 일기처럼, 매일 투자 상황을 적어 놓는 것이다. 그러면 지금의 경험하는 자아가 “왜 여기에 투자했는지” 그 이유를 미래의 기억하는 자아에게 설명하는 기록이 된다. 주식을 매수/매도했다면, 어떤 주식을 왜 매수/매도했는지, 어떤 시장/경제 상황에서 그렇게 했는지 생각과 느낌을 적어 놓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미래의 자신은 당시의 결정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기록할 수 있게 되는 것은 물론, 무엇이 잘 되었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그 이유를 평가하고 기록할 수 있게 된다. 모든 투자자는 실수를 한다. 따라서 꾸준하게 실수를 투자 일지에 남겨두면, 그 실수에서 배워나가는데 도움이 된다.

투자 일지는 투자 과정의 규칙이 되고, 매수와 매도 및 포트폴리오 재조정에 활용할 수 있다. 규칙에 입각하게 되면, 감정에 휘둘리게 않게 되므로, 자만에 빠지거나 헛짓거리 없이 포트폴리오를 운용해 나갈 수 있다.

블로그도 좋은 방법 중 하나다. 댓글을 통해 다른 이들의 평가를 얻어낼 수 있다. 그러면 내가 놓쳤던 것은 물론, 같은 상황을 두고 서로 다른 생각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실수에서 배운 교훈을 사용할 줄 알아야만 미래에 더 나은 결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자료 출처: The Financial Bodyguard, "Never Trust Your Mem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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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하는 자아와 기억하는 자아가 다르기 때문이군요.

투자를 하는 사람들이 투자 일지를 써야 하는 이유를 잘 설명하고 있네요.

전범이 될 만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리스팀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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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간단하더라도 일기식 블로그를 한번 적어봐야겠네요.
블로그란게 좋은 정보를 줘야만 한다는 편견이 있었는데...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비공개로 해놓고 블로그로 일기 쓰시는 분들도 많더라구요^^

스팀잇은 비공개 기능이 없으니.... ㅜㅜ
블로그 하나 파야겠네요 ㅎㅎ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

기록이 그래서 중요하구나
싶은 생각을 해보게 되네요

그렇죠. 기록은 증거로서, 참고로서, 교과서로서, 역사로서 등등 아주 중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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