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rwerq, photo] 별마당 도서관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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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Jul. 2018, Nexus 5x


높은 천장과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을 보고 있으면 사람의 지식이 얼마나 잘 저장되어 있을지, 지식을 생산하기 위해 녹아든 삶의 경험이 얼마나 녹아들어 있을지 짐작하기조차 어려울 때가 있다. 활자화된 이야기는 삶의 날 것 자체를 모두 표현하지는 못하더라도, 그에 닿을 수 있는 여지를 준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닿을 수 없는 근원적인 영역도 있다는 생각이라, 사람과 책, 다시 책에서 사람까지 닿는데에 이 지식과 경험들이 완벽하게 압축되었다가 다시 복원될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그래도 언제나 각자의 삶에 대해 조금 더 닿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이를 실현시킬 수 있는 매체의 소중함을 안다. 책은 가장 전통적인 매체지만 나에게는 가장 편안하게 다가오는 매체이기도 하다. 내 속도에 맞추어 들추어볼 수도 있고 다시 되돌아갈수도 있고 가만히 놓아둘 수도 있다. 찬찬히 살펴볼 시간과 장소만 주어진다면, 더이상의 제약조건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으리라.

활자화된 경험들을 모조리 빠른 시간내에 흡수할 수는 없겠지만 어딘가에 쟁여놓는다면 아무래도 내가 필요한 때에 들추어볼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다. 그건 종이의 형태가 될 수도 있고 디지털화된 파일의 형태가 되기도 한다. 종이의 질감과 부드러운 빛깔을 사랑하지만, 부피와 무게는 공간을 요구하므로, 공간의 제약을 완화시키는 형태의 저장의 필요성도 인정하는 편이다. 손으로 일일히 찾아서 내용을 뒤적거리는 검색도 좋지만, 빨리 결과물을 내야하거나 너무 품이 많이 들어갈 때에는, 정말로 전자책의 형태가 필요할 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상황이 되면 종이책의 형태와 전자책의 형태를 모두 가지고 있는 편을 선호한다. 각각 나름의 적합한 상황이 있는 것이다.

책에 수명이 있다면, 그건 책 자체가 낡고 바래질 때까지의 시간이라기보다는, 독자가 책에 대해 더이상 느끼거나 배울만한 것이 없을 때까지라고 생각한다. 책의 내용은 고정되어 있지만, 책의 내용을 기초로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느냐를 상상해본다면 즐거운 일이 될 것이다. 과거에서도 배우고 현재에서도 배우며 미래에서도 배운다. 하지만 이 모든것들은 책이 우선 독자에게 닿아야 가능하다. 닿지 못한 미완의 생을 가진 책은 애초에 존재와 존재하지 않음 사이에서 떠돈다.

나는 내 책이 누군가에게 어디까지 닿을지 잘 알지 못한다. 마케팅과 홍보, 지속적인 인쇄를 통해 접촉의 가능성을 높인다면, 많은 이에게 닿을 것이고 그 중에 긴 수명을 획득하는 책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인위적인 노력을 덧붙이고 싶지는 않다. 빈곤한 내용을 가지고 있다면, 책은 결국 재빨리 소비되고 사라질 것이다. 나는 투박하지만 단단한 표지를 좋아한다. 책의 페이지들이 표지에 걸맞기를 바란다. 세계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공간의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존재할 수 있는 의의가 있기를 원한다.

당신의 책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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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책은 아니지만 살아있는 잭들이 많습니다ㅎ 그런데 저 높은곳은 어떻게 관리할까요ㅎ

책들에게 수명을 부여하는 역할이 우리들 - 독자에게 달려있지 않나 싶습니다. :)

아마 높은 곳은 주기적으로 청소해주지 않을까요? 보통 높은 책장에는 사서가 사다리를 타고 꺼내거나 하는 방식이 있지만, 여기서는 그럴 것 같지는 않고 그냥 전시 용으로 놓아두는 느낌이 듭니다.

책이 비유가 아니라, 정말 책 집필한 적이 있으신 것은 아닐지 궁금해지네요 ㅎ

단독으로는 없고 공동으로는 있습니다. 소일거리용에 가깝긴 합니다ㅎ

여기는 어디인가요?

삼성동 코엑스에 있는 별마당 도서관입니다. 공간의 높낮이와 깊이가 마음에 드는 곳입니다. :)

ㅎㅎ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

좋은 책은 언젠가는 빛을 발하는데, 때로는 그게 작가의 사후인 경우도 많아 아쉬울 때도 많은 거 같습니다.

그나저나 저기 책은 디스플레이 용이겠죠? 저 위쪽 책들은 어떻게 고정한 걸까요? 저길 지날 때면 드는 의문입니다. ㅎㅎ

동시대의 작품을 보기 위해서는, 종종 멀찍이 떨어져서 봐야 제대로 보이는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감상의 적정 거리 같은 걸까요? 그게 공간이 아니라 시간으로 치환되면, 결국 사후에나 (혹은 사후에라도) 빛을 보는 책들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저도 디스플레이용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아마 별도의 고정 장치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ㅎ

여기 꼭한번 가보고싶은데 간다간다하면서도 못 가게 되네요. 사진 잘 보았습니다.

저도 자주 들르는 곳은 아니지만, 들를 때마다 가슴 한켠이 시원해지곤 합니다. 꼭 한번 들러보세요. :)

세계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공간의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존재할 수 있는 의의가 있기를 원한다.

하, 좋은 말씀입니다.

공간이 허투루 사용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공간을 이루기 위한 노력들을 생각하면요.

보고 있기만 해도 좋은 도서관 풍경입니다.
자주 저 많은 책을 언제 다 읽지 살짝 절망하기도
합니다만...
파도에 조개가 곱게 다듬어지듯 좋은 책은 걸러져
저기에 꽂히겠지요.

모든 책을 다 읽을 수는 없겠지만, 제게 닿은 책들은 가급적 충실히 읽어보려합니다. 각자의 도서관이 있다면, 그마다 소장되는 책들도 달라지지 않을까 싶어요. 어떤 책들을 읽느냐가 결국 세계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하느냐를 반영하는 것 같습니다.

다음에 한국가면 여기 꼭 가보고 싶어요.

네. 꼭 한번 들러보세요. 점심 시간이 의외로 괜찮더군요.

정말 대단한 도서관이네요.
구경한번 가보아야 겠네요.

널찍한 공간이 시원한 곳입니다 :)

저런 방대한 책의 양을 마주할때면 조바심이 나기도 합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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