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일기] 더 자숙하고 살라는 언론인 동료의 비판을 받다

in #kr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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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한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모 일간지의 전직 기자라는 분이었습니다. 제 트위터에는 여전히 저를 한겨레 기자라고 소개가 되어 있는데 이전에 이를 바꾸라고 자기가 메시지를 보냈는데 왜 아직도 안바꾸냐는 항의였습니다. 그러면서 1년만에 현업 기자로서 복귀하는 게 자숙하는 태도가 아니라고 비판하더군요.

일단, 그에게 해명을 했습니다.

"제가 정신적 트라우마가 너무 큰 탓에 1년 가까이 인터넷 접속을 못했고 특히 트위터는 거친 말들이 너무 많이 쏟아져 있을 것 같아 아예 들어가지 못해 메시지가 온지도 몰랐습니다. 어차피 많은 사람들이 제가 더이상 한겨레 기자가 아닌 것을 알고 있을테니 프로필 고치는 걸 크게 신경쓰지 못했습니다."

답변을 한 뒤 곧바로 트위터 프로필을 '리포액트 기자'라고 고쳤습니다.

하지만 저 해명을 하고 난 뒤 기분이 많이 언짢았습니다.

'대체 한겨레 동료들조차 하지 않는 저런 지적을 타사 기자들이 왜 하는가. 때 되면 알아서 고칠텐데. 내가 한겨레 기자로서 계속 알려지는 것과 현업 기자로 복귀하는 것이 그렇게까지 본인들이 신경써서 지적할 일인가?'

정작 저를 아는 많은 한겨레 동료들은 저의 복귀를 응원하고 있습니다. 적지않은 후원금을 통장에 넣어주시는 분들, 아예 만나서 생활비를 주고 가시는 분들, 시도 때도 없이 밥사주고 가시는 분들, 저를 위해 중독자 인권 기사를 써주시는 분들, 제가 한겨레 출신으로서 독보적 소수자 인권 전문 기자로 성장해주기를 바란다고 격려해주고 가시는 선배들도 계시지요. 저의 해고를 결정한 경영진의 한 분도 최근에 문자를 보내어 저를 위로해주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한겨레 동료 선후배들이야말로 저때문에 가장 큰 피해를 보신 분들인데도 제게 이런 따뜻한 위로와 응원을 해주고 계십니다. 그런데 제가 아무런 피해를 끼친 바 없는 타사 언론인들이 왜 저에게 아직까지 돌팔매질을 하는 것인지 저는 좀 이해가 안가고 솔직히 좀 짜증도 납니다.

저들의 기준대로 소개하자면, 우리 사회 권력의 정점에 계시거나 그 근처 계신 분들이 저의 사회복귀를 응원하며 연락을 해주고 계십니다. 치안감급 이상의 복수의 경찰 간부들, 현 광역단체장, 복수의 전현직 국가인권위원회 고위 관계자, 전 대법관, 전현직 국회의원과 보좌관들, 전 지검장 출신 법조인.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공중파 시사 프로그램 앵커, 유명 작가 등등. 그리고 셀수 없이 많은 언론계 동료 선후배들. 못믿겠으면 찾아오세요. 제가 휴대폰 메시지 다 보여드릴게요.

자랑하냐구요? 네 자랑입니다. 사실, 이런거 밝히는 거 되게 우습잖아요? 기자가 무슨 인맥 자랑을 합니까. 프로페셔널 직업인들은 저런건 그냥 당연하게 갖고 있는 취재원이자 인맥입니다. '나 이런 사람들의 연락 받고 있어요' 밝히는 건 정말 프로페셔널하지 않은 태도예요. 되레, 취재원 노출의 문제가 생겨서 바보같은 행동이지요. 근데, 하도 공격을 당하니까, 오늘만 밝힙니다. 저 사람들에겐 이런 식의 대응이 필요한 것 같아요. '허재현의 복귀를 응원하는 사람들 이렇게나 많으니까 이제 여러분도 그만좀 비난하시고 제가 어떤 기사를 쓰는지에 더 집중해주세요'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못마땅1.jpg 한 전직 기자가 보내온 메일의 일부

사람들이 대체 왜 이렇게까지 제 일에 나서서 이런저런 불만을 늘어놓는건지 가만히 생각해봅니다. 처음에는 그냥 '질투가 나서 그런가?' 하고 웃어 넘기려 했는데 꼭 그런 것만도 아닌거 같습니다. '아직도 나와 관련한 찌라시를 굳게 믿고 있어서 그런가?' 어쩌면 이게 원인 아닌가 싶었습니다.

경찰이 허위로 뿌린(범인 잡는중입니다) 저와 관련한 찌라시에는 웬 불상의 모텔에서 마약을 하다가 경찰의 급습으로 제가 현장 검거된 것으로 그렇게 알려져 있습니다.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제가 연재하고 있는 '마약일기'와 '회복일기'에 차차 쓰겠습니다만, 저는 경찰 함정 수사의 피해자입니다. 마약을 하다가 걸린 것도 아니고, 제게 마약을 같이 하자며 지속적으로 꾀어내고 불러들인 사람이 경찰이었습니다. 저는 경찰에 체포된 것도 아니고 제 스스로 임의동행 하여 경찰서에서 떳떳하게 모발검사에 응했습니다.
저는 최근에 중독자 지인의 병을 치료해보겠다며 이런저런 노력을 기울인 적 있었습니다. 불행하게도 저역시 우울증을 심하게 앓던 터라 그를 치료하기보다 그가 하던 약에 되레 노출된 적 있었습니다. 사실 그게 필로폰인지도 몰랐고 저 스스로도 그래서 검사를 받아본 것입니다. 저에게 마약을 권하며 함정 수사를 편 경찰에게는 분하지만, 저는 경찰 수사에 최대한 협조했습니다. 저는 언제 어떻게 투약의 경험이 있는지 단한번도 수사기관에서 부인하거나 한 적이 없습니다. 그게 제 양심이니까요.

저는 당연히 어느 정도 징계도 각오했고 모든 일에 적절한 수순을 밟아 책임을 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도 안되어 찌라시가 유포되기 시작하고 언론들이 앞다퉈 취재를 시작하고 검찰의 기소여부가 결정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당황한 회사는 저를 강제 해고해버렸습니다. 저는 그러나 형사 재판 절차를 앞두고 있어 어떤 공개적인 항변도 하지 못한 채 1년여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는 바람에 '마약이나 하고 지내다가 경찰에 현장 적발된 한심한 기자'라는 식으로 아직까지 이미지가 굳어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저런 식의 이미지 때문에 허재현은 무슨 뻔뻔함으로 저렇게 현업에 복귀하는 것이냐고 질타하는 언론계 분위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저의 책임을 인정하되, 과도한 비난에 대해서는 하나하나 바로 잡을 겁니다. 저는 저의 과거에 대해 수사기관에 스스로 자백한 것이고, 영장도 없는 상태에서 스스로 모발 검사에 응했고, 그 결과에 따라 형사적 책임을 최선을 다해 진 것 뿐입니다. 직무와 연관된 범죄도 아니었고 마약의 유통이나 경찰 인맥을 동원해 수사를 무마하려 했다거나 그런 파렴치한 행동을 한 게 없습니다. 그저 제 스스로 밝힌 과거의 단순 투약 사건입니다. 그래서 검찰도 저에게 먼저 집행유예를 구형했고 판사도 이를 받아들인 것입니다.

저는 제게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가급적 공론화 해서 대중에게 알리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마약 중독자들은 어떤 말과 비난들에 시달리고 또 어떤 고통을 겪고 또 어떤 도움을 받아 사회에 복귀하는지 혹은 그렇지 못하는지 하나하나 세상에 설명하고 함께 고민해보기 위해서입니다. 저에 대한 언론인들의 여러 태도들에 대해 오늘 길게 설명드린 이유입니다.

저를 지켜보는 많은 언론인 동료분들께 밝힙니다. 여러가지로 심려를 끼쳐 드린 점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도 책임질 만큼만 책임지려 합니다. 제가 부정청탁방지법과 같은 파렴치한 범죄를 저질렀거나 성폭행 등 피해자가 엄존한 범죄를 저질렀다면 저도 당연히 언론계를 떠났을 겁니다. 하지만 저를 언론계에 다시 붙들어맨 것은 저를 찾아온 한겨레 동료 선후배들, 많은 독자들, 그리고 제 친구들이었습니다. 한겨레를 떠났기에 과거처럼 큰 영향력을 가진 매체에 제 기사가 나가지는 않겠지만, 적당한 영역에서 적당한 수준으로 저널리스트로서 한국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저만의 일을 찾아서 할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 봉사하는 마음으로 계속 살 것입니다.

이제 그만 비난은 멈추시고, 응원좀 부탁드립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불안한 고민을 이어가는 많은 중독자들이 저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제가 잘 복귀해 내어야만 우리 사회에 '제2의 허재현'과 같은 모범적인 중독 회복자가 나올 수 있다고 그들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직도 삶대신 죽음을 선택하고 있는 소리없는 중독자들을 위해 꼭 사회에 잘 복귀해내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그럼에도 죄인이 맞습니다. 평생 반성하고 성찰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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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찬응원드립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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