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9일의 괴물

in #kr5 years ago

2000년 2월 9일, 1950년 2월 9일의 괴물

2000년 7월 한국 환경 단체에 한 한국인 미군 군무원으로부터 특이한 제보가 하나 들어옵니다. “지난 2월 9일 미군 군무원 맥팔랜드가 유독 화학 물질인 포름알데히드 475ml 들이 420병을 한강에 무단 방류하라고 지시했다.”는 겁니다. 제보자가 한강은 우리의 식수원인데 그런 걸 무단 방류할 수는 없다고 만류하자 이 맥팔랜드 거친 말을 내뱉으며 명령합니다. “조또 시키는 대로 하란 말이야. 너 바보야?” (Do what fuck I tell you. Are you stupid?) 결국 시키는 대로 이행해야 했던 한국인 군무원은 그 후유증에 며칠간 병가를 내야 할 정도였다지요. 거듭 생각해 봐도 용납이 안된 한국인 군무원은 미군 상부에 이 사건을 보고합니다. 그때 그가 들은 답변이 “물에 희석하면 문제가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2000년 2월 9일 한강에 퍼뜨려진 포름알데히드는 그렇게 물에 희석되어 날아갔는지 서해 바다로 흘러갔는지 알 수 없습니다만 이 사건은 상당한 파장을 불러일으킵니다. 아마 미군측은 그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거긴 너희들 식수원도 아니잖아. 그냥 너희들도 자주 이용하는 폐수 처리장일 뿐이라고.” 그리고 그렇게 개겼습니다. 환경단체가 이를 폭로했지만 미군의 공식 반응이 나온 건 열흘 뒤. 그나마 45일간의 감봉을 받은 후에는 승진까지 합니다.

환경단체가 수질 관리법 위반 등으로 당국에 고발하지만 맥팔랜드는 한국 경찰의 수사를 받기는 커녕 SOFA에 근거하여 출두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미 8군은 그가 영내에 있는지 없는지조차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뻗대었지요. 한국 관리가 공소장을 전달하기 위해 미8군을 찾았다가 “일 없으니 돌아가시오.”라는 문전박대를 당한 것도 수 차례였습니다.

그 고발이 그나마 검찰의 수사로 쭉정이같은 열매를 맺은 것은 1년 뒤였습니다. 그것도 약식 기소 벌금 500만원. 그런데 이즈음 민주 정부 하에서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던 사법부가 직권으로 이 사건을 재판에 회부합니다. 하지만 미군측은 또 SOFA를 내세웁니다. “공무집행 중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 한국 재판부는 재판권이 없다.”면서 맥팔랜드는 출석조차 거부하지요. 결국 피고인이 없는 상태에서 재판은 진행돼서 실형 6개월이 선고됩니다. 무려 4년만. 맥팔랜드와 미군측은 항소하고 2004년 12월에 있은 항소심에서야 그렇게도 얼굴 보기 힘들었던 맥팔랜드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결과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1심과 2심 재판부는 일관되게 평화시 미군 군속의 재판권은 한국에 있다는 것을 확인했고 2심의 경우 죄질은 중하지만 처음으로 재판에 출석하는 등 성의를 보였다는 이유로 집행유예를 내리게 됩니다. 물론 맥팔란드는 ‘유감’을 표시하면서 퇴정 중 취재진과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다고 합니다. 이후 상고했다는 보도는 없는 걸로 봐서 맥팔랜드 사건은 그것으로 일단락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사건은 우리가 너무도 잘 알다시피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의 모티브가 됩니다. 학창 시절 한강 다리를 기어올라가는 뭔가를 목격했다는(?!) 봉 감독은 이 영화를 오래 전부터 기획해 왔는데 마침 이 사건이 터졌고 “원자폭탄 실험이 고질라를 만들었듯” 이 사건은 그의 오프닝을 장식하게 된 것이라죠. 영화 속에서 미군이 한 말 기억나십니까. “한강은 크고 넓어요. 작업해요. 이건 명령이요.” 잘 모르긴 하지만 언젠가 만난 그쪽의 전문가는 포름알데히드 자체가 그렇게 큰 환경적 영향을 끼쳤을 것 같지는 않다고 말하더군요. 하지만 어쨌든 한국 법 뿐 아니라 미군의 내규까지도 어긴 행동이었고 그에 대한 처벌은 당연한 일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미군은 그를 거부하면서 스스로 괴물이 됐고 영화 <괴물>의 모티브를 제공했습니다.

영어 제목은 다르지만 우리말 제목은 같은 존 카펜터 감독의 공포 영화 <괴물>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남극의 고립된 기지에서 정체 모를 외계 생명체가 사람과 개의 몸 속에 들어가 그를 복제해 내고 다른 희생양을 노리는 줄거리였는데 이 과정에서 남극 기지의 요원들은 서로 서로를 의심하며 더 큰 공포에 빠지게 됩니다. 누가 괴물인지 모른다는 공포, 그리고 내 가장 가까운 사람이 사실은 나를 노리는 괴물일지 모르며 내가 방심하는 순간 내 생명을 빼앗아 갈 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이 영화의 긴장을 놓치 않는 끈이죠. 마지막 장면에서 부상당한 주인공 앞에 홀로 남은 동료가 나타나는데 그조차 괴물인지 사람인지 알지 못하고 영화는 끝납니다.

사실 이런 플롯은 우리에게 익숙합니다. <복제인간의 제국>이나 <바디 에일리언> 그리고 최근에 개봉된 <인베이더>까지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지만 안에 뭐가 들었는지 모르겠는 존재에 대한 공포를 활용한 영화들이었죠. 그 공포의 연원 가운데 하나는 1950년 2월 9일 미국 상원의원 매카시의 발언으로 시작합니다. 별 볼일 없는 연방 상원 의원이었던 매카시는 1950년 2월 9일 버지니아 주의 작은 소도시 휠링에서 공화당 부녀 회원들을 모아놓은자리에서 “미국 국무성에 205명의 공산주의자들이 암약하고 있으며 그 명단을 보유하고 있다.”는 폭탄 선언을 한 겁니다. 그리고 이는 매카시즘으로 불리우는 빨갱이 사냥의 태풍의 진원지가 됩니다.

1949년 중국 대륙이 공산화되고 소련이 원자폭탄 실험에 성공하면서 미국인들은 공산주의자들에 대해 바짝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터였던지라 그 성마른 여론에 떨어진 매카시의 불똥은 이내 미국이라는 광야를 사르는 들불로 화하고 맙니다. 매카시는 금새 스타덤에 올랐고 그는 의기양양하게 미국 내의 빨갱이들을 몰아내자고 외치지만 그는 205명 가운데 단 한 명의 공산주의자도 고발해 내지 못했지요. 205명은 57명으로 다시 10명으로 줄었고 마지막으로 혐의를 두었던 이는 한 사람조차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 그러나 바람이 불면 그 바람이 순풍이든 역풍이든 휘날리는 종잇장들은 있는 법. 빨갱이 사냥으로 인해 수만 명의 사람들이 고통을 받아야 했습니다. “국가 연주 중에 엉덩이를 긁은 사람도 혐의를 받았다.”는 명배우 험프리 보가트의 말은 매우 시사적입니다.

그것은 공포였지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국무성에, 심지어 백악관에, 내가 뽑는 의원 후보 중에 하나가 괴물에 의해 복제된 복제인간으로서 암약 중일지 모른다는 공포 말입니다. 그리고 공포를 느낄 때 사람들은 오히려 대담해집니다. 즉 상식과 경우를 망각한 채 자기 방어에 나서게 되고 그 방어에 대한 죄책감을 삭감하게 되죠. 그 일이 미국에서 무려 4년 동안 벌어지게 됩니다. 광풍이 한바탕 쓸고 지나가 여러 사람들의 밥줄이 끊기고 미국에서 추방당하고 감옥살이를 경험한 뒤에야 미국은 제정신을 찾습니다. 그리고 매카시는 술을 퍼먹다가 간질환으로 사망하죠.

50년이라는 시차를 사이에 두고 벌어진 이 두 사건에서 미국이라는 나라를 생각해 봅니다. 2000년의 포름알데히드 방류 사건에서 미군 군무원 맥팔랜드와 그를 두호한 미군은 오만이라는 괴물의 복제가 분명했습니다. 그리고 1950년 2월 9일의 매카시의 연설은 공포와 야만이라는 이름의 괴물이 그 왕성한 복제력을 자랑하며 활동을 개시한 날이었습니다. 그럼 결국은 또 우리에게 물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 괴물들로부터 자유로운지. 오만이라는 괴물로부터 결코 침해받지 않았으며 공포와 야만의 괴물은 우리들을 범접하지 못하였는지, 혹시 언제 복제됐는지 모르게 우리는 괴물의 일부로 동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카펜터의 영화 <괴물>에는 어떤 실험을 통해 괴물임을 알아내고, 그 순간 괴물이 인간의 피부를 뚫고 튀어나오는 (당시로서는) 놀라운 시각 효과가 등장합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실험이 가끔 필요하지 않을까요. 특히 자기 맘에 안들면 다 종북이라는 사람들 그 오만과 야만의 사람들에게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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