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데기의 비극

in #kr6 years ago

1978년 9월 26일 번데기의 비극

만화가 박수동 선생님의 대표작 가운데 ‘번데기 야구단’이라는 만화가 있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던 영양간식(?) 번데기를 팀명으로 한 이 야구 명랑 만화는 여러 에피소드를 기억 속에 남겼다. 그 가운데 ‘물꽁’ (선수들 이름이 꽁치, 먹물, 버들피리 이랬다)의 이야기도 있다. 가난한 홀어머니와 함께 살던 물꽁이 간식으로 나온 번데기를 몰래 빼돌려 동생에게 주려다가 망신을 당하는 것이다. 그건 내 친구의 이야기기도 했다. 번데기 ‘구루마’에 애들이 몰려들어 종이 고깔에 10원어치 번데기를 담으면 “야 야 조금씩만 주라. 우리 동생이 좀 묵잔다.” 하면서 넉살 좋게 몇 개씩 얻어가서 동생 입에 넣어 주던 녀석이 있었으니 말이다.

이 만화의 마지막회는 괌까지 갔다가 귀국한 번데기 야구단의 카퍼레이드가 장식한다. 그런데 정확히 말하면 그건 리어카퍼레이드였다. 전국의 번데기 행상들이 모여들어 그 리어카에 야구단을 싣고 시내를 누볐던 것이다. 이 마지막회가 소년중앙 78년 6월호였다. 이 만화가 3개월만 더 연장되었더라면 아마도 이 장면은 삭제되었을지도 모른다. 1978년 9월 26일 번데기 식중독 사건이 터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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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9월 26일 오후, 서울 상계동 등 동북 지역에서 번데기를 먹은 어린이들이 심한 경련과 복통, 구토 등의 증세를 일으켜 병원에 입원, 이들 중 4명이 사망하였고 24명이 중태에 빠졌다. (이후 사망자는 더 는다) “번데기를 먹은 애들이 죽었다.”는 소리를 간호사들로부터 귀띔받은 한 기자는 특종을 잡은 흥분에 나는 듯이 데스크에 보고를 했는데 데스크에서 날아온 소리는 또 하나의 벽력이었다. “경기도 파주에서도 애들이 번데기 먹고 죽었다는데?”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뻔 뻔 소리가 동네마다 골목마다 그치지 않을 무렵, 아이들이 번데기를 먹고 죽다니. 그것도 각각 다른 지역에서.

하지만 이들이 먹은 번데기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문제의 번데기를 판 구멍가게나 행상들이 서울 경동시장의 한 중간도매상으로부터 받아 팔아왔고, 그 도매상이 사들인 경로도 한 곳이었다. 의사들은 상한 번데기에 의한 식중독이 아니라 ‘약물 중독’ 가능성이 크다고 증언했다. 즉 번데기 유통 과정에서 그 마대 자루에 묻어 있던 농약이 아이들을 잡은 것이다. 번데기는 ‘자연산 농산물’로서 식품 위생법 관리 대상에서 빠져 있었다. 번데기를 실은 마댓자루들은 일반 화물이나 잡화로 간주돼 열차나 용달차에 화공약품 농약 등과 같이 실리곤 했다. 심지어 외국에 동물 사료로 수출됐다가 세제 등 이물질 성분이 발견돼 반품되기도 했다는 폭로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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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이렇게 되자 문교부는 ‘거리 음식 금지령’을 내렸다. 만만한 것이 번데기 장수들이었다. 당시 멋모르고 번데기 리어카를 끌고 나왔던 우리 학교 앞 번데기 장수 아저씨는 엄청난 봉변을 당했다. 학교 교사들과 학부모들에게 ‘살인자’ 취급을 받으며 리어카가 부숴졌고 경찰에 의해 끌려갔던 것이다. 나이는 지금의 내 나이쯤 되었을까. 자신이 아침에 이 번데기로 아침밥을 먹고 나왔다면서, 이건 아무 이상 없이 괜찮은 번데기라며 목멘 소리로 호소하다가 눈물을 훔치며 경찰에 끌려가던 뒷모습이 어찌 그리 불쌍하던지.

비극은 또 있었다. 공사판에서 일하던 한 아버지는 다른 아이들처럼 군것질 한 번 시켜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 50원어치 번데기를 사서 귀가했다. 맛있게 먹은 아들이 배가 아프다고 까무라치기 시작한 것이 그 비극의 날 밤 11시 15분. 그로부터 3시간 동안 아버지는 11군데의 병원과 의원 문을 두드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의사가 없는 것이야 그랬다고 치지만 대학병원에서도 입원실이 없다고 아이를 외면했고, 더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핑계로 진찰이라도 해 달라는 아버지의 호소를 팽개쳤다. 교통사고 처리를 왔다가 이 꼴을 목격한 경찰까지 열통이 터져 병원 측에 항의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이는 청진기 한 번 대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6개월 뒤 아버지도 “어떻게든 굳세게 살려 했으나 마음을 잡을 수 없다. 아들 곁으로 간다.”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는다.

농약을 목구멍 속으로 들이부으면서 그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허름한 복장에 때묻은 얼굴이 아니었다면, 포니 자동차라도 타고 아이를 데려갔더라면 하다못해 번데기 대신 다른 과자라도 사 줄 여력이 됐으면 그렇게 허무하게 아이를 잃지 않았으리라는 한스러움이 농약처럼 그 식도를 까맣게 태우면서 내려가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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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버지의 마음. 제가 아버지가 되고 보니 이해가 가는것 같아요 ㅠㅠ

네 저도 .... 참 가슴 아픈 일이었습니다. 제 어린 시절 생생한 기억이 있는 사건이라 더욱

평소 스팀잇에서 잘 보던 산하님 글을 ㅍㅍㅅㅅ에서 만나니 반갑네요.
https://ppss.kr/archives/55577
잘 읽었습니다. ㅎㅎ

앗 이제 여기는 기사 잘 안싣는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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