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천국의 난

in #kr5 years ago

1851년 1월 11일 태평천국의 탄생

중국이란 나라는 땅도 넓지만 사람이 무진장 많은 곳이죠. 지구상 인류 중 다섯 명 중 한 명은 중국인 아니겠습니까. 밤하늘의 별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 땅에서 나고 죽었을 것이고, 그 가운데 영웅호걸이라 불리울 위인들도 빗자루로 쓸어낼 만큼 많은 것이 그 역사일 겁니다. 아편전쟁에서 참패하여 중국이 서구열강의 호구가 되어가던 무렵의 1851년 1월 11일 중국 남부에서는 서른 중반의 청년이 자신의 나라 건국을 선언합니다. 그 이름은 태평천국. 그리고 그 청년의 이름은 홍수전(홍슈취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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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전은 그의 고향에서 행세깨나 하는 집안의 자식으로 자라났습니다. 당시의 지식인들이 흔히 하던 것처럼 과거 공부를 하고 급제하여 중앙의 관료로 종신하는 것이 꿈이었던 그는 과거에 응시했다가 낙방한 후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까무라칩니다. 그런데 그렇게 까무라쳤을 때 그는 특이한 체험을 하게 됩니다. 일종의 꿈인지 환영인지 모를 스토리를 경험하게 되죠. 내용인즉 대충 이렇습니다.

홍수전은 하늘나라를 방문해서 검은 옷을 입은 노란 수염의 노인을 만나는데 그는 자신이 세계만물을 창조한 이이며 마귀를 숭배해서는 안된다고 하며 칼과 인장을 줍니다. 홍수전은 이 칼과 인장을 들고 마귀와 싸우는데 그를 한 중년의 남자가 도와 줍니다. 홍수전은 그를 큰형이라고 불러요. 그리고 흑의의 노인이 누군가를 몹시 혼내는 것을 보게 되는데 글쎄 그건 ‘공자’였답니다. 공자는 그 죄를 깊이 늬우치며 가슴을 치고 말이죠.

이미 중국어로 번역된 성경 내용을 읽었던 홍수전에게 이 몽상의 체험은 일종의 종교적, 영적 깨달음(착각)으로 전화됩니다. 즉 흑의 노인은 여호와 하느님이요 그는 자신의 아버지이며 자신의 어머니는 하느님을 받아들여 자신을 잉태하여 낳았고 자신은 예수의 동생이요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족보를 스스로 형성하게 된 거죠.

그는 ‘배상제회’ 즉 상제를 경배하는 모임을 만들어 예수가 세상을 구하러 왔듯 자신도 온갖 악마의 유혹으로 타락에 빠진 중국을 구제하라는 명령을 상제로부터 받았다고 설교했다. 모세의 10계와 비슷한 10계명을 지키고 유일신인 상제만을 믿으면 질병이나 재해에서 벗어나고 행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으며 결정적으로 춘추전국시대 이후 중국의 오랜 역사상 거의 처음으로 공자의 가르침을 전면적으로 부정했으며 만인이 상제 앞에 평등함을 선포합니다.

조선에서 천주교가 “아버지도 임금도 없는 종교”라는 이유로 탄압을 받았듯 공자님을 비루먹은 망아지로 보고 하늘같은 질서를 무시하는 이 홍수전의 배상제회는 당연히 지역의 토호라 할 향신 계급과 관의 공격을 받습니다. 그러던 중 홍수전은 1851년 양력 1월 11일, 음력으로는 12월 10일 그의 생일날 태평천국을 선포하고 반란을 일으킵니다.

그를 도운 핵심인물들의 출신성분을 보면 매우 다양합니다. 숯장수 출신의 양수청, 빈농 출신의 소조귀, 지주였던 위창휘, 부농이었던 석달개 등이죠. 이렇듯 태평천국의 이름과 그 가르침은 각계각층의 지지를 얻으며 홍수전의 고향 광서성을 넘어 남중국으로 퍼져 나갑니다. 태평천국의 군기는 엄정했고 악질 지주나 부유한 상인, 그리고 중국을 망친 마귀로 지목한 만주족에 공격을 집중했기에 민중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홍수전은 남녀 차별에도 반대하여 여자의 전족을 폐했을 뿐만 아니라 여자들로 군대를 조직하기도 합니다. 소삼랑이라는 여자가 이끄는 부대는 청 정부군의 공포의 대상이었다고 하지요.

남중국의 수도라 할 난징을 장악한 태평천국 정부는 그들의 이상향을 ‘천조전묘제도(天朝田畝制度)’로써 밝힙니다. 그것은 중국의 고대 평등사상으로서의 ‘대동(大同)’의 이념에 입각하여 토지를 공유하고 남녀 균등히 할당하며 전체 잉여물자를 공유로 하여 분배한다는 그야말로 혁명적인 발상이었습니다.

그러나 홍수전 자신은 이미 자신의 가르침을 배신하고 있었습니다. 술, 담배, 아편은 물론 남녀의 접촉까지도 엄격하게 통제하여 부부끼리도 동침을 허락지 않았던 반면, 그는 남경성 안의 대궐에서 수천 명의 여자에 둘러싸여 지냈거든요. 당시 기록으로는 백제 의자왕의 3천궁녀에 맞먹는 수의 여자들이 홍수전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거기다가 애초에 어설픈 신비체험으로 시작된 태평천국은 그 종교적 망상으로 흔들립니다.

홍수전의 심복이었던 양수청은 덩달아 신비체험을 과시하며 자신에게 상제의 혼이 내렸다며 홍수전에게 호통을 치는 애매한 상황을 연출하곤 했고, 홍수전은 이를 방기할 수 없었죠. 결국 피가 피를 부르는 내분이 일어나고 혁명 동지들은 하나 둘 그 목이 달아납니다. 아마 원수를 사랑하라는 큰형님의 가르침은 까먹은 듯 홍수전은 같은 편 수만 명을 눈 깜짝하지 않고 죽여 버리는 잔인함을 보이기도 하죠.

처음에는 기독교 아류가 아닌가 하고 호감을 가지던 서양 열강들은 우상 숭배라며 성모 마리아상까지 때려부수는 태평천국군을 보면서 얘들은 아닌 거 같다 결론지었고 더구나 태평천국보다는 완전히 자신들에게 꼬리를 내린 청나라 정부가 자신들의 이익에 맞다는 판단에 도달, 청나라 정부를 돕게 됩니다. 그리고는 태평천국의 성장만큼이나 빠른 몰락이 시작되지요. 남경성 포위 중 홍수전은 죽음을 맞는데 여기에는 몇 가지 설이 있습니다. 자살했다는 설, 그리고 성경에 나오는 ‘만나’를 먹겠다고 아무 풀이나 집어먹다가 식중독으로 죽었다는 설. 어느 쪽이든 홍수전은 끝내 형님 예수나 아버지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죽습니다. 문제는 그 뒤에 남은 태평천국의 용사들이었지요.

어떤 기록에 보면 태평천국군의 강 도하를 목격하고 수만 명이 줄을 서서 배를 기다리는 강변을 향해 대포를 퍼붓는데 태평천국군들이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기다리다가 그 자리에서 볼링핀처럼 쓰러져 가는 모습에 서양인들이 혀를 내둘렀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어제까지 농민이었던 태평천국 군인들은 생애 처음 맛본 평등의 세상, 지주의 횡포로부터 자유로운 기억을 위하여 싸웠고 죽였고 죽어갔습니다. 태평천국의 난 와중에 약 2천만명의 목숨이 사라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때 조선 인구가 천만을 밑돌았을 때니 조선 팔도의 인구가 몽땅 죽어 없어지는 참사가 일어났던 겁니다. 역시 중국은 뭐가 달라도 다르죠.

언뜻 태평천국의 난을 보면 반세기쯤 뒤에 일어난 조선의 갑오농민혁명이 떠오릅니다. 물론 양상은 많이 다르죠. 전봉준은 홍수전같은 권력을 휘두르지도 못했지만 홍수전처럼 나라를 뒤엎고 새 나라를 꾸릴 생각 역시 하지 못했지요. 보국안민 제폭구민을 외쳤을 뿐 봉건 조선 왕조를 뿌리채 흔들 요량은 하지 못했다는 말씀입니다. 동학농민운동 이전의 그 흔한 민란에서도 아전들은 죽이면서도 절대로 사또는 죽이지 못했던 이 착한 백성들이라니...... 종교적 열망으로 시작해서 정치적 개혁의 깃발을 휘날리지만 기관총 앞에서 주문 외면서 달려들었던 동학군들은 태평천국의 농민들처럼 시산혈해를 이루며 죽어갔지요. 그리고 중국은 열강의 반식민지가 됐고 조선은 완전식민지가 됐습니다. 그 무수한 희생은 마냥 헛되이만 보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그 기억은 남고 역사는 기억의 무더기 속에서 피는 꽃이지요. 물론 쉽게 피는 꽃도 아니지만 말입니다.

동학군이 사라진 후 조선 백성들이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창포장수 울고 간다.”라는 슬픈 민요가 퍼졌듯 청나라 농민들은 이런 노래를 불렀습니다. “완두콩은 붉게 꽃피었지만, 한번 떠난 태평군 형의 그림자는 찾을 수 없네. 황혼이 지고 새날이 밝는 것을, 봄이 가고 겨울이 오는 것을 바라보네. 오직 기러기 남으로 날아가고 있을 뿐, 형이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지 못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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