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의 마지막 3일 - 두번째 날

in #kr5 years ago (edited)

이순신의 마지막 3일 - 두 번째 날

이순신은 그때껏 한 번도 하지 않은 작전을 세운다. 바로 야간 전투. 장거리 포격전을 장기로 하는 조선 수군의 특성상 야간 전투는 기피 대상이었지. 하지만 척후선들의 보고에 따르면 적들은 심야에 경상도 사천에서 전라도 순천으로 넘어오는 최단거리인 노량 해협을 통과할 예정이었으므로 어쩔 수 없었을 거야. 지도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사천에서 순천에 가려면 길은 두 가지다. 남해도를 빙 돌거나 노량 해협을 통과하거나. 하지만 당시의 허약한 배들로 야간에 큰바다를 항행하는 것은 무리였고 일본군도 선택의 여지가 적었지.

11월 18일 남해 바다에는 어둠이 내렸다. 조선군 본대는 관음포에 매복해 있었고, 명나라 군대는 인근의 죽도 뒤에 숨었지. 조선의 복병 함대는 노량 해협 출구에서 해협을 빠져나오는 일본 함대에 일단 첫 인사를 할 예정이었어. “병사들에게 하무를 물려라.” 이순신이 명령했어. 하무란 입에 물고 있는 나무 작대기를 말해. 즉 그걸 물고 일체 말을 하지 말라는 침묵령이었어. 하무를 물리기 전에 각 배에서는 배를 지휘하는 장수들이 마지막 훈시를 했을 거야. “이 원수를 무찌를 수만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 (此讎若除 死即無憾)”는 마음은 이순신만이 아니었겠지.

수군들은 죄다 남해안 출신들이었어. 경상 좌수영이야 부산의 일본군에 가로막혀 힘을 쓰지 못했지만 거제에서 사천에 이르는 경상 우수영 관할 고을들, 순천,낙안, 광양 등의 전라 좌수영, 해남과 진도 무안 등의 전라 우수영 고을들 출신들로서 전쟁의 쓴맛을 몇 년 동안이나 처절하게 본 사람들이고 처자고 친척이고 일본군들에게 해를 입지 않은 사람이 드물었지.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처럼 들이닥쳐서 고달프긴 해도 평화롭던 땅을 곤죽을 만들고 있는 대로 사람을 죽였던 저 악귀들을 곱게 보내지는 말아야 한다는 생각은 기천 명의 조선 수군 모두가 하고 있었을 거야. “전쟁이 끝나는 건 좋은디 저것들을 더 이상 못죽이는 것이 한이네.”

전군이 하무를 문 후 밤바다는 침묵에 빠져들었고 한겨울 바다의 파도는 다가올 전투의 서곡처럼 울었다. 이순신은 좌선에 올라 눈을 부릅뜨고 복병 함대가 일본군을 발견하고 공격하기만을 기다렸어. 드디어 침묵의 바다를 포성이 갈랐다. 경상우수사 이순신(통제사 이순신과 한자가 다른 동명이인)이 이끄는 조선군 복병함대가 열심히 노 저어오던 일본 함대를 들이받은 거야. 신기전이 쏘아올린 불화살들이 밤하늘을 휘저었고 일본군의 아우성과 조선군의 함성이 들리기 시작했어. 일본군 배 몇 척이 칠흑 같은 바다 속으로 빨려 들어갔지만 500척의 대함대는 별 개의치 않고 밀고 나왔지. 500명에게 스무 명이 덤벼봐야 400명은 어디서 누가 싸우는지도 모르는 법이지.

먼저 움직인 건 명나라 함대였어. 조선군에게 빌린 판옥선에 올라탄 진린과 그 부장 등자룡이 공격 명령을 내린다. 하무를 내버린 명나라 군들이 입을 열자 고요하던 밤바다는 시끄러운 중국어로 가득 차 버렸어. “쿵찌!” (공격!) 왕바딴 훈단 다 나오고 꺼우짜중 (개새끼) 죽여라 살려라 명나라 군대는 요란하게 떠들면서 일본군 앞에 다가들었어. 동시에 관음포. 그러니까 남해도 서북쪽의 만에 숨어 있던 이순신의 본진에서도 명령이 떨어졌어. “나가라.”

일본군 지휘관 시마쓰 요시히로의 낯빛도 바뀐다. 함대를 기습한 복병들이 몇 안되는 분견대가 아니었구나. 조선과 명나라의 연합함대 전 병력이 이 밤에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구나 싶었겠지. 바로 자기들이 심야 기습으로 조선 함대를 무너뜨렸던 칠천량 해전을 떠올렸을 거야. 해협을 빠젼나온 일본군 앞에 연합함대가 등장했어. 왼쪽은 명나라 함대, 가운데는 경상 우수사가 이끄는 조선 별동대, 그리고 오른쪽에서는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함대 본대. 하지만 이순신보다도 나이가 열 살이나 위인 노장으로 일본 최고의 용장이라 불리던 시마쓰 요시히로는 당황하지 않았어. “어차피 부딪칠 적이다. 없애 버리자.” 일본군은 어둠을 뚫고 조선과 명 함대로 돌진했어.

조선 명 연합함대 대략 150-200척. 일본군 500여척. 마지막 전투는 최대의 전투가 된다.

그때껏 이순신의 승리 비결은 간단했다면 간단했어.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방식으로 싸우고 그를 위한 준비에 철저했다는 것. 불리할 것 같으면 임금이 나가래도 나가지 않았고 도원수가 사정해도 움직이지 않았던 그였어. 결국 바로 그 명령불복종 때문에 죽을 고비를 넘기고 몸이 부서지는 고문을 받아야 했지만 말이다.

장거리 포격이 불가능한 야간 전투를 맞아 이순신이 준비한 건 화공(火攻)이었지. 때는 한겨울. 시베리아로부터 불어오는 북서풍이 강하게 불고 있었고 그 바람을 이용하고자 했던 거야. 시마쓰가 제갈량은 아니니 동남풍을 불러 올 수는 없었을 거고. 조선군은 화공에 필요한 모든 도구를, 하다못해 바짝 마른 섶과 장작까지 잔뜩 싣고 있었어.

그런데 출정 전 무더기로 쌓이는 마른 섶과 장작을 보면서 조선군들은 긴장했을 거야. 이걸 어디에 쓰라는 겁니까? 불 붙여 던지는 거다. 그렇다면 불화살을 쏴 대는 정도가 아니라 손으로 불타는 장작을 던져서 일본군 배에 뿌리는 정도의 거리, 즉 왕년에 대학생들과 전경들보다도 더 가까운 거리에서 코를 대고 싸워야 한다는 얘기였어. 근접전. 한바탕 포를 쏘아대고 기를 꺾은 뒤에 돌격하여 소탕하는 조선 수군 본연의 전투가 아닌 그야말로 배들끼리의 백병전이 벌어지는 거지.

“붙어라!” 양쪽 군대 모두 결사적으로 배를 몰아 상대편 배로 육박해 갔어. 배와 배들이 맞붙었고 그 안의 사람들이 뒤엉켰다. 불길을 퍼부으면 총알이 쏟아지고 배들이 접근하면 원기왕성한 남자들이 사다리에 달라붙거나 줄이라도 걸려고 애쓰고 일본군 전선보다 사람 키 하나가 더 높았던 판옥선의 조선군들은 불화살을 소나기처럼 퍼붓고 비격진천뢰나 불 붙은 섶과 장작을 있는 대로 던졌다.

시마쓰 요시히로는 후일 일본의 역사를 결정할 세끼까하라 전투, 즉 도요도미 히데요시의 아들을 섬기는 서군과 도꾸가와 이에야스의 동군이 벌인 일대 결전에서 서군에 속하게 되지. 동군의 승리가 거의 확실시됐을 때 시마쓰는 얼마 안남은 자신의 병력을 휘몰아 도꾸가와 이에야스의 본진을 향해 돌진해. 도꾸가와 이에야스 진영이 혼란에 빠지고 도꾸가와 보위에 신경을 쓴 틈을 타서 포위망을 끝내 돌파한다. ‘시마쓰의 후퇴’라고 불리는 유명한 사건이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납치해 간 장본인 중의 하나이며 심수관 등등 도공들을 끌고 간 사람도 그이고 오늘날의 오키나와를 침략하여 항복을 받아낸 시마쓰 요시히로야.

이 냉철한 일본 최고급 무장은 밤바다를 수놓는 불꽃들과 파도 소리를 지우는 비명 소리 속에서도 판세를 유심히 보고 있었어. 그리고 그는 후일 ‘시마쓰의 후퇴’에 필적하는 작전 하나를 지시해 “명나라 함대를 노려라. 판옥선 두 척만 설치기노 할 뿐 나머지는 허섭쓰레기데쓰.” 판옥선 두 척은 조선군이 명나라 사령관 진린과 부사령관 등자룡에게 빌려 준 거였어. 일본군 함대는 명나라 함대를 향해 화력과 병력을 집중한다. 명나라 군대도 떠들썩하게 소리 지르며 이를 맞아 싸워. 그러나 아무래도 명나라 군은 7년 전란에 단련된 조선군과는 달리 어딘가 모르게 엉성했다. 선봉은 등자룡이었지.

언젠가 한국에 온 중국 주석 시진핑은 서울대 특강에서 이 등자룡의 이름을 말하며 일본에 맞섰던 한중의 우의를 강조한 바 있어. 남의 나라 전쟁에 왜 내 피를 흘리냐며 실실 피해다니거나 일본군과 짝짜꿍이 돼서 조선군을 막아서기 일쑤던 명나라 장수들과는 달리 등자룡은 자신의 가병들까지 데리고 조선에 와서 열심히 싸운 무장이었어. 예순 일곱이나 되는 노장으로 백발을 휘날리며 일본군을 맞아싸우던 그의 배에 갑자기 변고가 발생해. 일본군과 뒤엉킨 가운데 다른 명나라 배에서 던져진 화기(火器)가 잘못 떨어지고 만 거야. 배에 화재가 발생하면 전투력은 절반 이하로 떨어지지. 불을 끄지 않으면 천천히 죽을 수 밖에 없고 불을 끄면 당장 적이 갑판으로 기어오르게 되니까.

처우똥시! 등자룡은 욕설을 퍼부었으나 이미 갑판의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타올랐어. 병사들이 불길을 잡느라 식수까지 퍼붓고 바닷물까지 길어 올렸지만 좀체 꺼지지 않았지. 가장 안된 것은 그 불길 사이로 일본군의 험악한 얼굴들이 어른거리기 시작했다는 거. 방비가 사라진 판옥선의 담장을 일본군들은 능숙하게 뛰어넘어왔어. 일단 칼싸움이 시작되면 동양 3국에서 일본군이 최강이라는 얘긴 여러 번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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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한때 명나라 군의 환심을 사기 위해 바치기도 했던 일본도를 윙윙 휘두르면서 궁지에 몰린 등자룡의 병사들을 몰아갔다. 마침내 등자룡 앞에 일본군이 이르렀고 등자룡이 칼을 휘두르며 저항했지만 이름모를 일본군 하나가 내리그은 일본도에 그만 두동강이 나서 죽고 만다. 명나라의 주요 무장으로는 첫 전사.

일본군은 그 목을 들고 환호했고 이를 목격한 조선과 명나라 함대는 일순 얼어붙는다. 부총병이 죽었다. 명나라 부총병 등자룡이 죽었다. 그리고 등자룡의 배는 불쏘시개가 돼 차디찬 남해 바다 속으로 곤두박질쳐 들어가고 말았어. 전세 역전의 순간. 일본군은 빈틈이 생긴 명나라 함대 쪽으로 전력을 집중시켰어. “적의 진형이노만 허물어라. 그러면 적은 힘을 쓰지 못한다데쓰. 하나 남은 판옥선을 쳐라. 거기에 명나라 대장이 타고 있을 거다.” 시마쓰 요시히로는 부르짖었지. 일본군선보다도 작거나 비슷한 규모였던 명나라 배들 사이에 우뚝 솟은 판옥선. 진린은 그 위에 타고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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