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한국에 이런 사람도 살았어요 - 윤한봉

in #kr5 years ago

#산하의오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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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이런 사람이 살았어요." <윤한봉> (창비, 안재성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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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비롯한 한국 사람들은 어려서 ‘위인전’을 보고 자랐다. 그 속의 ‘위인’들은 다 화장실에서 똥도 안 눌 것 같은 고결하고 ‘태어날 때부터 될성 부른 떡잎이었던’ 재능의 소유자로서 소인배들의 시기와 질투, 권력자의 견제와 횡포에도 불구하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일한 드라마들의 주인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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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군’의 전기를 읽으면 민비가 나쁘고 ‘민비’의 전기를 읽으면 대원군이 꽉막힌 영감쟁이가 되는 식의 기묘한 현상도 종종 발생했다. ‘평전’(評傳)은 그와는 좀 다르다. 한 인물의 긍정성만 잔뜩 부각시키다 못해 곧잘 신화(神話)로 둔갑하는 게 위인전이라면 평전은 최소한 그 발을 허공에 띄우지는 않고 땅에 붙여 둔 채 이야기한다. 몇 년 전부터 즐겨 읽게 되는 것이 작가 안재성의 평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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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성은 굴곡 그득한 한국 현대사 속에서 더욱 뒤틀려 버린 인물들에게 각별한 관심을 준다. 한국 공산주의 운동에서 빼놓기 힘든 이름 박헌영이나 비운의 남부군 사령관 이현상, 조선 정판사 사건의 이관술, 전설적인 노동운동가 이재유 등등 여러 개의 그늘진 삶덩이에 수십 년만의 스포트라이트를 내리쬐던 그의 책 속에 들어 고개를 끄덕이거나 하늘을 보거나 가슴을 어루만진 기억이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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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봉> (창비) 편도 그렇다. 이 책의 부제는 사실상 책의 내용의 한 줄 압축판이다. ‘5.18 민주화운동 마지막 수배자’. 그리고 한 줄을 더 추가한다면 ‘5.18 민주화운동의 최고 핵심 수배자’가 될 수도 있겠다. 광주항쟁이 발생하기 3일 전, 그는 윤상원, 정상용 등 광주 운동권 핵심들 앞에서 1979년의 부마항쟁처럼 “민중이 함께 하는 폭발적 상황이 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물으며 무장 투쟁까지도 각오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광주항쟁이 터졌을 때 그는 광주 외곽에 있었고 광주가 포위된 상황에서 광주 진입에 실패하고 도청 함락의 소식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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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그는 죽은 목숨이었다. 경찰은 그의 위상을 잘 알고 있었고 ‘대간첩’ 김대중의 돈을 받아 광주항쟁을 조직한 핵심 중의 핵심으로 꼽고 있었다. “윤한봉은 잡히면 죽는다.”는 것은 경찰 고위급 이하 운동권 초짜까지 공유하는 진실이었다. 독일 대사관 망명을 비롯하여 해외탈출만이 답이었다. 관광객으로서 대한민국은 볼 것이 지천으로 많은, 드넓은 땅이지만 도망자가 됐을 때 대한민국은 로빈슨 크루소의 섬보다 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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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윤한봉은 어지간한 ‘꼴통’이었다. 한자와 한글이 어느 쪽이 우수한가 하는 시덥잖은 문제로 친구와 다투다가 그는 선언한다. “만약에 내가 앞으로 한문을 쓰게 되면 개새끼다.” ‘00하면 내가 성을 간다.’거나 ‘00하면 내가 개 아들이다.’는 얘기야 한국 사람들의 일상 언어 아닌가. 물론 그 말을 지킨다면 5천만 중 3천 5백만은 멍멍거리고 있을 것이고 나머지 1천 5백만은 수십 개의 성(姓 )을 쓰고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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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윤한봉은 평생 그 선언을 지킨다. 대학생이 돼 경찰서에 끌려가 그때만 해도 공식 문서에 즐겨 쓰이던 한자를 적으라는 강요를 받았을 때 그는 못 쓴다고 했다가 흠씬 두들겨 맞는다. 다른 고문과 폭행과는 별도로 참으로 억울했을 것이다. “참말로 못쓴당게요.” 그 이후로도 그는 평생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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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어휴 꼴통!”하고 진저리를 치고 외면할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그런 견결함 좋아하지 않는다. 대개 그런 사람들은 꽉 막혀 있고 남 재단하기를 즐기고 자신의 원칙을 남에게 적용하여 포폄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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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꼴통’이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사정없이 우리를 흔들어 놓던지 단번에 완전히 반해 버린 거야.”라고 부르짖게 만들고 “굉장히 열심히 살았고 그렇게 보람되고 벅차게 살 수 있었던 것이 합수(윤한봉의 호) 형에게 가장 고마운 것 중에 하나에요.”라고 토로하게 하는 설득력과 헌신성을 갖춘다면 문제는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살아 있는 예수와 한국의 레닌”(재미교포 강완모) “한봉이 형의 삶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모르겠다. 한국의 간디라고 해야 할지 한국의 호찌민이라고 해야 할지” (황광우)의 반열에 등장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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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봉의 호 합수(合水)는 전라도에서 ‘똥과 오줌을 합친 거름’이라는 뜻으로 쓰인다고 한다. 그는 그런 뜻으로 자신의 아호를 지었다. 광주항쟁 때 후배들과 함께 죽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미국 생활 내내 침대 위에서 자지 않았고 도망자임을 잊지 않기 위해 혁대를 풀지 않았고 ‘서서 담배 피울 자격도 없다’고 해서 쪼그려 앉아 담배를 피운 그는 똥거름이 되어 자신을 학대하고 떠나오게 한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그리고 이국 땅에서의 그 나라 사람들의 공동체를 위해 헌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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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 벌어지면 진저리치게 자신을 몰아붙이는 사람에게 정 떨어지는 건 잠깐이다. 꼴통 윤한봉은 논쟁도 허벌나게 했고 많은 상처를 주기도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징글징글한 사람이 막힌 변기에 손을 넣어 막힌 걸 건져낸 다음 싱긋 웃는 걸 본다면 그 정은 두 배가 돼 다시 붙을 수 있다. 윤한봉은 그런 사람이었다. 똥거름 같은 퇴비로 텃밭을 기름지게 하는 동시에 소양강과 남한강과 북한강이 이룬 한강에, 임진강,한탄강과 예성강이 더하여 만들어내는 한강 하구 같은 드넓은 합수(合水)가 될 수 있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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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여러 번 한숨도 쉬고 픽 실소도 지었다. 참 세상은 다양하고 별 사람이 많구나. 윤한봉은 별난 사람이었다. 꼴통이야 지천이니 별날 것도 없지만 윤한봉 정도의 헌신성과 설득력을 갖춘 사람은 매우 드물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더해서 윤한봉은 또 하나의 걸출함을 지니고 있었다. 그건 바로 ‘반성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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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오류를 고백하기를 극히 꺼린다. 정확히 말해서 말로는 잘못했고 잘못되었다는 반성이 넘쳐나지만 그게 마음으로 이어지고 손발로 연결되는 일이 드물다.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알고도 그를 대놓고 얘기하기는 어렵다. 그건 자신의 과거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이 될 수 있기 때문이고, 적어도 그 주장을 하던 당시의 자신이 미욱하고 모자랐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인정하게 되는 탓이다. 그래서 웬만한 인격자들도, 꽤 큰 인물들도 자신의 그림자를 들추는 일에는 지극히 인색한 사례가 귀하지 않다. 그런데 윤한봉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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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할 말이 없는 거야. 이제 북에 대한 신뢰가 없어져 버린 거야. 이 자리를 빌려서 혹 내가 일본인 납치도 조작이다. KAL기 사건도 조작이다. 이런 얘기를 한 걸 듣고 운동에 뛰어들어가지고 신세를 망쳤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이따가 나하네 꿀밤을 주든지 개인적으로 사과를 요구하면 하겠습니다.” 어느 날 강연의 일부다. 그는 이 내용의 근거를 구체적으로 밝히면서, 자신의 생각을 바꾸게 된 이유를 소개하면서 이렇게 무릎을 꿇어 버렸다. ‘잘못했당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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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사정권에 대한 혐오를 가지고 그에 따라서 북쪽의 민족적인 것 등을 대하고 보니까 판단을 그르쳤어요. 제가 상당히 객관적인 사람이라고 평가를 받는데 이런 과오를 범했구나라고 생각하니까 좀 부끄럽더라구요.”

이런 반성 쉽지 않다. 그가 ‘객관적인 사람’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아울러 그는 고국으로 금의환향한 뒤 그를 아끼는 광주 사람들이 전한 세 가지 금기, 즉 NL을 위시한 통일운동 세력과 광주 피해자 단체, 그리고 김대중 지지 세력만 대놓고 반대하지 않으면 당신은 최고로 대접받으리라는 충고를 그야말로 ‘합수’(똥거름)처럼 내팽개친다. 그리고 미제의 프락치니 변절했느니 하는 개소리까지도 서슴없이 들어먹는다. 또 한 번 그게 윤한봉이었다. 개인적으로 윤한봉이라는 사람이 지녔던 인격의 절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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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통이되 설득력과 헌신성을 겸비하였고 거기에 자아성찰 능력과 솔직한 반성 표현까지 가능하고, 그를 통해 형성된 주의 주장을 다시금 견결히 유지할 사람이라면 그가 호찌민에 미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며 간디에 모자랄 까닭이 무엇일까. 안타깝게도 그는 그가 더욱 필요한 시기에 살지 못하고 일찍 영원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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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사람이 일찍 죽는 게 아니라 일찍 죽어서 아쉬운 모습을 덜 보는 것일 뿐이라는 푸념도 있지만 요즘 같은 시기에 그와 같은 사람이 있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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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 말이면 믿을 수 있다.”는 사람. 완연한 꼴통이지만 제몫을 넉넉히 할 뿐 아니라 남의 몫까지 하고, 논쟁할 수는 있되 설득이 되는 논리를 갖춘 사람, 거기에 더해 자기 잘못이 발견되면 “아나 꿀밤이라도 멕이든가. 미안하요이.” 하면서 누구에게나 이마를 갖다 댈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얼마나 안타깝고 아쉽고 절실한가. 요즘처럼 얼치기 선동꾼들이나 음모론자들이 팬덤을 몰고 다니며 사람 잡는 걸 능사로 알고, 허튼 소리 하나가 퍼지면 온 국민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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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읽어 보시길 권한다. “몇 년 전에 이런 사람도 한국에 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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