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반항아 전설로 남다

in #kr6 years ago

1955년 9월 30일 영원한 반항아의 죽음

한 영화 촬영이 끝났다. 출연 배우 한 명이 환호성을 지른다. 영화 출연 계약 말고 또 감독 및 영화사와 또 다른 약속을 했고 그걸 지키느라 좀이 쑤셨는데 마침내 그 약속의 굴레에서 해제된 것이다. 약속의 내용은 “촬영 중에는 차를 몰지 말라.”는 것. 성정이 자유분방하면서도 한 번 정신을 쏟기 시작하면 누구도 못말릴만큼 집중하는 성품이었던 그 배우는 왕년에 엘리어 카잔 (헐리웃 영화의 거장이면서도 매카시즘 파동 때 그에 협조하여 수십 년 후 아카데미 특별상을 받았을 때에도 시상식 참가 배우들 반은 박수를 거부했던)과 작업할 때 출연료를 쏟아부어 산 말을 촬영장에 데리고 와서 애지중지하다가 카잔이 말을 내쫓아버린 뒤에야 연기에 집중했던 적도 있는 전력도 있는 사람이었다. 당시 그는 또 다른 애마라 할 은색 포르쉐가 뿜어내는 스피드에 미쳐 있었기에 감독은 “촬영 중에는 금차!”를 선언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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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9월 30일 그는 LA의 101번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영화 촬영 내내 금지당했던 자동차 경주장으로 가려는 참이었다. 과속으로 달렸던 것 같지는 않지만 그는 마주오던 차를 피하지 못하고 정면 충돌한다. 우리 나이 스물 다섯이었던 이 배우는 사고 순간 그가 출연했던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이유없는 반항>에서 나탈리 우드 앞에서 펼쳐졌던 ‘치킨 게임’. 벼랑을 향해 자동차를 달리면서 누가 먼저 핸들을 꺾거나 세우거나 뛰어내리는가로 승부를 가르던 그 게임. 은색 포르쉐가 스피드는 최고였을지 모르나 안전도는 그에 미치지 못했던 모양이다. 상대방 차에 탔던 이들은 사고 후 엉금엉금 기어나왔는데 은색 포르쉐의 운전자는 이미 목이 부러져 있었고 어떤 이에 따르면 머리가 떨어져 나갔을 정도였다고 했다. 제임스 딘의 최후였다.

그가 생전에 출연한 영화가 단 3편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단역까지 친다면 그는 총 7편의 영화에 출연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쨌든 그를 역사에 남긴 영화로 주연을 꿰찼던 영화는 3편, <에덴의 동쪽> <이유없는 반항> 그리고 <자이안트>다. 미국 뿐 아니라 전쟁 끝난 지 얼마 안된 가난한 나라의 답답한 청춘들에게까지도 커다란 울림을 주었으며 그가 죽은 지 30년이 지나서 중고딩 시절을 보냈던 내 또래에게까지도 일종의 카리스마로 기능했고, 종국에는 난데없는 팬티 상표로 등장하기도 했던 사람. 그가 제임스 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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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나는 그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이유 없는 반항>을 주말의 명화에서 틀어줄 때 목숨 걸고 봤던 것은 나탈리 우드를 보기 위해서였지 제임스 딘에 관심 있어서가 아니었고 <에덴의 동쪽>을 관심있게 봤던 것은 존 스타인벡의 소설 <분노의 포도>를 보고 감동을 받은 뒤 그의 다른 작품을 영화화한 데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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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는 간단하면서도 불행하다. 나는 그의 ‘반항아적’ 모습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차 몰고 목숨 건 ‘게임’을 벌이는 저 잘 사는 나라의 젊은이들의 행각은 ‘배부른 놈들의 돈지랄’로밖에 보이지 않았고, 있을 것 다 있고 누릴 것 다 누리고 사는 저놈들이 뭐가 아쉬워서 저렇게 부모한테 딱딱 말대꾸하고 정신없이 나가서 술이나 처먹고 저렇게 삐딱하게 나가는가 도시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 상징이라 할 제임스 딘이 고깝게 뵐 밖에. 제임스 딘이 입은 상표 운운하며 (전혀 사실이 아닌) 고가의 청바지를 사내라며 부모를 조르던 친구들이 한심해 보이고 술 처먹고 들어와서 “인생이 뭐냐?”라고 지껄이던 군상들에게 경멸의 눈초리를 던지며 ‘한심한 놈들’이라며 내뱉었을 수밖에. (지금 생각하면 내가 더 한심한 청춘같아 보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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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주연한 영화에서 그가 맡은 캐릭터에 흐르는 정서가 있다면 그건 ‘부성(父性)의 부재 또는 그와의 갈등’이 아닐는지. <이유없는 반항>에서 학교에 적응 못하는 사고뭉치 존 스타크 (제임스 딘)의 아버지는 공처가에 우유부단한 남편으로 아들이 고민을 토로하면 “신중히 해라.”는 말 밖에 못하는 무골충이고 <에덴의 동쪽>에서 제임스 딘의 아버지는 꽉 막힌 도덕관념으로 아내와 아들 모두를 숨통을 틀어막았던 ‘아담’이었으며, <자이안트>에서는 아예 부모가 없이 더부살이하는 반항기 넘치는 청년이었다. 그는 아버지 대신 친척인 대농장주 록 허드슨에게 반항하고 그의 비위를 긁는다. 그러면서 록 허드슨의 아내를 연모했고 그 딸에게 접근하다가 끝내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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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딘의 부모가 결혼할 때 아버지 나이는 스물 둘 엄마 나이는 열 아홉이었고 엄마 뱃속에는 2개월 된 딘이 들어 있었으니 당시 미국적 기준으로 봐도 정상적인 결혼은 아니었다. 엄마는 제임스가 어려서 죽었고 아버지는 그를 친척집에 팽개친 채 재혼을 해 버린다. 제임스 딘은 이 상처를 평생 가지고 있었고 이는 역시 젊었을 무렵 아버지와 불화했던 작가 존 스타인벡 원작의 소설 <에덴의 동쪽>에서, 역시 아버지와 최악으로 사이가 나빴다는 엘리어 카잔의 세심한 연출을 통해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하는 반항아 칼로 울퉁불퉁하게 표현된다. 카잔은 아버지 역을 맡았던 레이먼드 메시의 성격이 작품 속 아버지와 비슷한 점이 있다는 점을 발견하고 제임스 딘과 레이먼드 메시의 실제 모습을 날것 그대로 작품 속에 녹이려는 시도를 했고 (제임스 딘으로 하여금 레이먼드를 도발시킨다거나) 이는 훌륭한 영상의 클래식으로 영화사에 남게 된다.

다시금 나로 돌아와 본다. 나는 지금 어떤 아버지일지. 그렇게 도덕적이고 꽉 막힌 <에덴의 동쪽> 아버지 레이먼드 메시같은 성격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건 내 생각이고 아들이 보기에는 딱 그 모습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도 같다. <이유없는 반항>에서처럼 아내 말에 꼼짝 못하는 공처가에 주눅이 잔뜩 든 남편같지는 않지만 또 아들이 보기엔 다른 면에서 갑갑하고 무능한 아버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가끔 거친 반항의 이면에 한없이 고독하게 자신의 감정을 삭여 내던 무뢰한 <자이안트>에서의 제트 링크의 뒷모습을 떠올리면서 아들을 보게 되기도 한다. 그에게 <에덴의 동쪽>이나 <이유없는 반항>의 아버지가 되지는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포기가 빠른 내 성격상, 쉽게 포기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제임스 딘의 다음과 같은 말을 들으면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을 실감한다. “사람이 진정으로 위대해지는 것은 한 가지 경우뿐이다. 만일 사람이 삶과 죽음 사이의 간극을 넘을 수 있다면, 죽은 뒤에도 살 수 있다면 그 사람을 위대한 사람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어쨌거나 빠른 속도로 살아야 한다.” 이 말을 마치 지키기라도 하듯 그는 LA의 101번 고속도로에서 그 짧은 생을 마쳤다. 1955년 9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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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운명인가요? 생애 아버지에 대한 좋은 기억이 없는데. 부여받은 영화배역마다 다양한 아버지의 모습과 갈등을 겪는군요. 참 신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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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 배우들이 맡은 역할을 닮는다는 얘기가... 아주 틀린 말 같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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