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과 귀주대첩

in #kr6 years ago

우리 역사에서 이름난 장군으로 강감찬을 빼놓을 수 없겠지요? 참으로 시험에 많이 나온 문제지요. 을지문덕 살수대첩 강감찬 귀주대첩 이순신 한산대첩 그 중 귀주대첩에서 10만 거란군에 맞선 고려군의 수장이 강감찬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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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주대첩 전에 강감찬에 대해 좀 이야기해 보실까요. 그에 대한 여러 묘사 중의 하나로 즐겨 등장하는 게 “작고 못생겼다.”입니다 . 집안도 좋고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할만큼 머리도 비상했던 사람이지만 애석하게도 기럭지와 생김새가 좀 두드러지게 처졌던 모양입니다. 그래서일까 과거도 서른 여섯, 좀 늦게 급제했을 뿐더러 급제하고도 한 15년간 그의 행적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제 생각에는 좀 죽을 쑨 게 아닌가 합니다. “쬐그맣고 못생긴 것이 일은 기가 막히게 잘 해” 정도의 평판이 돈 다음에야 출세길이 트인게 아닐까요. 한국은 예나 지금이나 잘생기고 봐야 하는 건 진리 아니겠습니까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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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다섯 배는 못생겼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못생긴 땅딸보 하지만 절세의 위인을 커버하기 위해 수많은 전설이 만들어집니다. 강감찬이 태어난 집에 별이 떨어졌는데 (그래서 사당 다음 역이 낙성대 역이죠) 후일 송나라 사신이 강감찬을 보고는 문곡성 (지식과 학문을 상징하는 별)이 여기 있다고 했다느니 강감찬이 훤칠하고 잘생긴 자기 부하에게 좋은 옷을 입히고 자기는 뒷전에 서 있었는데 송나라 사신이 뒷전의 강감찬을 알아봤다느니 하는 얘기들이 그것들이죠. 그런 얘기의 이면에서 우리는 슬프게도 “키작고 못생겨서 죄송합니다.”를 부르짖는 강감찬의 목소리를 듣게 되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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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감찬의 또 다른 설화들은 강릉이니 경주니 지방관으로 있을 때를묘사하고 있습니다. 이건 개경에 있지 못하고 지방으로 뺑뺑이 도는, 관운과는 거리가 먼 벼슬살이를 말하는 게 아닐까요. 하지만 거기서 강감찬은 비범한 능력을 보여 줍니다. 호환이 발생하는 곳에 가서 인간으로 변한 호랑이두목과 담판해서 호랑이들을 몰아낸다거나 개구리 울음 소리를 멎게 한다거나 등등. 이런 이야기들은 그가 지방관으로 돌면서도 똑 부러지는 일 처리를 보여 주었고 ‘귀신도 부리는’ 사또로 자리매김했음이 전설로 남은 게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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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유능한 ‘난장이 똥자루’는 나이 예순 넘어서 진면목을 발휘하게 됩니다. 2차 거란 침입 때 항복하자는 의견에 맞서 “적의 예봉을 피한 뒤 회복할 방도를 찾자‘고 주장했던 그는 임금으로부터 ”당신이 아니면 우리가 오랑캐옷을 입을 뻔 했다.“는 칭찬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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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국제정세는 지금과 묘하게 비슷합니다. 신흥 거란족의 요나라가 한족의 송나라를 압도하며 화북 지역을 장악했고 고려는 그 틈바구니에 끼어 있었습니다. 고려는 국경을 맞댄 요나라와 전쟁 또는 강화를 거듭하면서도 송과 요 사이의 줄타기 외교를 실천하고 있었죠, 요나라로서는 눈에 가시일 수 밖에 없었죠. 두 번의 대규모 침략 끝에 마침내 요나라의 전성기를 일군 황제 성종은 세 번째의 고려 침공을 기획합니다. 황제의 친척인 소배압이 이끄는 10만 대군이 움직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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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의 침략에 비해 군대 수는 줄었지만 대부분 기병이었던 그들은 병자호란 때 청나라처럼 ‘전격전’을 꾀합니다. 다른 지역 신경쓰지 않고 오로지 개경으로 개경으로 달려가서 고려 왕을 사로잡으면 전쟁을 끝난다고 생각한 거지요. 하지만 고려군은 정면으로 부딪치지는 않으면서 복병전을 펼치고 기습을 하고 또한 동시에 완벽하게 마을을 비우는 청야를 시행하여 거란의 전격전을 '소화'합니다. 많은 거란군이 쓰러졌지만 어쨌건 선봉이 개경 근처에 도착했는데 그들을 맞은 건 완벽히 요새화되고 왕조차 피난 안가고 결사항전을 다짐하는 개경이었죠. 거기다 선봉대가 고려군의 공격에 거의 전멸되고 식량 등 보급까지도 여의치 않자 소배압은 후퇴를 결정하게 됩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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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감찬은 그 퇴로를 점검하다가 어느 한 지점을 지목합니다. 귀주. 이 전쟁을 통틀어 고려군이 동원한 병력이 20만이라고 기록돼 있는데 그 전부는 물론 아니겠지만 고려 전국에서 모여든 군대가 귀주에 집결했습니다 거란군이 꼭 거쳐가야 할 요충지였죠. 한국의 전쟁은 주로 성을 뺏고 지키는 공방전이 많고 야전에서 펼치는 이른바 ‘회전’(會戰)은 흔하지 않은데 귀주에서 강감찬은 이 대회전을 통해 거란의 손을 꺾을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물을 막았다가 터뜨려서 적을 섬멸한 건 귀주대첩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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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거란군이 나타납니다. 비록 후퇴는 하고 있다지만 한족을 벌벌 떨게 한 정예병 거란군은 거침없이 고려군과 격돌하게 되죠. 기록상으로는 10만 대군과 20만 대군의 정면승부. 영화로 만들면 반지의 제왕은 저리 가라 할 스펙터클이 나올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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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끼를 휘두르며 거란족이 탄 말의 다리를 꺾어버리는 고려 보병들 , 변발 휘날리며 활을 쏘아대는 거란 궁기병들, 검차를 앞세우고 돌격하는 고려 검차병, 요나라의 자랑 중장기병들이 어지러이 뒤섞였습니다. 일진일퇴. 거란군은 역시 강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뜻밖의 일이 벌어집니다. 개경을 지키러 올라왔던 동북면 병력. 즉 그 후로 수백년 동안 최정예군으로 꼽히는 동북면 (함경도) 기병대 1만 2천기가 천둥 같은 말발굽 소리를 울리며 거란군의 뒤를 찌른 겁니다. 그야말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적재적소에 등장한 지원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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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등한 힘겨루기에서는 조약돌 하나 올려놔도 승부가 갈리는데 이 1만2천의 기병대는 울산바위의 무게로 거란군을 짓눌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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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하여 희한한 일 하나, 그때까지 불던 북서풍 대신 남풍이 거세게 거란군쪽을 거세게 몰아치기 시작한 겁니다. 그 순간을 강감찬은 놓치지 않았고 사기가 오른 고려군은 완전히 기가 꺾인 요나라 군대를 포위하고 인간 사냥을 시작했습니다. 10만 명 중에 수천 명이 살아 돌아갔다니 거의 다 죽었다고 봐야 할 겁니다. 이때 강감찬은 아마 군사들에게 대충 이렇게 비쳐졌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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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그렇게 북서풍이 불다가 별안간 남풍이 부냐. 장군님은 사람이 아니여.” “하모 장군님은 벌써 아침에 알았다카든데.” “알은 게 다 머시여. 장군님이 바람을 부르신 거랑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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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도 동남풍을 부른 게 아니고 간혹 있던 역풍을 이용한 것이었으니 강감찬도 그날의 남풍을 예측하고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신이한 능력보다는 다른 기록에서 강감찬의 역량을 봅니다. 이 귀주대첩 전 그는 임금에게 아뢴 뒤 경상도 지역에 있던 자신의 땅을 “자식을 군대에 보낸” 이들에게 나눠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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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 나간 이들이 집 걱정을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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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감찬은 장군이 아니라 문과에 장원급제한 문신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대군을 이끌고 승리를 가져올 수 있었던 건 그의 특출한 능력이나 귀신을 부리는 술수가 아니라 바로 별안간 군대에 끌려나오고 피를 흘려야 하는 사람들의 노고를 이해하고 그들의 아픔을 헤아리는 마음 때문이었을 겁니다. 다들 말은 쉽게 하지만 실천은 어려웠던 마음. 그 마음은 아마도 키 작고 못 생겨서 멸시받으며 지방관으로 떠돌던 때에 쌓이고 맺혔던 건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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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음을 알아주었던 고려의 명군 현종 (온갖 어려움 다 겪고 거란을 물리친 왕이며 이후 고려 왕들은 모두 이 사람의 후손입니다) 은 24절기 중 아홉번 째, 망종을 맞아 세 번에 걸친 거란과의 전쟁에서 죽어간 이들을 위한 합동 제사를 지내게 됩니다. 그로부터 천년 뒤, 외적과의 전쟁은 아닌 동족과의 상잔이었으되 수백만이 죽어간 전쟁 후 한국 정부는 1956년 이 '망종'날을 맞아 현충일을 제정하게 됩니다. 보통 망종은 6월 5일인데 그 해에는 6월 6일이었거든요. 그게 우리 현충일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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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일 다음날인 오늘 자한당 국회의원 36명이 미국에 북한의 완전하고도 영구적인 비핵화 없이는 뭐 어떻게 하지 말라는 둥의 서한의 보냈다고 합니다..... 저 인간들은 군대에 몇 명이나 갔다 왔으며 그 아들들은 다 군대를 경험했을까요. 현충일 영령들이 보면 뭐라고 할지 궁금합니다. 강감찬 장군은 또 뭐라고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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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감성팔이 지식 끝에는 항상, 우중 기만적인 종북 간첩성 선전선동 글로 끝맺음을 하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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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북한의 영구적인 비핵화를 당연히 추구해야지,

백두크셔 의 손가락 하나 까딱에, 수백만 서울 시민이 아비규환 속에서 흔적도 없이 절멸할 수 있는, 북핵과 탄도미사일을 머리 위에 이고 살자는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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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은 남한 국민입니까?
백두크셔 앞잡이 입니까 ??

강 장군은 역지사지,살신성인, 솔선수범 했던
큰 그릇 이셨네요.

네 그러니 그렇게 큰 승리를 일굴 수 있었겠지요

잘 읽었습니다. 강감찬 장군을 다시 아는 계기가 되었네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되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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