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최고의 날

in #kr5 years ago

1974년 10월 24일 자유언론실천 선언

‘조중동’이라 하여 3대 보수 일간지를 지칭하지만 사실 그 큰 축은 조선과 중앙이다. 동아일보의 이름은 조선과 중앙에 비해 울림이 적다. 동아일보를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격세지감을 표하기 위해서다. 적어도 15년 전의 동아일보도 지금의 동아일보가 아니었고,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실로 오랫 동안 동아일보는 우리 나라의 대표 신문이었다. 왕년에는 5대 일간지라는 표현이 주로 사용됐었는데 그 가운데 단연 우위는 동아일보였다. 그 동아일보에서 1974년 10월 24일 그 이름값을 천하에 드날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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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은 긴급조치와 함께 열렸다. 긴급조치 1호는 이렇게 시작한다.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 반대, 왜곡 또는 비방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대한민국 헌법의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 발의, 청원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는 사실상의 민주주의 사망 선고문이었다. 이걸 위반하면 징역 15년까지도 각오해야 했다. 여기까지도 그렇다고 치는데, 박정희가 정말로 미쳐간다고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은 4월에 발표된 긴급조치 4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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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청학련과 이것에 관련한 제 단체의 조직에 가입하거나, 그 활동을 찬동, 고무 또는 동조하거나 그 구성원에게 장소, 물건, 금품 그 외의 편의를 제공하거나 그 활동에 관한 문서, 도서, 음반, 그 외의 표현물을 출판, 제작, 소지, 배포, 전시, 판매하는 것을 일제히 금지한다. 이 조치를 위반한 자, 이 조치를 비방한 자는 영장 없이 체포되어 비상군법회의에서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한다.” 즉 영장 따위 번거로움 없이 사람을 데리고 가서 죽여 버릴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엉뚱한 얘기지만,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냉전 와중에서 형성된 기형적인 절대 권력 앞에서 대한민국 국민들은 저항했지만 조선인민공화국 백성들은 굶어 죽어가면서도 별 저항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그 차이가 오늘날의 남과 북의 격차를 낳았다고 본다. 각설하고, 그토록 험악하고 살기등등하며 광기마저 엿보이는 긴급조치 앞에서도 저항의 팔뚝은 꺾이지 않았다.

여차하면 사형을 시킨다는데도 서울의 대학가는 데모가 끊이지 않았고, 21세기에도 그 위력이 여전한 카톨릭의 신부님들은 시대의 양심이자 악으로부터의 방파제가 되어 유신 독재에 맞섰다. 이 모두가 대문짝만하게 실릴만한 기삿거리였지만 언론은 그걸 마음대로 싣지 못했다. “(반정부)활동에 관한 문서, 도서, 음반, 그 외의 표현물을 출판, 제작, 소지, 배포, 전시, 판매하는 것을 일제히 금지”하는 긴급조치가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다 기관원들이 언론사 내부에 수시로 출입을 하고 있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아무리 세게 쥐어도 모래는 흘러나오는 법, 끔찍이 싫어하는 시위 보도가 찔끔찔끔 신문에 게재되자 정권은 행동으로 나섰다. 서울 농대생 데모 기사를 구실로 10월 23일 편집국장 송건호와 방송 뉴스·지방부장 등 3명을 연행해 가 버린 것이다. 사실 기사를 실었다고 중앙일간지의 편집국장이 끌려가는 사태에 기자들은 분노했다.

다음 날 오전, 광화문 네거리의 유서깊은 동아일보 빌딩에 기자들 2백명이 집결했다. 마침 10월 24일은 UN데이. 휴일이었다. 출입처에 따로 갈 필요가 없었던지라 일단 모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경찰서 등에 나가 있던 인원들도 연락을 받고 달려 들어왔다. 그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기둥에 큼직하게 나붙은 붓글씨였다. “자유언론실천선언” 그리고 9시 15분 동아일보 기자들은 한국 언론이 아직 죽지 않았음을, 죽인다고 대들어도 죽을 수 없음을, 앞으로는 절대로 죽지 않을 것임을 맹약하는 선언문을 읽어 내린다.

“우리는 오늘날 우리 사회가 처한 미증유의 난국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언론의 자유로운 활동에 있음을 선언한다. 민주사회를 유지하고 자유국가를 발전시키기 위한 기본적인 사회기능인 자유언론을 어떠한 구실로도 억압할 수 없으며 어느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것임을 선언한다. 우리는 교회와 대학 등 언론계 밖에서 언론의 자유회복이 주장되고 언론인의 각성이 촉구되고 있는 현실에 대하여 뼈아픈 부끄러움을 느낀다........”

창간 이후 동아일보가 발한 빛 가운데 가장 컸던, 그리고 가장 마지막이었던 광휘가 동아일보의 창문을 뚫고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1974년 10월 24일은 21세기의 동아일보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영광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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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썬 상상하기 힘든 장면이네요.

특히 지금의 동아일보로선 말이죠

그래서 동아일보의 그 기자들은 모두 짤리고
오늘날의 조중동이 태어난거 아닌가요? ㅠㅠㅠ

기형적인 절대 권력 앞에서 대한민국 국민들은 저항했지만 조선인민공화국 백성들은 굶어 죽어가면서도 별 저항을 하지 못했다는 것

빚진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

한겨레신문의 주력이 되기도 합니다...... 잘린 분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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