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전> 고 김서령 작가님의 명복을 빌며

in #kr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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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가 한. 세상이다' <여자전>의 작가 김서령님이 별세하셨기에.... 그분의 명저를 기리는 마음으로...

고 김서령 작가님의 명저를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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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의오책
세상의 기막힌 절반 - 김서령 작 <여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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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였나 비가 와서 운동장에 못나갔던 체육 시간, 체육 선생님이 이런 얘기 저런 얘기 가운데 이런 질문을 하셨다. “너희들은 오른다리와 왼다리 중 어느 쪽이 더 힘이 센 것 같냐?” 아이들은 당연히 오른쪽 다리 라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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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선생님은 고개를 저었다. “너희가 공을 찰 때 오른발로 찬다고 생각하지만 왼쪽 다리가 약하면 넘어져 버리지. 공을 차는 건 오른 다리지만 그때 너희들 체중을 감당해야 하는 건 왼쪽 다리다 왼쪽 다리가 더 힘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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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이 인체역학적으로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다. 아마 틀릴 것이다. 하지만 그때 선생님의 말씀은 인상적이었다. 모든 일을 다 하는 것 같이 설쳐 대고 그 위력을 과시하고 화려한 발놀림을 자랑하기도 하지만 그 와중에 왼쪽 다리가 체중을 버텨주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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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학창시절 토론회에서 이 얘기를 남녀에 빗대는 비유를 들은 바 있다. 딱 부러지는 발음과 어조의 여학생이었다. 예의 오른다리 왼다리론(論)을 편 후 이렇게 매조지를 한 것이다. “마찬가지예요. 세계 역사상 위인은 다 남자들이고 여자는 가물에 콩 나죠. 하지만 그들이 설쳐 (이렇게 표현했다)댈 수 있었던 건 그들을 지탱하는 왼쪽 다리, 여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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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절반이지만 인류의 역사에서는 절반은커녕 반의 반의 반도 안되는 인물과 기록으로 남았을 뿐인 여성, 그러나 오른발이 설쳐 댈 때 그 막중한 체중을 홀로 감당해야 했고 오른발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 명백한 소외를 수용해야 했던 왼발같은 여성들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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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책방에는 ‘역사를 바꾼 여인들’이나 ‘역사 속 미녀들’이나 그 외 고만고만한 컨셉으로 여성들을 조명하는 책들이 꽤 많이 깔려 있다. 그 중에 하나로 여겨질 수 있으되 'One of them'이 아니라 ‘First of All'로 기려야 마땅한 책이 등장했다. 김서령 작 <여자전> (푸른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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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등장하는 여자들 가운데에는 평범한 사람도 있고 특출한 사람도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살을 벨 것 같은 얼음조각들이 떠 다니고 그 아래로 피에 굶주린 상어들이 설치고 다니는 북해(北海)의 폭풍 같은 한국 현대사, 20세기 어느 나라에 비교해 봐도 ‘압도적으로’ 험준한 현대사의 격랑을 필사적으로 헤쳐 나온 이들이라는 점이겠다. 김서령 작가는 그 파도 속으로 깊은 자맥질을 하며 일곱 명의 여자들의 자취를 캐고 그들이 일으킨 물보라의 무늬를 좇는다. 그리고 물 속에서 나와 거친 숨과 함께 토해내는 한 마디. “한 여자가 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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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일곱 명이다. 언뜻 무지개가 떠오른다. 빨주노초파남보. 각 색깔에 하나씩의 ‘여자전’을 갖다 붙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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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춤을 추고 싶어 기생질 하려는 거냐며 들이대는 오빠들의 매에 종아리가 퉁퉁 부으면서도 춤을 추었고 세계적인 춤꾼이 된 여자. 남자는 싫지만 아이는 갖고 싶어 작심을 하고 누군가에게 ‘씨내리’를 제안하여 아이를 가지고 “당신을 사랑한다 책임지겠다”고 들이대는 남자를 매몰차게 끊어낸 불과 얼음의 여자 이선옥은 빨간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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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이 잘하라고 달아준 불알을 멍청하게 썩히는 예수라면 그거 고발해야 된다고요. 우리, 예수님 장가 보내 드립시다.”라고 자그마치 신부님들에게 ‘막 던지고’ 안기부에서 “당신 죽고 싶어 살고 싶어” 하는 음산한 협박 전화가 왔을 때, 안기부를 의자 만드는 ‘안전사’라는 목공소로 착각하고 “남이야 죽든 살고 싶든 니가 무슨 상관이야? 의자나 잘 만들면서 처박혀 있어라 이 나쁜 놈아.”하고 퍼부어댄 에너지 만점의 바탕골 대표 박의순은 상큼한 주황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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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때 피난 내려온 함경도 청진 출신의 문학평론가와 단 한 달 간의 짧은 사랑을 나누었으나 그예 교통사고로 사랑을 잃었고 그의 행동 하나 말 하나, 글 하나를 자신을 둘러친 벽과 담으로 삼고 그 안에서 유복녀를 길러낸 뒤 결혼도 하지 않은 ‘남편’과 합장할 날을 기다리며 수줍어하는 최옥분 할머니는 애타는 기다림의 노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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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보험회사 광고에서 두 손가락으로 물구나무를 서는 모습을 보여 준 어마무시 여든 여덟의 노인, 중국 공산당 팔로군의 의무대원으로 시작해 한국전쟁에도 참전했고 이후 중국에서 기공(氣功)의 대가로 살다가 어머니의 고향 (경남 합천)이 있는 한국으로 돌아와 정착한 윤금선은 시들지 않는 초록색이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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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삼천포에서 백화점을 운영하는 초(超) 부잣집에 태어났으나 가족들이 좌익에 연루되면서 스스로 산으로 들어가야 했고 발가락을 송두리째 동상으로 잃은 빨치산, 동상의 고통을 이기다 못해 제 손으로 발가락을 ‘툭툭’ 뽑아내 버렸던 그 강단으로 이불집을 경영하며 자본주의의 맹렬한 폭풍과 ‘서른 여덟 번’ 이사를 하게 만들었던 경찰의 감시를 이겨내고 일가를 이룬 고계연 할머니의 속은 새파랗게 쑥물든 지 오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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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갓집에 시집와서 층층시상 어른들에 주눅 들어 살았고 아이를 홍역으로 잃어도 집안 어른들의 만류로 안아보지도 못했던, 아이 초상 치르던 때에도 방아를 찧어야 했던 여인, 그나마 살가웠던 남편은 월북해 버리고 그로부터 수십 년을 청상과부 아닌 청상과부로 99세까지 장수한 시아버지를 봉양하며 툭하면 돌아오는 제사들을 챙겨야 했던, 무려 54년만에 이산가족상봉단에 끼어 남편을 만났으나 울지 않으리라 작심하고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던 김후웅 할머니, 그녀가 이후 일본을 거쳐 온 남편의 편지에 적힌 “귀한 몸 건강히 지내는지” 한 구절에 감격하여 폭발시킨 눈물은 아마도 남색 빛깔이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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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때 위안부로 끌려가 온갖 참혹한 꼴을 다 당했던 김수해 할머니. 그녀는 위안부 생활 중 임신을 하고 중절 수술을 받는다. 그러나 그 수술은 자궁 자체를 드러내는 수술이었다. 의학적으로 가능한 일인지 모르나 그녀는 “한 달에 한 번 정확한 날짜에 입으로 피를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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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천사 같은 남편을 만나 이후의 삶은 단란했으나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죄책감에 이웃의 고궁한 여자에게 부탁하고 남편을 반강제로 설득하여 ‘아들’을 얻었던, 아니 얻어야 했던 김수해 할머니의 살은 보랏빛이었을 것 같다. 피멍의 색깔. 역사가 휘두르는 쇠몽둥이와 인간의 잔인함으로 날 세운 쇠좆매에 난타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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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이 만든 무지개는 때로는 바라보기조차 힘겨웠고 두 세 번 재우쳐 눈여겨볼만큼 기이하기도 했다. ‘당신같이 아까운 사람’ (김수해 할머니가 남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들이 어쩌면 이리도 처참하게 역사의 진창 속으로 내던져졌는가 그 빛깔을 애써 외면하고 싶게 만들었으나 “제 죽을 구덩이 앞에서 살아낸 내가 뭘 하면 힘들겠소?” (고계연 할머니의 독백) 하며 모든 신산을 이겨냈던 그녀들은 그 색깔마다 선연하게 여지없이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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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여자가 만들어낸 무지개는 김서령 작가의 부럽기 짝이 없는 글솜씨 속에서 더욱 도드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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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도 일종의 요리다. 요리의 기본은 재료다. 그렇게 치자면 이 일곱 여자들은 세상에 다시 없을 재료들이니 대충 데치고 볶아 내놓아도 사람들의 짧은 혀는 만족시킬 수 있겠지만 김서령 작가는 그런 범상한 요리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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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이런 양념을 생각해 냈을까 싶을 정도로 감칠맛 나는 표현들이 즐비하고, 차마 젓가락을 대어 휘젓기 싫을 만큼 잘 꾸며진 요리처럼 아름다운 글맛이 책 한 페이지에도 여러 군데 배어 있다. 이건 예를 들지 않겠다. 그냥 읽어 보면 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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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부족한 역사가 ‘미시사’(微視史), 또 개인사의 영역이라는 생각을 한다. 히스토리사우루스라는 공룡이 있다고 할 때 중요한 것은 우선 제대로 된 뼈대를 맞추고 형상을 그려복원해 내는 일이겠지만 그것만으로 우리가 공룡의 실체를 알았다고 할 수는 없는 것처럼, 역사라는 도도한 강물의 알갱이, 물방울 하나 하나의 삶에서도 우리는 역사를 읽어 낼 수 있어야 할 게다. 이 사실을 김서령은 다음과 같은 얄미울 정도로 깔끔한 문장으로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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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인생의 무게는, 곡절 속을 헤쳐 나온 개인의 체험은 그 나라 역사에 깊이와 부피를 덧얹는다. 개인사의 총합이 곧 역사일 순 없겠지만 역사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전쟁이나 혁명이나 왕조의 흥망이 아니라 개인사 안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역사는 존엄하고 아프고 우리 앞에서 저렇게 야문 보석처럼 빛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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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상으로 <여자전>을 읽어야 할 이유를 설명한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므로, “이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그리고 다시금 “한 여자가 한 세상이다”는 표지의 글귀를 읽는다. 여자만이 한 세상이랴. 남자들도 그런 대로 한 세상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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