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외나무다리에 서다

in #kr5 years ago

1978년 12월 20일 남북 외나무다리에 서다

1974년의 테헤란 아시안게임에서 남북은 그야말로 죽기살기의 대결을 펼쳤다. 남한측이 얼마나 필사적이었는지는 메달 하나가 아까운 나머지 현역에서 은퇴한지 6년이 지난 현역 신민당 국회의원까지 역도 경기에 출전시켜서 은메달을 땄던 일화로 대변될 수 있을 것이다. 북한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뮌헨 올림픽에서 남한 먼저 금메달을 거머쥔 여세로 아시아 무대에서도 남한을 가볍게 젖히려 했다. 그런데 북한은 운이 없었다.

역도에서 3관왕을 차지했던 김중일이 도핑 테스트에 걸려 금메달 3개를 박탈당했던 것이다. 이 덕분에 남한은 북한을 눌렀다. 남한 금메달 16개, 북한 15개. 김중일의 금메달만 인정되었더라면 북한은 가뿐히 남한을 밟았을 터였다. 남한의 입장에서 보면 천우신조.

이런 전력을 두고 열린 78년 방콕 아시안 게임에서 남과 북은 또 한 번 살기어린 경쟁을 벌인다. 개막식 때 남한의 방송은 북한의 입장을 중계하지 않았다. 인공기가 공중파 방송 화면에 휘날리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시작부터 치사한 신경전이었던 남과 북의 불꽃 튀는 접전은 무슨 경기든 해당 심판과 감독관 모두가 골머리를 싸매게 만들었다. 남자농구의 남북대결에서 전력상 북한의 열세가 분명해지자 북한팀은 심판 판정을 문제삼아 퇴장해 버렸다. 여자배구에서는 북한 선수들이 남한 선수들이 서브를 넣을 때마다 그 뒤에서 “양갈보들!”이라고 앙칼진 야유를 넣으며 약을 올렸고 심지어 남북한 부심이 한 게임에 배정되자 북한 부심이 남한 부심과는 같이 진행하지 못하겠다고 고집을 부려 심판 배정이 바뀐 적도 있었다.

메달 레이스도 엎치락뒤치락이었는데 한국이 메달 박스 복싱에서 무려 5개의 금메달을 캐내면서 일단 북한을 누른 것으로 확정되었다. 폐막일 현재 한국 금 17개 북 14개.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경기가 남아 있었다.

차범근 조광래 김재한 최종덕 김호곤 등 한국 축구의 첫 ‘골드 제너레이션’들이 버틴 한국 축구 대표팀이 승승장구 결승에 올랐는데 북한 대표팀 역시 아시아 각국을 물리치고 결승에 오른 것이다. 글자 그대로 외나무다리였다. 테헤란 아시안 게임 때만 해도 축구에서 북한을 겁냈던 한국팀은 북한을 어떻게든 피하기 위해 져주기 경기까지 감행한 바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일전이 들이닥친 것이다. 1978년 12월 20일이었다.

아시다시피 태국과는 별 시차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저녁 나절 벌어진 이 경기는 거의 3천 8백만 국민 대부분이 지켜보게 된다. ‘북괴’ 선수들과의 대혈전이 벌어진 것이다. 이미 축구 경기가 아니라 전쟁이었다. 북한도 마찬가지였다. 메달레이스에서 졌을망정 축구 결승을 이기면 까짓 금메달 레이스에서 진 것 정도는 기분상 충분히 만회할 수 있었다. 경기 자체는 명승부였다.

동네 평상에에 누군가 갖다 놓은 흑백 TV (지금 우리 집의 컴퓨터 모니터보다도 작았던) 앞에서 수십 명의 사람이 운집해서 경기를 지켜보았던 기억이 난다. 차범근이 단독대쉬해서 거의 골과 다름없는 장면을 만들었을 때 그 수십 명은 자지러지며 일어섰고 북한 골키퍼가 간발의 차로 공을 그러쥐자 격한 아쉬움의 탄성을 일제히 토해냈다. 그 골키퍼 때문에 나는 괜한 욕을 먹어야 했다. 그 골키퍼 이름은 김종민(김정민?)이었다. “형민이 니 저 뒤로 가라. 니 이름 비슷한 북한 골키퍼 때문에 열받아 죽겠다.” 아니 나는 형민인데요 불만스레 한 마디 하자 바로 험한 말이 날아들었다. “어른이 하라면 하는 기지 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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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진일퇴, 선수들도 필사적이었다. 박성화 선수는 다리에 쥐가 나자 못으로 다리를 찔러 가며 뛰었다. 파상풍 따위 염려할 계제가 아니었다. 남한의 김정남 코치, 왕년의 명수비수였던 그는 한국 골대에 공이 가까이 가기만 하면 수비의 ABC고 뭐고 "걷어내! 걷어내란 말이야!"를 부르짖었다. 북한 코칭 스탭도 “기동하라! 기동하라”를 목이 터져라 외쳐대며 사기를 돋웠다. 나는 지금도 이 경기에서 남한팀이 맞았던 최악의 위기 상황을 선명히 기억한다. 골문 혼전 과정에서 몸을 날리던 남북의 선수들, 그리고 가까스로 공을 걷어 냈던 최종덕의 표정까지. 그리고 위기 다음 비춰지던 한국 코칭 스탭들의 죽다가 살아난 표정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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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반 90분, 연장 30분을 치르고도 골은 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때는 승부차기가 없었다. 남북의 공동우승이었다. 함께 시상대에 올라가야 했는데 문제가 벌어졌다. 남한팀 주장 김호곤이 시상대에 올라서려는 것을 북한팀 선수가 막은 것이다, 김호곤은 두 번씩이나 시상대에서 밀려 떨어졌다. 성질 같으면 주먹부터 나갔을 상황. 김호곤이 만약 욕지거리와 함께 완력을 썼더라면 방콕 아시안 게임 폐막식 직전의 축구 시상식에서는 동족상잔의 비극이 재연되었으리라. 하지만 김호곤은 슬기로운 한 마디를 던진다. “세계가 우리를 보고 있다고요. 웃으면서 포즈 취해 줍시다.” 이 우여곡절과 구절양장의 고갯길을 넘고서야 남과 북은 시상대에 함께 설 수 있었다.

이 시절 남과 북은 그야말로 죽기 아니면 살기의 대결의 연속 선상에 있었다. 서로에 대한 인정은 커녕, 살기 띤 무시가 서로의 기본 자세였으며 상대방에게 깨진 뒤 상대방이 깃발을 흔들며 환호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차라리 혀를 깨무는 것보다 더한 고통이었다. 한낱 스포츠 경기에서도 남과 북은 그랬던 것이다. 정작 피튀기게 싸우는 두 뿔 달린 염소는 몰랐지만 그들의 ‘혈전’은 외국인들에게 신기한 볼거리였고 경멸스런 핀잔의 대상이었다. “쟤들은 말도 생김새도 똑같은 애들이 왜 저래.” 외국인까지 갈 것도 없다. 지금 우리가 바라보기에 그 모습은 또한 우습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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