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같은 삶

in #kr6 years ago (edited)


삶은 공허하고 피곤하고 괴롭다. 목적은 없으며 생존은 언제나 나를 위협하고, 이젠 안전하다고 안심하고 있다면 이내 위협하러 또 온다. 그래서 달갑지 않았다. 세상이 갑자기 하잘것없는 나의 손에 의해서 좌지우지되는 일본만화도, 무심한 듯 시크하고 중립적이면서도 여자와 부와 명성을 얻으며 문제를 척척 해결해나가는 위쳐도. 사람들이 가장 비현실적이라고 착각하는 신데렐라 스토리가 그나마 가장 현실적인 TV에서 나오는 이름 모를 드라마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심 그런 내용들이 부러웠다. 인생을 한번에 반전시킬 멋진 계기, 예를 들면 ~를 읽고 난 다음 내 인생이 달라졌다. ~는 나와 완벽히 맞는 사람이었다 따위를 생각하게 되었다.

나 자신의 목숨을 걸만한 우정이나 사랑이나 일거리가 찾아와서 내가 의미있는 삶과 죽음을 맞았으면 생각하기도 하였다.

뭐든 됐으니 당장 내가 삶을 여기서 끊지 않아야 하는 이유나 설명이나 뭐든 있기를 바라기도 했다.

삶은 한번도 그런 원리로 돌아간 적이 없었다.

이미 나는 중학교 때에도 인생의 쓴맛을 많이 보았다. 책은 대부분 쓰레기라서 오늘날까지 그 쓰레기들은 도움이 되지 않았고 사람들은 쓸데없는 것이나 섹스에 대해서 생각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들이거나 쓸데있는 것도 가끔 생각하고 섹스에 대해서 생각하는 존재들이었다. 그래서 '어린 사람들' 이란 쓸데없는 것과 섹스에 대해 생각하는 존재들이었다. 목숨을 걸 각오로 했던 일들은 타인들의 무관심과 무책임 속에 파묻히기 일쑤였다. 진정한 친구들과 가족들도 나에게 어느 선 이상은 해주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들이 열심히 안하는게 아니라. 그냥 불가능했다. 불가능했다고.

그리고 삶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접근 방법을 약간 달리하기로 했다. 무언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하고, 어떻게든 쌓아나가다보면 삶은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당신들은 내가 자살하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으로 생각하시고 하지 말아야겠다.

그러면 적어도 이것보다 나빠지지는 않겠지.

아무것도 변함이 없는 나날이 흘러갔다.


사람은 현재에 만족하지 않으면 이상이 생기도록 디자인되어있다고 생각한다. 지나면 나아지겠지 하는 희망을 가지는 사람은 굉장히 안좋은 처지에 놓여있다. 그런 처지에도 어떻게든 살아봤더니, 미래가 대체로 약속을 지켰다. 앞으로도 지켜준다면, 인생은 살만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딱히 재미를 위해 드라마나 영화나 애니메이션 등을 찾아본적이 없었다. 우연히 보게 되면 별 것 아닌 장면에도 눈물 펑펑 쏟고 가장 많이 웃는 놈이지만, 그것은 내가 그것들이 부러운 마음을 아직 숨길 수 없어서, 어쩌면 영원히 숨길 수 없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쩌면 부러워하면서 웃고 울고 훌훌 터는 것도 인생의 한 단면인지도 모르겠다. 스팀잇에서 '사토라레' 라는 영화 리뷰를 봤다. 아무 생각 없이 봐 보기로 했다. 유튜브에서 구매가 안 떠서 (그래, 일본놈들이 맨날 이렇지.) 뭔가 초저화질로 올라와있는 사토라레 드라마판 검색결과를 대신 봤다. 의학 용어는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 유치하고 현실성 없었다. 그리고 클라이맥스에서 울었다.

세상에는 배너 사가와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
허트 로커와 비스티 보이즈,
하우스 오브 카드와 소프라노스,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과 대지만이 있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GTA5와 헬다이버즈,
레디 플레이어 원과 인피니티 워,
드라마를 안봐서 떠오르는 것 없음,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과 하얀늑대들이 들어갈 자리와 그들의 맡은 바 역할이 있는 것이다. 아마도.

만화 속 친구들이 어떻게 살든, 나는 나의 점진적이고 답답하고 예측 안되는 인생을 살아가도록 하겠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만화같을 것이다.

그게 싸나이의 낭만이지.


https://steemit.com/kr/@garden.park/3srqet
공모전 출품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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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지금의 상황이 좋든 안좋든 누구나 미래는 지금보다는 좀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데 미래가 다 약속을 지킨다면 참 좋을텐데 말이죠 ㅎㅎ

섹스와 쓰잘 데기 없는 것들에 대한 관심 유무가 아마 산스크리트님과 그 나이 대 저의 가장 큰 차이일지도 모르겠군요 아니면 제가 좀 더 소시민적 기질이 강하거나

지금까지의 삶과 추후 저와 다른 방향으로 가시는 걸 모두 응원합니다

그것에 대해 제가 관심이 없다는 뜻은 아니라고 하고 싶지만...그렇게 많지는 않네요. 판관님의 응원은 다른 분들보다 더 의미가 있는데, 제 응원도 판관님께 그리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소수점님의 프로필을 스팀잇안에서 몇 번 봤던 것 같은데, 이렇게 글을 읽는 건 처음이네요. 곡을 틀고 글을 읽기 시작했는데, 아직 곡이 끝나지 않았어요. 그래서 곡을 들으면서 댓글을 답니다. 저도 폴 매카트니를 무척 좋아해요.

이 글 여운이 무척 짙네요. 가끔 놀러 올게요. (왠지 마지막 문장으로 헛헛함을 감추려 하신듯한 기분이 드네요ㅎㅎ)

What's the matter with me? I don't know.

삶이 주는 무료함. 낭만 뭐 있나요. 이루어질 뭔가를 위해 사는 것도 낭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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