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loving Vincent> (러빙 빈센트 리뷰: 스포없음)

in #kr6 years ago (edited)

어렸을 때 이중섭에 관련된 책을 읽고 괜히 소와 은박지가 아름답게 보였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땐 이중섭이라는 인물의 삶에 감동을 받았을 뿐, 그것이 미술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미술을 고리타분하게 여겨 싫어했었다.

그렇게 한참 시간이 지나고 대학시절에 우연히 봤던 게 위의 ‘세잔의 사과’영상이었다. 이때는 다행히도 관심이 세잔에서 끝나지 않고 미술사 자체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빈센트 반 고흐는 내가 이 시기에 알게 된 대표적 화가 중 한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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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먹는 사람들(painted by van Gogh, 1885)

예술가는 평범한 삶을 살지 않는다고들 하지만 이 고흐라는 사람은 그중에서도 유난히 역동적인 삶을 산 사람이다. 그는 처음엔 집안의 도움으로, 나중엔 동생 테오의 지원으로 생애동안 극심한 가난을 겪진 않았지만 그 자신이 내부에서 겪고 있는 정신병으로 인해 항상 불안정했던 사람이었다.

현대의 최신연구에 따르면 고흐의 정신병은 ‘경계성 인격 장애’일 확률이 높다고 한다. 이 병은 양극단적인 감정으로 타인에게 집착을 하게 되는 병이라고 한다. 예컨대 타인이 자신의 기대에 부응하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잘해주고, 기대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불같이 화를 내서 상대방을 황당하게 만드는 것이다. 문제는 이 병에 심하게 걸린 사람은 본인의 그런 행동으로 인해 타인이 질려서 떠나버리면 타인을 붙잡아 두기 위해 폭식, 자해, 자살 등의 발작을 일으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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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카페 테라스(painted by van Gogh, 1888)

고흐가 목사의 꿈을 접고 화가로서 본격적인 삶을 결심한 때는 바로 이 정신병이 잦아지던 1880년의 일이었다. 그의 죽음이 1890년인 것을 생각하면 고흐는 불과 10년이라는 시간동안 역작의 대부분을 남기고 간 셈이다. 특히 우리가 흔히 아는 고흐의 작품은 그의 인생 마지막 3년 동안 나온 작품이며, 이 시기는 그가 아를, 오베르에 머물던 시기와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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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빙 빈센트]애니메이터들의 작업현장

영화 [러빙 빈센트]는 이러한 맥락에서 아를, 오베르를 주 무대로 삼으며 제3의 인물이 고흐의 사망원인을 추적하는 내용을 담아내고 있다. 이 과정에서 100여명의 작가들이 그려낸 5만 6000여 점의 유화를 통해 보여주는 영상미는 불꽃같던 그의 삶을 더욱 잘 표현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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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painted by van Gogh, 1888)

영화의 시작이 고흐가 죽은 뒤의 아를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듯, 맨 처음 아를에 도착한 고흐는 실제로 정신병이 수그러들길 간절히 원했다고 한다. 그러나 고흐의 바람과는 달리 그곳에서 정신병이 오히려 악화되고 만다. 결정적으로 폭발하게 된 계기는 고갱과의 다툼이 원인으로 보이는데, 이때 고흐 특유의 집착에 정이 떨어져버린 고갱이 그에게서 떠나려하자 한쪽 귀를 스스로 잘라버렸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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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를 그리는 반 고흐(painted by Gauguin, 1888)

또한 고흐와 고갱의 갈등이 시작된 원인을 이 그림 때문이라 보는 사람들이 많다. 자신을 일부러 바보같이 그려놨다고 생각한 고흐는 고갱에게 술잔을 집어던지면서 분노를 표출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무렵부터 극심한 불안 증세와 함께 본인의 처지를 비관하는 일이 많아졌다고 전해진다.

But there, we live in days when there is no demand for what we are making, not only does it not sell … And I am afraid that it will hardly change in our lifetime.
우리는 노력이 통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아.
그림을 팔지 못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 이런 일이 우리 다음에도 계속될까 두려워.
-1888년 8월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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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프러스 나무가 있는 길(painted by van Gogh, 1889)

귀를 자른 사건으로 인해 마을사람들로부터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고흐는 생레미 정신병원의 요양원으로 자리를 옮겨야만 했다. 그곳에서 고흐는 자신의 병을 자책함과 동시에 향후 다시 나타날 발작 증세를 두려워하며 작품 활동에 매진했다. 고흐의 역작이라 불리는 [별이 빛나는 밤], [사이프러스 나무가 있는 길]은 이때 탄생한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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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빛나는 밤(painted by van Gogh, 1889)

To express hope through some star. The ardour of a living being through the rays of a setting sun. That’s certainly not trompe-l’oeil realism, but isn’t it something that really exists? … I absolutely want to paint a starry sky.
별을 그려서 희망을 표현하는 일. 석양을 통해 누군가의 열정을 표현하는 일. 이런 건 결코 눈속임(trompe-l’oeil)이라고 할 수 없어. 실제로 존재하는 걸 표현하는 거잖아? … 난 별이 빛나는 하늘을 꼭 그려내고 싶다.
-1888년 9월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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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가 나는 밀밭(painted by van Gogh, 1890, 현재까지는 고흐의 유작이라 알려져 있는 작품)

1890년, 병원에서 퇴원한 고흐는 동생 테오의 도움으로 마지막 거처 오베르로 다시 자리를 옮긴다. 그리고 몇 달 뒤 평소처럼 그림을 그리러 나갔다가 피투성이로 여관에 돌아와 ‘고통은 영원하다’라는 말과 함께 세상을 떠나고 만다. 기묘하게도 고흐가 죽은 뒤 얼마 안 되어 동생 테오 역시 7개월 후에 형을 따라갔다고 한다.

고흐의 사망을 두고는 현재까지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권총으로 자신의 몸을 쏜 뒤 여관에 돌아왔다는 사람도 있고, 동네 악동에게 타살 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둘 중 무엇이 확실한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고흐의 유언이 남긴 것은 의혹과 미스터리가 아니라 그의 손끝에서 완성된 세상의 이미지가 아닐까?

A nobody, an eccentric and disagreeable man- someone who has no position in society and never will have- in short, the lowest of the low. Well, then, even if this were true, then I would want my work to show the heart of such a nobody.
보잘 것 없는, 괴짜이자 불쾌한 사람, 사회적으로 아무런 지위도 없고 앞으로도 절대 그런 걸 갖지 못할, 한마디로 말해서 나는 더 떨어질 것도 없는 밑바닥 인생이지.
그래 좋아. 그게 사실이더라도 언젠가는 그런 괴짜이자 보잘 것 없는 인간이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을 내 작품으로 보여주고 말거야.
-1882년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 中-

Dear loving Vincent.

paying homage to your fiery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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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utiful Post well done

thank you :)

고흐의 포스팅을 우연히 보게되서 정말 반갑네요.
제가 유일하게 잘 아는 그림이 고흐입니다.
오래전 암스텔담에 있는 고흐의 전시회장을 다녀온게 계기가 되었죠.
위에 설명한 그림들 대부분이 기억이 나니 좋고
몰랐던 설명들도 들으니 새삼 또 좋네요.
포스팅 감사합니다^^

암스테르담에서 직접 보셨군요! 저도 꼭 가보고 싶은 장소 중 하나네요.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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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를 너무 좋아해요.
특히 꽃 피는 아몬드나무 그림은 제 방에 늘 걸려있답니다! ㅎㅎ
저희 집의 양념통을 소개합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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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고흐 작품은 어디에 내놓아도 멋진 것 같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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