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말고보통] '아나바다' 운동을 기억하나요?

in #kr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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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잘살면 안 될까요?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원론적인 방법은 이미 나왔다. ‘남보다 잘 사는 것’, ‘나만 잘사는 것’이 아니라, 다 함께 잘살고자 하는 사람이 많아질 때 자본주의는 극복 가능하다. 그때 돈을 많이 벌어 자유로운 삶이 아닌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 분명 옳은 이야기다. 하지만 ‘옳은 이야기’는 현실에서 ‘옳기만 한 이야기’로 남곤 한다. 원론적인 이야기는 옳지만 종종 공허해지곤 한다.

원론적인 논의만큼 실천 가능한 구체적인 이야기 역시 중요하다. 이제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이야기해보자. 원론적이고 옳은 논의가 각자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말이다.

기만적이었던, 아나바다 운동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아나바다’ 운동이 한동안 유행했다. ‘아나바다’는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 이 아나바다 운동은 민중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조직된 운동이 아니었다. 정부 차원에서 주도했다. 당시 정부 주도로 진행된 아나바다 운동은 사실 매우 기만적인 행태였다. 당시 외환위기는 정부와 관료들의 잘못으로 발생한 사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외환위기에 대처하는 방식으로 국민들에게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라’고 요구했다. 이것은 정부가 국민들에게 은근슬쩍 이리 말했던 셈이다. “너희들이 과소비를 해서 국가가 이지경이 된 거야!” 외환위기 사태의 책임을 교묘하게 국민들에게 떠넘긴 것이다. 당시 아나바다 운동을 하면서 ‘그래, 내가 너무 과소비를 했었어. 그러니 이런 사달이 난 거야!’라고 자조적으로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으니, 정부 전략은 일정 정도 유효했다.

이 얼마나 슬픈 코메디인가. 자본주의가 무엇인가? 생산자들이 만든 상품을 소비자들이 끊임없이 소비할 때에 유지될 수 있는 체제 아니던가. 달리 말해 국민 대다수인 노동자가 뼈골 빠지게 일해서 번 임금을 원활히 소비했기에 1997년 이전까지의 유래 없는 호황이 가능했던 것이다. 국민들은 자본주의가 원하는 대로 충실히 복무했을 뿐이다. 그런데 경제위기의 책임이 과소비를 한 국민들에게 있다고 우회적으로 말하고 있으니, 이건 정말 웃지 못 할 코메디다.

‘아나바다’ 운동의 복원

당시 정부가 간교한 책임전가의 논리로 앞세웠던 ‘아나바다’ 운동을 우리가 다시 이용하자. ‘아나바다’ 운동을 복원할 필요가 있다. 꼭 필요한 것은 ‘아껴 쓰고’, 나에게 필요 없는 것은 이웃과 ‘나눠 쓰고’, 웬만한 것은 옆집에 있는 사람과 ‘바꿔 쓰고’, 새로운 상품을 사는 대신 있는 것을 ‘다시 쓸 수’ 있을 때, 지금보다 돈에 덜 메이는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아나바다 운동은 자본(혹은 자본가)입장에서는 섬뜩한 운동이다. 끊임없이 상품을 팔아서 잉여이윤을 남겨야 하는 자본(혹은 자본가)의 입장에서 소비자들이 모두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면 어찌 될까? 길게 부연 설명할 필요 없다.

아나바다 운동의 핵심은 ‘함께 잘 사는’ 데 있다. 혼자서 아나바다 운동을 할 수는 없다. 나눠 쓰고, 바꿔 쓰려면 나눠 쓸, 바꿔 쓸 사람들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또 혼자 소비를 통해 남들과 구별 짓고, 뽐내려고 할 때 아나바다 운동은 애초에 요원하다. 소비를 통해 자신을 증명하려는 사람은 언제나 많은 돈을 들여 새로운 상품으로 치장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경쟁적으로 소비하는 것은 언제나 자본, 자본가에게 좋은 짓이다. 자본은 끊임없이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 더 자주 더 비싼 유행상품을 만드는 데 사활을 거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모든 사람들의 꿈이 떵떵거리는 부자가 되는 것이 될 때 희망은 없다. 우리의 희망은 조금 부족하더라도 조금 불편하더라도 모든 사람들이 다 함께 잘 사는 세상을 꿈꾸는 데 있다. 돈에 매여 살지 않으려면 다 함께 잘사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남들보다 더 잘사는 것이 아니라 조금 부족하더라도 다 같이 잘사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이런 고민을 하지 못하는 이유도, 이런 고민을 순진한 생각이라 여기는 이유도 ‘남들보다’로 시작되는 경쟁적 탐욕 때문이란 사실을 더 늦기 전에 깨달아야 한다. 그 탐욕조차 인간 본성의 아니라 자본주의에 의해 훈육된 속성일지도 모르겠다.

돈이 없는 사람들이 ‘나도 강남에 한 번 살아보자’, ‘나도 벤츠 한 번 몰아보자’, ‘나라고 샤넬 백 못 갖고 다니라는 법 있어’라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영원히 돈에 매여 살 수밖에 없다. ‘옆 사람 다리를 걸어서라도 내가 먼저 앞서 가겠다’는 탐욕적이고 경쟁적인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조금 느리더라도 조금 불편하더라도 옆 사람과 함께 걸어가겠다고 마음먹는 사람이 많아질 때, 우리는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깊이 내면화된 경쟁적 탐욕을 적절히 제어할 수 있다면, 진짜 아나바다을 운동을 시작할 수 있을 테다. 고결하고 헌신적인 삶을 살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옆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려는 의지를 가지고 조금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면 어떨까하는 제안을 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 ‘옆에 있는 사람들’을 조금씩 확장해나가면 된다. 그걸로 충분하다. 가족에서 이웃으로 나중에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들까지 확장할 수 있다면 좋겠다.

‘내가 사는 동네를 조금 더 행복하게 만들 방법은 없을까?’ ‘ 옆에 있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조금 손해 보더라도 나보다 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라는 인식의 전환이 일어 날 때, 돈으로부터 조금 더 자유로워질 것이다. ‘나부터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것’이 꿈이 되었을 때 자본은 더 위축되어 갈 테다. 그리고 자본이 위축된 그 만큼 우리는 돈으로부터 자유를 얻을 수 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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