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처음쓰는 일기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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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늘 문득 내가 2015년 4월 16일에 썼던 에세이를 찾아 읽어 보았다. 당시 어떤 기사를 보고 분노에 차 적어 내린 글이었다. 내 개인 신상이 그대로 적혀있는 글이기도 했고, 함부로 입 밖에 내기 어려운 글이었어서, 단 한 번도 세상으로 공개해 본 적이 없는 글이었다. 단지 나와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던 친구 몇 명에게만 보여 줬을 뿐이었다.

그치만 참 재미있게도 잘 썼다. 두 페이지 남짓한 그 글은 요즘 쓰는 글에 비해 문장도 간결하고 어휘들도 생생히 살아 있었다. 역시 분노는 창작의 가장 강력한 땔감인가 보다. 아니면, 요새는 너무 많은 언어들을 내뱉은 탓에 문장이 고갈되어 버린 걸까. 남의 글을 표절하지 않으면서, 나만의 표현을 충전시킬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2.

이 점에서 나에게는 다행인 점 한가지와 불행한 점 한가지가 있다. 먼저 다행인 점은, 문장이 하나 둘씩 떨어져감을 느끼고는 있지만, 글감이 떨어지고 있다는 느낌은 없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 과학 에세이, 그냥 에세이, 잡생각 등을 대분류로 글을 연재하고 있는데, 이 모든 연재의 다음글을 정해 놓은 상태다. 지금 예정해 둔 글들을 쓰고 나면 두 달 정도가 훌쩍 지나있지 않을까.

두 달? 아마 아닐껄. 불행한 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만약 내가 사직서를 내던 2014년 비트코인을 샀거나, 과외비로 틈틈이 번 돈으로 이더리움을 사뒀더라면, 못해도 이틀에 한 번 꼴은 포스팅을 할 수 있었을는지 모른다. 하지만 가우시안 그래프에서 3시그마 안에 들어와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나도 전업 스티미언이 되지 못한다. 나는 그동안 일주일만에 글을 써올릴 때도 있었고, 어쩔 땐 이주일 만에 글을 올릴 때도 있었다. 다음 글로는 신경과학 번역글이 아닌 내 글을 쓰고 싶다. 병렬적으로 조금씩 써내리고는 있지만, 언제쯤 막간의 여유를 찾아 글을 완결할 수 있을까.

3.

내가 자기소개서를 쓸 때마다 단골로 등장시키는 내 어릴적 이야기가 있다. 10살 즈음 초등학생 시절의 이야기이다. 나는 여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친구들과 동네 보습학원을 다니고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그날의 문제를 모두 풀어야 집에 갈 수 있었다. 하루는 아무도 풀지 못하는 도형 문제가 등장했고, 친구들은 그 문제를 선생님께 여쭤 풀이를 듣고서야 가방을 챙길 수 있었다. 친구들은 하나씩 가방을 주섬주섬 챙기며 나에게 빨리 질문하고 놀이터로 오라고 했다. 그런데 그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만, 나는 묘한 오기가 생겼다. 도형에 보조선을 그렸다 지웠다를 무수히 반복했다. 선생님도 가르쳐주고 싶은 모양인지 기웃기웃 하셨지만, 나는 괜찮다고 호기를 부렸다.

정말 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밖은 이미 노을이 지기 시작했고, 교실은 고학년의 형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정답을 맞췄다.

무척 어렸을 때의 일이만 지금까지 기억이 나는 이유는, 이 사건이 내 인생에 있어서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놀이터의 유혹을 뿌리치고 얻어낸 달콤한 보람은 쉽게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나는 이후로 언제나 어려운 문제에 부닥칠 때마다 이때를 떠올렸다. 이로써 나는 무조건 할 수 있다. 모든 것은 시간의 문제이며, 내 집중력의 문제다라는 마음가짐을 환기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 이 10살짜리 어린 꼬마가 잘 소환이 안된다. 꼬마야 어딜 갔니. 자꾸 스팀잇이라는 놀이터가 나를 손짓하는데 좀 막아주렴.

4.

끝내 꼬맹이는 등장하지 않았고, 나는 결국 놀이터를 두리번거리고 있다. 그런데, 스팀잇도 저출산 문제가 발생했는지, 친구들이 다 학원으로 가버렸는지, 놀이터에 친구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모처럼 마음먹고 들렀는데 못내 아쉽다.

물론 여전히 kr의 최신글을 보면 수많은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하지만, 내 취향을 저격할만한 글들을 발견하기는 무척 어려워졌다. 이는 흔히 말하는 스팀잇의 UI 탓이 아니다. 왜냐하면, 내가 처음 가입하고 글을 둘러보던 때와 비교해 보았을 때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스팀잇은 "생각의 가치"라는 단어를 전면에 내세웠다. 나도 그 "생각"을 무척 좋아하고, "당신의 생각과 글은 소중합니다"라는 문구에 낚여 가입도 했다. 하지만, 요새는 스팀잇이 "생각"이라기보단 "사실"을 알리는 글들로 가득 차 감을 느낀다. 어디에서 무엇을 먹었고, 어떤 전자 기기를 사용하고 있는지에 대한 사실이 주류가 되고 있다. 아니면 단편적인 지식글 정도가 올라온다. 보통 이들에도 평가가 들어가 있으므로 "생각"이라 볼 여지도 있지만, 책의 줄거리만 잔뜩 써놓고 마지막에 "참 재미있었다"로 끝나는 글을 독후감이라 표현하기 어렵듯이, 나는 그 글들을 내 관심 밖인 사실에 충실한 '정보글'로 분류한다.

당연히 사람들이 무엇을 포스팅하든 그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그같은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이들에게도 잘못은 없다.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정보이기도 하고, 원래부터 스팀잇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었던 글은 코인 관련 정보글이었다. 다만, 내가 좋아하던 작가들의 활동이 없어지고, 내가 보고싶은 글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 꽤나 안타까운 것이다. 과학에 대한 단편 지식도 좋고, 경제학에 대한 토막글도 좋지만, 나는 그 작가들의 뇌를 열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들여다 보고 싶다.

5.

마지막으로 내가 재수할 때 정말 많이 들었던 곡, 로비 윌리엄스의 Better Man을 다시 들으며 오늘을 갈무리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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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공감합니다.
게다가 스팀헌트로 관심들이 더 쏠리니
스팀잇이 조금 시들해집니다

더욱이 영어 글인데 kr태그를 쓰니, 다른 글들이 잘 안보입니다.

조금만 참아주세요^^
곧 자리가 잡힐거에요.
이제 다들 kr도 떼고
다른 프로젝트가 나오면
관심도 분산되니까요.
(괜히 죄송스럽습니다...)

과제 집착력이 높은 꼬맹이셨군요ㅎㅎ 선생님도 아주 대견하게 보셨을 겁니다.
두 달치 쓸거리를 마련해두셨다니 든든하시겠습니다. 예정한 모든 글들 잘 출산하길 바랍니다^^

그때까지 지치지 않도록 느리지만 꾸준히 활동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0살꼬마가 왕자님이 됐군요^^어려운문제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 끈기에 박수를 쳐주고 싶군요
스팀잇어라는 놀이터도 은ㅡ근히 트랜드가 있어서 아무래도 왕자님이 원하는 트랜드는 조..금더 지나야 볼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가입자는 많지만 활동유저는 확실히 줄어든게 맞는거 같아요
어쩌겠어요
새로 들어오는 뉴비들에게서라도 찾아봐야겠죠
쉽지 않겠지만

신입 스티미언을 꾸준히 찾아봐야겠어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ㅎㅎ

스팀잇에 대해 관심이 많이 생기네요.좋은글이네요.

감사합니다!

@sleeprince님의 취향에 맞는 글들은 가치를 알기 위해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글들이죠. 글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시간도 길고 댓글도 쉽게 달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인기가 없고 금방 떠나가는 모양입니다.

kr 태그를 들어갈 때마다 환급 서비스는 뭐 이리 많은가 싶고...

차라리 일상글은 깨알같은 재미도 있고 이야깃거리도 되는데, 환급 서비스가 많은 것은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생각이 아닌 사실을 알리는 글이 많다는 것에 공감합니다. 그리고 저도 생각보다는 사실을 알리는 글을 쓰고 있네요...^^;

누굴 비판하려고 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테이스팀이나 스팀헌트 같이 보상이 있는 곳에 사람이 몰리는 건 인지상정아닙니까. 그리고 포스팅의 지속 가능성을 보았을 때도 사실을 올리는게 좋습니다.

제 고민과 맞닿은 것 같아 울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스팀잇을 시작한지 이제 3개월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생각이 많거든요. 어떤 글을 써야 할까... 지금까지는 무게가 있는 글은 브런치를 이용해서 올리고 있고 가벼운 일상적인 글을 스팀잇에 올리고 있는데, 제 스팀잇이 너무 특색 없는 그저 그런 블로그가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결국 뭔가 저만의 콘텐츠를 만들어나가야 하는데, 영원히 수정할 수 없이 박제된다는 부담감이 있습니다. 그리고 차후 책의 원고가 될 가능성이 있는 글을 올리기에도 부담감이 있고요. 아직 명확한 답을 찾을 수가 없어 더 답답한 느낌입니다..^^;

특히 책이 될 가능성이 있는 글이라면 더욱 부담감이 크시겠습니다. 현재 개발 중인 업데이트에서는 글의 삭제, 수정, 분류도 가능해질 것이라 하니 기대해 봅니다.

그 부분만 해결된다고 해도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스팀잇을 꾸려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잠자는 왕자님이 이끌어가고 계십니다. 그래도 여타 다른 SNS보다는 낫지않을까도 생각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소프트웨어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강력하게 유대할수 있다는 것이지요. 마음을 나눌수 있으니까요. 스팀잇내에서는 공통의 관심사의 글을 유심히 읽어줄 수 있는 사람들이 눈에 많에 띄는 것도 같습니다. 물론 제가 기타 SNS를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요. 잠자는 왕자님은 적어도 스파 가우시안의 3시그마의 안쪽에 있을지는 몰라도 매 업데이트하시는 포스팅가치는 3시그마의 바깥족 영역입니다. 그것도 최 우측이겠지요 :-) 그리고 이를 알아봐주시는 분들이 많이 있잖아요.

@peterchung님 말씀을 너무 스윗하게 해주시네요ㅎㅎㅎ 피터님 말씀처럼 제 글을 좋아해 주시는 많은 분들께 정말 감사한 마음입니다. 특히 피터님은 처음 뵈었을 때부터 댓글로 포스팅을 작성하셨더랬죠ㅎㅎ 보통은 글을 전부 제대로 보기가 쉽지 않은데, 피터님은 꼼꼼히 글을 읽고 계신 티가 났습니다. 지금보다 한참 명성도가 낮았을 때라 무척 기뻤던 기억이 납니다.

비슷한 나이였을거에요 초등학교 저학년 때 눈높이 수학에서 어려운 문제를 만났는데 모르겠는거에요.. 근데 이 문제를 못푸는 나에게 너무 화가나서 어떻게든 풀고 싶었지만 십분 이십분 한시간이 되도 모르겠는거에요.. 그래서 엄청 울면서 네시간 쯤 흘렀었나.. 풀었던 기억이 있어요ㅋㅋ 어디갔니 꼬마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돌아와라 형이 긴급하게 찾는다.

그렇게 스스로의 힘으로 어려운 문제를 풀어낸 경험은 두고두고 자산이 되지요. 10살 꼬마 다시 나타나라 얍~

그래서 아이에게 성취감을 부여하는 교육방식이 중요한가 봅니다. 인내하고 기다려주고 답을 재촉하지 않아야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고 하네요ㅎㅎ

잘 읽고 갑니다.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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