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단상] 단기 마이너스지만 장기플러스인 것 (코인이야기 아님, 개인추억 주의)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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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마이너스지만 장기플러스인 것 (코인이야기 아님, 개인추억 주의)

상처는 가끔 아프지만 길게는 많은 걸 우리에게 줍니다. 제가 사춘기 때, 어린 남자애들이 그럴 때 관심가질만 한 무술에 심취(?) 해 있었는데, 그 때 나름의 인간을 병기로 훈련하는 초야의 이름없는 고수들(?)의 공통기본기는 정권단련이었습니다. 주먹으로 벽을 쳐서 주먹뼈를 단단하게 만드는 기술이었죠. 아마 당시에 그것좀 안해본 사람도 드물겁니다. 뼈는 어떻게 더 단단해 질 수 있는걸까 궁금했었는데, 나중에 주변의 한의사 선생님께 들으니 뼈에 충격을 계속 가하면 작은 크랙이 생기는데 뼈에 액이 생겨나서 이를 매꾸고 치료하면서 점점 더 단단해지게 된다는군요.

뭐 그게 맞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작은 상처들은 지금은 아프고 속상해도 시간이 지나면서 꼭 나쁜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 물론 평생 조금도 안다치고 살 수 있으면 더 좋고요.

오늘 엄지손가락 안쪽 검지와 만나는 은밀한(?) 쪽에 2도 화상을 입었습니다. 엄지손톰 정도의 크기인데도 상당히 쓰리네요. 조그만 여행용 다리미를 꼭 붙잡은 덕이죠.

시각적으로 보지 못한 뜨거운 물건은 뜨거운 것을 만졌다는 정보를 뇌까지 전달해야 알기 때문에 우리가 뜨거운 것을 잡았을 때 생각보다 오래쥐고 있게된다고 합니다. 뜨겁다고 느낀 걸 다시 손을 떼라는 명령을 받아와야하니까 손에서 뇌까지 신호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데 까지 거의 1초는 걸리는 것 같습니다. 그 짧은 시간동안을 우리 피부는 견디지 못하고 익어버립니다. 빨간 정도면 1도, 피부가 살과 하얗게 분리되고 물집이 생기면 2도 정도 됩니다.

화상은 기본적으로 계속 통증을 유발합니다만, 사실 작은 부위의 화상에 대해선 별로 염려하지 않는편입니다. 그건 많은 화상경험을 통해 익숙해졌기 때문이고 조금씩 치료되어 가는 과정이 하나의 기쁨이랄까요. 일상에서 경험하기 힘든. 그렇다고 하면 혹시 S나 M이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더군요. 물론 안하면 제일 좋을 경험이지만, 일상의 작은 사고들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 있다는 보장도 없으니 이왕 당한 사고 때문에 속만 끓이는 것 보다는 그냥 나아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뭐 그런 말씀인거죠.

제가 기억하는 가장 큰 화상사고는 한 열 세살 혹은 열 다섯살 때 쯤이었습니다. 좀 이른 나이에 경상도 쪽 신축공사장에 투입(?) 되었었는데, 컨테이너 재질의 가건물 다섯동을 짓고 한 30명 정도가 함께 사는 곳이었습니다. 이른 아침 5시만 되면 식당동에선 이른 아침 준비가 이루어지고 6시면 벌써 중장비 시동을 걸어놓고 대기하는 분위기라 저녁엔 늦어도 11시가 되기전에 모든 동은 불이 다 꺼지고 한밤중이 되어버려서 원치않는 ‘일찍 잠들기’를 하곤 했었죠.

그러니까 3-4시면 꼭 잠이 깨는데 뭐 90년대 초반엔 컴퓨터도 386이니 486이니 했지만 뭔가 놀거리가 없으니까 심심했었습니다. 그 때 PC통신이란 걸 전화국에서 받은 단말기로 하이텔이란 서비스에 접속하곤 했었는데, 아마 지금의 스팀잇만큼이나 열심히 했던 것 같습니다. 그걸 하고 싶어서 잠이 깨곤 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4시면 배가 고픈겁니다.

식당동 건물은 두 동이나 떨어져 있어서 동마다 방마다 휴대용 가스버너를 다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창고엔 라면이 늘 몇십박스씩 쌓여있었죠. 그걸 이른 새벽 4시면 매일 끓여먹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새벽밥을 먹은 셈이군요.

하루는 냄비를 미리 안챙겨놓은 거죠. 방안에 있던 보온밥통이 떠올랐습니다. 그릇 다섯개를 꺼내 밥통안에 있는 밥을 다 덜어놓고 스스로의 천재성에 무릎을 치며 라면을 끓였는데, 수건같은 걸로 잡고 그릇에 붓다가 김이 손등을 와닿자 너무 뜨거워서 쏟아져버렸습니다. 그게 정강이 위쪽으로 흘러내렸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가끔 하는 실수는 깊은 냄비를 기울일 때나 위에 손을 갖다댈 때 그 속의 김이 예상치 못하게 뜨겁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김 때문에도 많이 데이니까 조심해야 하죠.

그런데 작은 국물이 옷위로 덮치니까 처음엔 뜨거운 것도 몰랐는데 문제는 제가 입고 있던 딱 붙는 츄리닝이었어요. 옷에 뜨거운게 쏟아지면 그 뜨거운게 계속 피부를 자극하면서 심하게 화상을 입게 됩니다. 그래서 옷위에 뜨거운 물을 쏟으면 피부에 최대한 닿지 않게 재빨리 옷을 벗어야 합니다. 부끄러움 같은건 따지고 있으면 안됩니다. 하지만 그 땐 그걸 몰랐죠. 계속 뜨거웠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그냥 후후 불고만 있었습니다.

다음날 헐. 탁구공 만 한 혹이 다리에 붙어있었습니다. 아픈게 문제가 아니라 그 혹 자체가 어린 제겐 공포의 대상이었죠. 어른들이 따라다니며 터뜨리자고 했는데 아플까봐 울면서 발버둥쳤는데 결국 눈군가

“이건 진짜 살이 아니라 물집이기 때문에 하나도 안아파”

라며 설득하더군요. 결국 저도 뾰족한 수가 없는데다 그 공포의 대상을 제거할 수 있다니 맡기기로 했습니다. 정말 아무 느낌도 없이 톡 떠뜨리니 순식간에 물이 빠지고 혹이 꺼졌습니다.

지금같으면 화상패치 하나만 붙이면 끝날 일이었지만 당시에 화상에 처방할 수 있는 민간요법은 약 200종 정도 있었습니다. 사람이 30명이니 치료방법도 30가지였습니다. 각자 아는체를 하며 먼저 붙여둔 치료제를 떼어내고 자기 방식으로 차례대로 와서 치료를 해대는데 그분들은 돌아가며 치약, 소주, 된장, 간장, 감자, 단무지, 생밤가루, 고구마, 도토리묵, 무슬라이스, 안티푸라민, 파스... 제몸에 붙여볼 수 있는 건 죄다 붙여댔습니다. 그렇게 이것저것 붙여대니 상처가 낫기는 커녕 피나고 고름나고...

결국 상처는 두어 달 만에 치료되었지만 오랫동안 흉터가 있었습니다. 몇 년 전만해도 가끔 그 흉터를 보며 지난 생각을 떠올렸는데, 오늘 갑자기 그 생각이 나서 다리를 보니 이젠 없어져 버렸군요. 그러고 보니 이젠 오른쪽인지 왼쪽인지도 가물가물하네요... 30년 가까이 된 그 때의 경험덕에 그 땐 많이 아팠던 것 같지만, 또 이후로도 이런 저런 크고작은 화상을 많이 입었지만, 그 때 마다 좀 더 의연해졌달까요. 그건 단순히 해 봐서가 아니라 완전하게 나아가는 과정을 경험했기 때문일겁니다.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말은 그래서 어느정도 맞는 말이죠.

화상을 입게 되면 가장 좋은 건 흐르는 찬물을 이용해서 15분 이상 식혀주고 약국에서 화상패치를 사서 붙이는게 가장좋습니다. 화상패치가 없는 상황에선 컵에 얼음물을 만들어서 계속 식혀주고, 민간요법 중에서 가장 좋은 건 감자정도인 것 같습니다. 양파나 무같이 매운 야채를 붙이면 더 심해질 수도 있고요. 부위가 크거나 정도가 심하면 무조건 병원에 빨리 가야 하고요.

사고는 안나는게 가장 좋겠습니다만, 작은 사고들을 겪으시면 너무 당황하지 않는편이 좋습니다. 감기가 한 번 걸리면 해당 인플루엔자로부터는 면역이 생긴다고 하죠. 아픈 기억도 잘 받아들이면 가끔은 인생전체에선 플러스가 되기도 하죠. 순간은 마이너스지만 말입니다.

아이고 근데 얼음에서 손만 때면 따끔거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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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상처난곳에 피부색처럼 생긴거 딱 붙여놓으면
치료도 되고 새살도 올라온다고 하고 참 좋아졌어요ㅎㅎ

@cine님~~ 맞습니다. 요새 참 좋은 세상이죠~

근거가없는 민간요법은 어디서 오는걸까요 ㅋㅋㅋ 몇백가지의 치료법 ㅋㅋㅋㅋㅋㅋ 겁나네요 .. 가끔은 머릿속으로 이건 아닌데 하면서 상대방의주장으로 해줄때도있는데 ㅋㅋㅋ 그생각이 나서 웃기네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민간요법은 요즘들어서는
신통치 않음을 떠나서 치명상을 초래하기도 하죠;;

크고 작은 아픔을 어떻게 해쳐나갈지에 따라서
평생이 좌우되는게 아닐까 싶네요

잘 보고 갑니다.

치료 잘 하세요.
저도 중학교 때 발에 뜨거운 물을 쏟은 적이 있었는데. 들은 게 있어서 찬물에 발을 한참 담그고 있었어요. 그래도 2도 화상. 근데 저도 지금 보니 흉터가 없네요. 신기..

이제 한 3일 지났는데 제가 워낙 어려서(?) 그런지 벌써 다 나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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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어찌하다 그러셨는지요~~ 빨리 치료되시길 바랍니다.
나쁜 다리미~~ 나쁜XX~~~~

고맙습니당 이제 거의 나았어용~~

어쪄다 데이셨는지요? 다리미에 왜? 손을 가져가셨는지요? 자해신가요?

다리미가 하도 예뻐 보여서 켜져있는지 모르고 붙들었답니다^^

아 그러셨군요.

엄지손가락 안쪽 검지와 만나는 은밀한(?) 쪽..

도토리묵...

진짜 항상 요리할 때는 불과 칼 그리고 기름을 조심해야 해요. 저도 요리하면서 칼질하다가 손가락 마디가 절반 정도 깊게 베인 적이 있답니다.

당시에 손님이 와서 3일간 지내는데, 덕분에 손님이 아침 점심 저녁을 해주었답니다 ㅎㅎㅎ하여튼 조심조심해야 합니다 ㅎㅎ

화상은 메디폼이 정말 좋지요~

으아... 혹이라니 ㅠㅠ 엄청 무서웠겠어요.

저한테 있는 화상 자국도 처음엔 세로로 2cm가 넘었는데 지금은 0.5cm로 줄어든걸 보니 시간이 많이 지나긴 했나봐요. 고기 먹다가 화상을 입은거라 일하는 아주머니께서 치약을 발라주셨는데 아프기만 했던 기억이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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