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흐름을 받아 들여야 할 나이...

in #kr6 years ago (edited)

청평율님이 연로하신 아버님의 건강을 염려하며 장수를 비는 글을 읽고
제 아버지 생각에 글을 써 봅니다.

제 아버지는 어쩜 집안의 먹을 것 이상으로
자신의 외모관리에 더 신경을 쓰신 분이시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도 예전 분 같지 않게 어머니의 집안일을 늘 도와 주셨습니다

딸을 처음 미국으로 떠나 보내며 첨 가는 미국 길 고생스럽다고
당신이 근무하시던 항공사의 비지니스석에 절 태워 보내신 아버지는
그 후 자주 그 비행장 풀밭에 앉아 시를 쓰셨다 했습니다.
마음이 너무도 아렸다 합니다.

정년퇴직을 하시고 16년전 뇌경색 진단을 받았고
자기 관리가 철저한 분이셨기에 오래 동안 등산과 운동을 병행하시며
그래도 잘 견디고 버티셨습니다.
시간이 길어져 어느덧 몸도 더 쇠약해 지시니
뇌에 물이차서 수술도 하시고
입원도 길어져 6년 이상을 병원에 계신 듯 합니다.
그 곁을 늘 지키시던 분은 어머니셨습니다.

멀리사는 자식은 있으나 없으나 인 것 같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병원비를 내는 것과
일년에 두어번 한국을 찾아 뵙는 것 밖에는...

작년 말 집으로 퇴원해서 어머니와 요양사의 도움을 받으시던 아버지가
부쩍 기운을 잃으시고 음식을 마다하시더니
결국 요양병원에 가게 되셨고
전 올 2월 어느날 밤에 위독 하시단 전화를 받았습니다.
귀가 이미 많이 어두어 잘 못 들으시지만
아버지 귀에 전화기를 대 달라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큰소리로 의식이 없으신 아버지께 말씀 드렸습니다.
"아빠, 나 00, 아빠, 큰딸 갈꺼니까 나 3일만 기다려 줘요...꼭 3일만 기다려 주세요"
악을 쓰다시피 소리를 지르니 제 남편과 딸이 왠일인가 해 다 달려옵니다.

남편의 출장 계획도 취소 시키고 첫날 날이 밝자 티켓을 구매하고
부랴부랴 어머니께 필요한 영양제도 사고, 짐을싸고...
그리고 둘쨋날 남편이 차를 몰고 뉴욕까지 4시간, 뉴욕서 서울까지 13시간.
공항대기 시간까지 꼬박 20시간을 넘어 한국에 도착합니다.

마중나온 차를 타고 바로 병원으로 가 아버지를 뵈니
눈은 뜨셨는데 의식은 없으신 것 같았습니다.
아버지의 귀에 입을 대고 소리를 지릅니다.
"아빠 나 왔어요. 아빠 큰딸 아빠 보러 왔어요... "
그때 초점없던 아버지의 눈동자가 내쪽으로 움직였습니다.
아주 잠깐의 눈맞춤에 아버지는 눈빛으로 묻습니다.
"어~? 00 왔네~ 우리 딸 왔어?"
저는 분명 봤습니다.
아버지의 눈빛으로 제게 우리 딸 왔냐고 묻는 모습을...
그리고 아버진 또 촛점 없는 눈빛이 되셨습니다.

여독이 쌓였지만 담날 아침 읽찍 아버지 병실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집에서 가져온 고무장갑을 끼고 뜨거운 물에 타월을 젖셔
아버지의 온 몸을 딱고 또 딱았습니다.
"아빠 몸이 찜찜해서 불편했죠? 내 깨끗이 기분 좋게 해드릴께"
저의 아버지는 늘 깔끔하고 에프터 쉐이브 향이 나던 분 이셨습니다.
손가락 하나 하나 ,발가락 하나 하나까지
화장실과 병실을 왔다 갔다 하며
뜨거운 물을 갈아 담고 아버지를 딱아 드렸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평소 좋아하시던 스킨을 솜에 적셔 발라 드렸습니다.
"아빠 이제 기분 좋죠? 음~ 이제 제대로 아빠 냄새 나네~"
가족들이 잠시 또 밖으로 나가 각자 만일의 상황에 대비를 합니다.
전 혼자 남아 아버지 마른 입술에 물에 젖은 거즈를 가져다 대봅니다.
아버지가 시원하시 다는 듯 휴~ 한 숨을 쉬셨습니다.
전 제가 대준 물 젖인 거즈에
아버지가 좋아 하셨구나 생각하며 기뻤습니다...
그리곤 몇분 후 아버지 몸에 부착됐던 모니터는 한 줄로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제가 한국에 도착한 다음 날 아버지는 가셨습니다.

부모는 마지막 순간에도 자식의 말을 들어 주시려 합니다.
의사와 간호사가 와서 제게 위로를 해줍니다.
아버지가 사실은 이미 가셨을 건데
그때 딸 전화 받고 여기 병원사람 모두 다 딸보셔야 되니 좀 만 더 힘내라 했다고.

아버지는 그렇게 저와 마지막으로 눈도 마주치고
제가 아버지께 조그마한 효도라도 할 수 있는 시간도 주셔서
제 맘에 평생의 한을 남기지 않으시려 했던 거 같습니다.

나이가 드니 어느덧 내가 원건 원치 않건 세상을 받아 들여야 하는 가 봅니다.
그리고 모든 것들에 때가 있다는 듯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들도 곁에서 떠나 보내는 시간이 오는 것 같습니다.

오늘 아직은 상처가 아파 그간 숨겨온 감정을 꺼내 봤습니다.
이렇게 꺼내 본 것 만이라도 많은 치유가 되는 시간이였습니다.
밝은 얘기가 아니라 죄송하고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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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er Up!

  • from Clean STEEM activity supporter

그나마 임종을 지키신 게 불행 중 다행이셨지 않을까 감히 말씀드려봅니다.
전 올랜도에서 한국 직행이 없어서 꼬박 23 시간이 걸려 날아갔습니다. 끝내 엄마는 못 기다려 주셨구요...

저런 저보다 훨 안타까운 상황이셨네요.
외국에 사는게 부모에게 못 할 짓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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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심은 축축하게 젖은 낡은 옷을 벗는 일....
우리 형제는 축제를 하듯이 부모님을 보내드렸습니다.
그리고-그리움은 잔잔하게 만리의 강으로 흐르더이다.

네 정말 그런거네요.
힘겹게 입고 계시고 축축하고 낡은 옷을 벗으신 것 같네요.
님 글에 다시 콧 끝이 찡 합니다...

저두요.^^
표면에서 놓아드리니
저 깊은 안에서 생동하더군요.
그걸 국민교육헌장식 표현으로는 조상의 빛난 얼-이라고 하죠.

ㅎㅎㅎ
타타님 어쩌라고~~~ 이리 웃기십니까~~~

주조님 글 읽으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네요.
항상 곁에서 더 잘 해드려야되는 것 같아요
그래도 주노님을 보고가셔서 기분이 좋으셨을 겁니다
진심어린 글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렇죠? 절 보고 가셨으니 기분 좋으셨겠죠?
위로가 됐습니다.ㅜㅜ

새벽에 글 올려
들어와 봅니다
글 잘 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저도 작년 6월30일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리운 어머니
그리운 아버지시네요

좋은 시간 되세요

네 호님도 하루하루 쾌차 하셔야죠.
힘내요 우리~^^

아이고... 주노님 글 읽는데 제가 괜히 눈시울이 붉어지네요... ;/ 저도 집에 오빠한명 있지만 애교는 제가 도맡아 한 터라 한국을 떠날때 적막해질 집안생각에 발길이 무겁더라구요... 기왕 이렇게 온거 잘 살면 효도하는거다 라고 맘 굳게 먹고 있어요! 그리곤 오늘 저녁엔 부모님께 꼭 전화 드려야겠어요. 마음속 깊이있던 것을 꺼내 같이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꼭 전화 드리세요.
의도하건 않건 외국 산다는 자체가 불효자고 죄인이 될 때가 많아요.

저 말만 앞서지 ...
본 받을점 별로 없어요.
그냥 살아가고 있답니다.
하지만 부모님은 항상 내리 사랑을 해 주시죠.
그 점만 알고 살아간답니다

그래도 율님 글 덕분에 가슴 속에 있는 걸 들춰 봤습니다.
지난 2월 이후 미국 도착후 딱 한번 내 감정을 보였고
그리고 오늘까지도 자꾸 싸메고 있었거든요.
꺼내보기 두려워서.
여튼 제가 율님 글 읽고 배울 점이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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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읽는내내 코끝이 찡했어요~
그래도 아버님이 따님의 사랑을 느끼고 눈을감으셔서 그나마 위안이 되네요ᆞ ᆞ

그 부분이 제게 참 기억에 영원히 남을 것 같아요.
절 기다려 주신 것
찾아와 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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