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나마의 러시아어 이야기

in #kr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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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걸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쳐 흐르던 군대를 갓 전역한 겁 없던 20대 초반.
나는 교환학생을 가겠다고 마음 먹었다.

교환학생을 가기 위해서는 공인 영어 성적이 필요했다.

영어 성적을 위해 라섹수술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아 앞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상태에서 토익공부를 시작했다.

당연히 영어권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고 현실적인 요건을 고려해서 필리핀으로 지원하였다.

하지만 생각보다 사회는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군대 가기전 망쳐놓은 학점은 나의 발목을 잡았고 탈락이라는 결과를 받게 되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하나.... 라고 낙심하고 있을때쯤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형준 학생은 열정적인거 같고 토익성적도 괜찮은데 러시아 쪽으로 가보는거 어때요? 필리핀 보다 러시아가 훨씬 더 좋을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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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그 추운나라?

뭐... 가서 러시아어를 못 배우더라도 영어라도 배워 오면 되겠지?

요새 한국 병원으로 러시아 환자들이 많이 온다는 얘기도 들은 것 같고...

그래 가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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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러시아에 가게 되었다.

먼저 러시아 관련 카페에 가입했다.

위 사진은 약 3년전 내가 실제로 쓴 글이다

러시아어의 자음, 모음에 해당하는 알파비트도 공부하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에 어플리케이션을 다운받아 알파비트를 공부했다.

А Л Щ Д Ж Э

ㅋㅋ

이게 무슨 외계어인가 싶었다.

몇주를 알파비트만 외웠는데 다 외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러시아어를 공부 하는데 있어 목표를 세우고 싶었다

알아보니 토르플 이라는 시험이 존재했다.

기초, 기본, 1단계, 2단계, 3단계, 4단계 까지 존재하는데 1단계는 러시아 현지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하며 러시아어 전공자들의 졸업 요건에 해당하는 시험이라고 했다.

2단계는 엄청나게 수준이 상승하기 때문에 나는 자연스럽게 1단계로 목표를 세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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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일기를 보면 잘 나타나 있지만 하루하루 정말 열심히 살았다.

한 학기에 약 3500루블 (한화 6만원) 정도 하는 기숙사 방에서 살았는데 바퀴벌레가 참 많았다.

옆 기숙사는 빈대가 살았다고 하는데 내가 못본건지 우리 기숙사에는 없었던 건지 빈대는 본적 없고 바퀴벌레는 정말 많았다.

조금 과장하면 바퀴벌레 사는집에 사람이 같이 사는 느낌?

그렇게 바퀴벌레 가득한 기숙사에서 나는 밝은 미래를 꿈꾸며 공부 했다.

시간은 총알처럼 지나가 한 학기가 끝났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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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모스크바에 갈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것을 하고 가겠다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준 덕분에 많은것을 할 수 있었다.

군대를 막 전역한 20대 초반의 나 였기에 가능했던 한학기 간의 생활이었다.

공항에서 비행기가 출발할때 말했다.

모스크바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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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돌아왔다.

바퀴벌레 가득한 방이 아니라 전기장판이 따뜻하게 나를 감싸주는 내 방 침대에서 잘 수 있었고

석회수가 섞여 있어 피부가 건조해 지는 찬물이 아니라 부드럽고 따뜻한 물이 나오는 샤워기로 씻을 수 있었다. (한국의 물이 깨끗하다는 것을 그 전까지는 몰랐다)

그런데 뭔가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하루하루가 지나갈 수록 그렇게 힘들게 공부해왔던 지식들이 날라가고 있음을 느꼈다.

부산에서 러시아어 공부를 할 수 있는곳이 어디인지 찾아보다가 학원에 등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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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로 학원을 계속 다녔다.

1년쯤 다녔을때 처음으로 토르플 시험을 쳤다.

사실 자신은 없었다.

연습 문제 풀어봐도 항상 합격선에 아슬아슬하게 걸치거나 불합격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말하기, 듣기, 읽기, 문법 영역 합격. 쓰기 영역 불합격

토르플 1단계는 총 5개 영역을 합격해야 하는데 4개 영역을 합격 한것이다.

나머지 한 영역은 2년내로만 합격하면 된다고 했다.

생각보다 합격이라는 목표가 빨리 보여서 방심했던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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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학과 학생은 언제나 바쁘다

2학년 2학기부터는 정말 바쁘다.

2학년때는 한창 대외활동도 많이 할때라서 러시아어 공부를 잠깐 멈추기로 했다.

잠깐 쉬기로 했는데 그대로 1년을 넘게 쉬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놓지 않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렇게 쭈욱 쉬다가 올해초가 되서야 나는 다시 러시아어 공부를 시작한다.

토르플 1단계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1년전에 공부했던 자료들을 하나씩 꺼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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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래 쉬었던 걸까?

생각보다 문제가 잘 안풀렸다.

그러던 중 학교 일정까지 2주가 겹쳤고, 1달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후에 첫 시험을 치러 갔다.

시험장은 부산대학교 였다.

첫번째 문제는 요즘 사람들이 만남을 꺼려 하는것에 대한 것.

두번째 문제는 친구에게 한국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두 문제 모두 쓰기 이다.

저 주제로 글을 써야 한다.

나름 준비한 부분에서 나와서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리고 결과가 나오는 1주일 후만 기다렸다.

하루에 50번쯤 생각한것 같다.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 붙었겠지?

그리고 1주일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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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반 걱정반으로 결과를 확인했다.

.....

다른 과목에서 모두 높은 점수를 받아 쓰기 시험은 60점 만 받아도 합격인데 56점을 받았다.

눈물이 나왔다.

무슨 감정이었을까?

아마 아쉬움 보다는 분노에 가까웠다.

화도 났다.

내가 공부 안한건데 어디에 화를 내겠나 라는 생각으로 나를 달랬지만 화가 났다.

집으로 와서 혼자 술을 마셨다.

술을 어느 순간부터 잘 안먹게 되는데 혼자 술마신게 얼마 만일까

시험에 떨어진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이 시험을 합격했을때 기뻐 해줄 여러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라서였다.

술을 꽤 먹은 상태에서 블로그에 글을 썼다.

다시는 안져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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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다음 러시아어 시험을 신청했다.

부산에서는 시험이 없어 서울에 가야 했다.

4학년 1학기 기말고사와 함께 준비해야 했기 때문에 러시아어 시험 공부에만 몰두 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없는 와중에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공부를 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기말고사가 끝난 날 밤 12시에 나는 서울로 가는 버스에 올라탄다.

눈을 뜨고 졸린몸을 이끌고 시험을 치러 연세대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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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문제는 지난번과 비슷했다.

그래서 더욱 아쉬웠다.

공부할 시간이 조금만, 정말 조금만 더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기말고사와 겹쳐버린 탓에 공부를 많이 못한게 너무 아쉬웠다.

시험을 마치고 마음을 조금 놓기로 했다.

지난번과 비슷한 수준으로 써서 비슷한 점수를 받아 비슷하게 떨어질거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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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험을 치고는 하루에 50번씩 성적을 생각했다면 이번에는 그런거 없었다.

하루에 5번쯤? ㅋㅋ

그리고 결과를 기다리는 1주일이 간호학 인증평가 준비때문에 참 바빴다.

금요일 6시반에 인증평가단이 학교를 떠났고

1주일간의 준비가 끝났다는 해방감에 기뻐하던 중 결과가 나왔다는 문자를 받게 되었다.

확인하기 무서웠다.

지난번 시험이 떨어졌을때 내가 생각나서

.....

그래도 봐야 할것 같아서 확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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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점.....

..........

눈물이 터졌고 한번 터저벼린 눈물은 멈추질 않았다.

3년전 처음 러시아에 가게되어 알파비트를 공부하던 때와

바퀴벌레 가득한 기숙사방에서 공부하던 때와

간호학과 다니며 다른친구들은 술마시러 갈때, pc방으로 갈때 혼자 러시아어 학원으로 향했던것 등등 여러가지가 복합적으로 생각나며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려서 돌아갈 수도 없는데 결과가 나오지 않아 마음 고생했던 내가 생각났다.

이렇게 멋지게 합격하려고 그동안 합격을 못했었던것 같다.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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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몇번을 들여다 본다.

내가 진짜 합격한게 맞나?

ㅎㅎ

ㅎㅎㅎㅎㅎ

남들이 보면 그냥 시험 하나 합격한거 정도로 볼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너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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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3년전 아무것도 모르고 차디찬 러시아 땅으로 떠났던 타나마는
몇년 후 토르플 1단계에 합격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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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결과가 있네요 ㅎ 고생했어요

감사합니다. 이걸 발판으로 더 성장해야죠 ㅎ

곰돌이가 @ayogom님의 소중한 댓글에 $0.012을 보팅해서 $0.011을 살려드리고 가요. 곰돌이가 지금까지 총 4569번 $51.781을 보팅해서 $57.989을 구했습니다. @gomdory 곰도뤼~

제가 알고있는 스티미언 분들중 누구보다 대단하신거 같아요
바쁘실텐데 ㅎㅎ 화이팅입니다

아닙니다. ㅎㅎㅎ 화이팅 !

곰돌이가 @sweetpapa님의 소중한 댓글에 $0.012을 보팅해서 $0.011을 살려드리고 가요. 곰돌이가 지금까지 총 4571번 $51.802을 보팅해서 $58.014을 구했습니다. @gomdory 곰도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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