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탕에서

in #kr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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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좋게 일어나서 개운하게 사우나를 갈 계획이었다. 결국 밤을 새고 얼얼한 눈빛으로 7시에 사우나에 입장했는데 뭐야 이 시간에 왜이렇게 사람이 많아? 단체로 새벽반 사우나 동호회 모임이라도 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낯선 세계네. 온탕에 좀비처럼 앉아있다가 정신도 맑게 할겸 냉탕을 한번 들어가볼까.. 몇 번의 고민 끝에 들어갔다. 차갑다. 찌릿하게 올라오는 한기를 참으며 겨우 버티고 섰다.


냉탕에서 쉽사리 상체를 물 속으로 맡기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제자리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스카이콩콩형이 있고, 역시 제자리에서 360도로 계속 회전하는 회전목마형이 있다. 내가 회전목마라면 냉탕 저 끝에 있는 아저씨는 스카이콩콩이었다. 언제부터 뛰고 계셨을까. 물 아래로 들어갈 용기를 얻기 위해 최대치의 몸의 열기를 내뿜어보자는 저 마음, 내가 잘 알지. 아저씨는 계속 뛰었고, 나는 계속 돌았다. 우리는 언제 물 아래로 힘차게 솟구쳐 내려갈 수 있을까. 아저씨가 내려가면 나도 내려갑니다, 라는 마음을 품고 있었지만 아저씨도 같은 마음이었는지 우리는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갑자기 배불뚝이 아저씨가 냉탕으로 등장하더니 한쪽 발을 담그기가 무섭게 물 아래로 사라졌다. 피부 세포가 마비되어서 아무 감각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으로 의심될 정도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단 몇초만에 목적을 달성한 배불뚝이 아저씨는 다시 물개처럼 표면 위로 뛰어올라 냉탕 밖으로 퇴장했다. 뒤이어 갈비뼈 앙상한 백발노인이 냉탕을 향해 걸어왔다. 할아버지 여기 엄청 추워요. 아마 뼈 시릴텐데요. 라는 염려가 무색하게 백발노인은 입수와 함께 표면 아래로 사라졌고 심지어 심해 깊숙한 곳에서 팔굽혀펴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역시 신선처럼 뛰어올라 퇴장했다. 스카이콩콩 아저씨는 세수를 힘차게 몇 번 하는가 싶더니 결국 기권하고 나가버렸다. 홀로 덩그러니 남겨진 냉탕에서 나도 전의를 상실했고 백기를 들고 말았다. 어떤 사람에게는 몇 번을 굳게 결심해도 어려운 일들이 왜 누군가에게는 그토록 쉬운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하며 무의식적으로 거울 앞에 있는 것을 탁! 탁! 털어내서 얼굴에 촤아악! 아우씨, 누가 스킨에다가 소주를 부어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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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싸구려 스킨...
초록색이었나요??ㅋ

네ㅋㅋ 목욕탕 스킨 납품처는 고정불변인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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