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왕권이냐 신권이냐?

in #kr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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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왕권이냐 신권이냐?

조선시대 시작은

대종 이방원이나 공신 정도전이나 썩은 고려를 버리고 백성들을 더 살게 하려고 조선을 세웁니다. 그렇지만 정치에 대한 신념은 달랐습니다.

강한 왕권을 원한 이방원: 강하고 좋은 왕이 등장하면 나라는 번성하고 백성들은 편해집니다.

강한 신권을 원한 정도전: 나쁜 왕이 등장하며 백성들은 너무 힘들어집니다. 그래서 정치는 사대부가 하고 왕은 상징적이 되면 좋습니다.

왕권시대에 신권정치 즉 엘리트 정치를 생각한 정도전은 대단하지만 이방원에게 철퇴를 맞고 사라집니다. 대종 이방원의 왕권정치로 세종의 시대가 열리고 신권은 약해집니다. 그렇지만 세종의 맏아들인 문종의 죽음과 어린 단종의 즉위로 왕권은 약해지고 신권은 강해집니다.

할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세조는 강한 왕권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단종을 대신해 자신이 왕이 됩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세조는 자신을 도와준 공신들에게 너무 잘해줍니다. 할아버지 태종은 공신들을 다 정리했는데 세조는 태종보다는 대가 약했나 봅니다.

말하자면 강한 왕권을 추구해서 거사를 치렀는데 결과는 신권이 강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세조 이후 왕권은 강해진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권력투쟁

몇 명의 강한 왕이 있기는 했지만 조선의 정치 시스템은 신권 정치입니다. 훈구파와 사림이 패권쟁탈전을 했습니다. 성종, 숙종, 정조를 빼고는 다들 힘없는 왕들 이였습니다. 조선의 정치 시스템 자체가 강한 왕이 나오지 않는 한 왕권이 약해지는 시스템이었나 봅니다.

정도전이 시스템을 잘 만들었나 봅니다. 왕권은 약해지고 신권은 강해졌습니다. 그런데 신권이 강해졌다고 문제가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근본적인 문제인 부정부패는 없앨 수 없습니다. 정도전은 사대부의 정직과 명예를 믿었습니다. 그렇지만 간과한 것이 있습니다. 사람의 이기심입니다.

왕권 정치하에서는 신하들끼리 왕에게 충성 경쟁을 하게 되고 신권 정치하에서는 패거리 정치가 됩니다.

왕권정치하에서는 충신이 필요하고 신권정치하에서는 정치꾼이 필요해 집니다. 정치공학이 필수입니다. 조선 후대가 되면 붕당이 큰 문제가 됩니다.

대통령중심제나 분권제나 내각책임제나 다 문제가 있습니다. 나라가 처한 상황에 따라 정치체재를 운영해야 하는 것이지 더 좋은 시스템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제일 좋은 시스템은 좋은 지도자와 좋은 시민정신입니다.

정도전은 자신이 만든 시스템에 의해서 발생한 결과에 몇 점을 주고 싶을까요? 그리고 민주주의 정치시스템은 어떻게 평가할까요?

사대부가 없어진 세상에서 모든 사람들이 투표를 하고 촛불을 들고 반대도 하고..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변한 것 같해도 변하지 않은 것들이 있습니다.

좋은 지도자가 등장하지 않는다면 국민들은 아주 피곤하다는 겁니다. 왕권이건 신권이건!!!

매번 우리들에게 좋은 선택권이 주어지지는 않지만 최선이 아니라면 차선이라도 택해야 합니다.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거나 자포자기해서는 안되는데...

꽅통들은 항상 존재한다

박사모의 등장이 흥미롭습니다. 그들은 왜 그러는지 박근혜가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미친 것인지, 돈을 받아서 그런 것인지...정상은 아닌 것 같은데

항상 박사모같은 꼴통들은 존재했고 앞으로도 존재할 겁니다. 중요한 것은 박사모의 추세입니다. 젊은 박사모들은 어떻게 발생하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보수 꼴통도 있기는 하지만 숫자가 많아지면 안될텐데!

한국만의 증상은 아닙니다. 독일에는 네오나치가 있고 미국에는 KKK가 있고 어느 나라던 극우보수는 존재하지만 숫자의 문제입니다.

좋은 시스템

지속적으로 좋은 지도자와 행동하는 시민정신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번도 그런 시대가 없었는데 지금이라도 할 수 있을까요?

당 태종의 예를 빌리면 초심을 잃지 말고 지속적으로 새 인재를 영입하는 겁니다. 고이면 썩으니까!

당 태종 이세민

한, 송, 명, 청···. 오랜 중국사에 수많은 왕조가 나타났다 사라졌지만, 그 중에서 중국인들이 가장 자부심을 느끼는 왕조는 당이다. 원이나 청에 비해 “한족의 왕조”라는 정체성이 있고, 송나라 못지않은 문물을 이룩한 데다 명나라 이상의 국위를 떨쳐, 당시 이슬람제국과 함께 세계 2대 초강대국으로 군림했던 왕조가 당이기 때문이다. 그런 당나라를 만든 주인공이 다름 아닌 태종 이세민이다. 그의 연호인 ‘정관(貞觀)’에서 딴 “정관의 치”는 오랫동안 신화적인 이상정치의 시대인 “삼대(三代)” 다음 가는 최고의 태평성대로 일컬어졌다.

정관의 치

형제의 피를 뒤집어쓰며 옥좌에 앉은 당태종 이세민. 그러나 그가 “중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군주”로 곧잘 평가되는 이유는 그런 과정을 거쳤을지언정 훌륭한 정치를 폈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는 우선 교만하지 않았다. 28세라는 한창 나이에 천하의 주인이 되었으니 마음을 턱 놓고 권력과 사치에 잠길 만도 하건만, 태종은 반대로 근검절약을 생활화하고 황족과 대신들도 이를 본받도록 했다. 또 사람 쓰는 일에 신중했고 교묘했다.

한고조나 명태조는 천하를 손에 넣기까지 함께 애써온 개국공신들을 남김없이 숙청해서 그들이 황실을 위협하지 못하게 했다. 반대로 조선의 세조는 공신들을 극진히 대접하다가 훈구파들이 좌지우지하는 세상을 만들어 놓았다. 당 태종은 공신들을 변함없이 존중하는 한편, 문벌은 약해도 실력이 뛰어난 인재들을 계속 발굴해서 원로 공신들과 균형을 맞췄다.

정관정요 (貞觀政要)' : 당태종의 정치적 언행 중에서 후세의 귀감이 될 만한 것들을 따로 편찬해 묶은 책이다.

자칫 낡은 제왕학을 떠올리기 쉽지만, 지도자의 자질을 가늠하는 기준으로는 천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유효하다.

현군이라는 착각에 빠져 자신의 생각에만 의지하게 된다면 신하들은 군주의 과실을 바로잡아 주려고 하지 않게 된다. 그러면 나라가 위태롭지 않기를 바란다 해도 그대로 되지 않아, 군주는 그 나라를 멸망시키고 망국의 신하 또한 자기 집안을 보존하지 못한다."

정관 3년에 당 태종은 신료들의 간언이 없는 것을 이렇게 나무랐다.

"만약 내 결정에 옳지 못한 점이 있으면 누구든 강력하게 자기의 견해를 주장해 철저하게 논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근자에는 무엇이든 내 명을 따라 비위를 맞추기에 급급할 뿐이다. (중략)내 말에 동의한다는 서명이나 하고 그 문서를 공포하는 정도의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런 정도의 일을 위해서라면 무엇 때문에 우수한 인재를 발탁해 정무를 위임하는 절차를 밟을 필요가 있겠는가."

이에 대한 조리 있는 답은 정관 15년의 같은 힐문에 신하 위징(魏徵)이 한 말일 것이다.

"아직 충분히 신임을 받지 못하면서 간하면 듣는 쪽에서 자기를 헐뜯는 것이라고 오해한다. 또 신임을 받으면서 간하지 않는 것은 국록을 도둑질하는 놈이다' 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중략)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을 다물고 넘어가는 것은 어느 경우에나 윗사람과 동료를 거스르지 않고 동조함으로써 그날 그날을 무사히 넘기고자 하는 까닭입니다."

충언은 '정관정요' 에서 인용된 포숙아의 말 같다.

패자로 대성한 제(齊)환공이 관중.포숙아.영척과 크게 잔치를 열고 축하를 빌자 포숙아가 일어나 말했다.

"아무쪼록 공께서는 내란이 일어났을 때 국외로 망명하시어 고생하던 때의 일을 잊지 마시고, 관중은 싸움에 져 노나라에 잡혀가 죽음을 기다리던 때를 잊지 말고, 영척은 가난할 때 수레 밑에서 여물을 먹이던 때를 잊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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