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도덕경: 왕필과 하상공

in #kr6 years ago

노자 도덕경.jpg

노자 도덕경: 왕필과 하상공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어떤 학자도 명확하게 밝혀내지 못했지만, 대략 추정하기는 적어도 춘추전국시대(BC 700년~BC 200년)에 일반사회에 널리 퍼져 있었다는 사실은 모두들 인정합니다.

대단하죠! 이렇게 어렵고 지혜로운 책을 2500년 전부터 읽었다는 것이…

우리가 지금 공부하고 있는 이 노자도덕경은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이

통용본이라고 해서 "왕필의 주석본"을 보고 있는 것이죠. 이것 말고도 "하상공 주석본"등 많은 주석본이 있습니디만, 일단 왕필의 주석본을 기준으로 삼겠습니다.

그 다음에 몇 년 전에 한 무덤에서 발견한 "백서본"이 있습니다.

백서본은 비단에 씌어진 것으로 고대무덤에서 발굴된 것이랍니다.

그리고 곽점본이라고 죽간(대나무 조각)에 씌어진 것이 다른 무덤에서 발견 되었는데,

전문 학자들에 의하여 연구된 바에 의하면,

각각의 노자 도덕경 내용이 조금씩 차이가 나며, 이를 시대별로 구분하면

노자 도덕경의 내용이 어떻게 변천하여 왔으며,

원래 내용을 나름대로 추정해 볼 수가 있다고 합니다.

왕필본이 대략 기원후 230여년 시대의 것이라면,

백서본은 대략 BC 200여년 전후의 전국시대 말기의 것이라고 하며,

곽점본은 대략 BC 500~BC 400년경의 춘추전국시대 중기의 것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왕필본을 기준으로 해서,

백서본은 대략 400여년 앞서 있는 것이라면,

곽점본은 백서본 보다 200년이상 앞서 있으니깐,

곽점본이 왕필본보다 약600여년이 앞서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왕필본의 경우는 원래의 원본 내용보다도 많은 개작과 변화가 있을 것으로 판단 됩니다. 실지로 많은 학자들이 연구 검토했으며, 이 결과 노자 도덕경은 노자라는 한사람의 어느 도인이 저술한 글을 바탕으로, 도가 계통과 그외의 여러 학파가 오랜 세월 동안 조금씩 추가하거나 개작했다는 설이 점점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 옛날에는 종이도 없고, 단순히 대나무나 헝겁에다 스스로 혼자서 베껴 쓰는 과정에서 스스로 글 옆에 개인적인 착어를 붙힌 것이 대대로 전래되어 내려 올 수도 있어서, 그러한 내용들이 왕필 시대까지 전해 내려온 것일 수도 있죠.

노자 도덕경의 내용 중에서 전후 연결이 안되는 문장들 중에 후대에 덧붙혀진 글들이 제법 많다고 하는군요.

펌 네이버 무인지인

왕필 (王弼, 226~249)

중국 위나라의 학자. 하안과 함께 위·진의 현학의 시조로 일컬어진다. 의와 이의 분석적·사변적 학풍을 창설하여 중국 중세의 관념론체계에 영향을 끼쳤다.

자 보사. 산둥성 출생이다. 풍부한 재능을 타고난 데에다 유복한 학문적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일찍 학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관료인 하안 등에 그 학식을 인정받아 젊은 나이에 상서랑에 등용되었고, 하안과 함께 위·진의 현학의 시조로 일컬어진다.

한나라의 상수(象數: 卦에 나타나는 형상과 변화)나 참위설(예언학의 일종)을 물리치고 의와 이의 분석적·사변적 학풍을 창설하여 중국 중세의 관념론체계에 영향을 끼쳤다. 체용일원의, 무를 본체로 하고 무위를 그 작용으로 하는 본체론을 전개하여 인지나 상대세계를 무한정으로 보는 노자의 〈무위자연(無爲自然)〉에 귀일함으로써 현실의 모순을 해결하려고 하였다. 저서인 《노자주(老子註)》 《주역주(周易註)》는 육조시대와 수·당에서 성행하였으며, 현존한다.

왕필은 아주 단명한 천재입니다. 23살까지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10대에 지금 많은 사람들은 이해도 못하는 노자 도덕경 해석을 하고 주석을 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어렵다는 주역도 해석을 하고 주석을 달았습니다.

왕필은 세상이 어려웠던 유비, 조조가 살던 삼국시대를 지나 위나라가 통일을 했을 때 사람입니다. 23살까지 살면서 중국 중세의 관념론체계에 영향을 왕창 끼쳤습니다. 아직도 동양사람들 의식에 부처와 노자만큼 영향을 끼친 사람은 없는 것 같은데 왕필은 노자의 생각을 보통사람들에게 전하려고 왔다 간 사람 같습니다.

그냥 내 느낌에 노자가 환생했다가 빨리 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뜻을 이해 못하자 한번 인심을 써서 왕필이라는 몸을 빌려 왔던 것 같습니다. 아니라면 10대에 어떻게 도덕경과 주역을 해석하고 주석을 달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하상공: 성씨도 이름도 없이, 황하 강변에 살던 사람

한 문제(BC180-BC157)가 황제로 있을 때 일이다. 노자의 도덕경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사람이 있었다. 난해한 도덕경의 미묘한 뜻을 능히 해석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이 원근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 사람은 황하 물가에서 풀로 엮어 만든 작은 모옥 속에 살고 있었다. 그 사람이 어느 곳에서 왔는지, 그 사람의 성씨가 무엇인지 아무도 몰랐다. 그래서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 사람을 '황하 가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에다 존칭인 공(公)을 붙여 '하상공'(河上公)이라고 불렀다.

황제의 부름을 물리치다

한나라 초기에는 사회적으로 도가인 '황노지학'(黃老之學)이 널리 숭상되던 시기였다. 한문제는 신하들에게 노자의 '도덕경을 공부하도록 널리 권장하였다. 그러나 도덕경 중에는 해석하기 난해한 미묘한 문장들이 많아 하상공을 제외하고는 당시 사람들 중에 이를 능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문제는 사신을 파견해서 하상공에게 가르침을 청하였다. 황제의 이러한 요청에 대해 하상공은 뜻밖에 오만불손하게도 사신에게 "노자 도덕경은 지고무상한 학문이다. 나에게 가르침을 구하려고 하거든 응당 황제가 친히 오도록 하라." 한다.

문제는 사신이 돌아와서 하는 보고를 듣고 몸소 하상공을 찾아갔다. 문제는 하상공을 만나서 "무릇 천하의 토지는 모두 제왕의 토지가 아님이 없고, 천하의 사람들은 모두 제왕의 신하와 백성이 아닌 자가 없다. 그런데 너는 황제인 나를 이렇게 하찮게 대우하고 있다. 너는 스스로 세상에서 가장 잘난 체 하는구나!"한다.

책상다리하여 공중으로 솟아오르다

하상공은 황제의 이 말을 다 듣고 난 후, 빙그레 미소를 지으면서 보라는 듯이 두 손바닥으로 몇 번 손뼉을 친다. 그리고 땅 위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은 채로 천천히 공중으로 솟아오른다. 마침내 땅으로부터 2미터 정도 솟아올라 멈추고는 공중에서 황제인 문제를 굽어보면서 "나는 지금 위로는 하늘에 접촉하지 않았고, 밑으로는 땅에 닿지 않았다. 어찌 당신의 신민이라 할 수 있는가?"한다.

문제는 공중에서 책상다리하고 앉아있는 하상공을 올려다보면서 서둘러 수레에서 내려와 엎드려 무릎을 꿇고 절을 하면서 "나는 황제이지만 국가를 위해 세운 특별한 공덕이 없습니다. 다만 돌아가신 황제의 아들로 태어나 황제 자리를 이어 받았을 뿐입니다. 내 자신은 재주가 부족하고 배움이 얕아서 한 국가의 주인으로서의 중책을 맡기조차 어렵습니다.

설사 현실이 이러하더라도 내가 국가를 다스리는 와중에서 여전히 마음속으로는 도술을 흠모합니다. 그래서 도덕경을 애독하고 있습니다. 다만 재주와 지식이 모자라서 읽어도 많은 곳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원하옵건데 도인께서는 가르침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한다.

이 말을 들은 하상공은 한문제에게 비단으로 엮은 두 권의 책을 전해주면서 덧붙여 한마디 한다. "당신이 다만 마음을 정심히 하고 연구하는 자세로 이 두 권의 주해서를 읽는다면 도덕경의 모든 의문점들이 풀릴 것이다. 그러면 더 이상 당신은 내 도움이 필요 없을 것이다."

도덕경 주해서를 네 사람에게만 전하다

하상공이 한 문제(漢文帝 : BC180-BC157)에게 도덕경 주해서 두 권을 전해주면서 “내가 도덕경에 관한 이 주해서를 저술한 지 이미 1,700여 년이 되었다. 그 사이 다만 세 사람에게 전했다. 현재 황제인 당신에게 전하면 네 번째다. 당신은 이 책을 함부로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말라.”하였다.

말을 마치자 하상공은 돌연 공중으로 꺼진 듯 종적도 없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잠깐 사이에 짙은 안개가 사방에 가득 차 천지를 분간하기 어려웠다. 이에 문제도 그곳을 떠났다. 문제는 도덕경 주해서를 얻고 그 책들을 귀중히 여겨 애지중지하였다. 그리고 일심으로 공부하여 도덕경의 심오한 뜻을 투철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출처] 列仙小傳- 하상공(河上公) (1)|작성자 don0860

역사와 신화

왕필은 역사 속에 살아있는 분이고 하상공은 신화 속에 사람입니다. 하상공이 이야기했듯이 도덕경은 아무나 읽는 책은 아니였습니다. 왕 같은 지도자들을 위한 책이고 잘못 읽으면 '무위(Flow)를 허무로 이해하는 우' 를 저질를 수 있습니다.

왕필은 왕과 지도자의 갈 길을 도덕경을 해석/주석하면서 남겼다고 생각합니다. 왕은 모든 것을 소유했기에 더 욕심을 부릴 필요가 없는데 탐욕을 합니다. 그래서 백성들을 힘들게 합니다.

21세기에 사는 우리들에게 도덕경은 자유와 주인의식을 많이 이야기 합니다. 도덕경은 인생을 자신이 주인으로 살라는 가르침이 담겨져 있는데 정신적인 노예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읽으면 허무만 보일 것 같습니다.

자연/우주와 조화롭게 생활하고 우주의 움직이는 에너지를 받아들이고 우주의 비어있음을 즐기고…모든 것이 자연스러워지려면 치열하게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Sort:  

사람에 대해 포스팅해주셨네요. 저도 좋은 글 많이 쓰겠습니다.~~

Coin Marketplace

STEEM 0.30
TRX 0.11
JST 0.033
BTC 64275.05
ETH 3147.49
USDT 1.00
SBD 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