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상반기, 우리의 세상 그리고 음악

in #kr6 years ago

함께 듣고 싶은 음악과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

2018년 한국사회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한국사회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적폐청산, 페미니즘, 평화, 지방 선거 같은 이슈들이 일관되게 가리키는 방향은 무엇일까. 오래전부터 대중은 국가의 정상화와 개혁을 열망했다. 그렇다면 국가의 정상화와 개혁을 열망하는 대중의 욕망, 그 기저에는 무엇이 있을까. 안전하고 평범하고 편안하게 살기 어려운 사회에서 대중은 민주주의를 열망하고, 부자 되기를 열망했다. 그리고 대중은 이제 국가가 무엇을 해야 하고, 나에게 무엇을 해주어야 하는지 묻는다. 자기 계발로 성공하기 어렵고 부자 되기도 어려운 사회에서 나의 삶을 책임지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나라다운 나라에서 안전하고 평범하고 편안하게 살고 싶은 대중의 욕망과 문재인 정부의 집권은 무관하지 않다.

그렇다면 대중음악계는 세상의 흐름과 변화를 어떻게 옮겨 담고 있을까. 날마다 수없이 쏟아지는 음악에서 세상의 변화만큼 분명한 문제의식과 주제의식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한국의 대중음악은 오래도록 사랑과 이별 밖의 이야기를 하기 어려웠다. 자신의 눈에 비친 세상을 정직하게 드러내기 위해 용기가 필요한 세상에서는 고개를 숙이고 입을 닫기 마련이다. 다행히 결의와 신념으로 노래하며 노래를 예술운동으로 끌고 간 이들이 시대를 말하고 저항을 외쳤다. 그리고 이제는 큰 용기와 신념이 없더라도 자신에게 비친만큼 말하고 노래한다. 아직 안전하고 평범하고 편안하게 살만큼 좋은 세상은 아니라고. 여전히 불편하고 슬프고 힘들다고.

여전히 불편하고 슬프고 힘든

음악은 정치가 아니고, 모든 음악이 운동이 되지는 않아 여전히 세상에 대해 말하는 음악은 적다. 그럼에도 세상의 변화는 안개비처럼 음악과 음악인을 적신다. 그리고 2018년 상반기 몇 장의 음반은 꿋꿋이 세상을 직시했다. 촛불이 꺼지고 대통령이 바뀐 세상. 애쓰고 있으나 크게 달라지지는 않은 세상을 기록했다. 예술은 가장 빨리 말하고, 가장 늦게까지 말한다.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소셜미디어와 예술은 다르다. 예술가는 이슈가 터지고, 논란이 이어지고, 끝난 것처럼 보일 때까지 생각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모두가 다른 이야기를 할 때 비로소 예술가는 말하기 시작한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정권의 적폐를 아직 다 청산하지 않았고, 사람들의 눈물과 분노는 제각각 아물지 않았다.

그래서 올해 나온 음반 가운데 재즈 뮤지션 이선지의 음반 [Song Of April]과 정수민의 음반 [Neoliberalism], 전송이의 음반 [Movement of Lives]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의미 있는 발언이 모두 재즈계에서 나왔는데, 이선지는 예전의 4월과 같을 수 없는 4월을 연주했다. 이선지의 4월이 세월호만의 4월은 아닐지라도 슬픔과 참혹함과 분노를 다 끌어안은 음악은 계속 기억해야 할 세월호의 심연만큼 깊고 깊다. 모두 잊고 오늘에 취해 있을 때, 누군가는 돌아서 눈물을 훔친다. 예술가는 그 한 사람을 위해 쓰고 노래하고 연주함으로써 기억하게 하고 되묻게 한다. 무엇이 끝났고, 끝나지 않았는지. 끝날 수 있는지, 끝낼 수 있는지.

정수민의 음반도 묵직하다.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과 전복의 의지가 매력적인 소비와 전시의 욕구 앞에서 꺾여버린 세상에서 정수민은 홀로 신자유주의와 사회주의를 말한다. 그는 좌파 운동의 언어로 강렬한 선동을 외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가 바꿔버린 세상, 사회주의의 열망이 꺾여버린 세상을 재즈의 언어로 기록함으로써 그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도록 돕는다. 특정 정치 세력에 대한 열광과 지지로는 답할 수 없는 이야기이다. 철학과 정치만 감당해도 좋을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세상은 이대로 좋은가. 우리의 내일은 어떻게 이어져야 하는가 하는 이야기를 정수민 역시 탄탄한 음악 언어로 드러내면서 비판적인 음악의 예술성을 확장한다. 감상해도 좋을 음악만이 비판을 말할 수 있지는 않다. 하지만 감상해도 좋은 음악은 더 오래 더 멀리 퍼질 수 있다.

재즈 보컬리스트 전송이가 노래한 세월호와 촛불의 노래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박근혜 체제는 박근혜의 구속만으로 청산될 수 없고, 촛불은 서둘러 추억이 되어서는 안된다. 갈수록 희미해질 세월호의 기억을 새롭게 쌓고, 삶의 촛불을 오순도순 켜야 하는 지금. 노래는 소금처럼 기억을 방부한다. 음악으로 인해 과거는 계속 현재가 된다.

그리고 어떤 음악가들은 오늘의 세월호, 오늘의 박근혜가 있는 곳으로 간다. 서촌의 궁중족발과 민주노총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콜트콜텍 기타 노동조합 등의 싸움에 노래로 연대하는 이들이 있다. [새 민중음악 선곡집 Vol. 3 – 쫓겨나는 사람들]을 만들고 쫓겨난 가게 앞에서 노래하는 이들, 그저 제자리로 돌아가고 싶은 이들을 외면하지 않는 음악인들. 그들은 촛불을 끄지 않았고, 여전히 노래가 있어야 할 곳을 지킨다. 덕분에 멋진 노래, 매끈한 노래만큼의 균형과 무게가 지켜진다.

사실 올해 상반기 한국 대중음악계 최고의 화제는 방탄소년단이다. 그리고 가장 큰 인기를 끈 뮤지션은 아이콘, 장덕철, 모모랜드, 멜로망스, 문문, 청하 등의 아이돌/팝 뮤지션들이다. 아이돌/팝 뮤지션은 세대교체 중이고 팬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웰메이드임을 부정할 수 없는 상반기 히트곡들과 달라진 순위의 면면은 흥미롭다. 한국의 아이돌/팝 제작 시스템은 나날이 정교해진다. 음악의 완성도와 제작/마케팅의 사례이자 대중의 반향이라는 점에서 인기 순위는 더 많은 이야기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음악의 역사는 순위와 클릭수만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1972, 9, 강아솔, 김성수&이건민, 김페리, 김해원, 나원주, 데이 오브 모닝, 데카당, 사이먼 도미닉, 샤이니, 서수진, 세이수미, 송영주, 씨피카, 아시안체어샷, 에고펑션에러, 이루리, 자우림, 정준일, 종현, 지바노프, 최정수 티니 오케스터, 크랙 비트, 키스누, 프라이머리, 플러그드 클래식, 히피는 집시였다 등의 음반을 들어야 하는 이유이다. 종현의 안타까운 부고와 몇몇 TV 음악 프로그램, 페미니즘이 깃들고 바꾼 음악과 음악인들의 글과 말과 음악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지 않으면 안된다. AI 스피커, 온라인 음악 플랫폼과 서비스, 음악 제작사에 대해서도 언급해야 한다. 다만 이 지면에서 지금 다 이야기 하기는 어려우니 남은 2018년 하반기에 마저 이야기 하자. 음악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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