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댓글조작’은 얼마나 교묘하게 진행됐나, 이은진의 ‘댓글부대

in #kr6 years ago

“이 작품이 편 가르기 아닌 건강한 논쟁의 장 되길 바라”

지난 4월 터진 ‘드루킹 여론 조작 사건’에 이어 자유한국당 전신인 한나라당이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해 2006년부터 댓글 조작에 나섰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등 논란이 뜨겁다.

댓글 조작을 둘러싼 논란은 지난 2012년 대선에서도 뜨거운 화두로 떠오른 바 있다. 당시 대선을 앞두고 국정원 댓글 공작 의혹이 터져 나왔다. 경찰은 국정원의 댓글 공작 흔적을 못 찾았다는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며칠 뒤 치러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는 당선됐다. 하지만 이후 경찰이 아무런 흔적을 찾지 못했다고 발표했던 국정원의 댓글 공작은 사실로 드러났다. 이후 국정원이 민간인을 동원해 댓글 공작을 펼쳤고, 기무사 등 군 정보기관의 개입 사실도 드러났다.

극단 ‘바바서커스’가 선보이는 연극 ‘댓글부대’는 댓글조작 논란이 뜨거웠던 지난 2013~2015년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해당 시기를 바탕으로 이 연극은 민간인으로 둔갑한 일베 혹은 평범해 보이는 청년이 어떻게 댓글을 조작하고, 인터넷 커뮤니티를 잠식해 사람들을 교묘하게 뒤흔들어 놓는지 상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작품을 연출한 이은진 연출가는 댓글조작 이야기가 2018년 현재에도 이어져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지난 정권 국가 기관의 개입, 드루킹 사건, 한나라당 시절 매크로 프로그램의 사용 등이 언론을 통해서 우리에게 계속 노출되고 있다”며 “연극 ‘댓글부대’와 현실의 구체적인 사건은 다를지도 모르나 본질적으로 상통하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의미를 설명했다.

연극은 장강명 작가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연극이 댓글 조작과 관련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이 연출가를 만났다.

다음은 이은진 연출가의 1문1답이다.

장강명의 ‘댓글부대’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2016년도 초반, 극단에서 ‘속물과 잉여’에 대한 스터디를 진행하다가 장강명 작가님의 ‘표백’을 읽게 됐다. 젊은 청춘들의 자살을 소재로, 유일한 무기인 ‘생명’으로 세상에 복수하는 내용이 참 섬뜩하면서도 슬펐다. 이후 장강명 작가님의 책을 연달아 읽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댓글부대’ 였다. ‘댓글부대’를 읽으며 ‘표백’보다도 더 큰 충격과 공포감을 느꼈다.

어떤 지점들 때문이었나.

‘댓글부대’를 읽을 당시에는 지난 정권의 국정원 여론조작사건에 대해 덜 드러났을 때인데, 소설 속에서 묘사한 인물·세력·사건들이 너무나 ‘실제로 있을 법’해서 ‘이렇게 무서운 세상에 살고 있구나’ 하는 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런데 무엇보다 너무 재밌었다. 앉은 자리에서 책을 다 읽었고 인물들이 너무 생생하게 그려져서 이걸 연극으로 꼭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대본 앞에 ‘본 작품은 2013~2015년 사이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고 명시한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일단 소설의 내용과 현실을 비교해 봤을 때 그 시기쯤이라고 파악했다. 시기를 파악해야 하는 이유는 장면을 구체화할 때 반드시 필요한 사항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공연의 배경음악이나 인물들이 내뱉는 농담, 유행어 등의 선택에 있어서다. 그런데 공연에 관객들이 볼 수 있게 그 시기를 명시한 이유는 ‘가까운 과거’라는 것이 주는 모호성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과거에 일어나서 현재 시점에서는 종결된 것일 수도, 아니면 새로운 형태로 진화한 것일 수도 있다’는 뉘앙스를 주고 싶었다.

극 속에 1세대 댓글부대가 나오고, 이어서 2세대가 새롭게 진화된 형태로 등장한다. 극중 댓글부대 모습은 어떤 형태로 진화되고 있나.

이 극에서 ‘댓글부대’는 한층 교묘한 방식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조정한다. 어떻게 하면 한 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 분노와 적대감, 혐오를 일으킬 수 있는지 잘 알고 그 마음을 이용한다. 수치심, 자존심, 두려움을 건드리며 인식의 사각지대를 간파하여 그 틈을 파고드는 것이다.

말씀을 들으니, ‘일베’로 느껴지는 찻탓캇, 삼궁 등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들어가서 하는 행동들이 떠오른다.

현실에선 어떨까. 소설 ‘댓글부대’를 읽은 후 공연화를 결심하며 나름 열심히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들을 ‘눈팅’ 했다. 무엇이 사실·진실인지 무엇이 거짓·가짜인지 구분하기 힘든 경우가 많았다. 지방선거를 앞둔 현재 믿었던 후보에 대한 말들이 사실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고, 미투 운동으로 수면 위로 올라온 이야기들이 본질이 흩어진 채 개인에 대한 비방, 공격 혹은 페미니즘 자체에 대한 갑론을박으로 이뤄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보다 나은 시스템, 제도, 문화적 인식의 변화를 위한 논쟁이나 토론보다는 니편 내편으로 편 가르기 하는 것을 더 많이 볼 수 있었다. 아마 의도적으로 한발 떨어져서 보았기에 이런 식의 판단도 가능했던 것이지, 만약 개인적인 유대감이 더 있었다면 감정적으로 분노했을 거라 짐작된다. 실제로 온라인이 아닌 현실에서는 감정적으로 쉽게 동요된다. ‘댓글부대’에서 묘사된 2세대 댓글부대원들의 전략은 불완전한 개인이 가진 모순과 감정을 건드리는 교묘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여성의 신체를 비하하는 단어나 여혐 소재 등이 등장한다. 연극은 이러한 소재를 에둘러 표현하지 않고 정면 돌파해 ‘날 것’ 그대로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극 자체는 재밌었지만 한편으로는 불편했다.

이 지점은 여러모로 민감한 사항으로 2017년도 초연을 준비할 당시도 그랬지만, 재공연을 준비하면서도 지속적으로 크게 고민했던 부분이다. 이 작품에는 ‘여성혐오’의 시선이 기본적으로 들어가 있다. 사실 그것이 주된 소재 중 하나다. 사회를 주도하는 것은 ‘남성’이고, ‘여성’은 소비적인 존재로 등장한다. 초연 당시 이 부분에 대해 지적받은 바도 있다. 재공연을 준비하면서 이 부분에 대해 여러모로 깊이 고민했다. 어떤 부분을 더 강조해야 할지, 어떤 부분을 더 순화해야 할지 많은 고민을 하였고, 무대화하는 과정에서 여러 시도를 했다.

그런 시도가 이행된 부분은 어디인가.

초연 때도 그랬지만, 저희는 원작과는 다르게 주요 인물인 ‘기자’를 여성으로 바꿨다. 그리고 이 기자가 소속된 신문사의 ‘편집국장’도 여성으로 대체했다. 우리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인정할 만한 자리에 앉은 자들을 남성에서 여성으로 대체했다. 원작과 다르게 기자를 여성으로 대체하면서, 찻탓캇과의 인터뷰에서 여성의 입장을 옹호하는 지점을 첨가할 수 있었다. 극의 흐름상 기자가 제보자를 상대로 논쟁을 지속할 수는 없다는 것을 각색을 진행하면서 알 수 있었지만, 그래도 여성으로 대체되었기에 찻탓캇 혹은 그 일행과 대조되는 입장을 전달 할 수 있는 스탠스가 생겼다. 그리고 이런 선택이 의도와는 다르게 ‘여성과 남성의 대결’로 상황을 극대화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라 짐작하고 있다.

맞다. 여성 기자에게 댓글조작을 폭로하는 남성 댓글부대원의 모습 등에서 살짝 그런 뉘앙스가 느껴졌던 것 같다. 하지만 해당 장면이 남녀대결로 고착화됐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더 중요한 것들이 보였다.

작품 속에서 전반적으로 ‘여성’은 ‘남성 주도자’들에 의해 철저히 우스워지거나 도구화된다. 왜냐하면 이 극에서 사건을 주도하는 핵심인물들은 여론조작을 주도하는 세력들이기 때문이다. 작품의 ‘시점’에서 봤을 때, 찻탓캇의 폭로로 묘사되는 장면이 다수다. 20대 청년 일베 이용자인 찻탓캇의 관점에서 봤을 때의 ‘온라인상에서 진보적인 여성 커뮤니티의 모습’이 묘사된다. 나름 의식 있는 여성들이 그들의 시점에서는 ‘이익집단’으로 보여 진다. 경제적 이익만이 아닌 정신적 이익도 거기에 포함된다. 진보적인 생각을 ‘나는 남들과 다르다’는 식의 우월감이라고 파악한다고 느끼는 것이다. 사실 그들의 눈에 사회는 다 ‘이익집단’의 결합체다. 그 중 최고 결정체가 ‘여성’으로 구성된 온라인 커뮤니티라고 보는 것이다. 어쩌면 저편에서 보는 ‘여성’에 대한 인식이랄까, 그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볼 수 있다. 그리고 저희는 이것이 중요한 인식의 첫 단계라고 본다.

‘저편’에서 보는 여성의 인식도 느낄 수 있었고, 일베이자 민간인이며 댓글부대원인 찻탓캇이 좀 새롭게 보이는 부분도 있었다.

극중 팀-알렙 멤버는 3명이다. 작 중 폭로를 주도하는 찻탓캇과 팀-알렙의 브레인 삼궁, 그리고 컴퓨터 프로그램 천재 01査10이 그들이다. 이들은 일베 이용자들이며, 여론조작을 실질적으로 진행하는 20대 청년들이다. 저열하고 불쾌한 인물들이다. 개인적으로 현실에서 이런 인물들을 마주하고 싶지 않다. 극 안에서 보면 이 셋은 다른 길을 간다. 01査10은 여전히 사회부적응자로, 삼궁은 제2의 이철수로 거듭난다고 봤다. 찻탓캇은 좀 달랐다. 어떤 면에선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질문해보는 청년이었다. 그래서 그 대가를 치른다고 생각했다. 찻탓캇은 어쩌면 자신이 가진 재주로 그냥 잘 살아보고 싶은 게 꿈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저기 꼭대기로 어떻게든 올라가보려는 삼궁과는 좀 달라 보였다. 그래서인지 ‘그 대가의 크기가 20대 청년 혼자 치르기엔 부당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더구나 대중의 마음을 조정하며 여론을 조작하는 당사자가 (작 중)실제 생활에서는 애인의 마음도 얻지 못 한다. 아마도 찻탓캇에 대한 이런 연민이 어느 정도 작용한 게 아닐까 싶다.

댓글부대가 보여주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 작품은 시민사회의 적에 대한 이야기다. 어떤 교묘한 방식으로 여론조작이 이루어졌으며, 어떤 논리로 그것이 가능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지고 올 수 있을지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을 보여주고 있다. 여론조작이라는 게 뭘까. 어떤 의도를 가지고 사람의 마음을 어디로 쏠리게 하는 것인 것 같은데, 소설 ‘댓글부대’를 읽을 당시 공포감이 들었던 이유 중 하나가, 나의 생각과 감정이 ‘나도 모르게’ 어떤 방향으로 조정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극중 상황과 현실의 구체적인 상황은 다르겠지만 본질적으로 상통하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부디 이 작품이 편 가르기가 아닌 건강한 논쟁의 장이 형성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연극 ‘댓글부대’는 ‘권리장전2017-국가본색’ 참여작이자 2018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레파토리 선정작이다.

작품은 오는 6월 15일부터 24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볼 수 있다. 김정호, 정연심, 하동준, 강력, 김보나, 곽정환, 박승현, 민경희, 김지원, 김원종 등이 출연한다. 극본·연출 이은진, 협력연출 심재욱, 원작 장강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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