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에 대한 생각들

in #kr6 years ago

오늘은 스승의 날이었습니다. 스승의 은혜를 생각해보고 그에 감사의 마음을 가져보는 날이지요.

스승의 날은 1958년 5월 청소년적십자 단원이었던 충청남도 지역의 강경여고 학생들이 현직 선생님과 은퇴하신 선생님, 병중에 계신 선생님들을 자발적으로 위문한데서 시작되었다. 이를 의미있게 여긴 청소년적십자 충남협의회는 1963년, 9월 21일을 충청남도 지역의 '은사의 날'로 정하고 사은행사를 실시했다. 1964년부터 '스승의 날'로 불리기 시작했으며, 이해에 날짜도 5월 26일로 변경되었다.

1965년부터는 우리 민족의 가장 큰 스승 세종대왕의 탄생일인 5월 15일로 바뀌었다. 또한 1966년부터 대한적십자사에서 스승의 날 노래를 방송 매체에 보급하면서, 노래와 함께 행사가 전국적으로 퍼지게 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 박정희 정권 아래, 1973년 3월 모든 교육관련 기념 행사가 '국민교육헌장선포일'로 통합되면서 '스승의 날'은 1981년까지 금지되었다. 이후 1982년 5월 제정된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9년만에 부활했고, 법정기념일로 지정되어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다.
출처 : 다음백과

역사적으로 오래된 기념일로 생각했는데 1965년부터라니 생각보다 역사가 찗은 기념일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중간에 9년간 금지되기도 했네요. 근데 5월 15일이 세종대왕의 생일에서 가져왔단 사실도 처음 알았네요. 뭔가 더 의미롭게 다가오는데요, 여태 그걸 알려주신 분이 없었음에 안타깝네요.

스승의 날은 저에게 좀 불편한 날입니다. 학창시절엔 선생님에게 무언갈 해드려야만 할 거 같은데 집안형편도 그렇고 전혀 학교에 발길을 하지 않는 부모님이었기에 눈치를 봐야하는 날이었죠. 막상 교사가 되어선 무언가를 바라는듯이 보일까봐 조심스러웠고 무언갈 받으면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긴장된 하루를 보내기도 해서 불편했습니다. 돌려보내면 그에 화를 내거나 서운해 하는 분들이 있기도 했거든요. 더군다나 김영란법 시행 이후로는 더더욱 불편한 날이 되어버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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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교시 마치고 쉬는 시간에 반 아이들이 와서 반에 일이 생겼다며 같이 가자고 해서 급히 간 교실입니다. 초코과자 몇개로 케잌같이 꾸미기도 하여 '스승의 은혜' 노래를 불러줍니다. 고맙기도하고 쑥쓰럽기도 한 장면입니다. 남은 시간도 지금처럼 화목하게 지내자는 말이 와닿습니다. 되도록 화를 내지 않고 아이들의 입장이나 상황을 들어보고 문제 상황을 같이 해결해 나가려 하고 있는데 이런 저의 노력이 '화목함'을 느끼게 해주었나 봅니다. 지난 번에 포스팅한 내용 중의 백재연 대표의 말에서 공감한 부분을 실천해 나가야 겠다고 다짐해 보았습니다.(아이들이 잘못된 것이니 아이들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 아이들과 소통, 협력해서 함께 그 문제 상황을 해결해야한다는 것 말이죠.) 좀 더 아이들 말에 귀기울이고 믿어주고 보듬어 줘야 겠습니다.

근데 학생들 중 몇몇은 "스승의 날 축하합니다"라는 말을 하더군요.(칠판에도 그런 글귀가 보입니다.) 문득 축하해야하는 날일까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마치 생일을 축하하듯 말이죠. 축하받을 날이 아니다 라며 감사하다고 하는 게 맞지 않을까라며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모두 수긍해 주던데요. 감사와 축하에 대한 혼용이 좀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축하라 하면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나 스스로의 어떤 축하받을 일을 목적에 둔 거 같기 때문이죠. 너무 깊이 생각하는 건 아닐까 싶으면서도 왠지 그래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는 게 좋을 거 같아서 였죠. 시간이 짧았고 분위기를 해칠까 싶어 간단히 이야기 하고 말았는데요. 다음에 다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더군요. 어버이날 편지에도 어버이날을 축하한다는 말을 써서 불편했었거든요.

학생회에서 주관하여 전교생의 짧은 글들이 담긴 롤링페이퍼와 종이로 만든 카네이션을 받았습니다. 학생회에서 모든 교사에게 주는 것으로 개인 대 개인이 아니라 김영란법에 저촉되지 않을 겁니다. 아침에 라디오를 들으며 출근하는데 개인 대 개인으로 주는 것은 종이로 접은 카네이션도 안된다고 하더군요. 너무 깐깐한 법해석과 적용이 마치 교사를 잠재적 범죄자로 바라보는 듯해 찝찝합니다.

오후에 학생과 교사가 어우러져 배구시합을 했습니다. 서로 땀흘리며 웃고 하는 사이 누가 감사를 하는 입장이고 누가 감사를 받아야하는 입장인지 하는 것은 머릿 속을 떠나버렸습니다. 그냥 다 같이 학교라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축제를 즐기는 느낌이었죠. 스승의 날이 그냥 이런 축제의 날로 인식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스승이라는 의미에 대한 약간의 생각도 더 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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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그래피를 그려주신 @dorothy.kim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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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edol님 학교는 이야기 들을 때마다 거기 학생들이 살짝 부러워요. ^^

저도 우리 학교 아이들이 많이 부러워요. 우리 학교 교사 말고 학생이고 싶은 때가 있습니다. 하하..

즐거운 스승의 날을 보내셨군요~ 옛생각이 절로 나네요 ^^

그럼요. 모두에게 축제인걸요. ^^ 전 학창시절을 돌이켜 봄에 딱히 스승의 날이라고 즐겁고 그렇지 않았던 거 같아서 옛생각이 나진 않는데요. @edwardcha888 님은 즐거운 스승의 날 기억이 있으시나봅니다. 부럽습니다. ^^

요즘처럼 교권이 바닥을 쳐도 대개의 교실에선 선생님 교실같은 풍경이겠지요?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가 너무 황폐화 되어 있는 현장이 아니고서는 대개의 교실은 저런 모습일 것입니다. 교사에 대한 고마움도 있지만 스승의 날 그 자체가 축제로 받아들여직도 하니까요. 아직은 교권이 어느정도 인정받고 있는 곳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교권이라는 것이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닌 교사와 학생들 간의 관계와 노력으로 형성, 유지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

다행입니다. 요즘 부쩍 상처받고 오시는 선생님들을 많이 뵙다보니...

어쩔 수 없이 상처받을 수 밖에 없는 자리인 듯 합니다. 그리고 그 상처를 위로받고 치유받아지기에 머물 수 있는 자리 이기도 하지요.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은 적 없는 것처럼" 이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

그렇지요. 역시 어느 자리에서나 건강해야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럴려면 성장할 때부터 그런 환경에서 자라야할 텐데... 상처란 것이 대물림 되는 것도 많아서.

그 고리를 끊어내는 것은 성장과정에선 어렵지만 그렇게 고리를 끊어낼 수 있는 씨앗이 만들어지는 시기가 자라는 때가 될 것 같습니다. 해서 선생님들은 정말 어려운 자리에 계신 듯 합니다. 감사드립니다.

'축하'라는 단어가 '감사'의 자리에 잘못 쓰이면 씁쓸함을 남기기도 하는군요. ㅠㅠ

어버이날도 감사라는 말 대신 축하한다고 해버리는 모습을 보면 그 의미가 퇴색되는 듯해 안타깝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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