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하다는 착각』 - 능력주의는 정말 공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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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을 읽었다. 얼마 전 읽었던 김동춘의 『시험능력주의 - 한국형 능력주의는 어떻게 불평등을 강화하는가』와 상당히 맞닿아 있는 내용이라 더욱 흥미롭게 읽었다. (자세한 내용은 시험능력주의 - 한국형 능력주의는 어떻게 불평등을 강화하는가 (김동춘)에서 찾아볼 수 있다.)

두 책 모두 능력주의와 학력주의가 현대 사회에서 어떻게 불평등을 심화시키는지를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철학책이라고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지만, 실제로는 미국의 정치사와 사회 구조에 대한 이야기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능력주의(meritocracy)의 한계가 있다.

능력주의 자체는 분명 장점이 있다. 국가는 공정한 경쟁의 기회를 제공하고, 개인은 노력과 실력을 통해 성취를 이루며 그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받는다. 이것이 능력주의가 그리는 이상적인 사회다.

하지만 공산주의가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극복하지 못했던 것처럼, 능력주의 역시 시간이 지나며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을 낳았다는 것이 샌델의 주장이다. 능력과 도덕적 정당성이 연결되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성공한 사람은 자신의 성공을 온전히 자신의 노력과 재능 덕분이라고 믿고, 실패한 사람은 자신의 실패를 개인의 책임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정치에도 영향을 미쳤다. 샌델은 많은 진보 정당들이 노동자의 정당에서 전문직과 고학력 엘리트의 정당으로 변모하면서, 노동계층과 중산층의 삶을 충분히 대변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그 결과 엘리트에 대한 분노가 누적되었고, 브렉시트나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같은 정치적 사건도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능력주의의 또 다른 문제는 아메리칸 드림의 붕괴다. 미국의 SAT를 비롯한 대학 입시 제도는 원래는 누구에게나 기회를 주기 위한 장치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오히려 상류층의 지위를 대물림하는 시스템으로 기능하게 되었다. 이제는 노력과 재능만으로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현실과 점점 멀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보다 더 큰 문제는, 능력주의가 성공한 사람들에게 도덕적 정당성까지 부여한다는 점이다. 교육이야말로 사회 문제 해결의 만병통치약이라는 식의 권고는 사회경제적으로 낮은 지위의 집단을 더욱 부정적으로 평가하게 만들고, 능력주의 이데올로기를 강화할 위험성을 높인다.

또한 샌델은 능력주의 윤리의 핵심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성공은 자신의 노력과 재능의 결과이며, 내 성공은 내 덕이고 타인의 실패는 그들의 책임이라는 사고방식은 공동체 의식을 약화시키고, 보상의 정당성에 대한 윤리적 문제를 낳는다.

'하면 된다'는 말은 한때 희망의 메시지였지만, 오늘날에는 오히려 실패한 사람을 향한 조롱처럼 들리기도 한다. 능력주의는 어느새 양날의 검이 되어 버렸다.

흥미로운 점은 능력주의(meritocracy)라는 용어 자체가 처음부터 긍정적인 의미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용어를 처음 사용한 Michael Young은 1958년 이미 그의 저서에서 능력주의 사회의 어두운 미래를 풍자적으로 묘사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능력에 따라 계급이 나뉜 사회에서는 계급 간 격차가 더욱 커진다. 상류층은 자신의 성공을 능력과 노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라고 여기며, 더 이상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그 자리에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믿는다.

샌델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말한다.

능력주의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하층민들이 스스로에 대해 자긍심을 가질 근거마저 지워 버렸다.

이 문장이 책 전체를 가장 잘 요약한다고 느꼈다.

능력주의는 단순히 불평등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불평등을 도덕적으로 정당화한다. 또한 사회를 유지하는 수많은 노동의 존엄성을 낮추고,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실패의 책임까지 개인적으로 떠안긴다.

책의 마지막에서는 공동체 의식의 회복과 노동의 존엄성 회복 등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다만 구체적인 제도적 해결책에 대해서는 다소 추상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런 점에서는 오히려 김동춘의 『시험능력주의』가 한국 사회를 대상으로 보다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두 책을 함께 읽어보면 능력주의가 어떻게 오늘날의 불평등을 만들어 왔는지, 그리고 왜 많은 사람들이 '공정'이라는 말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는지를 훨씬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권은 지금의 우리나라 정치인들, 그리고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꼭 한 번 권하고 싶은 책이기도 하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샌델이 현대 정치의 변화를 분석하는 대목이다. 그는 많은 진보 정당들이 노동자의 정당에서 전문직과 고학력 엘리트의 정당으로 변모하면서 노동계층과 중산층을 충분히 대변하지 못하게 되었고, 그 결과 엘리트에 대한 반감과 정치적 불신이 누적되었다고 설명한다.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당선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 사회와 미국 사회를 단순히 같은 선상에서 비교할 수는 없다. 역사적 배경도 다르고 정치 제도 역시 크게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분석은 오늘날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만드는 지점이 있다. 능력주의와 학력주의가 사회 전반을 지배하면서, 정치 역시 점점 더 고학력·전문직 중심의 담론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계층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되고 있는지는 한 번쯤 고민해 볼 만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는 세대 간 정치적 갈등이나 엘리트에 대한 불신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그것만으로 모든 현상을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능력주의가 정치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생각해 보는 하나의 중요한 관점을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이 책의 의미는 충분하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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