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용 장군의 국경선 밤이 오다) 28 1.4 후퇴 그리고 경기도 광주로

내려다 보이는 전곡마을에서는 중공군과 아군 수색대간 싸움도 중단되고 조용했다. 이윽고 1950년을 보내는 마지막 섣달 그믐날이었다. 날이 저무니 영하 15도의 냉기가 일선고지를 얼어 붙게 했다. 장병들은 내일 아침 정월 초하룻날 특별부식으로 북어조림과 단무지가 배급된다는 소식을 듣고 좋아 하고 있었다. 매일 고추장만으로 식사를 해왔었다.

저녁 6시 반경이었다. 전곡 북방 산기슭에서 불이 번쩍 번쩍 하더니 포성이 들렸다. 아군 진지로 포탄이 쏟아져 날아 왔다. 중공군들은 야포 사격에 이어 박격포와 기관총을 사격하더니 보병의 대부대가 남으로 밀려 내려왔다. 한탄강 나룻가에 배치된 제7연대 제1대대의 박격포, 후방에 있는 사단 야포가 적을 향하여 응사했다. 산이 울리고 호가 흔들렸다.

아군의 치열한 포사격과 기관총 사격에도 불구하고 적은 계속 전진해 왔다. 1951년 정월 초하루 새벽 2시경 잘 훈련된 중공군의 야간 공격앞에 한국군은 무너지고 있었다. 이것이 1.4 후퇴의 시작이었다. 미군의 엄호하에 의정부 남방으로 철수한 제7연대는 서울 북방 창동에서 적을 기다리고 있었다. 빙판이 된 신작로 위에 보따리를 짊어진 피난민이 홍수처럼 남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주한유엔군사령관겸 미제8군 사령관 워커 중장은 차량사고로 이 세상을 떠나고 후임으로 부임한 신임 주한유엔군사령관 및 미제8군사령관 리지웨이 중장은 의정부 노상에서 끝없이 쏟아져 내려오는 수십만의 피난민을 보며 “20세기의 비극”이라고 이야기 했다. 그는 이를 역사의 증거로 남기기 위해 손수 사진을 찍기도 했다.

창동에서 재편성을 하고 적을 기다기로 있던 제7연대 제1대대는 1951년 정월 초사흘 상부의 명에 의해 서울을 지나 한강을 건너 경기도 광주군 광주면 경안리로 철수하였다. 광주주민들은 피난짐을 꾸리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이대용이 읍내로 들어가자 주민들이 모여들어 “장교님 유엔군이 어디까지 후퇴합니까?”, “우리들은 어느 선까지 피난가야 합니까?”하고 물었다. 경찰서와 대한부인회 그리고 면직원들이 군인들의 숙소를 주선해주었다. 이대용은 어떤 집의 사랑방을 배정받았다.

미군부대가 서울 부근에서 중공군을 지연시키고 있었으므로 광주는 하루정도 안전한 위치였다. 이대용은 연락병 홍하사의 배낭속에서 진중 일기책을 꺼내 최근 상황을 적어 내려가고 있었다. 그러고 있을때 갑자기 어느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 4살 정도되는 여자아이를 데리고 이대용을 찾아 왔다. 약 28살 정도 될까 하는 나이였다. 이 여인은 자신을 대한부인회 광주군 부회장이라고 소개하면서 내일 아침 새벽에 피난을 떠나는데 어디까지 가면 되겠는가하고물어왔다. 이대용은 자신이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을 이야기 해주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이 여인의 이름이 임송월이며, 일찍이 서울 진명여고를 나와 국민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가 어떤 문학청년과 결혼을 해 지금 데리고 온 여아를 낳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문학청년이었던 남편은 명이 짧아 3년전에 폐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하면서 유일한 낙이 남편이 남겨놓은 원고를 보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대용이 쓰고 있는 진중일기를 한번 보기를 청했다.

이대용으로 부터 일기장을 받아 든 여인은 ‘신령 화산의 사투’ 편과 ‘검불랑을 넘으며’ 그리고 ‘압록강에서 대동강까지’를 읽었다. 40분 여 이대용의 진중일기를 읽던 임송월은 “장교님, 군인들이 참 고생하시는 군요. 이것을 꼭 책으로 출판하세요”라고 하면서 당부했다.

임송월은 한시간 이후 다시 이대용을 다시 찾아왔다. 자신은 친정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는데 친정 아버지가 이대용이 이야기를 듣더니 보고 싶다고 했다고 하는 것이다. 이대용은 피곤했으나 임송월의 간절한 청에 못이겨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커다란 기와집 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친정 부모들은 엿과 깨강정을 수북이 가지고 와서 먹으라고 권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전쟁 이야기를 듣고 싶어했고 또 어디까지 피난을 가야 하는지 물어왔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 이대용은 밤이 늦어서야 숙소로 돌아왔다. 길가에는 피난민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집이란 집은 모두 피난민들로 가득차 있었다. 미처 들어갈 곳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길가에서 불을 피워놓고 몸을 녹이고 있었다. 또 어떤 이들은 밤을 새워가면 눈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잠시 눈을 붙인 이대용은 동이 틀 무렵 다시 일어났다.

중대는 다시 철수명령을 받았다.

국경선에 밤이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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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야기는 보는 입장에선 재밌으니 들려주라고 했겠죠.
피난 하기도 힘들었을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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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very awesome works sir.
i support always your works @wisdomandjustice

이대용 장군의 진중일기가 빛을 발할 수 있었던건 알게모르게 임송월님은 당부가 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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