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용 장군의 국경선에 밤이 오다) 12 북한군 여자 의용군 출신 김복희의 죽음steemCreated with Sketch.

in #leedaeyong5 years ago (edited)

제 3대대장 조한섭 소령이 전사하고 제1대대 부관 권소위가 수류탄으로 자결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이대용은 마음을 추스릴 사이도 없이 지칠줄 모르고 달려드는 중공군을 상대해야 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중공군들은 약 1500 정도의 거리에서 접근해오고 있었다. 이대용의 제1중대는 제5중대의 뒤를 따라 고개를 내려가고 있었는데 제5중대의 첨병소대가 들판에서 다른 중공군 부대와 충돌했다. 제5중대는 이 적을 뚫으려고 했으나 중과부적이었다. 멀리서 바라보고 있었던 이대용은 제 5중대의 전사자와 부상자가 늘어나는 것을 보았다. 5중대를 증원하려 했으나 그것도 쉽지 않았다. 기진맥진한 병사와 부족한 실탕으로 무리한 싸움을 해보아야 희생자만 더 날뿐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대용의 1중대 후미를 따라오던 제2대대와 제3대대의 패잔병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버렸다.

이대용은 제5중대장에게 연락병을 보내 적과 이탈할 것을 권한 후에, 제1중대를 이끌고 동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중공군의 장거리 기관총탄을 피해가며 회목동 지역을 향했다.

한시간 정도 중공군의 추격을 따돌리며 남쪽으로 내려가던 중 제2중대를 만났다. 제2중대장 박중위는 22살의 청년장교로 육사 8기생이었으며 육사 7기였던 이대용보다 한 기 아래였다. 제2중대도 중곤군의 타격을 받아 피해가 심각했다. 압록강에 진출했을 때는 모두 200여명 정도였으나 지금은 97명에 불과했다.

이대용의 중대에는 여전히 북한의 여자 의용군으로 있다가 포로가 되어 이쪽으로 동화되어 버린 이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김복희, 이윤실, 박필숙, 최숙자 등등이 칼빈총을 들러메고 각 소대장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그 중에 평양출신의 이윤실을 허벅다리에 가벼운 총상을 입고 붕대를 감고 있었다.

오후 늦게 임영순 소위가 지휘하는 사단 수색대 10여명을 만나서 합류를 했다.

제2중대를 앞세우고 제1중대가 뒤에 서서 다시 행군을 시작했다. 극성령 쪽으로 향해 가면서 좀 지나가다가 오막살이 초가집에서 60살 먹은 노인을 만났다. 그 노인은 국군 제19연대의 1개 대대가 오늘 아침에 적에게 포위당했다고 걱정하면서 극성령 쪽으로 철수해갔다고 하는 이야기를 했다.

마침내 극성령 부근에 도착했다.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극성령 위에는 중공군 수천명이 진을 치고 있으며, 오늘 아침 19연대 1대대가 그들과 교전끝에 패배하여 분산되고 말았다고 알려주었다.

상황을 살펴보니 중공군의 포위를 뚫고 나갈 방도가 전혀 없었다. 그래서 주민들도 위험해서 가지 않는다는 절벽길을 따라 가기로 했다. 중공군이 뒤에서 따라 붙었으나 워낙 산세가 험해서인지 따라오다가 포기하고 물러서고 말았다. 약32시간 동안 물 한모금 마시지 못하고 강행군을 계속한 후 정수동에 도착해서 밥을 지어 먹을 수 있었다. 압록강을 떠난지 닷새재 되는 날 이었다.

식사가 끝나는대로 태평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태평까지는 70리길이 남았다. 죽을 힘을 다해 태평 10리를 남겨놓고 시골 동네에 들어갔다. 주민들에게 태평에 국방군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이틀전에 뙤놈들이 들어왔다고 했다. 결국 태평으로 가는 것은 포기하고 구장을 향해 행군을 했다. 중간에 중공군과 간헐적으로 전투를 했으나 병력은 무사했다. 사지를 가누기도 힘들 만큼 피로한 상태에서 하루에 150리 길을 행군했다.

가면 갈수록 동서남북 할 것없이 중공군 천지였다. 이대용은 도저히 빠져 나갈 방도가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계속 행군을 했다. 적의 추격을 계속 받으면서 전투를 했다. 중공군의 습격을 받아 제2중대는 30여명의 병력을 상실하고 사단 수색대 10여명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도 없었다. 적의 습격으로 이대용도 제2소대장을 잃었다.

중공군의 추격을 막기 위해 제2소대와 같이 주력을 엄호하던 사단 수색대 임소위가 적탄을 맞고 쓰러졌다. 이때 김복희가 임소위를 끌고와 지혈을 했으나 곧 바로 숨지자, 제2소대와 함께 싸우다가 허벅다리에 관통상을 입고 출혈과다로 전사했다는 것이다. 숨을 거부면서 제1중대장 이대용 대위를 한번 보고 죽었으면 원이 없겠다고 울고 있었다고 한다. 김복희는 북한군 여자 의용군으로 포로가 되어서 국군과 함께 전투하다 사망했던 것이다. 이전투에서 북한 괴뢰군으로 있다가 포로가 되어 싸우다가 제1중대에 동화되어 버린 귀순병이 더 용감하게 전투를 하다가 3명이 전사했고, 중대의 식사운반과 포탄운반을 하며 종군하던 민간인들도 총을 들고 싸우다가 2명이 전사했다는 보고를 들었다.

이들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중공군의 포위망은 점점 더 강화되고 있었다.

국경선에 밤이 오다

1, 2, 3, 4, 5, 6, 7, 8, 9, 10, 11


Sponsored ( Powered by dclick )
남양유업 이제는 주주들에게까지 손을 쓰고 있나;;;;

내가 이러려고 국내기업에 투자했나 자괴감이 들어;;;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네요;;;

Sort:  

눈물이 쏟아진다

Posted using Partiko Android

잘 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내내 무거운 마음으로 읽게되었네요.
순국하신 분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Being a long time, I always find this historic piece of yours interesting even though I needed to use translator before I could understand it.

Coin Marketplace

STEEM 0.31
TRX 0.11
JST 0.034
BTC 64332.82
ETH 3146.25
USDT 1.00
SBD 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