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영양제/노자규

사랑 영양제
출처 : 노자규의 .. |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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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 영양제 

“어제 제가 차려놓은 음식
맛있게 드셨어요 "

“국이 좀 짜지는 않았나요”

“당신 좋아하는 고기 넣은
잡채도 했는데 맛은 어땠나요 “

“ 혹시
그리움으로 흐려진 두 눈으로
당신의 사진을 바라보던
저를 보셨나요 “

어제는 퇴근하고
시장에 들러 까만 비닐봉지를
손가락마다 걸고
집으로 오는 길이 무척 힘들었답니다
당신이 있을 땐
이런 무거운 걸 더는 일이 없었는데...
라며
당신의 고마움이 새삼 생각나더라고요

제가 힘들어할 때면
언제난 당신은 이렇게 말했죠

“오늘이 당신의 제일 젊은 날이야
용기를 잃지 마... “

오늘도 난 그런 당신이
남기고 간 수첩을 읽고 있습니다

우리 수진이 태어난 날부터
우리 가족의 하루를 매일 써 내려간
당신의 고마움을 뒤늦게
느끼게 된 제가
참 이기적이고 못된 아내였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답니다

수진이가 목욕탕에 가서
문신한 아저씨를 보고선
“아저씨는
왜 그림을 몸에다 그렸어요”라고
묻는 바람에 놀란 당신이
수진이 아빠가 아닌 척 딴짓하며
눈치만 살피고 있는데
씩 웃어 보이곤
다시 샤워를 하던 그 사람에게
수진이는 이렇게 또 말을 걸었다죠

“아저씨는 종이가 없어요
그림은 스케치북에 그려야 하는데... “

옆에서 눈치만 보다 어쩔 수 없이
"죄송합니다 "
한마디 하고선 수진이를 업고 나온 얘기

배 나온 아저씨를 보고선
“아저씨 이 배 안엔 뭐가 많이 들었어요 “
우리 아빠가 그러는데
많이 먹어 배가 나온 그래요.. "

“아냐 나이 들면 다 나오는 거예요”
라는 아저씨에게
“그럼 우리 아빠에게 물어볼까요 “라며

아빠를 크게 부르던 통에
다시는 수진이랑
목욕 안 간다며 투덜거리는 이야기
참 많은 지난 추억의 이야기들이
이 수첩에 남겨져있었네요

제가 퇴근하다 뱅소니 차에 치여
긴급히 수술을 하러
들어가면서 문이 닫히려는 순간
간호사가 건네준
양발 한 켤레를 손에 쥐고선
당신이
조금이라도 날 알아볼 수 있었을 때
“사랑한다고 ,,,
말을 못 해준 게 너무 미안하다며
밤새 저의 체온이 담긴 양말을 껴안고
눈물 흘려다는 말을 끝으로
당신의 이야기는 끝이나버렸습니다

병실에 누워 있는
나를 보곤 안심한 당신이
이제 더 이상 흘릴 눈물이 없는.
마지막 눈물이길 기도하며
늘 발이 시려 여름에도
양말을 두 켤레씩 신던 저를 위해
깨어나면 신겨주려고
집에 가서 빨아온다며 새벽길을 나서다
저와 똑같은 교통사고로
당신을 먼저 떠나보내야만 했지요

죽어가면서도 그 양말만은
손에 꼭 쥐고 놓지 않았던 당신

“여보 나왔어... “ 란 그 말에
양말을 쥐고 있든 손은
스르륵 펴지고 있었죠

당신이 떠난
그 자리에 떨어져 있던 이 수첩이
지나던 트럭 안으로 떨어져
물어물어 주인을 찾아
제 손에 쥐어주고 가던 그때
당신이 떠나기 전
제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구나
그래서 이게 나에게 온 거였구나.....
생각했었죠

지나고 보니 저는
당신이 남겨준 시간 위를 걷는
참 행복한 여자였구나 싶더라고요

이 수첩을 하나씩 넘기며 읽어간지가
벌써 2년이 넘어갑니다

오늘 밤
한 장 남은 마지막 이 페이지를
다 읽고 나면
당신 이름위에 두줄이 끄여지는걸
차마 볼 수 없었기에
세 번이나 갔다 결국 되 돌아와 버린
당신의 사망신고를 하려 합니다
긴 고독과의 동거도
끝내면서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냐구요
당신이 내게 준
사랑 영양제를 이년이나 먹어잖아요

“참!
어젯밤 당신이 식사한 상을 치우며
수진이가 묻더라고요 “

“엄마는 아빠 생각하면
얼굴이 먼저 떠올라
이름이 먼저 떠올라 “라며

“얼굴이 먼저 떠오르면
보고 싶은 사람이고
이름이 먼저 생각나면
잊을 수 없는 사람이라더군요 “

“당신은 제가
뭐라고 대답했을지 궁금하죠..... “

저는....

“둘 다........... “라고 말했답니다

죽음은
생명의 끝이지
관계의 끝은 아니었기에....

펴냄/노자규의 골목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