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특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관심을 얻을 수 없다.

in #steemchurch6 years ago

아시다시피, 필자는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훈련사역을 하고 있다. 그동안 교회에서 성령 충만 이라는 말은 많이 들어보았어도, 성령내주라는 말은 별로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성령 충만 이란 말은 성령이 계시기는 한데 잠잠하고 계시니까, 성령을 확 깨워서 확실한 느낌이 오도록 한다는 투의 말로 유통시키고 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성령을 무슨 애완견쯤으로 아는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안에 계시기는 한데, 잠을 주무시는지 아니면 기력이 쇠하였는지 모른다고? 그리고 드럼과 키보드, 전자악기를 동원하여 분위기를 띄우고 목이 터지라고 찬양을 불러서 감정이 격앙이 되면 성령 충만해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마치 성령님을 나이트클럽이나 노래방도우미로 생각한다는 것인가? 기가 막히는 일이다. 필자가 말하는 성령내주는 성령이 안에 거주하시는 증거가 사도행전의 사도들에게 나타난 것과 동일한 능력과 은사, 변화와 열매가 맺어야 인정한다. 물론 대다수의 우리네 교회에서는 세대주의 신학자들의 주장에 동조하여, 지금의 시대는 사도시대와 같은 성령의 역사는 더 이상 없다고 못을 박고 있는 분위기이다. 그러나 그런 말은 교단신학자들의 주장이지 예수님은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없다. 어쨌든 필자가 성경대로 증거가 있어야 인정한다는 말에 딴죽을 걸 사람들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사도행전의 사도들이나 제자들처럼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말만 그럴듯하게 하고,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필자는 사기꾼목사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우려할 분위기는 아니다. 필자가 충주에서 영성학교를 열고나서 4년여의 세월이 흘렀으며 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러나 아직까지 전재하다. 그동안 수백 명의 사람들에게서 귀신을 쫓아내고 정신질환과 고질병을 치유하면서 기도훈련을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수많은 기적이 일어났지만, 귀신을 쫓아내며 고질병을 치유하는 영적 능력을 지닌 성령의 사람들은 손이 꼽을 정도로 적다. 그게 필자가 마주한 딜레마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사람이 되려면 하나님의 마음에 쏙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수준이 아니다. 교회의 예배의식에 성실하게 참석하고 십일조를 드리고 새벽기도에 나오고 교회에서 시키는 각종 봉사에 순종하는 정도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네 교회에도 수많은 성령의 사람을 배출하였을 것이다. 교회에서 요구하는 종교의식이나 희생적인 신앙생활을 가장 열심히 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바로 목회자일 것이다. 그러나 목회자라고 성령의 능력을 드러내는 이들을 보았는가? 그 이유는 그 정도의 신앙행위로는 턱 없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종으로 삼으시는가? 그런 사람들이 바로 성경의 위인들이다. 그래서 성경의 위인들을 성경에서 찾아 찬찬히 살펴보겠다.

먼저 아브라함부터 살펴보자. 아브라함은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 전혀 무지한 시대에 때어났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명령에 자신과 가족들의 목숨을 걸고 방랑길을 떠났다. 당시 국가의 치안이 없던 시절에 울타리를 쳐주었던 친족의 곁을 떠난다는 것은 목숨을 거는 무모한 행동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백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죽여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에 군소리 없이 즉각 시행에 옮긴다. 이처럼 그는 하나님의 어떤 명령이라고 즉각 순종했다. 아마 죽으라면 죽음에 옮길 정도였을 것이다. 그의 아들인 이삭이나 야곱, 요셉으로 이어지는 위인들도 심상치 않은 믿음의 소유자였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모세가 성경에 등장한다. 모세도 범상치 않은 인물이다. 그는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지나쳐서 애굽 병사를 죽이고 도망쳐서 80세의 호호백발 할아버지가 되어서야 비로소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하나님과 직접 대면한 인물(비록 뒷모습이었지만)이었으며, 하나님의 친구라는 명예로운 호칭을 얻었으며 온유한 성품을 따라갈 사람들이 없었다는 평을 들었다. 다윗왕은 어떤 인물인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와 더불어 가장 추앙하는 인물이다. 그가 거인 골리앗과 싸운 이야기는 놀라움을 넘어 기이할 정도이며, 그가 하나님을 얼마나 기뻐하였고 친근하게 지냈는지는 시편에 보면 잘 드러나 있다. 다윗처럼 하나님과 깊고 친밀하게 교제한 인물이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12제자들도 이에 못지않게 범상치 않은 인물들이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예수님이 지나가시다가 호명을 받았다. 베드로는 가족과 직업, 부모를 헌신짝처럼 내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으며 다른 제자들도 별 차이가 없다. 초대교회의 교인들은 로마당국의 박해로, 수많은 이들이 잡혀서 감옥에 갇혀 고문을 당하다가 순교로 이 땅을 떠난 이들이 부지기수이다. 그들은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고향과 재산과 가족을 버리고 지하묘지에서 숨어 살면서 생을 마쳤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위에서 언급한 성경의 위인들만, 이렇게 어렵고 힘든 신앙의 수준을 요구하셨을까? 그리고 우리네 교회는 주일에 한 시간짜리 예배의식에 참석하는 것을 골자를 하는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하면, 천국은 기정사실이고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도우심과 축복을 받아 형통한 삶을 살게 되는가? 예수님은 육체의 사람에서 성령으로 태어난 성령의 사람들만이 천국에 들어간다고 콕 집어서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지금의 신앙의 태도를 보이면 죄다 성령의 사람이 된다는 게 아닌가?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대하16:9)

하나님은 누구나 공평하게 대우하시며 동일한 원칙으로 다스리시는 분이라는 것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위의 성경의 위인들이 보여주는 믿음을 수준을 보여야 하나님께서 요긴하게 사용하시는 종의 반열에 들 수 있지 않겠는가? 성경의 위인들은 하나님의 명령이라면 목숨을 거는 것은 물론이고 어떠한 손해와 희생도 기꺼이 감수하였다. 또한 하나님과 깊고 친밀하게 사귀는 것에 모든 것을 바쳤다. 그러나 우리네 교인들은 하루에 한 시간 이상 기도하는 사람을 찾기 힘들고, 매일 30분 이상 성경을 읽는 사람도 드물다. 그러나 예수님은 깨어서 항상 기도하라고 명령하셨고, 사도바울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요구하셨다. 솔직히 말해서, 틈만 나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전심으로 성령을 간구하는 기도의 습관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기본적인 조건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정도의 믿음을 보이지 않는 이들이 거의 대부분의 우리네 교인들의 민낯이다. 이런 교인들이 모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님의 명령에 즉각 순종하겠는가? 우리네 교회에 사도행전의 성령의 사람들을 찾을 수 없는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이런 수준의 믿음을 보이는 사람들을 찾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목숨을 다하고 전심을 다하여서 자신에게 마음을 가 있는 사람들을 찾으신다. 그런 사람들이 바로 성경의 위인들이며, 이 시대의 우리네 교회는 전심으로 하나님께 마음을 두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성령의 사람이 없는 이유이다. 그러므로 당신의 믿음이 아주 특별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실 것이다. 그래서 필자의 말이 믿기지 않는다면, 심판대에 서는 날에 깨닫게 될 것이다.

크리스천 영성학교, 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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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at post. Thanks for sha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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