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님은 왜 우리를 도와주시지 않는가?

in #steemchurch5 years ago

‘구원받을 자 아무도 없겠네요. ㅠㅠ 나의 힘으로 다 해야 할 것 같은데, 성령의 도우심은 어디에 있죠? 내가 행동하지 않으면 성령은 아무소용 없나요? ㅠㅠ’

위의 글은 필자의 칼럼 ‘당신이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이유’라는 칼럼에 어느 회원이 댓글로 남겨놓으신 내용이다. 이 분의 글만 가지고서는, 어떤 심정으로 댓글을 썼는지 짐작하기가 힘들다. 성경에는 성령께서 우리를 도와주는 영이라고 했는데, 우리가 지옥에 가는 걸 구경만 하고 계시는 분이 아닐 것이라는 부정적인 생각으로 올렸는지, 아니면 이렇게 천국에 가기가 힘들다는 푸념으로 올린 것인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어니면 두 가지가 함께 드는 심정인지도 모른다. 필자의 글을 반박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 근거로 예수님의 말씀을 도배하다시피 달아놓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필자의 글에 공감하기가 어렵다. 왜 그런지 아는가? 그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 필자처럼 말하는 이를 거의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교회의자에 앉아 있는 교인들은,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구원하시기로 예정하셨다는 덕담과 위로를 고장 난 레코드처럼 반복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필자의 주장을 맞닥뜨리면, 이단비스무리하다는 생각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고 싶은 생각이 훅 들어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필자가 그렇게 주장하는 근거 역시 성경에 도배하고 있는 예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누구의 주장이 옳은지 생각해보시라는 의미에서 칼럼을 끄적거리고 있다.

성령은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라는 단어로서, 영어로 ‘helper’, 한글로는 ‘보혜사(保惠師)’로 번역하고 있다. 말하자면 우리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영접기도행위만 마치면 성령께서 즉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의 신앙을 도와주고 계시므로 천국은 걱정하지 말라는 투로 가르치고 있다. 뭐, 그런 투의 말씀이 성경에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당신 안에 성령이 계시다면, 성령이 계시다는 증거와 변화, 능력과 열매로서 증명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관념적이고 사변적인 교단신학자의 성경해석을 늘어놓는다고 전부가 아니지 않은가? 아쉽게도, 우리네 교회주변에 성령의 사람을 눈 씻고 찾아볼 수가 없는 게 차가운 현실이다. 그래서 성령이라는 말조차 사용하지 않는 설교가 대부분이다. 그리고는 이 시대는 성경이 완성된 시대이므로, 초대교회와 같은 성령의 역사는 끝났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그런 말이 성경 어디에 있는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나서 성령의 시대가 열렸다. 그런데 지금은 성령의 시대가 아니라고? 성령의 시대인 것은 맞는데, 성령 하나님은 교회 안에서 침묵하고 계신다고? 그런 주장은 성경을 시대별로 난도질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자기 입맛대로 찢어놓은 세대주의 신학자의 주장을 빌려 온 것이다. 그런데도 자신들은 세대주의 신학을 개혁한, 소위 개혁신학을 주장하는 교회라고 떠벌이고 있으니 기가 막힌 일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무릇 훼방하는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사하심을 영원히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처하느니라 하시니(막3:28,29)

위의 구절은 성령의 역사와 인도하심을 방해하거나 거역하는 자들은 용서함을 받지 못하고 지옥 불에 던져진다는 섬뜩한 말씀이다. 그렇다면 성령이 안 계신데도 불구하고 성령이 안에 계시다고 믿으라고 다그치는 교회지도자들과, 무지하여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교인들의 운명을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성경에 수도 없이 기록한 말씀을 읽지도 않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교인들에게 어떻게 구원의 기회가 주어지겠는가? 그렇다면 성령은 누구에게 찾아오셔서 구원을 도와주시는가?

  1. 쉬지 않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아오는 자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행1:12~14)

위의 사도들과 제자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기쁨도 잠시, 승천하시는 모습을 보고 돌아와서 하나님의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는 명령을 따라서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기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떤 내용의 기도를 했겠는가? 자신의 유익을 구하거나 삶의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기도는 결코 아니었을 것이다. 오직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내려달라는 기도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인가? 아니다. 사도들은 이미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자 그리스도인 것을 고백하였으며, 수많은 기적과 이적을 베푸시는 예수님을 직접 눈으로 보고 체험했다. 게다가 부활 하신 예수님을 목격하였으니 말이 따로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이들은 또 다시 성령을 내려달라는 기도를 해야 했는가? 이들에게 아직 성령이 오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님과 3년 반 동안 동고동락하면서 신앙고백도 하고, 때로는 예수님께서 능력을 주어 귀신도 쫓아내고 질병도 고친 경험도 하였지만, 그들에게 아직 성령이 계시지 않았다. 그러므로 성령을 내려달라는 기도를 드려야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떤 태도로 기도했는가? 전심으로 기도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전심이라는 뜻은 마음을 다해, 또는 오로지 기도하기에 힘쓴 태도를 말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돌보아야 할 가족들도 없었으며, 생업을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었는가? 아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이 모든 것을 뒤로 미루고, 예수님을 죽기 살기로 쫓아다니다가 마가의 다락방까지 오게 되었던 것이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성령을 만나야 한다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이 없었다.

  1. 자신의 죄를 통렬하게 회개하는 자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행2:37~41)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행11:17,18)

위의 구절에서 사도들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는 조건으로 생명 얻는 회개를 언급하고 있다. 즉 지난날의 자신의 죄악을 전심으로 통회자복하고 회개하는 자들에게만 성령께서 찾아오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에서는 영접기도행위에 아멘 하기만 하면 성령이 자동적으로 들어오신다고 가르치고 있으니 기가 막히다. 그래서 성령이 계신 증거와 능력과 열매가 없어도, 교회 내에서는 아무도 이것을 드러내고 의구심을 표하거나 따질 수 없다. 그러면 믿음이 없다는 질책이 날라 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벌거숭이 임금님처럼 홀랑 벗고 다니면서 훌륭한 옷을 입은 척하는 이들이 불쌍하기 짝이 없다.

  1. 날마다 죄와 피터지게 싸우는 자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사59:2)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삼상12: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2:3)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롬8:7)

죄란 하나님이 싫어하는 생각과 성품, 말과 행동을 총망라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죄는 종이 주인을 찾아오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쉬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전심으로 성령의 내주를 구하는 기도의 습관이 없는 자들은 가장 큰 죄인인 셈이다. 또한 피조물이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육체의 욕심과 쾌락을 좇는 행위도 죄다 사악한 죄이다. 그렇다면 이 죄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단 한명도 없을 것이다. 모두 자신이 원하는 생각대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죄를 날마다 회개하고, 피터지게 싸워 이기는 자들만이 성령이 오셔서 거주하게 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네 교인들은 죄를 알려고도 하지 않고 싸울 생각도 하지 않으니 기가 막히는 일이다. 성령께서 도와주시는 사람은 위 3가지를 힘쓰고 애쓰는 이들이다. 그러나 기도할 생각조차 없이, 교회마당을 밟고 있는 이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는 것은 잊지 마시라.

크리스천 영성학교, 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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