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

in #steemchurch6 years ago

교회에서 기도라는 말처럼 흔하게 쓰이는 단어도 없다. 그러나 기도처럼 사람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 단어도 없다. 기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고, 불행한 사람을 보면 기도하겠다고 약속하고 있으며, 기도가 필요하다고 여기고 있지만, 실제적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은 찾기 힘들다. 대다수의 목회자들도 교인들의 눈치 때문에 새벽기도회에 나와서 기도하고 있기는 하지만, 기도가 정말 중요하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은 아니다. 사정이 이러니 평신도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기도는 종교적인 행사로서 교회의 관행으로 내려오고 있을 뿐이다. 왜 이렇게 기도가 교인들의 마음에서 멀어져 있는지 아는가? 기도응답을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일 기도가 자판기 커피처럼 동전을 넣고 원하는 상품의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딸깍 소리와 함께 응답이 떨어진다면 기도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러나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내려오지 않는 현실에 대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는 이들도 없다. 그래서 기도는 자연사박물관에 가서 보게 되는 공룡화석처럼, 과거의 화려한 영화를 상징하는 상품처럼 성경에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오늘은 성경에서 말하는 기도에 대해 곱씹어보고 싶다.

대다수의 교인들이 생각하는 기도란,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이 소망하는 그 무엇을 얻어내는 수단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삶의 지난한 문제가 생기면 기도자리에 앉거나, 자신이 소원하는 일이 있다면 새벽기도회에 나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오래 되지 않은 시간이 지나면 실망스러워하며 중도에 포기하는 게 된다. 그래서 삶의 고난의 강도가 거세지고, 소망하는 일들이 간절해지면 또 다시 기도자리에 나가게 된다. 그러나 이번에는 지난번의 기도와 마음가짐이 다르다. 그래서 희생의 강도를 높여 작정기도를 하거나 기도원에 올라가서 금식기도를 하거나, 기도자리에 앉을 때마다 헌금봉투를 가지고 나가기도한다. 이러한 방식은 그간의 교회에서 많이 권면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결과는 별다르지 않다. 가물에 콩 나듯이 응답이 내려오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평생에 걸쳐서 몇 번 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희생의 강도를 높여서 기도하지만 결과가 신통치 않아서 기도를 중도에 포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의 수많은 약속에도 불구하고 기도의 응답이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 이유는 우리네 교회에서 가르치는 기도가, 하나님으로부터 세속적인 욕망이나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이다.

거머리에게는 두 딸이 있어 다오 다오 하느니라(잠30:15)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약4:2,3)

여호와는 악인을 멀리 하시고 의인의 기도를 들으시느니라(잠15:29)

위의 구절에서 말하는 거머리는 누구인가? 바로 탐욕스런 귀신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세속적인 욕망을 채우려는 기도는 귀신의 소리를 듣는 좀비에 불과하며, 정욕으로 구하는 기도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기도임에 틀림없다. 하나님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수단으로 기도하는 이들을 외면하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인의 기도에 응답하신다. 그렇다면 의인은 누구인가? 의인은 하나님으로부터 믿음을 인정받은 자녀들이다. 이들은 어떤 기도를 하고 있는가?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에 합당한 기도란 무엇인가?

  1. 기도란 하나님과 깊고 친밀하게 교제하는 수단이다.

기도란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을 얻어내는 수단이 아니라, 영이신 하나님과 내 영혼이 교제하는 통로이다. 그렇다면 그냥 열심히 기도하거나 희생의 강도를 높여 기도하는 게 얼마나 미련하고 어리석은 행동인가? 하나님과 내가 교제하는 통로라면, 먼저 하나님이 내안에 들어오셔서 내 기도에 반응하시고 기뻐하셔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하나님이 내 안에 들어오셔서 교제하고 계시다면,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알아지고 하나님의 마음을 친밀하게 느끼고 있어야 할 것이다. 기도는 열심히 하고 있지만, 그런 상태가 아니라면 아직도 하나님이 내 안에 들어 오셔서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지 않고 있다. 하나님이 누구인가? 하나님은 내 하인도 아니고 내 친구도 아니다. 그분은 나를 지으신 주인이시고 나의 왕이시다. 그분은 내가 부르기만 한다고 즉각 달려오시는 분이 아니라, 내 마음이 간절하게 하나님을 원하고 주인으로 섬기기를 원한다는 생각을 읽었을 때 들어오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어느 정도의 강도와 빈도로 하나님을 간절히 불러야 하는 지에 대해, 성령께서 필자에게 말씀해주신 내용을 읽어드리겠다.

‘입으로 나를 찾는 자는 기도의 본질을 모르는 자다. 기도의 본질은 나이고 자기도 알 수 없는 자를 만나는 것이므로, 그분이 누구인지 알려면 마음으로 만날 분을 사모하고 이름을 부르면서, 자기에게 오시도록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나를 찾아주시도록 보이지 아니하고 들리지 아니한다 해도, 오직 기도하는 일에 모든 집중을 다해서 일상에서도 기도하는 마음이 떠나지 아니하고 자기에게 오시도록 집요하게 조르는 것이다. 모든 이들이 이 기도를 하지 않고 중도에 포기하고 내가 그를 만나려고, 주리고 목마른 자가 오로지 나를 찾고자 하는 것을 혹독한 마음을 읽었을 때 내가 그를 만나려고 하고 있는데, 그들은 중도에 포기하고 자기들의 입으로 하나님은 자기에게 오시지 않는다고 불평만 하고 있다. 이렇게 기도하는 자는 어떤 일에서도 인내하지 아니하고 자기 고집대로 모든 일을, 하나님 없이도 자기의 일을 하겠다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나를 만날 수도 나는 그런 사람의 아버지도 아님도 알 것이라. 모든 사람들이 이런 기도를 하고 정성스럽고 끈질긴 자들이 나를 만나는 것이지, 조급하고 자기중심으로 나를 만나려고 하는 사람은 나도 그들을 만날 수 없다는 걸 알려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7,18)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눅21:3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

이처럼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이 쉬지 않고 간절한 마음으로 자신을 찾아오는 것을 기뻐하신다. 이러한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믿음을 보이는 자들이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에서는 하나님을 찾아와서 깊고 친밀한 교제의 기도를 할 생각도 없이, 자신의 세속적인 탐욕을 채우고 삶의 문제를 해결할 해결사로 하나님을 찾고 있으니 가증스런 일이다. 그러나 울 영성학교에서는 예외 없이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를 하고 계실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성령이 안에 들어오셔서 거주하시고,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않는 사람들은 그 이유가 무엇일까? 기도를 하기는 하고 있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을 채우는 데 2%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루에 몇 시간 기도하였는지, 아니면 배를 쥐어짜며 기도하였는지에 대한 자신의 판단이나 기준이 중요하지 않다.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으셨다면 여전히 믿음이 부족한 것이다. 성령께서는 필자에게 중들도 밤새도록 기도한다고 하시면서, 하루 24시간 기도한들 어떻겠느냐고 하셨다. 그러나 적지 않은 영성학교 식구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기도의 시간과 강도만을 맞추고 있다. 그래서 적지 않은 시간동안 기도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도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이다.

  1. 하나님께 인생을 맡기고 신뢰하는 믿음을 보여야 한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약1:6~8)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마21:22)

당신은 기도할 때 주실 것을 철썩 같이 믿고 기도하시는가? 물론 그렇다고 하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이 기도하는 모습이나 기도할 때 내뱉는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당신의 마음을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켜보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든 기도하는 자녀들의 믿음을 테스트하신다. 많은 이들이 기도하다가 아무런 응답이 내려오지 않으면 포기하고 기도자리를 떠난다. 응답이 아니라 상황이 더 악화된다면 사람들은 실망하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고 있다. 기도하고 있는데 병이 낫기는커녕 더 악화되고, 가정상황은 더 꼬이고,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면 사람들은 하나님을 바라보기보다 상황과 현상을 바라보고 두려움과 걱정, 불안과 공포, 낙심과 절망을 받아들인다. 이런 상태가 바로 시험에 드는 것이며 귀신들의 유혹에 빠지는 것이다. 기도하다가 당신이 잃을 게 무엇이 있는가? 기도할 때마다 많은 돈을 잃고 있는가? 기도한다고 당신의 건강이 악화되어 죽음에 이르는가? 기도한다고 가정이 몰락하고 인생이 파탄 나고 있는가? 많은 이들은 하나님의 응답이 올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의심을 하고 낙심을 하며 절망하고 있다. 이런 이들은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의 죄를 짓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어떻게 이런 이들에게 응답이 내려올 것인가? 아브라함은 백세에 아들을 얻을 때까지 무려 25년의 세월을 기다렸다. 요셉도 지하 감옥에서 10여년이 넘는 세월을 인내하며 기다려야 했다. 모세 역시 40세에 미디안 광야로 도망쳐서 80세가 되어서야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이들은 하나님의 응답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실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했겠는가?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히11:35~40)

초대교회의 대부분의 성도들은 이 땅에서 자신의 소망하던 삶을 누리지 못하고 고난과 박해 속에서 인내하며 살다가 이 땅을 떠나갔다. 그러나 그들이 실망하지 않은 이유는 그들의 인생의 목적이 이 땅에서 부유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살았기 때문에, 이 땅에서 받는 고난과 핍박을 감사하며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렇다면 당신이 실망하고 좌절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이 돌아가시기라도 하셨다는 말인가? 기도하는 즉시 응답이 내려오고 문제가 해결된다면, 기도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당신에게 응답이 내려오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 하나님이 바라시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도를 중도에 포기하시든지, 아니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준의 믿음을 채우시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시기 바란다.

  1. 죄와 싸우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라.

당신이 기도하는 목적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라면,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을 하지 말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할 것이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을 죄라고 부르고 있다. 하나님은 죄를 싫어하시며 죄인을 가까이 하실 수 없는 분이시다. 죄란 하나님이 싫어하는 말과 행동, 생각과 성품을 총 망라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사람들이 죄를 지었다고 선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당신이 어찌할 수 없는 죄인이라면, 죄를 깨달아서 죄와 피터지게 싸우고 부족하고 연약하여 죄에 걸려 넘어졌다면 즉각 전심으로 회개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죄와 싸울 생각도 없으며 지은 죄를 회개하고 있지도 않다면 기도 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이 싫어하는 죄를 밥 먹듯이 짓고 있으면서, 하나님의 내주를 요청하는 기도를 하고 있는 것 자체가 가증스러운 일이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6:12)

성경은 우리가 싸워야할 대상이 바로 세상을 지배하는 악한 영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당신은 귀신들과 피터지게 싸우고 계신가? 귀신들은 영이기 때문에 세상의 무기체계를 가지고 싸우는 게 아니다. 귀신들의 목적은 죄의 덫을 놓고 죄에 걸려 넘어지게 만들어서 불행에 빠뜨려서 고통을 주어 생명과 영혼을 사냥하는 놈들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귀신과 싸운다는 것은 죄와 싸우는 것과 동일한 의미이다. 거꾸로 죄에 무지하고 죄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으며 살아가고 있다면 귀신의 포로가 되어 있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에서는 죄에 대한 설교를 듣기 힘들고 귀신의 정체나 공격에 대해 말하는 것조차 금기시하고 있으니 기이한 일이다. 이는 우리네 교회가 이미 귀신들에게 넘어가서 포로로 잡혀있기 때문이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1~23)

성경에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 빼곡하게 나와 있다. 또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 자들은 죄다 지옥의 불길에 던져지게 된다는 두려운 말씀도 적지 않다. 그래서 당신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계신가? 이에 대한 답변은 대략 두 가지 일 것이다. 먼저 교회에서 요구하는 주일성수와 십일조, 각종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잘 하고 있다는 대답이 그것이다. 그래서 그런 종교의식을 행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우리네 교인들은 설교단상에서 말해지는 목사들의 얘기만 듣고 안심하고 있지만, 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의 뜻에 대해 수도 없이 나온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지옥의 불에 던져질 것이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잘 행하고 있느냐에 대한 두 번째의 대답은,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주시는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의지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대답이다. 인간적인 연약함과 부족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뜻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며 살지 못하고 있지만,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려주셨기 때문에, 그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괜찮을 것이라는 대답이다. 당신의 대답이 옳다면,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이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지 않아도 된다는 면죄부라는 것인가? 예수님의 보혈은 하나님 뜻대로 살려고 애써도 살지 못하는 자녀들에게 해당되는 것이지, 하나님의 뜻에 무관심하거나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세속적인 탐욕과 쾌락을 추구하면서 종교적인 행위를 반복하는 이들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어떤 태도로 살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온전하게 순종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명령을 수행하는 태도를 날카로운 눈동자로 지켜보신다. 그래서 아무리 애쓰고 노력해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 자녀들은, 날마다 전심으로 회개하며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애걸복걸하는 기도로서 눈물의 성을 쌓고 있는 이유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 육체의 몸을 입고 오셨기에, 인간의 연약함과 부족한 한계를 잘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자신의 죄를 애통해하며 가난한 마음으로 자신을 찾아오는 자들에게 들어가셔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는 힘을 주신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의 습관을 들여야 하는 이유이다. 이처럼 기도란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과 관계를 이어주는 유일한 끈이다. 당신이 그 끈을 놓지 않아야, 영원한 천국에서 하나님과 기쁘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크리스천 영성학교, 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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