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육수를 만들고 김치를 담궜던 그 냉면집 '을밀대'

in #tasteem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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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밀대는 평양냉면을 파는 가게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포장'을 해주는 곳입니다. 아마 유일할 것 같은데, 확실하지 않으니 '거의'라고 썼습니다.

포장을 하게 된 계기가 인상적입니다. 제가 직접 을밀대 사장에게 물어봤습니다. 그 분의 답변이 실향민들이 죽기 전에 먹고 싶은 음식으로 '냉면'을 꼽았기 때문이랍니다. 병원에 누워 있는 우리 아빠, 엄마가 죽기 전에 평양냉면을 꼭 드시고 싶어한다, 좀 싸가면 안 되겠냐,고 사정사정을 하는 분들이 꽤 있었기 때문에 그 다음부턴 아예 포장을 해주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평양냉면이란 이북에 있던 사람에겐 어린 시절과 고향을 생각나게 하는 특별한 음식입니다. 이북 사람들은 어디서나 냉면을 만들었습니다. 6.25 피란 중에는 부산에서 밀면을 만들어내기도 했죠.

제가 평양냉면 애호가이긴 해도, 을밀대는 또 다른 의미로 제게 특별합니다. 제게 여러 추억이 얽힌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 추억 중에 하나는 제가 을밀대에서 하루동안 취업해 일을 했던 경험입니다. 새벽 네 시부터 냉면의 육수를 만들고, 오전엔 면과 고명을 올려보기도 했고, 서빙도 했고, 치우기도 했으며 설겆이도 열심히 했습니다. 무김치를 직접 담그기도 했었죠. 새벽 네시부터 밤10시까지 열심히 일했던 기억입니다. 그 체험을 기사로 쓰기도 했습니다.

을밀대 냉면집 르포 - 새벽 5시, 육수가 팔팔 끓기 시작했다

설명이 너무 길었네요. 바로 음식 사진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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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과 김치, 겨자입니다. 냉면 매니아들은 겨자를 냉면에 풀어넣지 않습니다. 오히려 무김치에 살짝 찍어 먹습니다.

을밀대를 잘 아는 이들만 아는 비밀 메뉴도 있습니다. 대단한 비밀은 아니지만, 아는 사람만 시킬 수 있는데요.

저는 냉면을 시킬 때
"거냉 양많이로 주세요"라고 말합니다.

거냉이란 육수에서 얼음을 뺀 것입니다. 얼음이 아삭한 식감을 주긴 하지만, 얼음은 '물(H20)'이라서 녹으면서 육수를 희석시킵니다. 육수 그대로의 맛이 변질되죠.

양많이는 곱빼기인데요. 을밀대에선 곱빼기에 추가 과금을 하지 않습니다. 대신 '양많이'를 시키고 남기는 사람은 블랙리스트에 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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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을 입 안에 넣고, 면을 풀어헤친 냉면 모습. 아 비주얼만 봐도 침이 꼴깍이네요. 을밀대의 냉면은 다른 평양냉면집과는 좀 다릅니다. 일종의 퓨전냉면인데요. 다른 냉면집은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섞지만, 을밀대는 소고기만 씁니다. 육향이 좀 있는 편이고요. 육수 색깔도 다른 집보단 뿌연 편이죠. 또 면도 다릅니다. 좀 더 두꺼운 면을 사용하는 대신에 메밀 특유의 뚝뚝 끊어지는 식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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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육수랑 무김치에 대한 설명도 드리죠. 냉면 먹기 전에 마시는 저 육수는 냉면 육수와는 다릅니다. 냉면 육수는 소의 거의 모든 부위를 다 넣긴 하지만, 사골의 비중이 큽니다. 한마디로 거의 사골육수인 셈이죠. 하지만 냉면 전에 나오는 저 육수는 소의 갈비뼈를 우려낸 것입니다. 저 무김치는 이틀에 한번꼴로 담그는데요. 제가 직접 담궈봤습니다. 엄청난 양의 무를 기계로 자른 다음에 손으로 직접 양념을 무쳐서 담급니다.

기사가 안 써지면 냉면 한 사발 먹었고, 또 그러면 글이 좀 써지곤 했는데요. 냉면을 언제든 먹을 수 없는 곳에 사니, 가끔 냉면 생각이 간절해지네요.


맛집정보

을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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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마포구 염리동 숭문길 24


직접 육수를 만들고 김치를 담궜던 그 냉면집 '을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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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만 해도 정석으로 만든 냉면같아요
왠지 속이 엄청 편할거 같네요.
맛있을거 같아요

직접 육수를 만들고 김치를 담근 정성이 가득 들어간 집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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