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제주도 자전거 일주 1. 제주항

in #tripsteem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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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여름의 이야기다. 한참 전이다. 외롭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외로웠던 것 같다. 무언가 답답했지만 무엇때문에 답답한지는 몰랐던 때였던 것 같다. 사회 초년생 시절이었고 여름 휴가, 쓰라고 해서 쓰긴 했다. 순수한 자의는 아니었다. 직장에 있으나 집에 혼자 누워있으나 별다를 것 없었으니 쓰지 않을 이유는 없었지만 써야할 이유도 없었다. 내가 휴일과 주말까지 끼어서 휴가를 써야하는 이유가 무언가 있었던 것 같다. 방에 누워 천장을 보면서 무언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간단한 준비를 해서 자전거를 기차에 실어 부산역까지, 배에 실어 제주항까지 갔다. 제주도를 자전거로 한 바퀴 돌고 집으로 돌아왔다. 큰 변화는 없지만 휴가를 휴가처럼 썼다는 생각, 다녀올만 하다는 생각은 들었다. 휴대폰을 뒤직거리며 사진을 정리하고 블로그를 열어 몇 개를 올렸는데 영판 어설펐다. 일주일쯤 걸렸던 여행의 앞부분, 배타는 것까지만 쓰고 블로그를 닫아버렸다.

몇번의 이사와 컴퓨터, 휴대폰 교체에도 그 때의 사진이 뒤죽박죽 남아있어 한 번 써볼까 싶다. 카메라를 챙겨가면서 날짜값이 제대로 되어 있나 확인도 하지 않은 탓에 이게 그날인지 다음날인지, 새벽인지 저녁인지도 잘 모르는 모호한 순간도 많아서 또 영판 어설프게 대충 쓰게될 것 같기만하다.



방에 누워 밖을 바라보다가 오후 2시쯤, 출발해야겠다며 집을 나섰다. 다이소급의 동네 만물상에 들러 라이트, 버프, 토시, 반사스티커, 썬크림 같은 걸 샀다. 그리고 바로 지하철에 자전거를 싣고 기차역으로 향했다. 배편은 저녁 8시쯤 부산항을 출발해서 아침 8시쯤 제주항에 도착하는 일정이었던 것 같다. 6시까지만 부산항에 도착하면 된다. 혹시 늦어서 배를 놓치게 되면 부산 한 바퀴 돌고 오면 되는거고.

당시 지하철이나 KTX의 자전거 관련 규정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휴일은 지하철에 자전거를 끌고 탈 수 있었을 것이고 KTX의 복도 짐칸에는 자전거를 거치할 수 있었던가. 앞바퀴를 분리하면 짐으로 취급되어 항상 실을 수 있었던가. 어쨌든 집에서 지하철, 지하철에서 기차역, 부산역에서 부산항까지 마음을 졸이며 움직여 아슬아슬하게 배에 탑승할 수 있었다. 15시에 대구 구석편 자취방을 나서 동대구역에서 16:26분 발 열차에 올라 17시50분에 부산역 광장에서 사진찍고 18시쯤 부산항에 도착했으니 뭐...

컨테이너박스를 비롯한 화물을 먼저 싣고나서 화물칸에 자전거를 거치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당연히 자전거를 끌고 온 사람은 마지막에 승선할 수 있다. 남은 배표는 입석이라 해도 무방한 3등칸이었는데 3등칸 승객 중에서도 가장 늦게 승선했으니 내 자리는 배에서 가장 불편하고 불편한 자리였다.

누군가의 발 밑에 머리를 두고 쪼그려 누워있으면서 내 발의 끝부분은 신발을 벗어두는 복도에 걸쳐두어야 하는 건 서있는 것보다 힘든 일이었다. 최적의 자세를 찾아 20여분 낑낑거리다가 포기하고 밖으로 나갔다. 컵라면도 하나 먹었던 것 같고 맥주를 마시면서 자전거 여행객들과 이야기를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당시 스마트하지 못했던 스마트폰과 엘지텔레콤의 환상적인 조합 덕분에 배가 출발한지 10분만에 폰은 더 이상의 신호를 받지 못했고 바다에서 보는 부산 풍경은 꽤 괜찮았다. 선실과 갑판을 몇 번이나 드나들었는지도 모를 시간이 지나고 불편함을 느끼지 못할만큼 불편해진 다음에야 선실의 어느 구석 벽에 머리를 기대고 잠이 들었다.


여행지 정보
● 제주시 건입동 제주항



여름, 제주도 자전거 일주 1. 제주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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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로 자전거 여행하는 사람들이 많나보네요?
도전 욕구가 생기네요~ ㅎ

30대 초반까지는 권할만 하다고 봅니다. 고생스럽고 좀 구질구질한 여행이었습니다ㅎㅎ그땐 힘들었는데 지나고 생각하니 그 때 잘 다녀온 것 같네요.

자전거 타고 전국을 달리고 싶네요.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자전거 전국일주는 4대강 종주로 그 맛을 볼 수 있다던데 저는 엄두가 안 나네요ㅎㅎ뭐든 결혼전에야 내 시간 들여서 할 수 있는건데 지금은 내 시간인데 내 시간이 아닌 시간이라...

대단하십니다 ^^ 저는 도전도 못할것 같습니다 ㅠㅠ

처음 표 끊는 게 어렵지 그 이후는 저절로 굴러갑니다ㅎㅎㅎ자전거 갖고 갔다가 힘들면 중고로 처분하고 올 생각도 하면서 출발했습니다.

안녕하세요. @trips.teem입니다. 우와..배를 타고 다녀오신건가요?????(사람이 엄청 많네요!!) 한번 도전해 보려고 합니다. ㅋㅋ 완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앞으로도 멋진 여행지 많이 많이 소개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오오 자전거여행이군요!!!
저도 이렇게 좀 나눠서 포스팅 햇어야 하는건데.... 귀찮아서....ㅋㅋㅋㅋㅋㅋ

다음편도 기대하겠습니다!!! :)

자전거타고 주구장창 페달밟은 것 밖에 없어서.. 아마 풍경사진만 계속 올리게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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