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를 그리다) 산티아고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먹은 거대한 빠에야^^

in #tripsteem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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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6. 19(35,200걸음)

어제 우리가 잔 공립 알베르게는 시설은 아주 좋았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 밤새 엄청 더웠다.
창문이 있어서 다 열어 두었지만, 워낙 많은 사람들이 잠들어 있기 때문에 그들이 내뿜는 열기가 숙소 전체의 기온을 올리고 있었다.
너무 더워서 자다가 깨기를 여러 번 하고, 어디 좀 시원한 곳이 없는지 일어나 유령처럼 서성이기까지 했다.
아무래도 돈을 조금 더 주더라도 사설 알베르게에서 묵어야겠다.
사설 알베르게는 규모가 작아서 한 방에 열명 이상 묵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래서 훨씬 덜 덥다.
사설이 비싸다고 하지만 다른 유럽여행 다닐 때 방값에 비하면 그것도 엄청 싼 거니까.
전에도 소개했지만, 공립 알베르게는 일인당 6유로이고, 사설 알베르게는 일인당 10유로에서 12유로 정도이다.
더위로 잠을 설치는 바람에 오늘은 걷는 거리도 짧은데 일찍 숙소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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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부르고스에서 오르니요스(honillos)까지 걸었다.
오르니요스라는 마을 이름은 스펠링과 전혀 다르게 발음을 해서 며칠이 지날 때까지 그 마을의 이름을 정확히 부를 수 없었던 기억이 난다.
아침에 일찍 나왔더니 로비에서 간단히 빵과 과일을 먹는 사람도 많고, 발에 바세린을 바르거나 물집에 밴드를 붙이고 있는 사람도 많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처럼 더워서 밤잠을 설친 것이다.
알베르게를 나오면 바로 앞에 바가 있는데 거기에도 아침을 먹는 사람들이 빈 자리 없이 꽉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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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정경을 보면서 걷기를 시작했는데, 어제 본 성당의 모습이 새벽 어스름에 운치있게 보였다.

부르고스가 큰 도시임을 다시 실감하는 건 알베르게를 나와 마을을 벗어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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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보니 희안한 사진을 남편이 찍었다.
부르고스를 벗어나려고 걷던 공원에서 본 휠체어를 탄 조각상이다.
우리는 이날 다리에 약간의 장애가 있는 페르난도를 만나 친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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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건물 벽면을 채운 그림도 있다.

한참을 걸어 마을을 벗어나 길을 걷다보니 오늘 또 특이한 것이 있다.
우리와 같이 처음부터 끝까지 꾸준히 걷는 순례객은 고정 멤버이다.
우리, 김경석아저씨, 브라질에서 온 엘리오, 로지, 벳토, 네델란드에서 온 리치아드아저씨, 홍콩아가씨 애미와 일랭, 스펜인아저씨 후안, 유타에서온 에릭과 폴라, 마이애미 아가씨(이름을 물을 기회가 없어서 끝까지 이름을 모르고 지냈다), 이태리에서 온 엘리사 등은 고정 멤버이다.
이런 고정 멤버들은 하루라도 길에서 마주치지 못하면 궁금하고, 다시 만나면 반갑고 그런 끈끈한 정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이런 고정 멤버 중에서도 중간에 걷는 속도 때문에 계속 함께 걷지 않는 사람도 있다.
우리에게 뒤쳐졌는지 미국에서 온 쌍둥이 형제인 강남규, 강태규 형제와 프랑스에서 온 아주머니팀이나 할머니 할아버지팀도 며칠 전부터 보이지 않는다.

우리를 앞서갔는지 네팔부터 시작해 여행 중인 한국인 육호수씨, 딱 한면 본 일본에서 온 유코, 세계여행 중이라던 동규씨도 며칠 전부터 보이지 않는다.
이들이 순례를 중단했는지 아니면 우리 앞이나 뒤에서 계속 순례를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어제처럼 대도시를 한번 지나고 나면 순례객이 싹 물갈이가 된다.
많은 사람들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한번에 걷지 않기 때문이다.
몇년에 걸쳐 조금씩 나눠 걷는단다.
우리가 걸은지 오늘이 10일째 되는 날인데, 중간에 집으로 돌아간 것으로 생각되는 사람도 있다.
어쩌면 버스를 타고 점핑을 했을 수도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큰 도시를 구경하기 위해서 그 도시에서 하루, 이틀 더 묵으면서 뒤쳐지는 경우도 있다.

모든 사람을 길에서 만나고 길에서 헤어지는 것이 산티아고 순례길이다.

우리보다 일찍 산티아고 길을 걷기 시작했지만 걸음이 느려 오늘 우리와 길에서 만난 덴마크에서 온 애니와 안나마리아 같은 사람도 있다.
반바지를 입고 뜨거운 태양 아래 느리게 걷고 있는 그들의 다리에는 햇빛 때문에 생긴 화상이 있다.
그래서 느린 걸음이 더 느려진 것 같다.
절뚝거리며 걷지만 “우리는 반드시 산티아고까지 갈거야"라는 말에는 알 수 없는 기쁨이 담겼다.
이들은 종교적인 목적으로 산티아고를 걷고 있어서 크고 작은 성당에 모두 들려 한참을 기도를 했고, 우리는 알 수 없는 성지 같은 곳에서도 아주 오랫동안 기도를 하곤 했다.
중년의 두 아주머니가 서로에게 힘이 되며 걷는 모습은 애뜻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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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걷고 있는 시끌벅적한 아주머니들 그룹은 굉장히 눈길을 끈다.
오늘 처음 걷기 시작한 듯 발걸음도 가볍고 서로 끝없이 이야기를 나누며 가는데 뭐가 그리 재미 있는지 웃음도 끝이지 않는다.
김경석 아저씨가 어제 숙소에서 그 아주머니들을 보았다는데, 숙소에서도 엄청나게 재잘거리더라고 했다.
이 사진을 찍을 때는 몰랐지만, 우리는 이날 저녁 이 아주머니들과 저녁을 먹으며 폭풍 수다를 경험하게 된다.ㅋ

이런 참신한 모습이 길에서 많이 보이니 또다른 기대로 우리 마음도 설레인다.
오전에는 이렇게 새로운 분위기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 첫 인사를 나누는 즐거움에 힘든 줄 모르고 걸었다.
이쯤부터는 인사를 나눌 때 추가되는 질문이 있다.

“너는 어디부터 걷기 시작했니? (Where did you start from?)”

라는 질문이다.
지금껏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프랑스 생장부터 걷기를 시작하기 때문에 잘 묻지 않는 질문이었다.
우리처럼 피레네 산맥을 생략하고 팜플로냐부터 시작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장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잘 묻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점점 나눌 대화가 많으니 이야기가 길어진다.
그래서 한번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주고 받다 보면 쉽게 친구가 되기도 한다.
우리도 점점 외국인 친구를 사귀는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오후가 되니 바람이 거의 불지 않고 태양은 더욱 뜨거웠다.
짧고 쉬운 코스였는데도 땀도 많이 나고, 많이 지치는 날이었다.
오전에 시끌벅적하게 보이던 새로운 사람들도 어김없이 모두 우리를 앞질러 가서 길고 끝없는 스페인의 들판에 난 길을 또 우리 둘이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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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뒤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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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앞으로도.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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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요만하지만, 그래도 이것도 그늘이라고 잠시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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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가 이렇게 앞에 사람이 보여도 절대로 그를 앞질러 가진 못한다.

우리가 오후에 걷다가 앞질러 간 사람은 딱 한 사람이었다.
그는 젊은 청년이었는데 다리가 불편해 보였다.
완전히 다리를 절거나 그런 건 아닌데 보통 사람들이 걷는 것처럼 걷지 않고 신발을 질질 끌면서 힘들게 걷고 있었다.
아마도 다리에 약간의 장애가 있는 것 같았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를 앞질러 가기가 왠지 미안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불편한 다리로 산티아고 순례길에 도전하고 있는 그가 멋져 보였다.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지친 걸음으로 우리도 계속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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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앞에 사람이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그 사람보다 더 반가운 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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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뒤돌아서 소리지른 말은

마을이 보인다~~^^

였다.
저~~~기 길 끝에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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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눈앞에 보인다고 쉽게 닿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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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보인 후에도 지루한 걸음은 계속된다.
이쯤 되면 머리 속 생각은 모두 비워지고, 무의미하지만 나는 속으로 걸음 숫자를 센다.
그나마 숫자를 세면 앞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 조금은 느껴지기 때문이다.

아무튼 앞에 보이는 저 마을은 우리가 오늘 도착할 목적지이다.
저 정도의 크기면 마을에 집은 열댓 채 있을 것이다.
숙소도 한두 개 있고 식당도 한두 개 있는 작은 마을 일 것이다.
그래도 그 작은 마을에 가면 시원한 맥주도 있고, 맛있는 밥이 있고, 더위를 씻어줄 샤워장이 있고, 지친 다리를 쉴 수 있는 숙소가 있다.

길 위를 한걸음 한걸음 걸어서 먼 길을 가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르는 기분을 느끼는 시간이다.

눈에 보인다고 곧 도착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눈에 보이기 시작하면 걸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이번 마을에서 우리가 숙소를 정하는 기준은 우선 사설일 것, 그리고 가능하면 가장 최근에 생긴 알베르게일 것이었다.
마을 입구에 여러 숙소를 알리는 안내판이 있는데, 그 중 NEW라고 소개한 알베르게에 묵기로 했다.

알베르게는 정말로 아주 깨끗하게 꾸며져 있었다.
알베르게 중에는 저녁 비용을 조금 내면 숙소에서 저녁을 해주는 데가 있다.
그런 경우에는 신청한 모든 사람들이 정해진 시간에 함께 식사를 하게 되어 있다.
Community dinner라고 하는데, 그동안 우리는 이런 형식의 식사에는 함께 해보지 않았었다.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마을을 한바퀴 돌아보니 레스토랑은 없고 카페나 바 정도만 있었다.
공립 알베르게에도 가 봤더니 거긴 시설이 더 열악했다.
김경석 아저씨가 그 알베르게에 묵고 계셔서 식사 문제를 물어봤더니 아저씨도 마을에 적당한 식당이 없어서 알베르게에 저녁을 신청해 두셨다고 한다.
마을이 작아 미국에서 온 에릭과 폴라도 바에 앉아서 맥주 두어잔 하고 한참을 고민하더니 다음 마을로 더 걸어가겠다며 길을 나섰다고 했다.
우리도 바에서 맥주를 한잔 마시며 고민하다가 다시 숙소로 돌아와 저녁 식사를 신청하기로 했다.

저녁 식사를 신청하느라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아까 길에서 만난 다리가 불편한 청년이 숙소로 들어서고 있었다.
우리가 숙소에 들어와 씻고 나가서 마을을 둘러보고 맥주도 한잔 하고 왔으니 꽤 시간이 지났을텐데 그때 마을에 도착한 것이다.
우리도 이렇게 늦게 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우리를 아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건넨 말이 있다.
“너 해냈구나.” 우리도 그 청년에게 환한 얼굴로 이 인사를 건넸다.
청년은 아직도 얼굴이 생글생글하다.
정말로 멋지고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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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 디너는 7시부터 시작이라고 했다.
이때까지도 우리는 시에스터 시간에 낮잠을 자지 않았다.
인터넷이 잘 되는 로비에서 이것저것 보고 있는데, 밖에 빗방울도 떨어진다.
오늘은 어제처럼 덥지 않게 잘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 주인이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있는지 맛있는 냄새가 나길래 식당으로 가서 주방의 모습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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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직원이 이렇게 큰 냄비에 빠에야를 만들고 있었다.
빠에야의 유래가 스페인의 농가에서 농사일이 바쁠 때 들에서 일하다 집에 가서 밥을 먹을 수 없으니까 큰 냄비에 온갖 재료를 넣고 밥을 해서 모두 함께 나눠먹은 데서 시작되었다고 하더니, 정말로 오늘 저녁에 준비되는 빠에야가 딱 그런 모습이었다.
사설 알베르게라 투숙객의 수가 많지 않으니 아마도 20명 정도 되는 사람이 오늘 저녁에 저 빠에야를 나눠 먹게 될 것이다.
이런 저런 기대로 저녁 식사 시간을 기다리게 되는 것이 커뮤니티 디너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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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상은 이렇게 차려졌다.
큰 냄비에 한 빠에야와 나눠 먹을 샐러드, 그리고 빵과 와인을 제공해주었다.
저녁 시간이 되어 하나둘 나온 투숙객들은 커다란 테이블에 둘러 앉았다.

우리 옆에는 아일랜드에서 온 아주머니부대가 앉아 함께 먹었다.
이 분들은 아일랜드의 남쪽 작은 마을에서 오셨다고 한다.
모두 동네에서 알고 지내는 지인들인데 그분들의 수다가 저녁 식사 테이블을 주도 하고 있었다. 동네 부녀회장 정도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는 옆에 있는 스페인 청년들과 긴 대화를 하셨다.
아마도 뭔가 짓궂은 농담도 하시는 듯하다.
아주머니가 청년들과 뭔가를 이야기를 하면 다른 아주머니들은 자지러지게 웃으신다.
자기는 남자친구가 많다고 자랑하시는 멋을 한껏 부린 아주머니도 있고, 왠지 시크해서 동료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수다에 끼어드는 아주머니도 있고, 새침하니 전형적인 가정 주부같은 아주머니도 있다.

내 옆에 앉은 아주머니는 다른 아주머니랑 자매지간이라고 하셨는데, 우리에게 엄청난 질문을 퍼부우셨다.
짧은 영어로 묻고 답하느라 맛있는 빠에야를 어떻게 먹었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그래도 먹는 것보다 대화에 집중해 정말로 저녁 식사 내내 대화를 나눴다.
우리가 사는 제주도에 대해 남한 남쪽에 있는 아름다운 섬이며 그곳에도 트레킹을 할 수 있는 올레길이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또 아일랜드에 관한 온갖 지식을 짜내 우리도 아주머니들에게 질문도 했다.
위스키가 유명하다는 말을 하루키 책에서 봤다는 얘기도 하고, 기네스라는 맥주가 유명하다고 하시길래 남편이 먹어 봤는데 맛이 좋다는 얘기도 하고,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과 <율리시스>를 읽었다고 하니, 자기들도 제임스 조이스 책은 매우 어려워한다는 얘기를 하신다.
북한 때문에 남한이 위험한 국가가 아니냐는 질문에는 그렇게 위험하지 않다고는 얘기했으나 자세한 상황 설명을 하기에는 우리의 영어가 많이 부족했다.

그리고 이 아주머니들은 바로 오전 내내 산티아고 길에서 웃고 떠들며 힘차게 걷던 그 아주머니 부대였다.
이들은 모든 짐을 동키 서비스로 다음 숙소에 보내놓고, 산티아고 길에서는 수다떨고 사진 찍고 맛있는 것 먹고 하는 일에만 집중하고 계셨다.
몇년 전에 이 멤버가 함께 브르고스까지 걸었고, 이번에 브르고스에서 다시 이어서 걷고 있는 중이라고도 하셨다.
매우 즐거운 모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외국 사람들도 옆에서 같이 식사하는 사람들과 시끌벅적, 왁자지껄하게 수다가 늘어지고 있다.
한국말로라면 나도 한 수다하는데, 짧은 영어가 매우 아쉬운 저녁 시간이었다.

저녁 먹고 로비에서 쉬고 있는데, 오늘 늦게 도착한 청년이 우리 옆에 앉아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스페인 안달루시아에서 온 페르난도라는 사람이라고 자기를 소개했다.
우리도 간단히 우리 소개를 하고 오늘 더운데 걷느라 너무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가볍게 하고 있었다.
잠시 후에 페르난도가 우리에게 무언가를 내밀면서 “코리아”라고 말을 했다.
그가 내민 것은 침을 놓는 바늘이었다.
침을 포장한 비닐에 쓰여 있는 것을 보니 재료는 한국이고 만들기는 중국이 만들었다고 씌여 있었다.
그러더니 페르난도는 자기의 다리에 직접 그 침으로 침을 놓는 것이다.

페르난도의 사연은 이랬다.
자기가 다리가 좀 불편한데, 서양의학으로 치료할 때는 많는 약을 먹어야 했다.
약을 많이 먹다보니 위가 고장났는지 자꾸 아팠다고 한다.
게다가 서양약으로 계속 치료를 하려니 차도는 없는데 돈은 매우 많이 드는 사정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자기가 침술에 대한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스페인에 와 있는 중국인 선생님에게 침술에 대해 3년간 배웠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스스로 자기 다리에 침을 놓을 수 있게 되었고, 약도 먹지 않는다고 했다.
침은 가격이 싸서 돈도 많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가 들어보니 우리나라에서 침을 사는 것 보다 스페인에서 사는 침의 가격이 훨씬 비쌌다.
우리가 한국은 침이 매우 싸서 우리 집에도 많이 있다고 하니까, 우리보고 자기한테 그걸 팔라고 농담도 했다.
자기가 침으로 자기 병을 다스릴 수 있게 되어 자기도 산티아고를 걸을 수 있다고 했다.
코스가 길거나 험하면 자기에게 힘든 일이지만 여기 메세타처럼 평지가 대부분인 곳은 이렇게 저녁에 숙소에서 침을 놓으면서 며칠은 걸을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자기는 산티아고를 완주하는 것은 생각하고 있지 않지만 이렇게 짧게라고 걸을 수 있어 너무 좋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하는 침술이란 것이 매우 대단하다고 칭찬을 했다.
저녁에 자기 다리에 이렇게 침을 여러 개 꽂으면 옆에서 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많이 놀란다고 했다.
그래도 우리는 한국사람이어서 침술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니 왠지 그가 안심하고 농담도 하는 것 같아 보였다.
우리는 가끔 쑥뜸도 뜬다고 했더니, 서양에서는 뜸을 뜬 후 남는 흔적 때문에 뜸을 뜨는 것은 침보다 더 꺼린다는 얘기를 했다.
그리고 남편의 뜸 뜬 자리를 보고 신기해 하며 직접하는지 내가 놔주는지 많은 관심을 가지고 물어보았다.
옆에 앉아 계시던 프랑스 아저씨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여러 가지를 묻기도 하고, 우리 대화를 경청하고 계셨다.
페르난도는 한의학이 일반화되어 있는 한국에 대해 부러워했고, 우리는 스스로 침을 놓으면서 산티아고를 걷고 있는 페르난도가 대단해 보였다.
‘침술’이 스페인말로 ‘아큐뻥뚜아’라는 말을 페르난도가 가르쳐주어 우리가 발음해보고 그랬다.
페르난도가 내가 스페인말을 잘 발음한다고 칭찬해주어 기분도 아주 좋았다.

오늘 우리가 머문 알베르게의 이름은 우연히도 ‘MEETING POINT’였다.
정말로 많은 사람과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눈 숙소였는데, 이름까지 그날의 기억과 걸맞아 잘 잊히질 않는다.

산티아고 길에는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있다.

이 글은 2017년 6월 10일부터 7월 8일까지 산티아고 길을 걸었던 우리 부부의 찬란한 추억이 담긴 글입니다. 사진은 대부분 남편(@lager68)이 찍었습니다. 글은 제가 썼는데 많이 미숙한 글입니다. 그럼에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산티아고를 그리다) 산티아고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먹은 거대한 빠에야^^



이 글은 스팀 기반 여행정보 서비스

trips.teem 으로 작성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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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저렇게 걸어서 여행하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하겠네요. 두 분 대단하신 것 같아요.

걷다보면 점점 단련이 되어, 상상하는 것보다 힘들진 않아요.^^

저는 나중에 결혼하면 신혼여행으로 무조건 순례길이에요...포루투칼도 너무 가보고 싶고요. 여행좋아하는 인연 만날수 있으면 좋을텐데 ㅎㅎ
두분이 많이 닮으셨어요. 도사님 같으신 남편분 ㅎㅎ

저희도 저 순례길이 끝나고 포루투갈도 여행하고 왔어요.
산티아고에 가는 루트 중 포루투갈을 통해 가는 길도 있다고 하더라구요.^^

그 길을 묵묵히 직접 침을 놓고 걸었다니, 앞으로도 뭐든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 것 같아요. 그나저나 저 빠에야랑 와인 먹는 자리에 저도 끼고 싶어요.

침술은 꽤 유명한가봐요. 작년에 목디스크로 물리치료 받는데 호주에서 온 치료사가 다짜고짜 침부터 놓아서 깜짝 놀랬어요.

페르난도와 나란히 앉아서 이야기를 하는데, 뭔가 강한 힘 같은 것이 그에게서 느껴지더라구요. 위트도 많아서 정말 재미있게 이야기를 했답니다.
동양의학으로는 침술이 많이 알아주긴 하죠??ㅋ

안녕하세요 @tsguide 입니다. 이번에는 자전거가 아니라 도보 여행인가요?! 힘든 여행길에 만남 인연들과 함께 먹는 빠에야 맛은 어떨까요?!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ㅎㅎ 더움 산티아고 이야기도 기대되네요~^^ @gghit님 여행기 잘보았습니다~!

산티아고는 트립스팀이 생기기도 전부터 연재하던 거였어요.
트립스팀이 생겨서 글을 펼칠 장이 생겨 너무 좋습니다.^^

고생을 많이 하셔서그런지 더욱 맛있으셨을것 같습니다. 응원할게요 항상~

하루에 열시간을 걷고 먹는 빠에야니 맛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이름만 들어보고 냄새도 못맡아본 빠에야네요 ㅎㅎ 여행 부럽네요

저도 저렇게 큰 냄비에 하는 빠에야는 처음 봤습니다.
원래가 저런 사이즈라고 하더라구요.
요즘 관광객에게 인기가 많아지면서 작은 냄비에 파는 레스토랑이 많아졌구요.

제주도 한 바퀴 도시고
이제 다시 긴 여행길을 오르셨네요~~

산티아고는 자전거 여행 전에 다녀온 곳이에요.
다음에 육지 자전거 여행도 여행기를 쓸 건데, 틈틈히 산티아고 여행기도 쓰려구요.
둘다 긴 여행이라 언제 끝날지는 모르겠네요.ㅋㅋ

이번주부터 JTBC에서 같이 걸을까라는 방송을 하더라구요. GOD 멤버들이 함께 산티아고 길을 걷는... 프랑스 길 루트 일부를 걷던데 gghite님 생각이 났습니다.^^ 방송 보며, 포스팅 보며 대리 만족 하고 있어요-

우와~ 저도 잠깐 그 프로 봤는데, 우리가 걸었던 길을 걷더라구요.
우린 그래도 먼저 걸은 선배라고, "저렇게 에너지 낭비하면 못 버티는데..."하고 걱정이 많이 되더라구요.
저도 우리가 걸었던 때를 추억하며 본방사수해 보려구요.ㅋㅋ

와~ 식사 자리가 문물교류의 장이 되는군요.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이야기 주제가 다양하고 재미있습니다.
그 중 반은 영어권 사람들이 아니라 긴 대화가 어려워도, 같은 목표를 가지고 걷는 사람들이니 그래도 할 얘기는 많더라구요.^^

글을 읽으면서 "우리도 이런거 해볼까요?"하고 남편에게 물어봤네요.ㅎㅎ
침술은 영어로 아큐팡춰 acupuncture 라고 하는데 스페인 아큐빵뚜아도 비슷한 발음이네요.
부부가 건전하고 건강한 취미생활을 함께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요~^^

남편분이 뭐라셨는지 궁금하네요.ㅋㅋ
산티아고는 정말 가보지 않고는 그 의미며 재미를 잘 모르는 거 같더라구요.
도전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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