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를 그리다) 오래 걸을수록 남다른 느낌을 갖게 된다, 산티아고에서는.

in #tripsteem5 years ago (edited)

image

산티아고 2017.7.1(48,304걸음)

오늘은 빌라프랑카 델 비에르조에서 오 세브레이로까지 걸었다.
오 세브레이로는 1330미터 높이의 산 정상에 있는 마을이다.
최근 날씨가 쌀쌀하니 아마도 산 정상에 올라가면 더 많이 추워질 것이다.

D4F6655C-70E2-46F7-9779-BF9E8682B43A.jpg

우리가 잔 룸에서 보이는 전경이다.
어제 숙소 담당자인 리비아가 뷰가 좋은 방이라고 자랑하더니 그럴만했다.

어제 우리는 30킬로를 넘게 걸었다. 그리고 오늘도 우리가 걸어야 하는 거리가 30킬로가 넘는다.
오늘까지만 이렇게 많이 걸으면 이제 산티아고까지 30킬로씩이나 걷는 일정은 없다.
20킬로 전반대로만 걷기 때문에 어쩌면 힘들게 걷는 건 오늘이면 이제 끝이다.
마을 외곽에 있는 숙소여서 잠도 잘 자고, 잘 쉬었으니 오늘 30킬로는 거뜬히 걸을 수 있을 듯하다.

7BEA944F-766F-4E54-8725-B8687731AEB8.jpg

이렇게 개인 방에서 자면 언제나 늦잠을 잔다. 숙소를 나서는데 다들 이미 길을 나선 듯하다.
어제 분명히 브라질 팀도 우리랑 같은 숙소에 묵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인기척도 없는 걸 보면 벌써 출발한 듯하다.
엘리오가 나이가 많아서인지 오르막길을 잘 못 걷는다.
다른 때는 항상 우리보다 잘 걷는데 오르막길이 있는 코스에서는 언제나 우리 뒤에 쳐지는 것 같다.
오늘은 산 정상까지 올라가는 코스니 그래서 일찍 출발한 것 같다.

2B2FDA15-DD15-4085-B0A0-3CCE8D657F6F.jpg

높은 산으로 들어가는 코스는 주변 분위기도 달라진다.
길도 꼬불꼬불해지고, 오르막이 시작되고, 주변에는 큰 나무가 즐비해진다.
이런 산길로 들어서면 나무 그늘 때문에 더위도 한결 덜어진다.
며칠 쌀쌀한 날씨 때문에 오히려 지금 걱정은 더위가 아니라 추위다.
아무튼 이런 날씨는 걷기에 아주 좋다.
오르막을 오르느라 힘들어지면 걸음이 느려지니 오전에 힘이 날 때 부지런히 많이 걸어두는 것이 중요하다.

BBE54E7F-897A-44BD-9D51-9CB4A7AD7EA3.jpg

IMG_0734.jpg

아침으로 먹은 또띠아(스페인 오물렛)와 빵 그리고 진한 에스프레소 한잔이다.
스페인 사람들은 빵에 생토마토를 마구 문질러서 먹는다.
그러면 토마토의 독특한 향이 빵에 묻으면서 소스 역할을 하고, 딱딱한 바케트빵이 토마토 과즙으로 부드러워져 먹기 편해진다.
산티아고 길 초반에는 이렇게 빵을 먹는 걸 못봤었는데, 뒤로 갈수록 아침에 이렇게 토마토 범벅이 된 빵을 내는 카페가 점점 생긴다.

스페인 뿐 아니라 유럽은 토마토가 잘 되는 환경인 것 같다.
우리나라 토마토랑 맛이 많이 다르다.
큰 토마토가 빨갛게 잘 익었고, 우리나라 토마토처럼 풀 냄새도 거의 안 난다. 게다가 흔하게 잘 되는 작물이어서인지 값도 무지 싸다.
우리나라의 모든 음식에 고추가루가 들어가는 것처럼, 유럽의 모든 음식에는 토마토가 들어가는 것 같다.
그래서 유럽에서 이렇게 간단하고 맛있게 먹은 아침 빵이 생각나서 집에서 해 먹어보려고 하면 돈도 많이 들고 맛도 이 맛이 아니다. 그럴 때 참 아쉽다.

F9E90DF9-6B15-4726-BF3E-1D869C937B2A.jpg

아마도 오늘 이 코스는 옛날에는 무지 힘든 코스였을 것이다.
계속해서 산으로 들어가면서 계속해서 오르막의 경사가 가파라진다.
하지만 지금은 산을 오르는 내내 아스팔트 도로가 다 나 있다.
그래서 산을 오르는 게 훨씬 쉽게 느껴진다.
숲도 크고 깊어서 여기 산골 마을 사람들은 벌목을 해서 목재를 만들어 팔기도 하고, 산에 소를 방목해 길러 팔기도 하는 듯하다.

61DD407B-A239-4620-B4A9-889AE2B53BAA.jpg

길가에 높이 쌓아놓은 목재도 계속 보이고, 산 여기저기에 가축 똥 냄새도 많이 난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이런 산골에 사는 사람들도 경제 활동이 쉬워지겠지만, 산티아고를 걷는 순례객들도 수월하게 걸을 수 있는 듯하다.
쉽게 걸을 수 있으니 산티아고를 찾는 사람도 점점 많아질테고.
순례길이라는 것이 꼭 고되야 하는 것은 아니니, 더 많은 사람들이 걷는 즐거움을 찾기 위해 산티아고를 찾으면 좋겠다는 이런 가파른 산행에서 할 수 있었다.

산 중간에 있는 마을에서 잠시 휴식을 하기로 했다.
이런 날씨에는 음료수도 맥주도 먹을 생각이 거의 나지 않는다.
전 카페에서 아침 식사는 했으니 잠시 의자에 앉아서 지친 발만 풀어주고 곧 일어나게 된다.
쉬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 반가운 얼굴이 보인다.

229A7BE0-38C1-4FF4-A115-510CEE815B06.jpg

대만에서 온 웨린이라는 아가씨이다.
이 아가씨는 열흘 전쯤 ‘미팅포인트’라는 알베르게에서 같이 묵었던 사람인데, 그때는 너무 지쳐서 우리가 인사를 해도 겨우 고개만 끄덕이던 아가씨였다.
오늘은 생글생글 너무 잘 웃고, 인사도 신나게 하고, 말도 자꾸 걸길래 내가 물어 봤었다.
“전에 널 본 적이 있어. ‘미팅포인트’라는 알베르게였는데, 그때 너무 힘들어 보이더니 오늘은 아주 신나 보인다.”
그랬더니 웨린 말이 “맞아, 그날이 내가 산티아고를 걷기 시작한 첫날이었어. 걸어보니 너무 힘들더라구. 며칠을 힘들게 걸었는데, 이제는 익숙해져서 아주 재미있어. 여기는 한국 사람들이 참 많이 오는 거 같아. 매일 새로운 한국사람을 만나고 있어.”라고 한다.
우리 생각에는 전에 본 사람과 이 사람은 완전 다른 사람 같다.
계속 혼자 걷고 있는 것 같은데, 아무튼 걷는 재미를 알아 이렇게 신나게 걷고 있다니 앞으로 만나면 더 반갑게 인사도 하고 대화도 해야겠다.
정말로 초반에는 말을 건 우리가 뻘쭘할 정도로 웨린은 고통스러운 얼굴이었었다.

산티아고 길은 분명히 오래 힘든 길을 걸어야 해서 고통스런 길이 맞다.
하지만 며칠 그 고통을 이겨내고 나면 알 수 없는 재미와 기쁨을 매일 선사하는 길인 것도 맞다.
이 재미와 기쁨은 말로도 글로도 설명하기 힘들다.
그냥 걸어본 사람만 그걸 알고, 같이 걸어본 사람만 그걸 공감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산티아고를 다녀온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아는 사람들에게 산티아고에 가보길 권하지만 딱 꼬집어서 뭐가 좋은지는 설명하기 힘들어 한다.
오늘 웨린을 보니 웨린도 이제 우리와 그 재미와 기쁨을 느낌으로 공감할 수 있는 순례자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은 2017년 6월 10일부터 7월 8일까지 산티아고 길을 걸었던 우리 부부의 찬란한 추억이 담긴 글입니다. 사진은 대부분 남편(@lager68)이 찍었습니다. 글은 제가 썼는데 많이 미숙한 글입니다. 그럼에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산티아고를 그리다) 오래 걸을수록 남다른 느낌을 갖게 된다, 산티아고에서는.



이 글은 스팀 기반 여행정보 서비스

trips.teem 으로 작성된 글 입니다.

image

Sort:  

계속 걷고... 또 걷고 하다보면 무슨 생각이 들지 궁금하네요.

계속 걷다보면 오히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습니다.
잡념이 없어진다고 할 수 있는데, 그래서 정말 좋더라구요.

저도 언젠가는 가보고 싶은 길이네요~

네, 꼭 가보시길 권합니다.^^

Hi @gghite!

Your post was upvoted by @steem-ua, new Steem dApp, using UserAuthority for algorithmic post curation!
Your UA account score is currently 3.636 which ranks you at #5844 across all Steem accounts.
Your rank has improved 27 places in the last three days (old rank 5871).

In our last Algorithmic Curation Round, consisting of 227 contributions, your post is ranked at #178.

Evaluation of your UA score:
  • You're on the right track, try to gather more followers.
  • The readers like your work!
  • Try to work on user engagement: the more people that interact with you via the comments, the higher your UA score!

Feel free to join our @steem-ua Discord server

오세브레이로 정말 좋은곳이었어요!
높은 산에서 내려다 보이는 경치가 멋진곳!
식당에서 순례자메뉴를 주문했는데 딱 시래기국 비주얼에 맛도 시래기국인 스프가 나왔는데 너무 맛있었어요.

Posted using Partiko iOS

산 정상 마을의 기억을 간직하고 계시는군요.
저도 참 인상깊은 마을이었습니다.^^

주말에 몇달 여유시간이 있다면 순례길을 가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남자친구가 하더라구요 스케쥴 정해 놓고 여행하는거 싫어하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모르겠는데요ㅎㅎㅎ 현실적으로 불가능 한데말이죠.ㅠㅠ
크 gghite 님이 생각났습니다. 저도 국토대장정 한번 해보고싶어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은 잘 없더라구요.
기회가 올 겁니다.^^
남친과 함께 걸으시면 좋겠네요.^^

술술 잘 풀어가는 이야기 재미있어요

Posted using Partiko Android

감사합니다.^^

여행의 묘미가 새로운 글로벌 친구를 만난다는거죠.
그래서 여행을 멈출수가 없는것 같습니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나라의 다양한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고요.ㅋ

그 길을 걷고 격하게 공감하고 싶은 1인입니다~ ㅎㅎㅎ

우선 걸을 수 있는 체력을 기르셔야겠죠?ㅋㅋ

오르막길도 많고 힘든 길이지만 이렇게 즐거워 하는 분들을 보니 살짝 부럽기도 합니다...만 저는 못할 듯요..ㅜㅜ

못할 거란 생각은 먼저 하지 마세요.
저도 절대로 오래 걷고, 열악한 숙소에서 자고, 게다가 낯선 곳...
못할 줄 알았습니다.ㅋ

달리기도 그 비슷한 경험이 있지요

뭐든 꾸준히 오래하는 것이 주는 색다른 것이 있더라구요.^^

Coin Marketplace

STEEM 0.32
TRX 0.11
JST 0.034
BTC 66791.24
ETH 3239.69
USDT 1.00
SBD 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