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를 그리다)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마을에서 만난 가장 나이 많아 보이는 할머니의 미소... 따뜻하지만 우린 힘들다.

in #tripsteem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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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꼭대기 마을 전에 마지막으로 있는 마을에 도착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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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냄새 맡으며 산길을 가파르게 올라오느라 저절로 오만상이 지어진다.

마을 입구에서 동네 할머니와 마주쳤는데, 내가 “올라~”하고 반갑게 인사를 하려고 했는데 너무 숨이 차서 한숨과 함께 이상하게 인사를 했을까? 할머니는 “올라오느라 수고했네.”하는 아주 평온한 미소로 맞아주며 함박 웃음을 웃으셨다.
산속 오래된 마을에 오래 전부터 살고 있었을 듯 이야기책에서나 나올 것 같은 모습의 할머니를 보니 반갑고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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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나랑 의사소통이 안 될 이 할머니를 보고 내가 반갑게 인사하고 한참을 쳐다보며 살피고 있으니까 남편이 사진을 찍어 주었는데, 아주 재미있는 사진이 되었다.
이럴 때 우리가 서로 말이 통하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높은 산에서 할머니는 얼마나 사셨는지, 이 산골 마을은 살기 어떤지, 순례객들이 매일 여길 지나가니 할머니도 재밌지 않으신지 하며 궁금한 것도 묻고, 경치가 너무 좋다느니 공기가 맑다느니 똥냄새가 너무 많이 난다느니 사소한 감상도 얘기해 보고 싶은 마음이, 마을 입구에서 할머니를 마주친 순간 내 머릿 속에서 끝없는 이야기가 되어 지나가고 있었다.
아마도 이 할머니는 태어나 이 산을 한번도 내려가 보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매일 세계 각 나라의 모든 사람을 이렇게 마을 입구에서 구경하며 평생을 사셨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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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간 마을이어서 볼 수 있는 광경을 보았다.
집집마다 기르는 소는 소우리에 있다. 하지만 이들은 작은 축사에서만 길러지고 있지 않다. 우리가 오면서 봤던 산에 넓게 펼쳐진 초지에 방목되어 풀을 뜯게 해준다.
그래서 이렇게 식사 때가 되면 주인이 소를 몰고 풀을 뜯어 먹이러 나간다.
소의 생김새도 우리 나라와 약간 다르다.
근육이 튼튼해 보이는 소는 어슬렁어슬렁 주인이 막대기로 이끄는 대로 줄줄이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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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집집마다 기르는 개는 보통 소몰이 개인 것 같다.
줄 지어 밥 먹으러 가야 하는데, 가다가 옆길에 난 풀에 정신이 팔려 그 풀을 뜯고 있으면 어김없이 소몰이 개가 와서 컹컹 짖는다.
그러면 몸집은 개의 열배도 넘는 소가 쫄아서 먹던 풀을 포기하고 가던 길을 계속 같다.
소몰이 개는 앞 뒤로 뛰어 다니면서 딴 짓하는 소에게 컹컹 혼내느라 아주 바쁘다.
덩치 큰 소들이 길을 거의 차지하고 지나가기 때문에 대부분의 순례객들은 길가에 서서 이 광경을 구경하고 사진도 찍고 그런다.
영리한 소몰이 개와 순진한 소들의 행렬을 보고 있으면 한가한 산골마을의 나른함같은 것이 느껴진다.
이렇게 풀 뜯으러 나선 소들은 산 중간 여기저기에 흩어져서 한가롭게 풀을 뜯는다.
자세히 보면 아무데나 가서 풀을 뜯는 것 같지는 않다.
풀밭도 나무나 돌담으로 구획이 그어져 있는 걸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평화롭고 한가해 보이는 풀 뜯는 소들이다.

우린 이 마을에서 시원한 맥주도 마시고 마을 급수대에서 물도 먹었다.
확실히 산에서 내려오는 물은 시원하다.
지금껏 지나온 마을의 급수대에서 나오는 물은 스페인의 작렬하는 태양 탓에 물 온도가 미지근했었는데, 여기 산골 마을 급수대에서 나오는 물은 냉장고에서 갓 꺼낸 것처럼 쨍하게 시원하다.
이 마을에서 묵는 사람도 꽤 많이 있다.
워낙 가파른 길을 힘들게 올라와서 더 못 걷고 여기서 눌러 앉는 것이다.
하지만 우린 소똥에 말똥에 냄새가 너무 나서 원래 목적지인 산 정상까지 가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계속 산이 있어서 앞을 봐도 산, 뒤를 돌아봐도 산이다.
산이 계속해서 이어져 있어서 굽이굽이 산을 넘는 듯한 재밌는 경험을 할 수 있는 코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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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인 산꼭대기까지 3킬로 남은 시점부터는 자전거 도로로 걸었다.
산길이 너무 험하기도 하고, 결정적으로 말똥 때문에 걷기도 힘들고 냄새도 너무 나기도 하고, 이틀을 연속 30킬로를 걷는 거라 발도 너무 아팠어서 그나마 편한 아스팔트길로 걷기 위해서이다.
게다가 여기는 산이 높고 깊어서 차도에 차도 거의 안 다닌다.
높은 산에 오르니 바람도 시원하고 시야도 시원하고 순례자들 마음도 시원해진다.
며칠 전 비바람 속에서 오른 산 정상과는 확연히 다르다.
정말로 하늘로 올라가는 길을 걷는 느낌이다.

이 글은 2017년 6월 10일부터 7월 8일까지 산티아고 길을 걸었던 우리 부부의 찬란한 추억이 담긴 글입니다. 사진은 대부분 남편(@lager68)이 찍었습니다. 글은 제가 썼는데 많이 미숙한 글입니다. 그럼에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산티아고를 그리다)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마을에서 만난 가장 나이 많아 보이는 할머니의 미소... 따뜻하지만 우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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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저 할머님은 전세계사람들 다만나셨겠어요ㅎㅎ

저렇게 길목에 서서 사람구경을 즐기고 계시는 거 같더라구요.ㅋ

스페인 하숙이 생각나네요
저도 가보고 싶어요
음 걷는건 힘들거 같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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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하숙 촬영지 마을에서 이 산길이 시작된답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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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재미 있어요 고생 하고 올라온 산등성이 마을 에대한 이야기전개 꼭 동화책 읽는것 같아요 동화 작가 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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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었는데...ㅋ

며칠전은 비바람, 오늘은 맑은하늘뷰, 인생사와 별반 다르지 않네요

저희가 걸었던 때는 그래도 날씨 변화가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답니다.

ㅋㅋㅋㅋ 정말 표정이 모든걸 말해주는거 같아요
마스크도 안하시고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할머니랑 말이 안통해도 눈빛으로 이야기 다되셨을듯합니다 !

마스크 대신 워머가 있었는데도, 너무 힘든 산길이라 냄새도 냄새지만 숨이 더 차서 할 수가 없더라구요.

산티아고 순례기를 읽으면서 정말 나도 가고싶다는 생각이 절실히 듭니다.
거의 한달간 다녀오셨던데 계속 이렇게 걷기만 하시는건가요? ^^;;

네, 하루도 안 빼도 평균 25킬로를 걸었답니다.
걸음에 완전 도통하고 왔습니다.ㅋ

산티아고 길 중간에 집사서 숙박업해도 재밌을것같아요 전세계사람들 만나서 이야기 나누고

순례길 중간에 한국분이 숙소를 하고 있는 집도 있었어요.
가능한 계획이더라구요.

와우~ 하늘위를 걷는 느낌일것 같아요.

구름을 밟으며 걸었답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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