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 떠난 여행

in #tripsteem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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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전 여름. 가장 멀리 간 혼자만의 여행입니다. 쪼크만 소기업만 다니다가 대기업에 들어가니 여름휴가가 엄청 길더군요. 무려 9일. 2+5+2=9. 평생 직장생활 하면서 이렇게 긴 휴가는 처음이었습니다. 그전 직장은 여름휴가가 겨우 2일이었으니. ㅎㅎㅎ 그래서 9일동안 집에 처박혀 책만 볼 수는 없으니 어딘가 가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같이 갈 사람도 없고, 여행을 안 다녀봐서 어딜 가야할지도 모르겠고... 그러다가 갑자기 생각났습니다. 시간이 생겼으니 미루고 미뤘던 '엄마를 찾으러 가자.'

저는 초등학교 입학식을 하자마자 할머니집에 맡겨졌습니다. 부모님의 이혼. 그 후로 저는 28년이나 엄마와 연락이 두절됐습니다. 사진 하나 없어 얼굴도 기억이 안 나고, 오직 아는 건 이름 뿐. 그래도 찾겠다고 다짐한 건 동생의 역할이 컸습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 동생에게 엄마를 꼭 찾으라며 엄마의 언니와 오빠 이름을 알려줬다고 합니다. 동생은 아버지 돌아가시고는 전화번호부를 뒤져 일일이 전화했고, 놀랍게도 엄마의 언니와 연락이 닿았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 엄마를 만날 수는 없었다고 합니다.

MB정권이 한 일 중에 하나가 가족관계등록부인데요, 동생이 '오빠, 오빠꺼 가족관계 등록부 보면 엄마 주민번호 나와.'라고 하더군요. 아~~~ 맞다!!! 가족관계등록부에 엄마가 나올 테고, 엄마의 등본에 엄마의 주소가 나올 테니, 엄마의 등본을 떼보자.

그렇게 저는 여행 계획을 세웠습니다. 어디 계시든 찾아가보겠다고.
드디어 휴가 첫날, 저는 바로 동사무소로 갔습니다. 거기서 제 가족관계등록부를 뗐습니다. 그리고 제가 친아들이라는 게 나오기 때문에 엄마의 가족관계등록부와 등본도 뗄 수 있었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받아든 엄마의 가족관계등록부와 등본. 거기엔 자녀로 저와 동생 그리고 처음 보는 이름 하나가 더 있었습니다. 아,,, 재혼하셨구나.
그리고 주소, 남쪽 끝. 아주아주 먼 곳.

먼저 바로 아버지가 계신 납골당으로 향했습니다. 거짓말같이 비가 내렸습니다. 그러자 동생이 이렇게 말합니다. '오빠 온다고 아빠가 좋아서 우나보네.' 아빠가 좋아했던 새우버거 2개를 담고 절을 했습니다. '아빠, 평생을 미워하며 살게 될 줄 알았던 엄마를 찾으러 갈거야. 나를 버린 엄마를 찾으러 갈거야. 그런데, 찾으면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 나 얼굴도 몰라. 그래도 찾아볼게. 아빠의 유언이니까.' 눈물이 나오려는 걸 힘들게 참았습니다. 벌써부터 울면 안 되니까요. 긴 여행의 출발, 힘을 내야 하니까요.

차편을 알아봤습니다. 기차도 없는 아주 작은 시골마을이더군요.
주소만 거기고 다른 곳에 살 수도 있을 테지만 무작정 가보기로 했습니다. 휴가는 9일이나 되니까요. 서울에서 한 번에 가는 고속버스는 하루 2대 뿐. 그래서 일단 전라도 광주로 간 후 다시 버스를 타고 두 시간여 더 가서 내린 작은 시골마을.

마을에 도착하니 이미 해는 기울어가고 있었습니다. 아침에 출발했지만 벌써 저녁시간. 스마트폰 지도 어플로 주소를 찾아 손에 들고 집을 확인했습니다. 한걸음 한걸음 걸으며 집에 다가갈수록 가슴이 떨렸습니다. 안 살면 어쩌지? 날 못알아보면 어쩌? 재혼했는데 내가 괜히 찾아가는 걸까? 그리고 드디어 도착한 집 앞, 개가 짖어댑니다.
초인종이 없어서 문을 두드리며 계시냐고 불렀습니다. 한참을 부르니 10살쯤 되는 아이가 나옵니다.

'누구세요?'
'어, 저기 여기 ㅇㅇㅇ이라는 분 사시나요?'
'네. 저희 엄만데요. 누구세요?'
그러자 안에서 목소리가 들립니다.
'밖에 누구니?'
'엄마 손님 오셨어.'
잠시후 한 여자분이 나오셨습니다.

순간 심장이 멈추듯 숨이 차올랐고 저는 침착하려 애썼습니다. 그 여자분은 제 여동생과 똑같아도 너무너무 똑같은 여자분이었습니다. 사진 한 장 없어 얼굴로 몰랐는데도 저는 엄마라는 것을 한 눈에 알아봤습니다.

'누구세요?'
저를 보고 누구냐고 묻습니다.
'저 김ㅇㅇ이라고 합니다. 혹시 저 아시나요?'
'그러세요? 모르겠는데. 저를 아세요?'
'네. 제가 아는 분이 맞는 것 같아요.'
'그럼 기다리세요. 옷 좀 갈아입고 나올게요.'

다시 들어간 그녀는 옷을 갈아입고 나왔습니다. 우리 둘은 나란히 아무말 없이 걷기 시작했습니다. 골목길을 돌자 내 손을 잡으시며 우시기 시작했습니다.

'ㅇㅇ아, 내가 어떻게 너를 못알아보겠니. 아빠랑 똑같이 생겼네.'
'엄마.'
28년만에 불러본 '엄마'라는 두 글자. 사춘기 시절 일기장에 엄마의 이름을 가득 적고 눈물로 일기장을 적시던 시절엔 평생 엄마를 만나지 못할거라 생각했습니다. 왜 진작 찾아오지 못했을까?

'어떻게 날 찾을 생각을 했니?'
'미안하다. 미안하다. 내가 너에게 해줄 말은 이것 뿐이다.
세상에, 아들이 이렇게 다 커서 나를 찾아왔네.
고맙다. 고맙다. 나를 찾아줘서.'

우린 그렇게 펑펑 울었습니다. 28년만의 만남이었지만 피는 속일 수 없었습니다. 우린 첫눈에 서로를 알아봤으니까요.

'보고 싶었다. 내가 너를 키우지 못해서 엄마로서 자격이 없어서 너를 찾지 못했어. 네가 언젠가는 나를 찾을 거라 믿었어. 고마워. 이렇게 찾아와줘서 고마워.'

우린 저녁을 먹고 방을 하나 잡고는 밤새도록 얘기했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얘기는 해도해도 끝이 없었습니다. 28년이라는 시간. 엄마 없는 서러움과 가난에 허덕였던 청소년시절, 사회에 나왔지만 계속된 실패... 엄마는 저 어릴적 얘기도 해주시고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도 얘기해주셨습니다. 그렇게 저는 엄마를 찾았고 나를 찾았습니다. 28년 만에.

거리도 멀고 아직 제 두 아들이 어려 아이들과 함께 찾아뵙기가 힘드네요. 그래도 건강하게만 살아계세요. 힘든 시절 잊어버리시고 남은 인생 좋은 기억만 만드시길 바랄게요. 엄마, 저를 세상에 있게 해주셔서 정말 너무 고맙습니다.



나를 찾아 떠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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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만나셔서 다행입니다.
아이들이 조금 더 커서 손주 얼굴 보여주시면 더 기뻐하실거 같아요

먼 훗날 손자 보면 어떤 기분일까,,, 지금 엄마의 기분일 것 같아요. ^^

엄마를 찿았다니 축하합니다.
좋은시간 많이 가지세요.

감사합니다. ^^

아 ㅠㅠ축하드립니다 좋은시간 많이가지세요ㅠ

축하 고마워요. 오래 사셔야 할 텐데요. ㅠㅠ

정말 값지고 소중한 여행이네요 ㅜㅜ

제가 한 여행 중 가장 값진 여행이었어요.

안녕하세요 @tsguide 입니다. 어떤 심정이실지 상상이 가지 않네요. 그래도 결국 어머님을 찾게 되셔서 다행입니다. 어머님과 새로운 추억 많이 만드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경험하지 않으면 모르는 게 많긴 하지요. ^^

잘 하셨네요.
마음이 참 아프지만 서로 용기내어서 마음을 터놓아 더 잘 하신 듯 합니다.

다시 만나긴 했지만 자주 못 뵈어 마음이 아파요.

정말 쉽지 않은 여행이셨을텐데 용기내셔서 잘하셨습니다. 이런 값진 여행기를 보게 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여러 할 이야기가 많으시겠습니다. 같이 시간 많이 보내시면서 좋은 추억을 만들어가셨으면 좋겠습니다.

막내딸이 아직 학생이라 미루고 미루고 있습니다. ㅠㅠ

단편 영화를 한 편 본 거 마냥
감동입니다.

부족한 이야기를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엄마와 자식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요.
탯줄은 끊어져도
그 자리는 뚜렷이 남아 평생을 가는데
잘 하셨습니다.
자주 기회를 만드세요.

거리가 멀어서인지 쉽지가 않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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