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추억하다 #5-2. [싱가포르] 비오던 날

in #tripsteem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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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전화와 전화번호부라니

둘째 날. 오전 내내 수업이 있었던 그날엔 오후가 되어서야 싱가포르 구경을 시작했다

센토사섬은 그때나 지금이나 싱가포르의 관광 포인트로 유명하지만, 사실 막상 가보면 즐길 거리는 별로 없다. 지금은 그나마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생겼지만, 당시에는 커다란 머라이언(Mermaid + Lion) 석상, 실로소 비치, 아쿠아리움을 구경하는 것이 그곳에서 할 수 있는 전부였던 것 같다.

그날은 아침까지만 해도 날씨가 괜찮았지만, 케이블카를 타고 센토사섬에 도착한 직후부터 비가 내렸기에 일단 아쿠아리움인 언더워터 월드(2016년 폐장)부터 구경하기로 했다.

그곳 아쿠아리움은 거대한 수중 터널로 이루어져 있었다. 처음 보는 형형색색의 물고기, 해마, 듀공, 상어가 신비했는지 참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지만, 어두운 곳에서 찍은 사진이라 모두 흔들리고 이 사진 딱 한 장만 운 좋게 살아남았다.


싱가포르에서의 비는 대부분 짧은 소나기지만, 그날따라 어찌나 비가 오랫동안 내리던지. 수족관 관람 후에도 비가 그치지 않아 결국 센토사 구경은 후일로 미루고 City Hall 역으로 이동했다.

싱가포르에 살면서 마음에 들었던 부분 중 하나는 우산 없이도 생활하기 편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학교 내부의 버스 정류장부터 건물까지는 지붕이 덮인 복도로 연결되어 있었고, 시내의 주요 건물이 지하도로 연결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비가 자주 오고 덥다 보니 이런 연결 통로가 많이 생긴 것 같다.

시티 홀로 향한 이유도 그래서였다. 시티홀은 쇼핑몰인 선텍 시티, 시티 링크 그리고 두리안을 닮은 복합 문화 공간인 에스플러네이드까지 지하도로 연결되어 있어 비 오는 날 돌아다니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터 스스럼없이 케이크를 사 먹게 된 걸까? 요즘은 가격보다는 살찔까 봐 케이크를 사는 것을 주저하지만, 이 당시엔 스타벅스 케이크는 정말 큰마음 먹어야 살 수 있었던 비싼 음식이었다. 먹고 싶었지만 꾹 참았던 케이크를 디저트로 먹었던 데이트 둘째 날.


커피숍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지하상가를 구경해도 좀처럼 비가 그칠 생각을 하지 않아 정처 없이 걷다 보니 어느새 에스플러네이드에 들어와 있었다. 게다가 이곳엔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과 함께 앉을 수 있는 푹신한 소파가 군데군데 있어 이곳에서 비가 그칠 때까지 마음 편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에스플러네이드에서 바라본 전경 1



에스플러네이드에서 바라본 전경 2

1번, 2번 모두 같은 건물에서 찍은 사진으로, 1번은 오른쪽, 2번은 왼쪽 사진이다. 첫 번째 사진의 풍경은 현재의 모습과 별다를 바 없는 반면 두 번째 사진은 지금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했던 이곳에는 싱가포르의 대표적인 건축물인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과 가든스 바이 더 베이가 세워졌다.


한참 휴식을 취한 후 넓은 도서관을 돌아다니다 보니 피아노가 있는 작은방이 보였다. 조금이라도 더 잘 보이고 싶었던 나는 피아노를 연주했고, 그땐 그도 열심히 피아노 소리에 귀 기울였다. 그렇게 열심히 듣던 모습은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을 보면 그도 그땐 조금이라도 더 잘 보이고 싶었나 보다.



보는 것만으로도 따뜻했던 풀러턴 호텔의 불빛


한참을 내리던 비는 해가 지고 나서야 그쳤고, 우리는 이곳부터 클락 키까지 걷기로 했다. 비가 오는 것은 싫지만, 비가 그친 후 한층 선명해진 풍경과 냄새는 언제나 좋다.


뒤로 보이는 Cavenagh Bridge



왠지 비싸 보여 들어갈 엄두도 못 냈던 음식점


비가 와서 인적이 드물었던 Read Bridge. 역시 가로등은 LED보다 백열등이 운치 있다.


강바람을 맞으며 시원한 술 한 잔을 즐길 수 있는 클락 키는 언젠가 남자친구가 생기면 꼭 함께 가고 싶던 장소였다. 이곳에서 칵테일 한 잔씩 놓고 한참을 대화하다 집까지 걸어갔던 기억.

그러고 보면 지금처럼 구글맵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어떻게 집까지 걸어갈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오차드에서 집까지의 길은 알고 있었으니, 아마도 싱가포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오차드 표지판을 따라 걸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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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 정보
● Sentosa Island, Singapore
● Clarke Quay, Singapore
● Esplanade, Singapore



여행을 추억하다 #5-2. [싱가포르] 비오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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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를 열심히 듣는 모습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뇨.. ㅋㅋㅋ 그날 이후로 피아노를 안치신거 아니구요?? 아름다운 추억입니다 ^^

ㅋㅋㅋㅋㅋ 아닙니다. 결혼하고는 한동안 집에 전자 피아노도 있었지만 전혀 1도 관심이 없더라고요. ㅋㅋㅋ

사랑은 언제나 비와 피아노군요~^^
센토사에 아쿠아리움 빼고 아무것도 없던 때에 저도 갔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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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그러고보니 저희를 이어준 계기 중 하나가 비였어요. 처음 같이 영화를 봤던 날 비가 와서 함께 우산을 썼는데 묘하게 설렜거든요. ㅋ
하지만 지금은 비오는 걸 정말 싫어해서 사막에 살고 있습니다. ㅋㅋ

싱가포르에 잠깐 들렀을 때 주룽새 공원과 센토사를 급하게 찍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 날도 비가 왔었는데... 지하로 길이 다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좋은 정보네요^^ 다음에 가게되면 지하로 이동해야겠어요~

http://sgmaps.blogspot.com/p/underground-singapore.html

궁금해서 검색했다가 누가 정리해 놓은걸 발견했어요. 여기 말고도 지하철 역 내부 지도와 표지판을 잘 따라가다 보면 주요 건물로 이어진 경우가 많아요. 건물과 건물 사이가 다리로 이어진 경우도 있고요!
구글맵에서 지하 이동경로를 표시해 주지 않는게 좀 아쉽네요. ㅎㅎㅎㅎㅎ

결혼하신 남편이란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인지 자꾸만 영화 비포선라이즈가 생각나버려요-
비오는 싱가포르, 부담스러워서 들어갈 수 없던 식당과 케이크, 피아노, 구글맵이 없이 걷기 모두 따뜻하고 로맨틱하게 다가오네요 ㅎㅎ

와 나도 이 생각하고 댓글 쓰러 내려왔는데!!!

비포선라이즈는 예전에 봤지만 그 이후로 나온 선셋과 미드나잇에는 관심이 없었는데 고물님 이야기 듣고 찾아보니깐 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알 것 같아요. 이번 주말에 남편이랑 같이 세 편 모두 봐야겠어요. ㅎㅎ

동남아시아의 비는 강렬하지요.

네. 9월은 그래도 건기라 이날 이후로는 비가 안왔어요 :)

짱짱맨 호출에 응답하였습니다.

읽으면서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네요!
너무 예쁘고 로맨틱한 여행기에요~ 잘 읽었습니다! ^^

감사합니다. 짧지만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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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선명하시네요~
무척 좋았었나 봅니다.

써니님 따라 싱가폴 이곳저곳을 기웃거린 느낌입니다~^^

여행기를 쓰려고 마음 먹었을 때만 해도 기억나지 않던 일들이 사진을 보면서 하나 둘 떠오르더라고요. 게다가 혹시 잘못 적으면 제가 나중에 이 글을 보면서 기억을 왜곡할까봐 조금 더 신경써서 썼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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