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용 장군 녹취록 21. 연대장 시절 1. 최고회의 의장 비서실장 권유를 거부하다. steemCreated with Sketch.

혁명의 와중에 육군대학 교관을 마치고 3사단 23연대장으로 취임을 했다. 3사단장이 미국 지휘참모대학 졸업한 사람을 보내달라고 해서 육군본부에서 이대용에게 연락이 왔다. 이대용은 동의를 했다. 8월에 연대장에 취임했다. 23연대는 운천의 문혜리에 있었다. 거기에서 약 1년 2개월 정도 근무를 했다. 연대장을 하러가서 4달정도 되었을 때 최고회의 의장 박정희의 비서실장을 하라는 요청이 왔다. 11월 정도였다. 한참 훈련을 하고 있는데 김계원 장군과 사단장을 거처 연락이 왔다. 박정희의 비서실장을 하라는 연락이었다. 이대용은 가지 않겠다고 이야기 했다. 수없이 많은 전투를 지르면서 군인으로서 교육을 받을 것도 다 받았는데 잘 알지도 못하는 정치에 나가는 것이 편치 않았다. 그저 군인으로 그냥 있고 싶었다.

이대용은 가지 않겠다고 명확하게 이야기를 했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했다. 본인의 의사를 무시하고 명령을 내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이 김재춘 장군으로부터 이대용이 추천을 받은 과정을 들을 수 있었다. 당시 육사 8기생들 중에서 김종필, 강신탁 그리고 오치성이 이대용을 추천했다는 것이다. 김종필을 잘 알지 못했으나 강신탁과는 매우 친하게 지냈다. 김재춘장군은 이대용의 의사를 확인하고 이후락을 추천했다. 이대용은 순수한 군인으로 나갈 사람이니 그냥 두는 것이 좋겠고 재주가 좋은 이후락을 기용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약 2주일 지나서 이후락이 공보실장으로 임명이되었다는 발표를 들었다. 공보실장이 비서실장이었다.

연대장을 하는 기간은 매우 즐거웠다. 당시 연대장을 1년 하고 나면 서울에 집한채씩은 산다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연대장은 연료비가 나왔는데 그 양이 꽤 많았다. 난방하고 밥해먹으라고 주는 돈이었다. 대부분 병사들이 해오는 나무를 쓰고 연료비는 쓰지 않았다. 그리고 판공비도 쓰지않고 그냥 모았다. 어떤 사람들은 쌀도 팔아먹고 휘발유도 팔아 먹었다. 그렇게 하면 집한채씩은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연대장 관사가 산골짜기 외딴 곳에 있었다. 연대장 부임한지 한 10일 정도 되었는데 밖에서 쿵하는 소리가 나서 나가보았더니 소고기 갈비 두짝이 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식용유 통도 같이 놓여 있었다. 팔아 먹든가 누구를 주든가 하라는 것이었다. 이대용은 아침에 이것들을 다시 들고 부대로 들어가서 이게 뭐냐 ? 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매주 목요일 소를 잡고 나면 갈비짝을 연대장에게 보낸다는 것이었다. 쌀도 보내고 다그렇게 한다고 했다.

이대용은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앞으로 그렇게 하지 말것을 단단히 이르고 소를 잡을 때 직접 입회를 했다. 절대 다른데로 고기를 빼돌리지 말고 모두 가마솥에 넣고 끓이라고 엄명을 했다. 그랬더니 병사들에게 밤톨만한 소고기 두서너개 씩이라도 돌아갈 수 있었다.

11월 20일이 생일이었다. 이대용은 부인에게 빈대떡과 만둣국을 만들라고 하고 대대장들을 불러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갑자기 밖에서 대대참모들과 연대참모들 30여명이 우르르 몰려왔다. 그러더니 싱거 재봉틀을 내려다 놓았다. 당시 싱거 재봉틀은 5만원 정도였다. 당시 연대장 봉급이 1만 8천원이었다. 우선 운전병에게 돈을 줘서 문혜리로 나가 빈대떡이니 안주거리를 사오게했다. 지금은 군사혁명기간이라서 아주 깨끗하게 연대장 생신을 축하하지만 예전에는 정말 쟁쟁하게 크게 해서 올리고 했다고 하는 이야기를 했다. 이대용은 기가찼다. 그래서 “이렇게 가지고 온 것은 고맙지만 우리가 고칠 것이 있다. 군인이라는 것은 청렴결백하게 살다가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다”라고 했다. “스위스같은 나라는 아무것도 없지만 물건을 잘 만들어서 돈을 벌어 잘 사는데 우리도 그렇게 못할 이유가 없다”고 하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군대가 깨끗해야 하고, 우리가 부패하면 군대는 미래가 없다. 장개석 군대가 그래서 망한 것 아니냐”라고 했다. 그날 저녁은 다들 같이 즐겁게 마시고 놀았다.

아침에 연대 인사장교를 불러서 싱거 재봉틀을 어디서 사왔느냐고 물었더니 운천에서 사왔다고 했다. 이대용은 무슨 돈으로 사왔느냐고 추궁했다. 그랬더니 우선 외상으로 사오고 대대장들과 연대참모 그리고 대대참모들이 봉급에서 얼마씩 지불하기로 했다고 했다. 점심시간에 모두들 모인 자리에서 그 사인한 종이를 난로에 넣어서 태워버렸다. 그리고 운천의 가게로 재봉틀을 돌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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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뵙지 못 했네요. 즐거운 연말 되시길 바라요.

정말 존경스러운 분입니다.
저 시절에 저런 분이 과연 얼마나 있었을지...

이분이 저때 이후락 대신에 비서 실장이 되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궁금점이 생깁니다 ㅎㅎ

정말 훌륭한 분이시군요 이대용 장군.

역쉬 우리 역사에도 제대로 하는 분이 이순신 장군 이후로도 있었군요. 딱 이분 뿐일 듯 한데. 계속 읽어 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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