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쟁사 연구) 6.25 초기 개화산 전투에 관한 보충

개화산 전투는 1000여명의 전사자를 남기고 우리의 뇌리에서 잊여졌다. 그러나 당시 개화산 주변에 살았던 주민들은 개화산 지역에서 이들의 희생을 잊지 않았다. 당시 육군정보학교 장병을 중심으로 잡다한 부대들이 모여서 전투에 참가했다. 아마도 제대로된 화력지원을 받지도 못했을 것이다. 방어작전을 수행하던 장병들은 탄약도 제대로 지니지 못했다고 한다.

전투가 끝나고 약 1000여명의 시신이 산에 그대로 버려져 있었다고 한다. 비가 오면 시신이 마치 통나무 내려오듯 흘러 내렸다고 한다. 주변에 살던 주민들도 어쩌지 못했다고 한다. 북한군이 점령하고 있던 기간에는 시신수습도 함부로 할 수 없었단다. 어떤 시비를 당할지 몰랐기 때문이란다.

한국군도 개화산 전투를 제대로 기억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역 주민들 중에서 이들의 원혼을 달래야 한다는 생각들이 모아지기 시작해서 충혼탑을 만들고 기념비를 세웠다. 이들의 원혼을 달래는 행사를 하지 않으면 이상하게 사고나 나거나 동네에 안좋은 일이 많이 생겼다고 한다. 항상 그렇듯이 공무원들이나 정치인들은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개화산 전투를 기념하기 위한 행사에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인 공무원들은 예외없이 승진에 탈락하거나 처벌을 받았다고 한다. 정치인들 중에서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던 사람들도 예외없이 낙선했다고 한다.

최근에 한국전쟁사 연구자들과 같이 개화산을 답사한적이 있었다. 우연히 개화산 전투 충혼비와 기념비를 한참 만들고 있었다. 그중에 나이드신 분과 이야기를 했는데 전투이후부터 지금까지의 상황을 이야기 해주었다.

아이러니 한 것은 개화산 전투 기념비에 백선엽의 이름이 버젓이 새겨져 있었다. 사실 백선엽의 1사단이 최소한의 역할만 해주었어도 개화산 전투의 비극은 없을 수도 있었다. 이전투의 비극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 버젓이 기념비 제일 높은 곳이 이름이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굳이 기념비 사업회장에게 이러니 저러니 말은 하지 않았으나 찹찹한 마음이 들었다. 제대로된 역사를 정리하지 않으면 파렴치한들이 주인노릇을 하는 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개화산 전투와 시흥과 안양지역에서의 전투 상황에 대한 전모는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아마도 영원히 묻혀 버릴지도 모른다. 세세한 전투의 경과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더라도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들의 희생으로 전쟁초기 국군의 파멸을 조금이라도 막았는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개화산 전투의 의미는 북한의 전사기록을 제대로 확인해야 제대로 밝혀질 것이다. 지금은 지나갈 지 모른다. 그러나 영원히 잊혀지거나 왜곡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우리가 삶을 제대로 살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 전쟁사 연구) 6.25 기습남침의 서사구조로 인한 전사기록의 왜곡문제(홍천 전투와 개화산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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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lly a very useful and meaningful article,telling about ancient korean history sir @wisdomandjustice

천명이나되는 희생들...슬픈 역사네요..
그런데 백선엽이라니....제대로된 역사를 정리하지 못하고
파렴치한들이 나서게 두다니 부끄럽습니다. ^^

너무 아프고 부끄러운 역사입니다.

6.25전쟁으로 사망한 사람만 수십만명이라죠..
참 할말을 잃게 만드는 슬픈 역사입니다

군대의 기념비란게 제대로된 사업이 드물죠.

6.25 절대 잊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역사이지요.
좋은 글 고맙습니다.

그러나 영원히 잊혀지거나 왜곡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우리가 삶을 제대로 살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쟁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니...
오늘 하루 저의 생활을 돌아봐야 겠습니다.
오늘도 잘 보았습니다 위즈덤님!
더운 날씨 몸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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